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멋진 남자. 이것이 대중에게 사랑 받는 이선균의 이미지다. <하얀거탑>의 정의로운 의사, 메달만을 위한 분투가 가득한 의 로맨틱가이 동경, 유주의 방황을 묵묵히 감내하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성까지. 인내와 배려의 덕목을 두루 갖춘 흠잡을 데 없는 연인의 외양이 잘 재단된 수트처럼 그에게 어울린다. 물론 영화 <손님은 왕이다>의 해결사나 시트콤 <세친구>의 까불이 선균 등 폼 안 나는 루저였던 적도 많지만, 이선균이 가장 주목 받은 것은 뒤에서 지켜봐 주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였다.
그렇게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친절한 카운슬러일 수 있는 남자. 그건 이선균의 분신이 성장해온 궤적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천방지축 날뛰지는 않지만 불안한 미래와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우울한 청춘(<태릉선수촌>)은 훌쩍 자라 은찬이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키다리 아저씨(<커피 프린스 1호점>)가 되었다. 어느 순간 짠하고 나타난 완벽한 왕자님이 아니라, 불안한 터널을 통과한 시간이 그의 목소리에, 믿음직한 어깨에 얹혀 있어 이선균이 만들어낸 멋진 남자의 여유로움은 가짜 같지 않다.
그래서 “<케빈은 12살>을 너무 좋아”하는 그가 성장 영화를 권하는 것은 청춘들에게 던지는 판에 박힌 충고가 아니다. 부딪치고 깨져 쑥쑥 크는, 비 온 뒤 죽순 같은 성장기는 지났지만 고리타분한 아저씨로 남지 않은 자가 건넬 수 있는 선의의 위로다. 치열한 성장과 청춘의 시간을 이제 막 지나온 키다리 아저씨가 들려주는 아이들이 자라는 소리를 들어보자.
1.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1989년 │ 감독 피터 위어
“원래 성장 영화를 좋아해요. 성장물은 이야기 자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게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성장이란 건 누구나 겪는 일인데, 그게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아픔도 겪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있잖아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선 그게 극적으로 잘 표현된 것 같아요. 그래서 본 지 정말 오래됐지만 그 때의 첫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적당한 양분과 햇빛을 공급받고 크는 나무처럼, 자라나는 소년 소녀들에게는 좋은 자양분이 필요하다. 그것은 스스로 찾아 낼 수도 있지만 곁에 훌륭한 조력자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명문 사립 웰튼 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는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이라는 참된 스승이 있었다. 억눌린 자아를 해방시킬 수 있게 해준 스승 덕에 아이들은 따분한 책상물림으로 자라지 않을 것이다. 떠나는 키팅 선생 앞에서 모두가 책상 위에 올라가 “마이 캡틴”을 외치는 장면은 언제 봐도 울컥한 동시에, 진정한 스승을 가진 그들을 부러워하게 만든다.
2. <햇빛 쏟아지던 날들> (陽光燦爛的日子)
1994년 │ 감독 쟝 웬
“제대하고 두 달 정도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발견한 보물 같은 영화죠. 워낙 할 일도 없어서 하루에 비디오를 하나씩 골라 보는데, 이 영화가 참 안 나가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호기심에 틀었죠. 그렇게 아무런 정보도 없이 봐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오래돼서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 장면이 참 강렬했어요. 이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꼭 보라고 추천하는 영화예요.”
북경은 묘한 도시다. 화려하게 치장한 마천루를 한 걸음만 돌아가면 맨 얼굴을 한 뒷골목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남루한 거리는 예전 중국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바로 마오준(하우)에게 햇빛이 쏟아지던 날들의 그 거리를. 한 여름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영화는 어른이 되어 질풍노도의 시기를 떠올리는 마오준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거리를 제 집처럼 삼고 패싸움으로 소일하던 소년은 사랑의 열병도 앓고, 성장의 아픔도 느끼지만 그의 모습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무모한 행동과 폭력을 오가는 소년은 광기 어려 보일 만큼 위태롭다. 그러나 아직 덜 자라 어리석은 시기는 그렇게 불완전한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 영화로 데뷔한 하우는 1994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3. <시티 오브 갓> (Cidade De Deus)
2002년 │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카티아 런드
“저는 영화를 마음먹고 골라보는 편은 아니에요. 오히려 우연히 만나는 걸 즐기죠. <시티 오브 갓>도 작년에 별 기대 없이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남미 음악이나 그 문화 특유의 색감, 낡은데 원색적인 느낌 같은 걸 좋아하는데, 이 영화 톤이 딱 그런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쇼킹했어요. 이게 실제인지 영화인지 구분도 안 되고, 어떻게 저런 상황을 연기로 표현했나 싶더라구요. 그 역동적인 에너지에 감탄했어요.”
