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한민국 일요일 밤 박중훈쇼>가 결국 막을 내리기로 했다면서요? 저는 어지간하면 ‘시간을 주자,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보자‘는 쪽이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손톱만큼의 아쉬움도 남지 않더군요. 그 점, 박중훈 씨께 조금 미안합니다. 든 자리는 없어도 난 자리는 있다는데 사람 인심이 이래도 되나 싶어서요. 사실 ‘무릎 팍 도사’ 강호동이 오매불망 러브콜을 보낸 배우 장동건을 필두로 평소 TV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스타들을 만나게 해주신 건 고마운 일이었어요. 그러나 ‘설마’하고 갔다가 ‘역시’하고 돌아서는 소개팅처럼 어쩜 그렇게 매회 번번이 허망하던 지요. 제작진은 물론 시청자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영화제에서 볼 수 있었던 여유로운 재치는 온데간데없이 갈팡질팡 하시는 통에 자질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그러나 한때 SBS <김혜수의 플러스 유>로 진행에 일가견을 가진 김혜수조차 <박중훈쇼>에서는 불안해보인 지라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블랙홀인가 싶기도 했어요.
‘장기하와 얼굴들’ 편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솔직히 사회자의 인맥 덕에 대단한 출연진이 총 출동했음에도 이처럼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한 마디로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장기하와 얼굴들’이 초대된 날 “아, 이거였구나!”하고 무릎을 쳤지 뭐에요. 지난 해 ‘장기하와 얼굴들’이 막 뜨기 시작할 때 이런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젠체하기 싫어하고 약간 없어 보이더라도 유머러스한 요소들을 보여주고 싶다.” 이 한 구절에서 저는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 바로 느낄 수 있었는데요. ‘장기하와 얼굴들’이 잰체하기 싫어한다면 <박중훈쇼>는 그와 반대로 격이 다른, 뭔가 있는 ‘척’한다는 것, 바로 이런 ‘척’들이 시청자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지 싶어요. 있으면서 있는 척 한다면, 그거야 아니꼽긴 해도 무에 그리 문제겠어요. 그러나 있는 건 오직 톱스타 초대 손님뿐, 내용은 없으면서 포장만 요란하니 그게 문제였던 거죠. 게다가 그들만의 리그를 경기장 밖에서 구경하는 느낌이랄까요. 시청자와의 소통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얘기라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토크쇼를 빗대어 시청자들의 수준 운운했으니 거부감이 점점 커질 밖에요.
본인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인 만큼 이런저런 질타가 쏟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억울한 마음도 있으시죠? 기존 토크쇼들과 차별화한 깔끔하고 매너 있는 정통 토크쇼를 지향하겠다던 제작진이 포부와는 일변되게 워낙 구태의연 하셨으니 말이에요. ‘장기하와 얼굴들’에게 한 질문만 봐도 그래요. ‘솔로로 나올 가능성’이라든지 ‘미미 시스터즈와의 안무는 누가? 어떻게?’라는 질문은 이미 석 달 전 MBC <라라라>에 출연했을 때 다 나온 거거든요. 남이 이미 한 얘기를 왜 격이 다르다고 자부하는 프로그램에서 다시 우려먹는지 원. 그리고 연기자이자 가수인 엄정화의 사랑관과 연애관을 알아보겠다며 던진 OX 퀴즈도 기막혔습니다. ‘결혼하고도 다른 남자와 연애할 수 있다’, ‘마음이 끌리는 남자보다 몸이 끌리는 남자가 좋다’, ‘사랑이 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라니. 도대체 죄다 빤히 X가 나올 질문을 왜 하는 거랍니까? 폐지를 앞두고 ‘좀 더 독하고 자극적인 걸 원하는 현재의 전반적인 추세와 맞지 않았던 것 같다’라고 하셨던데, 이 질문들이 과연 매너 있는 질문인가요?
