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지(樂園地)라고 할 만한 탑골공원이 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된 낙원동(樂園洞). 그 위에 지어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식 건물이 ‘낙원상가’다. 낙원상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곳에 대한 기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 이다. 서울이 고향이 아닌 나는 카메라를 사러가는 길에 우연히 상가 건물과 마주친 이후로 종종 허리우드 극장을 가곤 했다. 90년대 말, 대형 영화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한동안 동성애자들, 노인들, 갈 곳 잃은 중년들이 모이는 ‘마이너적인 곳’으로 인식되기도 했었지만, 요즘은 클래식 전용 영화관으로 바뀌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고 있다. 왠지 친구나 애인과 함께 가기보다는 조용히 혼자 와서, 조용히 혼자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도 여기를 찾는 이유이기도 했다.

극장을 올라가는 동안 지나게 되는 악기상점들에선 멋진 화음들이 터져 나오고, 저녁이 되면 상가는 주변 야경과 어우러져 90년대 홍콩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 아름다운 상가는 관광지화 되어버린 인사동, 술집과 모텔만이 즐비한 종로거리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러나 서울시는 남산 조망권을 확보한다며 이곳을 철거할 예정이다. 가끔씩 한 번 들르는 곳이기는 했지만, 그 특유의 운치를 이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다고 하니 어릴 때 놀던 나만의 요새가 무너져 버린 기분이다. 이제 낙원상가의 마지막 얼굴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글.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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