“리오의 그림엽서에는 이곳이 담겨 있지 않아.” 모두가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빈민촌 ‘시티 오브 갓’. 이곳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중요치 않다. 그저 오늘 살아남는 것,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논리만이 존재하는 무간지옥이다. 범죄가 곧 일상인 사람들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영화는 1970년대까지 실제로 벌어졌던 악행에 대한 기록이다. 실제 빈민가에서 캐스팅한 소년들을 데리고 찍은 영화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폭력이 난무하고, CF로 경력을 쌓은 감독의 감각적인 비주얼은 현란하다.
4.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
2008년 │ 감독 대니 보일
“처음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봤을 때 <시티 오브 갓>을 보고 받은 느낌이랑 비슷했어요. 물론 장르도, 내용도, 이야기를 푸는 방식도 다르지만 일부러 꾸미거나 예쁘게 포장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날 것이 통하는 면이 있더라구요. 제가 하고 싶은 것도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이 보여준 과하지 않으면서도 생동감 있는 연기예요. 그런 면에서 혹시 오버하진 않았나 제 연기를 되돌아보게 됐죠.”
단연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었던 <슬럼독 밀리어네어>. 그러나 아카데미 최다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외피 보다 마음을 건드리는 작은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다. 2천만 루피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 출전한 자말(데브 파텔)은 이제 마지막 한 문제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 그러나 우승까지 가는 그의 길은 쉽지 않다. 자말의 퀴즈쇼 출전과 과거의 인생역정이 유려하고 조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소년은 결국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까? 탄탄한 원작
그렇게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친절한 카운슬러일 수 있는 남자. 그건 이선균의 분신이 성장해온 궤적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천방지축 날뛰지는 않지만 불안한 미래와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우울한 청춘(<태릉선수촌>)은 훌쩍 자라 은찬이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키다리 아저씨(<커피 프린스 1호점>)가 되었다. 어느 순간 짠하고 나타난 완벽한 왕자님이 아니라, 불안한 터널을 통과한 시간이 그의 목소리에, 믿음직한 어깨에 얹혀 있어 이선균이 만들어낸 멋진 남자의 여유로움은 가짜 같지 않다.
그래서 “<케빈은 12살>을 너무 좋아”하는 그가 성장 영화를 권하는 것은 청춘들에게 던지는 판에 박힌 충고가 아니다. 부딪치고 깨져 쑥쑥 크는, 비 온 뒤 죽순 같은 성장기는 지났지만 고리타분한 아저씨로 남지 않은 자가 건넬 수 있는 선의의 위로다. 치열한 성장과 청춘의 시간을 이제 막 지나온 키다리 아저씨가 들려주는 아이들이 자라는 소리를 들어보자.
1.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1989년 │ 감독 피터 위어
“원래 성장 영화를 좋아해요. 성장물은 이야기 자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게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성장이란 건 누구나 겪는 일인데, 그게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아픔도 겪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있잖아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선 그게 극적으로 잘 표현된 것 같아요. 그래서 본 지 정말 오래됐지만 그 때의 첫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적당한 양분과 햇빛을 공급받고 크는 나무처럼, 자라나는 소년 소녀들에게는 좋은 자양분이 필요하다. 그것은 스스로 찾아 낼 수도 있지만 곁에 훌륭한 조력자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명문 사립 웰튼 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는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이라는 참된 스승이 있었다. 억눌린 자아를 해방시킬 수 있게 해준 스승 덕에 아이들은 따분한 책상물림으로 자라지 않을 것이다. 떠나는 키팅 선생 앞에서 모두가 책상 위에 올라가 “마이 캡틴”을 외치는 장면은 언제 봐도 울컥한 동시에, 진정한 스승을 가진 그들을 부러워하게 만든다.
2. <햇빛 쏟아지던 날들> (陽光燦爛的日子)
1994년 │ 감독 쟝 웬
“제대하고 두 달 정도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발견한 보물 같은 영화죠. 워낙 할 일도 없어서 하루에 비디오를 하나씩 골라 보는데, 이 영화가 참 안 나가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호기심에 틀었죠. 그렇게 아무런 정보도 없이 봐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오래돼서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 장면이 참 강렬했어요. 이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꼭 보라고 추천하는 영화예요.”
