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원래 있었던 장르가 아니다. ‘리얼’과 ‘버라이어티 쇼’의 합성어인 이 말은 MBC <무한도전>에서 처음 사용됐고, 그 뒤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는 표현을 쓰면서 장르화 됐다. 이 때문에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프로그램에 따라 그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지금 리얼 버라이어티 쇼, 혹은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단서일 수도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공통점들을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 봤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연예인들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물론, 그 캐릭터란 행사와 CF등으로 수억 원을 버는 연예인의 럭셔리한 인생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처럼 평범한 모습을 갖고 있거나, 혹은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보다 더 못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그러니 퀴즈에서 ‘유레카’라는 단어를 맞추기만 해도 지식인 축에 들어가는 이 억대 연봉자들을 통솔하기 위해 믿음직한 ‘1인자’ MC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무한도전>과 KBS <해피선데이>의 ‘1박 2일’, SBS <일요일이 좋다>의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떳’)등 성공한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는 모두 유재석-강호동이라는 막강한 MC들이 있다. SBS <일요일이 좋다>의 ‘골드미스가 간다’에도 6명의 여성 출연자들 사이에서 신동엽이 ‘마스터’ 역할을 하고, SBS <절친노트> 역시 김구라와 김국진 등이 각자의 코너에서 MC 역할을 한다. 물론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처럼 MC가 VCR을 통해 커플들을 지켜보며 썰렁한 멘트나 날리는 경우도 있었다.

<무한도전>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데는 ‘거성’ 박명수의 캐릭터가 큰 역할을 했다. ‘1박 2일’의 ‘은초딩’ 은지원, ‘패떴’의 ‘천데렐라’ 이천희도 마찬가지다. 좋은 캐릭터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한두 캐릭터가 튀는 것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무한도전>이 ‘평균이하’ 캐릭터들의 모임이었고, ‘1박2일’이 ‘공대생 MT’에 비견됐듯,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개개인의 캐릭터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일관된 분위기를 연출해야 한다. 그 일관된 성격 위에 메인 MC, 행동과다증에 걸린 것처럼 오버하는 캐릭터, 멀쩡한 허우대에 엉뚱한 행동을 하는 캐릭터 등 여러 성격의 캐릭터가 더해진다. 만약 도저히 캐릭터를 잡을 수 없다면 이수근처럼 운전이라도 열심히 하거나, 정형돈처럼 ‘캐릭터가 없는 캐릭터’라도 돼야 한다. 아무 특징 없이 다른 캐릭터의 특징을 이것저것 따라하는 출연자는 정말 최악.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1박 2일’에서 어설프게 줄넘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게임은 출연자에게 미처 예상치 못했던 캐릭터를 꺼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특히 여성 출연자들을 비롯 마구 굴릴 수만은 없는 특별 게스트가 많이 등장하는 ‘패떴’과 <절친노트>등에는 반드시 게임이 필요하다. 결혼 생활을 다룬 ‘우결’은 게임 대신 미션으로 대체된다. 물론 ‘패떴’에서 유재석이 날씨가 덥든 춥든 논두렁 위를 굴러다니는 게임을 하자고 할 때면 “누구를 위한 게임인가!”라고 외쳐주고 싶기도 하지만, 게임이 없다면 ‘게임마왕’ 김수로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1박 2일’ 역사에 길이 남을 ‘저질 탁구’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 연예인들이 알아서 까나리 액젓을 먹어주겠다는데 우리가 마다할 이유가 무엇이리.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자막은 또 하나의 메인 MC나 다름없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제작진들은 자막을 통해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만들고, 때로는 출연자의 캐릭터를 결정하기도 한다. <무한도전>의 정형돈이 ‘캐릭터 없는 것이 캐릭터’가 된 것은 정형돈의 무존재감을 쉴 새 없이 놀려대던 자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패떴’은 유재석과 대성에게 ‘덤 앤 더머’를, 이천희와 김수로를 ‘김계모와 천데렐라’로 묶으면서 초반부터 캐릭터의 관계 설정을 분명하게 했다. 또한 모든 출연자를 놀려대는 <무한도전>의 자막이나 출연자들이 대규모 공연을 성공시켰을 때마다 등장하는 ‘1박 2일’의 ‘감동 자막’은 프로그램의 세계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덕분에 과거 ‘우결’에서 무려 남자 PD가 분홍빛 배경 위에 ‘우리 앤디 오빠’같은 자막을 다는 것을 봐야 하는 일도 있지만.

사실 몰래 카메라는 리얼 버라이어티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몰래 카메라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리얼’함을 강조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이다. 몰래카메라를 통해 TV에 잡히지 않았던 연예인들의 모습이 드러나거나, 혹은 시청자에게 그런 모습이 나온다고 ‘믿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정형돈과 하하의 몰래 카메라로 두 사람의 어색한 관계를 폭로했고, ‘1박 2일’은 최근 박찬호를 비롯한 ‘1박 2일’의 출연진들이 박찬호의 모교인 공주 중학교 학생들을 속이면서 ‘1박 2일’이 ‘리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몰래 카메라가 아니더라도 무인 캠코더나 CCTV 등을 통해 거친 질감의 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전형적인 기법 중 하나다. 카메라맨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돌아가는 이 카메라들의 영상을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 쇼들은 24시간 촬영 중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동시에, 마치 리얼리티 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메인 MC를 구하고, 좋은 캐릭터를 만들고, 자막을 입힌 뒤 온갖 게임과 몰래 카메라로 출연자들을 고생시키다 보면 리얼버라이어티 쇼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다. 거기서 더 성장하고 싶다면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무한도전>은 출연자들을 디자인 공모전에 보내기도 하고, ‘1박 2일’은 몇 번씩 열악한 환경에서 대규모 공연을 성공시켰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캐릭터들이 이런 식의 이벤트를 펼치는 것은 물론 리얼리티 때문. 제작진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면서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확인받는 것은 물론, 해당 프로그램이 그들만의 쇼가 아니라 대중과 호흡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다할 때까지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면, 남은 것은 네티즌과의 끝없는 공방전이다. 네티즌들은 리얼리티에 관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곧바로 인터넷에 이 사실을 올릴 것이다. 또한 출연자들의 캐릭터나 프로그램의 스토리 변화에 관한 의견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올라온다. 시청자들의 날카로운 공격에 끊임없이 ‘리얼’을 외쳐야 하는 상황. 이것이야말로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리얼’한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