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는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예능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은 서로를 서방과 부인으로 호칭하며 알콩 달콩한 신혼의 역할극을 정성들여 보여주지만 이런 부부의 연은 각자의 개인 활동이 필요할 땐 쉽게 끊어진다. 부부라는 역할 모델을 연기한다는 면에서는 시트콤에 가깝지만 대사나 행동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리얼리티쇼에 가까운 이 프로그램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몇몇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애매한 위치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처음으로 ‘우결’을 기획해 연출자가 바뀐 현재까지도 메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강제상 작가를 만나 ‘우결’이 겪은 정체성 찾기의 과정, 그리고 제작진으로서 느끼는 딜레마에 대해 들어보았다.

“미리 어떤 콘셉트를 전제하고 둘의 만남을 기획하지 않는다”

대학생 부부인 강인-이윤지 커플에 이어 이제 곧 태연-정형돈 커플이 등장한다. 그것도 심지어 연애 콘셉트로 나오는데 갈수록 ‘우결’에서 설정이 갖는 비중이 커지는 건 아닌가.
강제상
: 오히려 태연-정형돈 커플은 우리가 처음 기획했던 방향으로 돌아간 거다. 작년 2월 첫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나갈 때의 기획 의도는 가상 부부로 첫 만남을 가지고 계속 살지 안 살지는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거였다. 그런 면에서 원래로 돌아간 거지. 다만 첫 만남을 결혼이 아닌 연애, 아니 그보단 예비적인 만남 정도로 갖고 다른 가상 커플처럼 결혼을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라는 걸로 진행하는 거다. 큰 틀에 변화는 없다고 본다. 강인-이윤지 커플 역시 두 사람이 실제 대학생이고, 두 사람이 원한 부분도 있어서 그렇게 간 거지 미리 어떤 콘셉트를 전제하고 둘의 만남을 기획한 건 아니다.

제작진의 개입이 늘어난 건 아니라는 건가
강제상
: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100m 경기 룰을 제시해줄 뿐이고, 뛸지 안 뛸지 뛰면 빨리 뛸지 지그재그로 뛸지는 출연자 본인이 결정하는 거다. 룰을 제시한 이후에는 우리가 출연자들을 컨트롤할 방법이 없다. ‘너희는 어울리니까 계속 살고 찍자’라고 우리가 요구해도 본인들이 싫어하면 좋은 감정을 카메라에 담아낼 수 없다.

이런 질문을 하는 건 갈수록 ‘우결’에서 리얼한 느낌을 살린 유사 리얼 시트콤의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웃음)
강제상
: 누가 그러더라. ‘우결’ 때문에 시트콤 다 죽었다고.(웃음) 커플 출연자들이 만들어가는 상황이 시트콤처럼 전개되면서 리얼 시트콤이 되어 버리니까 다른 시트콤의 강도가 약해보이는 거지. 하지만 우리가 진짜 시트콤이라면 대본에서 출연자들의 대사들을 지정해줘야 하지만 그러질 않는다. 물론 오늘은 장을 본다, 친구를 만난다, 여행을 간다는 식으로 미션을 줄 때 작가로서 미리 계산하는 건 있다. 쇼 프로그램을 통해 재미를 주겠다는 사람이라면 출연자 A가 요리를 못한다는 정보를 얻었을 때 요리를 해보라고 미션을 줘서 갈등을 만들어보겠다는 계산은 가지고 가야하는 거다. 최근 ‘패밀리가 떴다’ 대본이 공개된 것에 대해 말이 많은데 리얼 버라이어티라서 대본이 없다는 건 난센스다. 단지 출연자들이 알아서 행동할 수 있는 빈 공간만 그대로 남겨두면 되는 거다.

그럼 돌려 말하지 않고 묻겠다. 대본을 작성하는 메인 작가로서 현재의 ‘우결’은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생각하나.
강제상
: 음… 리얼 버라이어티가 맞다. 우리끼린 로맨틱 리얼 코미디라고 말하지만. 여기서 우선 내가 생각하는 리얼이 무엇인지 정확히 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퀴즈 프로그램은 리얼일까 아닐까? 나는 리얼이라고 본다. 출연자에게 ‘너는 이번에 틀려라’라고 지시하지 않지 않나. 멍석은 깔아주되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것이 리얼인 거다. ‘몰래카메라’와 비교하면 더 이해가 쉬울 거다. 누구도 ‘몰래카메라’를 리얼이 아니라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몰래카메라’ 역시 출연자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계산적 장치들은 다 있다. 다만 이후 벌어질 일을 누구도 알 수 없을 뿐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우결’이 ‘몰래카메라’와 크게 다를 게 없는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본다.

“역할극 출연자들의 캐릭터와 자신이 겹치면서 애매해졌다”

마르코가 손담비에게 이벤트를 열어주고, 서인영과 크라운 J가 티격태격 거리는 게 짠 게 아니란 건 알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가상 결혼이라는 위태로운 토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 현실처럼 굳건해 보이지 않는다.
강제상
: 사실 우리가 처음에 바란 건 일종의 롤플레잉 게임으로서의 로맨틱 코미디였다. 그러니 가상에서 출발할 수밖에. 너는 남편, 너는 아내, 이런 식으로. 이런 식의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데 결국 솔비가 맡은 캐릭터는 솔비 자신이 되고, 서인영의 캐릭터도 서인영 자체가 되어버렸다. 대사도 없는 상태에서 한 장소에 넣어놓고 오늘 하루를 살라고 하면 아무리 가식적인 캐릭터를 만들려고 해도 결국 자기 자신의 모습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서 이 역할극에 혼돈이 생겼다.

