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견디기 힘들 때는 일을 채 끝내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온 뒤의 몇 시간이다. 피로한 몸을 쉬지 못하는 것도 싫지만, 집과 직장, 일과 사생활, 내가 좋아서 하는 것과 등 떠밀려 하는 것들의 경계들이 불분명해지는 게 더 싫다. 머리에 열이 꽉 차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어쨌건 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있는 상태. 그럴 때는 종종 <포르토벨로의 마녀>같은 책을 읽으면서 생활의 구획을 나눈다. 셰릴이라는 여성이 영적 체험을 거쳐 현대판 마녀가 되는 과정은 솔직히 그닥 흥미롭지는 않다. 하지만 그 이야기 사이에 파울로 코엘료가 넣어 놓은 잠언들은 다른 것들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것 같던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넌 지금 행복하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니, 너무 세속적인 가치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니. 다들 어디선가 몇 번쯤은 들었을 뻔한 말들이지만, 대게 조언은 새로운 깨달음을 줄 때 보다는 무뎌지고 느슨해진 정신에 잊고 있었던 것을 찔러줄 때 빛나는 법이다. <포르토벨로의 마녀>가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흘려놓는 잠언들을 따라가다 보면 머리는 차가워지고, 내가 다시 제로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 일상의 구획을 나눠주는 책갈피랄까. 매일 조금씩 읽다 결국 다 읽었으니 이젠 다음 책을 찾아야겠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책이고 뭐고 회사에서 일을 끝내고 집에 오자마자 일단 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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