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서 음악 공연에 못 간다는 말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다섯 번, 실력파 뮤지션들의 연주를 공짜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벌써 5년째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EBS <스페이스 공감>의 상설 공연이 벌써 1200회를 넘겨 진행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나가는 방송도 조만간 500회를 맞는다. 널리 시청자들을 이롭게 하자는 음악적 홍익인간 정신에 입각한 이 방송을 위해 곽철준, 백경석, 고현미 3명의 PD는 매일 공연이 끝나는 시간까지 방송국을 지킨다. 그 중에서도 1회부터 줄곧 공감을 위한 공간을 지키며 날마다 새롭게 음악과 사랑에 빠지고 있는 백경석 PD를 만나 <스페이스 공감>의 지난날과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방송이 곧 500회를 맞이한다고 들었다. 특별한 계획이 있나.
백경석 : 거창한 계획은 없고, <스페이스 공감>의 성격을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한 편집 방송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보다는 4월에 5주년이 되는데, 그 공연이 더 고민이다. 그동안 언플러그드 공연을 매년 해 왔는데, 작년까지 가능한 아이템을 다 써 먹어 버렸다. 기획이 완결성을 갖게 되기도 했고. 사실 규모로 보여주는 게 제일 쉬운 일인데, 돈이 없으니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한다. 고민이 많다.
“장기적으로 콘텐츠를 활용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제작비나 인프라는 5년 동안 많이 성장하지 못 했나보다.
백경석: 공연 횟수는 그대로인데, 제작비와 인력은 반으로 줄었다. 3년 정도 전부터다. 회사도 사정이 어려우니 비난 할 수 없는 일이라,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하우가 필요한 것 같다. 다행히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많다.
MC가 없는 것도 제작비 절감 차원인가?
백경석: 초창기 3달 정도는 MC가 있었다. 우리도 MC가 갖는 강력한 매력은 알지만, MC를 위해서 투여되는 예산과 방송 시간을 뮤지션에게 투자하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공간이 너무 좁아서 MC가 있을 자리가 없다. 5일 공연 중에 녹화 날이 왔다 갔다 하는데, 고정적이지 않은 스케줄로 MC를 섭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도 있고.
<스페이스 공감>사이트는 EBS 홈페이지 중에서 가장 인터렉티브한 곳이다. 적은 인력으로 기획, 공연 진행, 방송제작, 홍보까지 다 해내려면 힘들지 않나.
백경석: 알아주니 고맙다. 사실은 밖에 보이지 않는 업무가 많다. 아무리 작아도 공연장이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이라는 게 있다. 엔지니어링 파트, 티켓 팀 , 하우스 팀의 유지와 운영도 그렇고, 홍보 영역도 있다. 심지어 보통 방송 제작 시스템과 다르기 때문에 감당해야할 서류 업무도 많다.
작년에는 야외 공연도 있었고, 올해부터는 네이버에 콘텐츠 제공을 시작했다. 외부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는 느낌인데.
백경석: 편성시간이나 제작비를 기대할 수 없는 여건이기 때문에 작년부터 외부를 많이 찾아다닌 것은 사실이다. 제작비가 더 투여 될 여력도 없고,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알아주시는 분들은 많은데, 본방사수가 잘 안 되니 심야 시간에 방송 되는 거고. (웃음) 그러나 눈에 안 띄는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현상 유지를 하기에는 우리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가능성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고 느꼈다. 다행스럽게도 문화 콘텐츠 진흥원에서 자금을 원조 해주면서도 우리의 의도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획을 허락해 줬다. 네이버 쪽에서도 품위 있는 방식으로 우리 콘텐츠를 활용해 주니 홍보에 도움이 된다.
갖고 있는 콘텐츠들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 할 수는 없을까. DVD나 IPTV 같은.
백경석: 방송이 500회면, 콘텐츠가 500개 이상 쌓인 셈이다. 주변에서도 보물 같은 콘텐츠라고 가치를 안타까워 해 주시면서도, 현실적인 수익 모델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음악 산업 자체가 돈이 안 된다. 그래도 장기적으로 통로를 찾을 계획이다.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도 구상 중이고, ‘음악의 비밀’ 시리즈는 처음으로 DVD를 내 볼까 싶기도 하다. IPTV 진출도 회사 차원에서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사실, 이 부분이 과제는 과제다.
