<도쿄 랑데부> (Tokyo Rendezvous) │ 감독 이케다 치히로 │ CGV 5관 11:30
야망이나 파이팅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세 사람이 여기 있다. 회사 일에 염증을 느껴 불현듯 사표를 던진 노가미, 그를 뒤따라 역시 별 생각 없이 일을 그만둔 동료 미사키 그리고 노가미와 맞선을 봤던 료코. 이들이 한 아파트에 모여 살게 된다. 여기까지는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를 떠올리게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들의 아파트엔 집주인이자 노가미의 할아버지가 함께 사는 것.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낡은 아파트를 팔자는 손자의 청을 줄기차게 무시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조용한 동네와 더 조용한 아파트에서 하릴없이 빈둥대던 세 사람은 주변의 노인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사려 깊고 지혜로운 어른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기에 ‘진짜’ 어른들로 인해 조금씩 단단해지는 셋을 보고 있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더욱이 하얀 셔츠를 입은 카세 료의 미모를 감상할 수 있으니 ‘락스푼 물에 담가 짤짤 흔들어 햇볕에 널어 말린’ 듯한 그의 매력을 심층 분석할 수 있는 기회다. 온라인 예매가 진작 매진되었으니 아침 일찍 현장 구입을 위해 서두르자.
<숏!숏!숏!:황금시대> (Short! Short! Short! 2009) │ 감독 김성호, 김은경, 남다정, 양해훈, 이송희일, 채기, 최익환. 윤성호, 김영남, 권종관 │ CGV 4관 14:00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이하, JIFF)의 개막작인 <숏!숏!숏!:황금시대>는 10명의 젊은 감독들이 만들어낸 옴니버스 영화다. ‘돈’을 주제로 다양하게 변주된 단편들에는 돈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는 청년, 돈을 이용해 조작된 기사를 만드는 기자, 좋아하는 소녀를 위해 동전을 모으는 소년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후회하지 않아>의 이송희일, <은하 해방전선>의 윤성호,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양해훈 감독 등 충무로의 촉망받는 감독들이 참여했다. 특히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들과 다르게 재기발랄함을 뽐내는 윤성호 감독의 <신자유 청년>이 눈에 띈다. 감독은 52주 연속 로또1등에 당첨된 임경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촌극을 통해 보수언론과 정치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엄숙주의와 경직성을 조롱한다. 임경업 그 자체인 임원희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진중권과 <숏!숏!숏!:황금시대>에 함께 참여한 동료 감독 등 카메오들의 화려한 입담과 개인기 또한 볼거리. 그러나 그렇게 웃기는 영화 속 상황이 그대로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쓴 뒷맛을 남긴다.
글. 전주=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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