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라이어티 쇼로 근근이 연명하던 지루한 연말연시가 가고 드디어 1분기 드라마들이 시작되었다. 여느 때라면 새 드라마들이 시작되기 전 공백기에 인기 드라마의 스페셜이나 특집 드라마가 방송되어 지루함을 달래줄 법도 하건만 이번 연말연시는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1분기의 스타트를 끊은 <트라이앵글>이 더없이 반가웠다. <트라이앵글>은 ‘칸사이TV(후지TV 계열) 개국 50주년 기념 드라마’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거물급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호화 캐스팅으로 먼저 눈길을 끈다. 에구치 요스케, 히로스에 료코, 이나가키 고로를 한 작품 안에서 만나는 것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쉽지 않은 광경이다.

살해당한 소녀 그리고 그녀의 친구

일본 드라마 역시 청춘 스타를 비롯한 젊은 배우들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90년대 일본 드라마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배우들이 점차 브라운관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들은 예전만큼 주연을 맡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간혹 맡는다 해도 여전히 독보적인 존재감을 인정받는 기무라 타쿠야 정도를 제외하면 시청률에서 고배를 마시기 일수였다. 하지만 <구명병동 24시>나 <속도위반 결혼> 같은 작품으로 일본 드라마에 입문한 나 같은 사람에겐 에이타나 카메나시 카즈야 보다는 에구치 요스케나 히로스에 료코 같은 이름이 더 친숙하고 반갑다. 그래서 마치 처음 일본 드라마를 보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마저 느끼게 해주는 <트라이앵글>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휴먼 서스펜스 미스터리를 표방하는 <트라이앵글>의 이야기는 25년 전 한 소녀가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1984년 1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이던 카츠라기 사치에라는 소녀가 하교길에 살해되었다. 둔기로 얻어 맞아 살해되었다는 정황만 밝혀졌을 뿐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사건은 미결로 남았다. 하지만 이미 공소 시효도 지나버린 이 사건이 25년이 지난 지금 한 남자에 의해 다시 수면에 떠오른다. 그의 이름은 고다 료지(에구치 요스케). 국제경찰기구 인터폴 소속 형사인 고다는 현재 수사 연수 차 일본에 와 있다. 사실 그는 원래 의사였다. 하지만 1999년, ‘카츠라기 사츠에 살인 사건’이 공소시효를 맞던 바로 그날, 그는 갑자기 의사를 그만두고 파리로 떠나 인터폴 형사가 되었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난 2009년 갑자기 일본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그는 이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아직도 25년 전, 그 날을 사는 사람들

당시 사치에와 같은 반이었던 고다는 그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살해당한 사치에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도 두려움에 도망쳐 버린 탓에 첫사랑 소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왔다. 이처럼 고다에서 시작되는 한 점은 그의 동료 형사인 쿠로키 슌(이나가키 고로)과 젊은 화가 사치(히로스에 료코)를 이으며 ‘트라이앵글’을 이룬다. 쿠로키는 25년 전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쿠로키 신죠(키타오지 킨야)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사치는 죽은 사치에를 대신하여 카츠라기 집안의 양녀가 되었다는 점에서 모두 그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 사치의 그림을 사겠다며 접근한 의문의 남자 시마노(사카이 마사토)를 비롯하여 그 사건을 기사로 해 출판하려는 고다의 동급생 토미오카(타니하라 쇼스케) 등 이미 25년이나 지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더 이상한 이 사건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이들 주위를 맴돈다. 도대체 25년 전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났고, 사건은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긴 걸까?

<트라이앵글>은 미스터리 장르답게 초반부터 빠른 전개와 반전을 선사한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쉽사리 예상하기 어려운 스토리에 저마다 비밀을 하나씩 간직한 듯한 인물들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트라이앵글>이 눈길을 끄는 건 작품 전반에 흐르는 묘한 애수감 때문이다. 이는 단지 열 살짜리 소녀가 살해되었고, 그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건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 사건에 붙들려 있는 인물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 이야기가 단순히 ‘살인 사건의 범인 찾기’가 아닌 인간 본성의 깊숙한 부분을 건드리는 애절한 미스터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게 한다. 오랜만에 대작의 기운이 느껴지는 드라마를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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