“방송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연이다”
그래도 섭외는 많이 쉬워지지 않았나.
백경석: 처음에 비하면 많이 쉬워졌다. 출연 제안에 기꺼이 응해주시는 분들이 많을 뿐더러, 출연을 원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선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다 보니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너무 선명성에 치우치다 보면 방송이 마이너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분들을 안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분들이 우리 공연장에 와서 공연할 수 있는 형식을 마련해야 하고, 이미 메인스트림에 계시거나 메이저한 방송사에 자유롭게 출연이 가능하신 분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무대가 필요 없는 분들을 모시는 방법이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제이슨 므라즈나 라쎄 린드도 출연했었다. 그 정도면 상당한 섭외력 아닌가.
백경석: 정확히 말하자면, 라쎄 린드는 상종가를 친 후 좀 지난 시점이었고, 제이슨 므라즈는 상종가를 치기 전에 출연을 했었던 거다. (웃음) 해외 뮤지션들은 보통 내한 공연이나 프로모션 차 방문 했을 때 출연 일정을 잡는다. 가끔은 일본에 방문하는 스케줄을 알아내서 초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다른 뮤지션의 소개로 오직 <스페이스 공감>의 출연을 목적으로 와 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작년 여름에 방송된 세브 마르텔이 그런 경우다.
방송을 보면 공연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개 방송이 아니라, 공연 기록 필름 같은 느낌이랄까.
백경석: 프로그램의 출발이 그런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EBS는 시청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고정적인 창구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음악프로그램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시청자 서비스와 채널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목적의 문화적인 이벤트로써 기획이 된 거다. 사내에 있는 소강당을 개조해서 상설 공연장을 만들 정도로 회사 차원의 결심도 있었고. 그런 초창기 성격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이다. 방청객이 아니라 관객을 모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카메라도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설치하고, 사운드도 공연장의 시스템과 방송용 믹싱 시스템을 2중으로 운용한다. 우리 나름대로는 인터뷰나 사전 취재를 하기는 하는데, 물리적으로 상설 공연의 노동량이 우선이기 때문에 방송을 공연만큼 공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양한 기획을 선보이는 것도 프로그램의 특징 중 하나다.
백경석: 그냥 공연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부러 설득할 수 있는 테마와 시리즈를 만드는 것이 좋은 음악을 소개 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즈 클래식을 품다’처럼 누구도 시도 하지 않았지만, 있으면 좋겠다 싶은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는데,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힘들지만 보람은 컸다.
‘음악의 비밀’ 기획은 또 다른 지점인 것 같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연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백경석: 그 정도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다. (웃음) 미술이나, 클래식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중음악에 대해서는 유독 ‘좋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음악을 듣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뮤지션들도 음악을 듣고 판단해 달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음악을 들을 준비가 안 돼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번 기획은 제발 당신이 가진 비밀 보따리를 풀어라. 그런 부탁을 한 거다. 음악책에 나오지 않는 음악 공부 같은 건데, 음악 듣기가 진지해 질수록 재미있어 질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그 방법을 제안하는 강의형 기획인 셈이다. 너무 계몽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확실히 음악은 공을 쏟을수록 더 좋아하게 된다.
“‘헬로 루키’ 시리즈는 아주 좋은 약을 추천하는 약장사가 된 기분”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헬로 루키’ 시리즈는 완벽하지 않지만, 알리고 싶은 밴드를 소개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백경석: 정확히 그런 이유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 엄격하게 음악 퀄리티로 출연자를 평가하다 보니까 기민하게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데 둔해졌다는 자각이 들더라. 그래서 엄격함을 유지하면서도 신선하고 좋은 음악을 소개하기 위한 틀로 재작년부터 오디션을 시작했다. 200팀에서 21팀을 걸러서 방송에서 소개를 했고, 작년에는 연말 결산도 했다. 출연했던 팀들이 뿌듯할 정도로 음악이 좋아서 힘들지만 즐겁게 작업 했다. 아주 좋은 약을 추천하는 약장사가 된 기분이었다. (웃음)
그 오디션으로 장기하도 발굴한 것 아닌가.