설정에 맞게 연기를 하는데 결국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는 건가.
강제상
: 그거다. 출연하고 있는 두 사람도 어느 순간 헷갈리는 순간이 생긴다. 만약 앤디라면 내가 남편 역할을 하고 있는 대상이 아내 역할을 맡고 있는 솔비가 아닌 그냥 솔비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다. 앤디가 하차할 때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큰일 나겠구나 싶어서 그만 둔다’고 했는데 나는 그게 진심일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시청자들이 알렉스-신애 커플이 처음 헤어질 때처럼 이것이 가상 결혼인 걸 알면서도 ‘진짜’ 연애가 아니었다는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다면 바로 이런 애매한 지점 때문이라고 본다. 역할극이 역할극 바깥의 자신과 겹쳐지면서 출연자 본인들이 혼란스러워지면 제작진 역시 헷갈리고, 시청자도 이 커플을 어떻게 봐야할지 애매해지게 된다.

인터뷰 역시 혼란스러워지는 거 같다.(웃음) 얘길 들어보면 현재의 ‘우결’을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인정하지만 제작진도 처음에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만들 의도는 아니었던 것 아닌가.
강제상
: 사실 지금 이 프로그램의 효과는 처음 기획의도와 완전히 다르다. 처음에는 가상 부부라는 틀로 여러 가지 설정을 만들려고 했다. 가상 부부로 활동할 때 가상 시아버지가 들이닥쳐서 엉뚱한 요구를 하거나, 가상 아내가 예전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미션을 주는 심리 게임 같은 걸 생각했었다. 처음 서인영이랑 크라운 제이를 처음 찍을 때 오늘 장보고 집에서 밥 해먹으라고 시키면서 되게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래서 다른 수행 미션을 잔뜩 준비했는데 이 친구들이 마트 와서 너무 좋다고 신나서 노느라 준비한 다른 설정들을 풀어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노는 모습이 오히려 더 재밌었고, 우리가 콘셉트를 전혀 잘못 잡았다는 걸 깨닫고 방향을 선회했다. 그게 지금의 ‘우결’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오히려 최근의 ‘우결’은 처음 기획할 때 예상했음직한 리얼 시트콤의 느낌으로 변해가고 있다.
강제상
: 그건 최근의 커플 특성이 그렇게 나타나서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앤디-솔비 커플이나, 알렉스-신애 커플은 굉장히 리얼한 느낌의 연애를 보여줘서 프로그램이 전체적으로 그렇게 보였던 거고, 요즘은 그런 커플이 없는 거고. 다시 똑같은 얘기를 하게 되는데 제작진이 커플 보고 좀 더 리얼하게 해보라고 해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재혼 커플이나 외국인 커플도 생각 중”

최근 서인영-크라운 J 커플이 바에서 마지막 시간을 가질 때 정형돈이 혼자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장면 같은 것들도 계산되지 않았다는 건가.
강제상
: 좀 드라마 같았을 거다. 그건 편집의 차이다. 편집팀이 바뀌면서 컷과 컷을 잇는 게 훨씬 세련되어졌다. 대신 중간 과정을 생략하니까 리얼한 맛은 떨어진다. 너무 짠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나 역시 뭐가 우리의 의도에 더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모두들 무엇이 더 좋을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차라리 연출을 극대화해 더 리얼하게 ‘보이는’ 시트콤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강제상
: 이런 일화가 있다. 찰리 채플린이 남 몰래 찰리 채플린 닮은 사람 선발대회에 나갔는데 3위밖에 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더 오버하고 더 자기처럼 보이려고 했다면 1등을 했겠지. 하지만 그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찰리 채플린을 보여준 거고. 우리는 꾸며서 더 진짜처럼 보이는 1등 찰리 채플린보다는 3등을 한 진짜 찰리 채플린이 되고 싶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우결’이 예전에 비해 부진한 건지도 모른다. 제작에서의 리얼 버라이어티 원칙을 가지려 가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기대하는 리얼 버라이어티보다 더 가짜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까.

우울한 가정이지만 진짜 찰리 채플린이 3등 바깥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강제상
: 그 때는 막을 내려야지. 방법이 없는데. 동물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수달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강에 고정시키고 몇 시간 째 기다리다 지쳐서 수달을 잡아다가 강에 풀어 찍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우리는 1등 채플린이 되고 싶지도, 수달을 풀고 싶지도 않다.

그럼 방법적인 업그레이드는 따로 없다는 것인가?
강제상
: 막을 내린다는 건 극단적인 표현이고, 리얼 버라이어티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방법을 찾아야지. 내가 볼 때는 새로운 커플을 찾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다. 만약 시청자가 ‘우결’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커플이 재미없어서라는 거니까. 재혼 커플이나 외국인 커플 같은 것들도 고려해보고 있다. 최근 투입된 강인-이윤지 커플과 또 투입될 태연-정형돈 커플에 대한 기대도 높고, 아직 발표는 못하지만 이들 커플만큼 재밌고 신선한 커플들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 새 커플들을 통해 진짜 찰리 채플린이 1등을 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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