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 청소년들은 가방을 목덜미까지 올려 매고, 다른 한쪽은 엉덩이까지 내려 매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 먹은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마뜩치 않건만, 서로의 취향을 이해 못하고 수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 우스웠다. 그러나 각기 다른 패션을 고집하던 그 아이들도 아줌마들의 뽀글 파마머리를 비아냥거릴 때는 한 마음 한 뜻이었을 것이다. 나야 “왜 길바닥 먼지를 바지로 다 쓸고 다니느냐. 저 놈의 깻잎 머리는 진짜 꼴불견일세”하고 혀를 찼지만 아이들로서는 오히려 아줌마인 내 모습이 줘도 즉시 내다 버릴 것들이 아니겠는가. 그런걸 보면 내 취향이 상대방의 취향보다 우월하다는 여기는 것처럼 미련한 일도 없는 것 같다. TV를 보면서도 종종 그런 일을 느낀다. 어떤 이는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을 전혀 보지 못하겠다고 하고, 어떤 이는 나에게 “단 5분도 집중을 못 하겠던데 어떻게 그걸 일일이 보고 소감을 쓰느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기도 한다. 이럴 때는 그저 속으로 “참 놓치고 사는 게 많으시겠네요”라는 생각만 할뿐이다.
“사실 1회 보고 잠들었어요”
SBS <스타의 연인>이 나에겐 딱 그 짝이었다. 사실 나는 유지태의 첫 드라마 출연작이라는 말에 <스타의 연인>에 큰 호감을 가졌었다. 영화 <동감>으로 유지태가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시절, 그가 화보를 찍는 현장을 지나가다 아이를 핑계 삼아 사진촬영을 슬쩍 부탁해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유지태 본인은 선선히 웃으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건만 스태프 한명이 강경히 막아서는 바람에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몇 발짝 걷다가 돌아보니 그가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오죽 진실한 눈빛이었으면 당시 어린아이였던 딸아이도 아직까지 그 눈빛을 기억하고 있겠나. 이런 인물이니 어찌 그의 드라마를 안 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의 연인> 첫 회를 보다 잠들고 말았다. 다음 날 기억을 더듬어 봐도 줄거리가 기억나기는커녕, 그저 일본홍보영상 한편을 본 듯 했을 뿐이다. 그 즈음 몇 군데 송년회에서 “어찌 봤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그저 그렇더라”는 답을 할밖에. 하지만 3,4회에서 ‘어라? 이거 괜찮네!’ 싶다가 5회를 넘어서고 나니 놓쳐서는 안 될 완소드라마로 바뀌어버렸다. 일본의 풍광이나 지루하게 나열하던 초반에서 일변하여 철수(유지태)와 마리(최지우) 두 사람이 그처럼 간질간질한 로맨틱 코미디를 연출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철수의 옥탑방에서 함께 지내며 주고받는 말싸움이나 수줍은 스킨십이 ‘미리보기’로라도 먼저 공개되었다면 시청률에서 지금처럼 고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최지우라는 배우가 워낙 어른스럽고 소극적인 역만 맡아왔던 터라 그처럼 귀여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기 전엔 알 수가 있었어야지. 어쩌면 초반에 무턱대고 지루하다 여겼던 것도 최지우의 연기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니, 이 드라마 내 스타일이네
무엇보다 대본이 꼼꼼한 것도 마음에 든다. 이를테면 마리가 철수에게 아침밥을 차려주는 장면을 보며 “십 년 동안 톱스타로 살아온 여자가 어떻게 저리 밥을 잘 한 대?”하고 내심 지적하려는 순간 마치 답이라도 하듯 마리의 “이래 봬도 고등학교 때까지 몇 십인 분씩 밥 차리는 거 돕고 그랬어요”라는 대사가 이어진다. 아무래도 섣부른 판단이었다 싶어서 1회부터 다시 보니 아뿔싸! 도입부의 지루했던 길고 긴 내레이션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고 왜 저리 탁할까 싶던 화면도 작품성 있는 영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닌가. 애정을 갖고 본다는 것과 애정 없이 보는 것의 차이가 이토록 클 줄이야.