백경석: 장기하는 단기간에 소모되어버릴 뮤지션이 아니다. 우리가 조금 먼저 발굴했지만, 자신만의 매력으로 뜬 거지. 거꾸로 장기하 덕분에 우리 방송을 알게 된 분들도 많았다. 오디션이 아니라도 내가 발굴 했다고 자부하는 뮤지션으로 최근에 MBC <라라라>에 출연한 손지연 씨가 있다.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 완전히 반해서 두 번이나 모셨었는데, 그때는 별로 보도가 안 되더라. (웃음)
실제로 음악을 엄청나게 듣겠다.
백경석: 물론 내 인생에서 어느 때보다 음악을 많이 듣고 살기는 하지만 엄청난 정도는 아니다. 우리나라 음악을 중심으로 하다보니까 외국 음악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아서 아쉽기도 하고. 시간은 제약이 있는데 들어야 하는 음악을 항상 생겨나니까.
원래 음악 취향은 어떤 편인가.
백경석: 어릴 때는 록 음악을 많이 들었다. 나이를 먹고 다양한 음악을 듣다 보니까 오히려 장르에 대한 취향은 없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숨 막히도록 좋다’ 싶은 것을 재즈 음악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비너스 피터라는 일본 밴드가 왔었는데 미치도록 좋더라. 야콥 영이라는 기타리스트도 눈이 멀어 버릴 정도로 좋았고.
원래 팬이었던 뮤지션의 공연을 성사 시킨 적도 있었나.
백경석: 신중현 선생님.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 기획 섭외를 내가 했는데, 신중현 선생님은 설득에 1년이 걸렸다. 완벽한 조건이 아니면 무대에 서질 않으시는 분이니까. 어렸을 때 팬이었던 부활도 출연 했었고. 록을 좋아 했으니까 익스트림의 기타리스트인 누노 베텐코트도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섭외를 노리고 계신 분이 있다면?
백경석: 서태지!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다. 사전 편집권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드릴 수 있다. (웃음) 우리 무대가 여러 가지로 만족스럽지 않을 수밖에 없을 거다. 서태지 씨 정도의 사람에게 필요 없는 무대 일 수도 있고. 그러나 그는 음악인으로서나 스타로서나 훌륭할 뿐 아니라 상징적인 권력도 갖고 있다. 그런 사람이 다양한 음악을 공유하고자 하는 우리 프로그램의 순수한 의도에 동의 해 준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그는 섣부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욕심이 나는 거다.
방송이 곧 500회를 맞이한다고 들었다. 특별한 계획이 있나.
백경석 : 거창한 계획은 없고, <스페이스 공감>의 성격을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한 편집 방송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보다는 4월에 5주년이 되는데, 그 공연이 더 고민이다. 그동안 언플러그드 공연을 매년 해 왔는데, 작년까지 가능한 아이템을 다 써 먹어 버렸다. 기획이 완결성을 갖게 되기도 했고. 사실 규모로 보여주는 게 제일 쉬운 일인데, 돈이 없으니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한다. 고민이 많다.
“장기적으로 콘텐츠를 활용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제작비나 인프라는 5년 동안 많이 성장하지 못 했나보다.
백경석: 공연 횟수는 그대로인데, 제작비와 인력은 반으로 줄었다. 3년 정도 전부터다. 회사도 사정이 어려우니 비난 할 수 없는 일이라,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하우가 필요한 것 같다. 다행히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많다.
MC가 없는 것도 제작비 절감 차원인가?
백경석: 초창기 3달 정도는 MC가 있었다. 우리도 MC가 갖는 강력한 매력은 알지만, MC를 위해서 투여되는 예산과 방송 시간을 뮤지션에게 투자하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공간이 너무 좁아서 MC가 있을 자리가 없다. 5일 공연 중에 녹화 날이 왔다 갔다 하는데, 고정적이지 않은 스케줄로 MC를 섭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도 있고.
<스페이스 공감>사이트는 EBS 홈페이지 중에서 가장 인터렉티브한 곳이다. 적은 인력으로 기획, 공연 진행, 방송제작, 홍보까지 다 해내려면 힘들지 않나.
