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군대에 간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이것은 인생의 진리다. 이걸 종교 문제나 신념 때문에 거부하면 옥살이를 하고, 연예 활동 때문에 피하면 쿨케이가 괄약케이가 된다. 이 상황이 상식적인지, 비상식적인지를 얘기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누구나 당연하듯 생각하는 이 상황이 대한민국이라는 분단국가의 아주 독특한 상황이라는 건 인정해야 한다. 징병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세계 90여 개국이지만 이 중 40여 개국은 대체복무를 인정하고, 한국과 북한, 이스라엘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징병제 국가의 복무 기간은 18개월 미만이다. 하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던 전투가 목적인 폐쇄적 집단에서 2년 가까이 복무해야 한다는 사실이 대한민국에서만큼은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처럼 식상할 뿐이다.

2월 15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39조 2항’展은 이처럼 우리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도무지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는 한국 특유의 군대 문화를 사진 작업을 통해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준다. 너무나 정교한 밀리터리 프라모델을 찍어 확대한 김규식의 작업은 대형 무기 공장을 은유하는 듯 오락적 요소에 숨어있는 전쟁의 참혹함을 섬뜩하게 드러내고, 에어쇼에서 각종 첨단 장비를 보고 즐거워하는 가족 나들이의 모습을 찍은 노순택의 작업 역시 오락으로서의 에어쇼가 실제로는 첨단무기의 경연장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용훈의 ‘파라다이스’ 연작이다. 작가 본인은 사회적 의미를 찾을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지만 전투복과 전투모, 총을 휴대하고 빠질 대로 빠진 군기를 보여주는 예비군 훈련장의 느슨한 분위기는 그 자체로 군대와 일상이 겹쳐지는 대한민국만의 가장 독특한 순간이다. 전시 제목인 헌법 제2장 중 39조 2항은 다음과 같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짬>
작가 주호민│2006년

개그만화다. 하지만 일반 육군 생활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이 만화의 웃기는 순간들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과거 <유머 1번지>의 ‘동작 그만’이 별다른 유행어나 몸개그 없이 군 생활에 약간의 설정을 가미한 것만으로 인기 코너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군대라는 공간은 참으로 요지경 같다. 고된 훈련에서 동생과 만나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감동적 순간 대신 경례 안 한다고 소대장이 ‘갈구는’ 상황이 연출되는 등 이곳의 룰은 밖에서 보면 참 웃기다. 제목인 ‘짬’은 군대에서의 밥인 ‘짬밥’과 조금씩 늘어나는 군 생활 경력을 뜻한다. ‘군대 가서 사람 된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군인들은 군인이 아닌 사람이 되는 전역의 그날을 기다리며 짬을 먹는다.

<용서받지 못한 자>
감독 윤종빈│2005년

칸에 초청을 받은 영화다. 평론가들의 찬사도 이어졌다. 이것이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에 대한 탐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 탁월한 것은 영화를 본 미필자가 지식인에 ‘실제 군대도 영화랑 같나요?’라고 물어보고 군필자는 ‘얼굴만 바꾸면 같습니다’라고 대답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군기가 빠졌다고 빳다를 때리고 담배 한 대 주며 달래주는 태정(하정우)은 모범 병사가, 군의 상하관계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선임이 되면 모든 악습을 없애겠다고 공언하는 승영(서장원)은 문제 병사가 되는 상황은 사실 군대에선 매우 흔한 일이다. 조직의 질서와 인간성 회복 사이에서 갈등하고, 그 중 많은 이들은 고민을 지우기 위해 전자를 선택한다. 2년 동안 버리는 건 시간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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