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이라는 훈훈한 시간은 예능 프로들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도마 위다. 토크, 리얼 버라이어티 등으로 단련된 시청자들은 예민한 촉수로 출연자들을 감별하고, 에피소들 별로 낱낱이 회 치며 첫 회만으로 그 흥망을 예상하기도 한다. 한 시도 방심할 수 없는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대망’과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의 초반 성적은 사뭇 다르다. 콘셉트를 이러 저리 바꾸며 중심을 못 잡던 ‘대망’에는 포맷과 이름을 바꾸는 특단의 조치가 내려진 반면, ‘남자의 자격’은 짧은 시간 안에 자리잡은 캐릭터와 남자와 아저씨라는 일관된 콘셉트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고 있다. 웃기려고 만들었지만 만드는 사람은 웃기 힘든 예능의 세계에 뛰어든 신참들을 소개한다. 강명석 기자와 김교석 TV평론가가 예리하게 이들의 웃음을 파헤쳤다. /편집자주
글. 김교석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의 ‘대망’이 1,2회에서 내세운 ‘메인 MC 만들기’나 ‘리얼 버라이어티 적응기’는 사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외양만 다를 뿐, 이 콘셉트는 SBS <라인업>,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 등에서 여러 번 반복됐다. 출연자들을 약 올리며 장악하려는 PD와 그에게 불만을 드러내는 출연자들의 관계 역시 김태호 PD가 MBC <무한도전>에서 오래 전부터 보여주고 있다. 2회에서 출연자들이 각각의 도구를 이용해 목적지까지 가는 게임을 한 것은 <무한도전>의 ‘보물찾기’ 에피소드를 연상시킨다. 그래도 ‘대망’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형식이 아닌 관점이다. PD가 ‘MC의 자격’이라는 관점을 설정하면서, ‘대망’은 버라이어티 쇼의 여러 요소들을 뒤튼다.
대단한 희망이 대단한 절망이 되기까지
MC들의 장기자랑은 ‘개인기 없는 MC가 좋은 MC가 된다’라는 명제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고, 출연자들이 스태프의 식사를 챙길 것인가를 보는 몰래 카메라는 MC의 ‘배려심’을 알아보기 위한 수단이다. PD의 관점이 들어가면서 의미 없이 진행되던 버라이어티 쇼의 게임에는 뚜렷한 목적이 생기고, PD는 그들의 명줄을 쥔 평가관이 된다. 신입PD가 자막대신 내레이션을 사용한 것은 그가 MC들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도만을 본다면, ‘대망’은 인터넷의 리플로 존재하던 MC들에 대한 평가를 TV로 끌어들여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리얼’을 게임의 결과가 아닌 시청자의 평가로 옮겨놓았다. 2회 후반 1회를 함께 시청하는 MC들이 지인들에게 ‘대망’의 반응에 대해 듣고, 불안한 신입 PD에 대한 신임 투표를 하는 장면은 그 하이라이트다.
그러나 이 순간 ‘대망’은 왜 ‘大望’이 아닌 ‘大亡’이 됐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신입 PD는 “훨씬 더 심한 말이 오간” 식사 시간에 몰래카메라라도 설치하는 대신, 그들을 카메라 앞에 데려다 놓는다. MC들은 카메라를 의식하고 진지한 토론 대신 ‘배신자’ 이혁재를 희생양 삼는 코미디를 보여주고, 신입 PD는 아무런 설명 없이 3회에도 이혁재를 기용한다. 신입 PD는 오락 프로그램의 가장 예민하고 리얼한 부분을 코너의 핵심으로 끌어들였지만, 그것을 전형적인 버라이어티 쇼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신입 PD는 출연자들을 몰아붙여 리얼함을 이끌어낼 독함도, 리얼함을 포기하고 코미디로 승부를 걸 수 있는 순발력도 부족해 보인다. 특히 ‘MC의 자격’에 집중하느라 다큐멘터리의 관찰자처럼 MC들을 바라보는 신입 PD의 담담한 시선은 이 코너가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장점마저 놓치게 만든다. 출연자들이 각자의 도구를 이용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임을 할 때, 신입 PD는 자신의 평가 기준인 ‘대중 친화력’에만 매달려 그들의 캐릭터를 놓친다. 온갖 망가지는 모습을 감수하고라도 어떻게든 목적지에 가려 했던 윤손하의 성실함이나 MC로서는 심하게 낯을 가리는 탁재훈의 모습은 캐릭터로 부각되지 못하고 일회용 웃음거리로 지나간다.
‘대망’에 필요한 건 ‘MC의 자격’? ‘PD의 자격’!