백경석: 알아주니 고맙다. 사실은 밖에 보이지 않는 업무가 많다. 아무리 작아도 공연장이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이라는 게 있다. 엔지니어링 파트, 티켓 팀 , 하우스 팀의 유지와 운영도 그렇고, 홍보 영역도 있다. 심지어 보통 방송 제작 시스템과 다르기 때문에 감당해야할 서류 업무도 많다.
작년에는 야외 공연도 있었고, 올해부터는 네이버에 콘텐츠 제공을 시작했다. 외부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는 느낌인데.
백경석: 편성시간이나 제작비를 기대할 수 없는 여건이기 때문에 작년부터 외부를 많이 찾아다닌 것은 사실이다. 제작비가 더 투여 될 여력도 없고,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알아주시는 분들은 많은데, 본방사수가 잘 안 되니 심야 시간에 방송 되는 거고. (웃음) 그러나 눈에 안 띄는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현상 유지를 하기에는 우리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가능성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고 느꼈다. 다행스럽게도 문화 콘텐츠 진흥원에서 자금을 원조 해주면서도 우리의 의도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획을 허락해 줬다. 네이버 쪽에서도 품위 있는 방식으로 우리 콘텐츠를 활용해 주니 홍보에 도움이 된다.
갖고 있는 콘텐츠들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 할 수는 없을까. DVD나 IPTV 같은.
백경석: 방송이 500회면, 콘텐츠가 500개 이상 쌓인 셈이다. 주변에서도 보물 같은 콘텐츠라고 가치를 안타까워 해 주시면서도, 현실적인 수익 모델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음악 산업 자체가 돈이 안 된다. 그래도 장기적으로 통로를 찾을 계획이다.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도 구상 중이고, ‘음악의 비밀’ 시리즈는 처음으로 DVD를 내 볼까 싶기도 하다. IPTV 진출도 회사 차원에서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사실, 이 부분이 과제는 과제다.
“방송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연이다”
그래도 섭외는 많이 쉬워지지 않았나.
백경석: 처음에 비하면 많이 쉬워졌다. 출연 제안에 기꺼이 응해주시는 분들이 많을 뿐더러, 출연을 원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선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다 보니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너무 선명성에 치우치다 보면 방송이 마이너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분들을 안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분들이 우리 공연장에 와서 공연할 수 있는 형식을 마련해야 하고, 이미 메인스트림에 계시거나 메이저한 방송사에 자유롭게 출연이 가능하신 분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무대가 필요 없는 분들을 모시는 방법이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제이슨 므라즈나 라쎄 린드도 출연했었다. 그 정도면 상당한 섭외력 아닌가.
백경석: 정확히 말하자면, 라쎄 린드는 상종가를 친 후 좀 지난 시점이었고, 제이슨 므라즈는 상종가를 치기 전에 출연을 했었던 거다. (웃음) 해외 뮤지션들은 보통 내한 공연이나 프로모션 차 방문 했을 때 출연 일정을 잡는다. 가끔은 일본에 방문하는 스케줄을 알아내서 초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다른 뮤지션의 소개로 오직 <스페이스 공감>의 출연을 목적으로 와 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작년 여름에 방송된 세브 마르텔이 그런 경우다.
방송을 보면 공연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개 방송이 아니라, 공연 기록 필름 같은 느낌이랄까.
백경석: 프로그램의 출발이 그런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EBS는 시청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고정적인 창구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음악프로그램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시청자 서비스와 채널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목적의 문화적인 이벤트로써 기획이 된 거다. 사내에 있는 소강당을 개조해서 상설 공연장을 만들 정도로 회사 차원의 결심도 있었고. 그런 초창기 성격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이다. 방청객이 아니라 관객을 모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카메라도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설치하고, 사운드도 공연장의 시스템과 방송용 믹싱 시스템을 2중으로 운용한다. 우리 나름대로는 인터뷰나 사전 취재를 하기는 하는데, 물리적으로 상설 공연의 노동량이 우선이기 때문에 방송을 공연만큼 공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양한 기획을 선보이는 것도 프로그램의 특징 중 하나다.
백경석: 그냥 공연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부러 설득할 수 있는 테마와 시리즈를 만드는 것이 좋은 음악을 소개 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즈 클래식을 품다’처럼 누구도 시도 하지 않았지만, 있으면 좋겠다 싶은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는데,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힘들지만 보람은 컸다.