북경은 묘한 도시다. 화려하게 치장한 마천루를 한 걸음만 돌아가면 맨 얼굴을 한 뒷골목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남루한 거리는 예전 중국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바로 마오준(하우)에게 햇빛이 쏟아지던 날들의 그 거리를. 한 여름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영화는 어른이 되어 질풍노도의 시기를 떠올리는 마오준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거리를 제 집처럼 삼고 패싸움으로 소일하던 소년은 사랑의 열병도 앓고, 성장의 아픔도 느끼지만 그의 모습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무모한 행동과 폭력을 오가는 소년은 광기 어려 보일 만큼 위태롭다. 그러나 아직 덜 자라 어리석은 시기는 그렇게 불완전한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 영화로 데뷔한 하우는 1994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3. <시티 오브 갓> (Cidade De Deus)
2002년 │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카티아 런드
“저는 영화를 마음먹고 골라보는 편은 아니에요. 오히려 우연히 만나는 걸 즐기죠. <시티 오브 갓>도 작년에 별 기대 없이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남미 음악이나 그 문화 특유의 색감, 낡은데 원색적인 느낌 같은 걸 좋아하는데, 이 영화 톤이 딱 그런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쇼킹했어요. 이게 실제인지 영화인지 구분도 안 되고, 어떻게 저런 상황을 연기로 표현했나 싶더라구요. 그 역동적인 에너지에 감탄했어요.”
“리오의 그림엽서에는 이곳이 담겨 있지 않아.” 모두가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빈민촌 ‘시티 오브 갓’. 이곳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중요치 않다. 그저 오늘 살아남는 것,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논리만이 존재하는 무간지옥이다. 범죄가 곧 일상인 사람들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영화는 1970년대까지 실제로 벌어졌던 악행에 대한 기록이다. 실제 빈민가에서 캐스팅한 소년들을 데리고 찍은 영화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폭력이 난무하고, CF로 경력을 쌓은 감독의 감각적인 비주얼은 현란하다.
4.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
2008년 │ 감독 대니 보일
“처음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봤을 때 <시티 오브 갓>을 보고 받은 느낌이랑 비슷했어요. 물론 장르도, 내용도, 이야기를 푸는 방식도 다르지만 일부러 꾸미거나 예쁘게 포장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날 것이 통하는 면이 있더라구요. 제가 하고 싶은 것도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이 보여준 과하지 않으면서도 생동감 있는 연기예요. 그런 면에서 혹시 오버하진 않았나 제 연기를 되돌아보게 됐죠.”
단연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었던 <슬럼독 밀리어네어>. 그러나 아카데미 최다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외피 보다 마음을 건드리는 작은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다. 2천만 루피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 출전한 자말(데브 파텔)은 이제 마지막 한 문제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 그러나 우승까지 가는 그의 길은 쉽지 않다. 자말의 퀴즈쇼 출전과 과거의 인생역정이 유려하고 조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소년은 결국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까? 탄탄한 원작
가 대니 보일 감독 특유의 스타일과 이상적으로 결합했다.
5. <69 식스티 나인> (69)
2004년 │ 감독 이상일
“코미디 영화를 좋아해요. 그런데 오버하고 개연성 없는 애드리브를 하면서 만들어내는 웃음이 아니라, 진지한 상황에서 아픔도 묻어나고 어쩔 수 없이 발생되는 웃음을 좋아해요. <69> 같은 경우는 원작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고, 성장하는 청춘의 이야기면서 그런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어서 즐겁게 봤어요. 그 아이들이 하는 돌출 행동들이 청춘의 분출 같은 걸 보여줘서 후련하기도 했구요. 물론 츠마부키 사토시와 안도 마사노부의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죠.”
문제아로 찍힌 야자키(츠마부키 사토시)는 허풍쟁이에 즉흥적이다. 전학 온 아다마(안도 마사노부)는 과묵하고, 시니컬하며 반듯하다. 얼핏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함께 사고를 치고, 늘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게 달린다. 그런 아이들에겐 반전과 혁명 투쟁으로 가득 찼던 1969년도 단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잘 보이기 위한 작업 수단이었을 뿐. 여학생의 환심을 사려고 벌인 학교 점거는 생각보다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지만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좌충우돌 마음 내키는 대로 지를 수 있는 치기가 허용되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해윤이는 한성이처럼 다 받아주진 않아요.”
“영화 <파주>를 찍고 있어요. 디테일이 좋으신 박찬옥 감독님 덕분에 꼼꼼하고 차분한 현장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드라마 <트리플>로 그를 먼저 만나게 될 것 같다. “6월쯤 찾아 뵐 수 있을 것 같아요. 감독님이 절 염두에 두고 만든 인물이라는데 실제 저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하하.” 이선균에게서 광고 크리에이터 해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성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쯤 “이 역할은 그렇게 다 받아주지는 않아요. 해윤은 짜증도 내고, 싫고 좋고가 분명한 역할이라 놀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오히려 한성이 보다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기대를 증폭시킨다. 다이어트를 종용하는 여름은 싫지만, 다시 한 번 사랑하고 이별하고 성장하는 뜨거운 공간에 서 있을 이선균 덕분에 점점 올라가는 기온이 밉지만은 않다.
사진제공_ 매니지먼트 호두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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