박중훈 씨의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교훈이 됐으면 합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롯하여 그저 입소문만으로 200만 관객을 동원한 독립 영화 <워낭소리>의 예를 보시면 대중들이 진짜 뭘 좋아하는지 아실 수 있으련만, 끝까지 시청자들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러나 제작진은 실패의 원인을 대중들의 무지와 사회자의 역량 부족으로 돌리는지 모르겠으나 박중훈 씨는 다행히 본인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깨달으신 것 같더군요. 성악가 신영옥 씨에게 십여 년 전 큰마음 먹고 링컨 센터에서 열린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었으나 지루함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그게 다 공부를 안 하고 갔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고백하신 걸 보면 말이죠. 본인의 토크쇼 진행자로서의 문제가 바로 이 ‘공부를 하지 않은 것’임을 에둘러 말씀하신 듯 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았나요? 어쨌든 ‘장기하와 얼굴들’의 출연이 결정되었을 때 ‘싸구려 커피’ 한 곡을 달랑 듣고 오실 게 아니라 공연장까지 가지는 못할지언정 그들이 출연한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모두 섭렵할 성의를 보였더라면, 그리고 신영옥 씨가 나온다 할 때 ‘리틀엔젤스’가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는 데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했는지 조사를 해봤더라면 좀 더 좋은 토크가 되었을 건 확실하지 않나요? 박중훈 씨의 이 쓰디쓴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교훈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버릴게 없는 경험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덕분에 저에게도 큰 공부가 되었으니까요. 그간 애 많이 쓰셨다는 위로의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장기하와 얼굴들’ 편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솔직히 사회자의 인맥 덕에 대단한 출연진이 총 출동했음에도 이처럼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한 마디로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장기하와 얼굴들’이 초대된 날 “아, 이거였구나!”하고 무릎을 쳤지 뭐에요. 지난 해 ‘장기하와 얼굴들’이 막 뜨기 시작할 때 이런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젠체하기 싫어하고 약간 없어 보이더라도 유머러스한 요소들을 보여주고 싶다.” 이 한 구절에서 저는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 바로 느낄 수 있었는데요. ‘장기하와 얼굴들’이 잰체하기 싫어한다면 <박중훈쇼>는 그와 반대로 격이 다른, 뭔가 있는 ‘척’한다는 것, 바로 이런 ‘척’들이 시청자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지 싶어요. 있으면서 있는 척 한다면, 그거야 아니꼽긴 해도 무에 그리 문제겠어요. 그러나 있는 건 오직 톱스타 초대 손님뿐, 내용은 없으면서 포장만 요란하니 그게 문제였던 거죠. 게다가 그들만의 리그를 경기장 밖에서 구경하는 느낌이랄까요. 시청자와의 소통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얘기라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토크쇼를 빗대어 시청자들의 수준 운운했으니 거부감이 점점 커질 밖에요.
본인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인 만큼 이런저런 질타가 쏟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억울한 마음도 있으시죠? 기존 토크쇼들과 차별화한 깔끔하고 매너 있는 정통 토크쇼를 지향하겠다던 제작진이 포부와는 일변되게 워낙 구태의연 하셨으니 말이에요. ‘장기하와 얼굴들’에게 한 질문만 봐도 그래요. ‘솔로로 나올 가능성’이라든지 ‘미미 시스터즈와의 안무는 누가? 어떻게?’라는 질문은 이미 석 달 전 MBC <라라라>에 출연했을 때 다 나온 거거든요. 남이 이미 한 얘기를 왜 격이 다르다고 자부하는 프로그램에서 다시 우려먹는지 원. 그리고 연기자이자 가수인 엄정화의 사랑관과 연애관을 알아보겠다며 던진 OX 퀴즈도 기막혔습니다. ‘결혼하고도 다른 남자와 연애할 수 있다’, ‘마음이 끌리는 남자보다 몸이 끌리는 남자가 좋다’, ‘사랑이 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라니. 도대체 죄다 빤히 X가 나올 질문을 왜 하는 거랍니까? 폐지를 앞두고 ‘좀 더 독하고 자극적인 걸 원하는 현재의 전반적인 추세와 맞지 않았던 것 같다’라고 하셨던데, 이 질문들이 과연 매너 있는 질문인가요?
박중훈 씨의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교훈이 됐으면 합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롯하여 그저 입소문만으로 200만 관객을 동원한 독립 영화 <워낭소리>의 예를 보시면 대중들이 진짜 뭘 좋아하는지 아실 수 있으련만, 끝까지 시청자들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러나 제작진은 실패의 원인을 대중들의 무지와 사회자의 역량 부족으로 돌리는지 모르겠으나 박중훈 씨는 다행히 본인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깨달으신 것 같더군요. 성악가 신영옥 씨에게 십여 년 전 큰마음 먹고 링컨 센터에서 열린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었으나 지루함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그게 다 공부를 안 하고 갔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고백하신 걸 보면 말이죠. 본인의 토크쇼 진행자로서의 문제가 바로 이 ‘공부를 하지 않은 것’임을 에둘러 말씀하신 듯 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았나요? 어쨌든 ‘장기하와 얼굴들’의 출연이 결정되었을 때 ‘싸구려 커피’ 한 곡을 달랑 듣고 오실 게 아니라 공연장까지 가지는 못할지언정 그들이 출연한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모두 섭렵할 성의를 보였더라면, 그리고 신영옥 씨가 나온다 할 때 ‘리틀엔젤스’가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는 데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했는지 조사를 해봤더라면 좀 더 좋은 토크가 되었을 건 확실하지 않나요? 박중훈 씨의 이 쓰디쓴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교훈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버릴게 없는 경험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덕분에 저에게도 큰 공부가 되었으니까요. 그간 애 많이 쓰셨다는 위로의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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