어쩔 수 없이 송년회에서 만난 몇몇 분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번 발언을 취소한다며 <스타의 연인>을 부디 애정을 갖고 다시 봐줄 것을 부탁했다. 타인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미련하지만 제대로 보지도 않고 편견부터 갖는 게 가장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나는 유지태에 대한 의리 덕분에 지우히메의 매력을 알게 되었지만 내 입초사로 이 드라마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된 분이 혹여 계시다면 대체 어쩔 거냐고.
정석희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실 1회 보고 잠들었어요”
SBS <스타의 연인>이 나에겐 딱 그 짝이었다. 사실 나는 유지태의 첫 드라마 출연작이라는 말에 <스타의 연인>에 큰 호감을 가졌었다. 영화 <동감>으로 유지태가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시절, 그가 화보를 찍는 현장을 지나가다 아이를 핑계 삼아 사진촬영을 슬쩍 부탁해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유지태 본인은 선선히 웃으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건만 스태프 한명이 강경히 막아서는 바람에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몇 발짝 걷다가 돌아보니 그가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오죽 진실한 눈빛이었으면 당시 어린아이였던 딸아이도 아직까지 그 눈빛을 기억하고 있겠나. 이런 인물이니 어찌 그의 드라마를 안 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의 연인> 첫 회를 보다 잠들고 말았다. 다음 날 기억을 더듬어 봐도 줄거리가 기억나기는커녕, 그저 일본홍보영상 한편을 본 듯 했을 뿐이다. 그 즈음 몇 군데 송년회에서 “어찌 봤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그저 그렇더라”는 답을 할밖에. 하지만 3,4회에서 ‘어라? 이거 괜찮네!’ 싶다가 5회를 넘어서고 나니 놓쳐서는 안 될 완소드라마로 바뀌어버렸다. 일본의 풍광이나 지루하게 나열하던 초반에서 일변하여 철수(유지태)와 마리(최지우) 두 사람이 그처럼 간질간질한 로맨틱 코미디를 연출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철수의 옥탑방에서 함께 지내며 주고받는 말싸움이나 수줍은 스킨십이 ‘미리보기’로라도 먼저 공개되었다면 시청률에서 지금처럼 고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최지우라는 배우가 워낙 어른스럽고 소극적인 역만 맡아왔던 터라 그처럼 귀여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기 전엔 알 수가 있었어야지. 어쩌면 초반에 무턱대고 지루하다 여겼던 것도 최지우의 연기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니, 이 드라마 내 스타일이네
무엇보다 대본이 꼼꼼한 것도 마음에 든다. 이를테면 마리가 철수에게 아침밥을 차려주는 장면을 보며 “십 년 동안 톱스타로 살아온 여자가 어떻게 저리 밥을 잘 한 대?”하고 내심 지적하려는 순간 마치 답이라도 하듯 마리의 “이래 봬도 고등학교 때까지 몇 십인 분씩 밥 차리는 거 돕고 그랬어요”라는 대사가 이어진다. 아무래도 섣부른 판단이었다 싶어서 1회부터 다시 보니 아뿔싸! 도입부의 지루했던 길고 긴 내레이션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고 왜 저리 탁할까 싶던 화면도 작품성 있는 영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닌가. 애정을 갖고 본다는 것과 애정 없이 보는 것의 차이가 이토록 클 줄이야.
어쩔 수 없이 송년회에서 만난 몇몇 분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번 발언을 취소한다며 <스타의 연인>을 부디 애정을 갖고 다시 봐줄 것을 부탁했다. 타인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미련하지만 제대로 보지도 않고 편견부터 갖는 게 가장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나는 유지태에 대한 의리 덕분에 지우히메의 매력을 알게 되었지만 내 입초사로 이 드라마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된 분이 혹여 계시다면 대체 어쩔 거냐고.
정석희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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