‘대망’이 3회에 ‘대단한 희망’으로 바뀐 뒤 4회에 종영된 대단한 절망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소재를 스포츠에서 산업 현장으로 바꿨을 뿐, 과거 <일밤>의 ‘대단한 도전’처럼 게임과 벌칙으로 진행되는 이 전형적인 버라이어티 쇼에서, 신입 PD는 쇼의 어떤 부분도 부각시키지 못한 채 우왕좌왕한다. 3회의 숯 공장에서 출연자들은 ‘불의 고수’라는 공장장과 별다른 커뮤니케이션 없이 게임만 반복하고, 멸치잡이 어선에 간 4회에서는 게스트 이시영의 ‘신고식’ 춤과 게임, 출연자들의 배 멀미와 김용만의 화장실 찾기 에피소드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지루하게 나열된다. ‘대망’에 필요했던 건 ‘MC의 자격’보다는 ‘PD의 자격’이고, 신입 PD의 문제는 오락프로그램에서 실험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버라이어티 쇼마저 소화하지 못하는 기본기 부족이다. ‘대망’의 실패는 현재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꽃인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연출한다는 것이 사실 얼마나 힘든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넷에서처럼 MC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만으로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만들 수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정말 ‘MC의 자격’중 첫 번째로 다뤄져야 할 것이 ‘배려심’이나 ‘대중 친화력’일까? 방송경력 평균 15년 이상이라는 여섯 명의 MC들에게 물어보면, 그런 답은 안 나올 것 같다.
글 강명석
KBS <해피선데이>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1박2일’의 멤버들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딱 대학교 신입생들이 MT가서 노는 분위기다. 그런가 하면 새롭게 시작된 ‘남자의 자격’은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만사 귀찮은 복학생의 이야기다. 뭐든 좀 더 빠져야 제 맛이고, 세상의 순리를 다 아는 것처럼 무심해야 한다. 남자는 커서도 애라더니, 어른치고는 실없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남자의 자격’은 이경규의 말처럼 대여섯 명의 출연진이 게임과 미션을 수행하는 ‘요즘 프로그램’이지만 특이하게도 소설가 이외수와 가수 남진이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들이 제작진을 대신해서 미션을 내린다. 어쩌면 불필요해 보이는 이 설정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해병대 캠프에 가서도 지휘관의 나이를 묻는 이경규 같은 한국 아저씨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선배의 존재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면 어김없이 일렬종대로 헤쳐모여 서열을 정리하는 아저씨 습성의 강조다.글. 강명석 (two@10asia.co.kr)
신선한 얼굴들과 아저씨 퍼포먼스의 배치
그러니 평균나이 39세의 그들이 해병대 캠프에서 어떤 훈련을 받고, 금연 합숙소에서 어금니 꽉 깨물고 담배를 얼마나 참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가정 앞에 진지한 가장이지만 한편으로 해병대 캠프에서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라며 까불고, 커피와 자장면을 먹고 ‘식후땡’을 참는 모습에 ‘공분’의 웃음 포인트가 있다. 이것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개구리 마크만 달면 바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군모를 삐딱하게 쓰는 ‘아저씨’에게서만 우러나는 웃음이다. 또 이런 오빠들의 태도와 농담에 자지러지는 고운 여 후배들을 위한 퍼포먼스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아저씨 정서를 텔레비전에서 옮겨놓은 이른바 MBC <세바퀴>의 아저씨 버전인 셈이다.
물론 그 형식이 여타 프로그램과 색다르지 않다. “나도 캐릭터를 잡지 못했는데”라는 이윤석의 한마디는 ‘남자의 자격’도 리얼 버라이어티의 틀 안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세인 단체 출연과 1박2일 촬영을 하고, 미션도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에 필요한 전형적인 캐릭터들도 갖췄다. 유재석 롤을 담당할 무시당하는 진행자가 한 명(이경규)있고, 그를 윽박지르는 사람(김국진)은 필수다. 천진난만하게 분위기를 흐리거나 업 시키는 사람(김성민)도 필요하고, 진흙탕 참호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카메라 앵글 밖으로 나가버리는 4차원 출연자(김태원)는 분위기 반전용 조커다. 상대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수준 이하임을 보여주는 이정진의 역할은 나레이터 이상이고, 윤형빈과 이윤석은 세력형성을 좌지우지하는 무게중심 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걸핏하면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던 천하의 이경규가 김국진에게 방석 세례와 면박을 받는다. 이경규가 <해피투게더>에 출연해서 친절하게 포인트를 알려줬듯이 이 역할 크로스가 ‘남자의 자격’의 웃음 포인트이자 신선도를 높이는 방부제다. ‘라디오 스타’로 감을 다진 김국진은 이 역할을 잘 소화하며 자신의 저력을 확인시키는 동시에 시대적응을 마쳤음을 보고했다.
‘아저씨’라는 블루오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끝물
너무나 익숙한 형식의 리얼 버라이어티지만 ‘남자의 자격’은 아저씨라는 블루오션에 발을 내딛었다. 그동안 예능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한 인물과 퇴물 취급을 받던 이들의 조합은 시너지를 내며 빠른 속도로 팀워크를 다져가고 있다. 분명 어느 순간까지 한창 인기몰이를 할 것이다. 그러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포맷 자체가 한계를 맞이한 상황에서 뒤늦게 출발한 ‘남자의 자격’은 분명 다른 프로그램보다 낮은 곳에서 정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벌써 담배, 군대 이야기를 꺼냈으니, 아저씨들과 교감을 찾을 수 있는 아이템이 술과 축구 말고 또 뭐가 있을지 의구심도 든다. 파일럿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이제 3회 째.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김국진과 이경규의 역할 크로스가 힘을 다할 때, 그들이 어떤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줄지 기대해본다. 이 두 베테랑의 활약 여하에 따라 ‘남자의 자격’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물꼬가 될지 아니면 리얼 버라이어티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지 결정 날 것이다.
글 김교석
글. 김교석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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