‘음악의 비밀’ 기획은 또 다른 지점인 것 같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연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백경석: 그 정도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다. (웃음) 미술이나, 클래식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중음악에 대해서는 유독 ‘좋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음악을 듣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뮤지션들도 음악을 듣고 판단해 달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음악을 들을 준비가 안 돼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번 기획은 제발 당신이 가진 비밀 보따리를 풀어라. 그런 부탁을 한 거다. 음악책에 나오지 않는 음악 공부 같은 건데, 음악 듣기가 진지해 질수록 재미있어 질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그 방법을 제안하는 강의형 기획인 셈이다. 너무 계몽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확실히 음악은 공을 쏟을수록 더 좋아하게 된다.
“‘헬로 루키’ 시리즈는 아주 좋은 약을 추천하는 약장사가 된 기분”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헬로 루키’ 시리즈는 완벽하지 않지만, 알리고 싶은 밴드를 소개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백경석: 정확히 그런 이유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 엄격하게 음악 퀄리티로 출연자를 평가하다 보니까 기민하게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데 둔해졌다는 자각이 들더라. 그래서 엄격함을 유지하면서도 신선하고 좋은 음악을 소개하기 위한 틀로 재작년부터 오디션을 시작했다. 200팀에서 21팀을 걸러서 방송에서 소개를 했고, 작년에는 연말 결산도 했다. 출연했던 팀들이 뿌듯할 정도로 음악이 좋아서 힘들지만 즐겁게 작업 했다. 아주 좋은 약을 추천하는 약장사가 된 기분이었다. (웃음)
그 오디션으로 장기하도 발굴한 것 아닌가.
백경석: 장기하는 단기간에 소모되어버릴 뮤지션이 아니다. 우리가 조금 먼저 발굴했지만, 자신만의 매력으로 뜬 거지. 거꾸로 장기하 덕분에 우리 방송을 알게 된 분들도 많았다. 오디션이 아니라도 내가 발굴 했다고 자부하는 뮤지션으로 최근에 MBC <라라라>에 출연한 손지연 씨가 있다.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 완전히 반해서 두 번이나 모셨었는데, 그때는 별로 보도가 안 되더라. (웃음)
실제로 음악을 엄청나게 듣겠다.
백경석: 물론 내 인생에서 어느 때보다 음악을 많이 듣고 살기는 하지만 엄청난 정도는 아니다. 우리나라 음악을 중심으로 하다보니까 외국 음악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아서 아쉽기도 하고. 시간은 제약이 있는데 들어야 하는 음악을 항상 생겨나니까.
원래 음악 취향은 어떤 편인가.
백경석: 어릴 때는 록 음악을 많이 들었다. 나이를 먹고 다양한 음악을 듣다 보니까 오히려 장르에 대한 취향은 없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숨 막히도록 좋다’ 싶은 것을 재즈 음악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비너스 피터라는 일본 밴드가 왔었는데 미치도록 좋더라. 야콥 영이라는 기타리스트도 눈이 멀어 버릴 정도로 좋았고.
원래 팬이었던 뮤지션의 공연을 성사 시킨 적도 있었나.
백경석: 신중현 선생님.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 기획 섭외를 내가 했는데, 신중현 선생님은 설득에 1년이 걸렸다. 완벽한 조건이 아니면 무대에 서질 않으시는 분이니까. 어렸을 때 팬이었던 부활도 출연 했었고. 록을 좋아 했으니까 익스트림의 기타리스트인 누노 베텐코트도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섭외를 노리고 계신 분이 있다면?
백경석: 서태지!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다. 사전 편집권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드릴 수 있다. (웃음) 우리 무대가 여러 가지로 만족스럽지 않을 수밖에 없을 거다. 서태지 씨 정도의 사람에게 필요 없는 무대 일 수도 있고. 그러나 그는 음악인으로서나 스타로서나 훌륭할 뿐 아니라 상징적인 권력도 갖고 있다. 그런 사람이 다양한 음악을 공유하고자 하는 우리 프로그램의 순수한 의도에 동의 해 준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그는 섣부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욕심이 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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