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가 하늘의 별이라는 명제는 21세기에도 유효할까? 요즘 할리우드 스타들은 어제 어디서 파티를 했는지, 누구와 키스를 했는지 파파라치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된다. 거기에 네티즌들은 연예인들의 ‘굴욕짤’이나 과거사진을 발 빠르게 인터넷에 유포시킨다. 연예인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전국민이 알게 되는 ‘사생팬’의 세상에서 스타는 예전과 같은 환상이나 연정을 품기엔 너무 가깝고, 쉽다. 그래서 아직 그들은 천상의 존재라 외치는 SBS <스타의 연인>의 목소리는 공허하다. ‘너희가 신비롭다고 생각하는 스타들도 사실은 이래, 그들도 원래 평범해’ 를 전제로 화려한 스타의 뒷모습과 외로움, 망가짐 등의 포석을 깐다. 이 모든 것은 시청자들에게 이마리의 인간적인 매력과, 운명적인 사랑을 강요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마리와 김철수가 시청자들의 연인이 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의 공허한 러브스토리가 울림을 갖지 못하는 이유를 윤이나, 정진아 TV평론가가 말한다. /편집자주
SBS <스타의 연인>은 기획의도에서 이마리(최지우)와 김철수(유지태)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를 묻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그리고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의 마지막 문장을 향해 갈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스타의 연인>은 이마리라는 톱스타가 문학청년 김철수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배경도 성격도 삶의 과정도 전혀 다른 남녀가 만나 티격태격하다 결국 사랑하게 되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작품이다.
과정의 재미가 결여된 결과
이런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결말’이 아니라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가 얼마나 긴장감 있게 유지되는지, 이들 사이에 가로놓인 사랑의 장벽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뛰어넘는지에 따라 극의 재미는 결정된다. 하지만 <스타의 연인>은 그 과정 모두가 어디선가 본 것들로 만들어져 있다. 지금 <스타의 연인>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그 기시감이다.
이마리가 따돌림을 당하던 중학생 시절, 안경을 벗은 바로 그 순간부터 모두의 사랑을 받게 되는 클리셰를 비롯해, 계속해서 반복되는 어린 시절의 영상들은 오수연 작가의 전작들을 포함해 여주인공 최지우가 출연했던 작품들을 뒤돌아보게 한다. 모든 로맨틱 코미디의 원전(元典)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동화들에서 차용된 장면들 역시 그 기시감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든다. 철수가 일본에서 이마리(최지우)를 다시 보게 되는 장면에서 그녀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잠들어있었고, 이후로 ‘백설공주’라도 된 양 철수를 난쟁이처럼 부려먹었으며, 철수 앞에서 ‘신데렐라’처럼 넘어지며 한 쪽 구두가 벗겨지기도 했다. ‘대필’이라는 소재는 김철수가 극 속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문학작품에서 자주 변주되었었으며, 마리를 힘겹게 만드는 기획사와의 갈등은 톱스타인 주인공이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반드시 등장한다. 이 모든 것들의 조합은 <스타의 연인>을 ‘어디선가 이미 본 것 같은 이야기’로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들 역시 전형적인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전형적인 행동을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다.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데다가 교양도 없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순수하고 귀여운 이마리나, 어딘지 한국적인 잘난 척과 까칠함 속에 적당한 부드러움을 숨겨놓은 김철수의 캐릭터는 호불호를 떠나 독특하다. 하지만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의 대부분이 다 보이게 깔아놓은 복선 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들의 캐릭터는 둘이 함께 있을 때 말고는 살아 움직일 여유가 없다. 사각관계의 또 다른 꼭지점인 우진(이기우)과 은영(차예련) 역시 뻔한 행동을 반복하며 관계의 긴장감을 사라지게 만든다.
부도수표로 남지 않을려면
드라마 속에서 철수가 대필해주는 마리의 책 <아스카의 연인>에서 인용하는 책들이 가장 기본적인 고전들인 것처럼, 세상 수많은 이야기들의 원형이 되는 동화와 같은 이야기를 드라마가 따르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스타의 연인>은 지나치게 많은 것에 빚지고 있다. 여기에는 앞에서 거론한 콘텐츠들뿐만 아니라 그간 ‘한류용’ 혹은 ‘스타 파워’ 등으로 이름 붙여졌으나 스타에 기댄 안일한 내용과 구성으로 외면당한 드라마들까지 포함된다. <스타의 연인>이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에는 확실히 충실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 있어 지나치리만치 고전을 하는 이유는 그 드라마들이 낮춰놓은 기대치와 편견어린 시선까지도 이 드라마에 덧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스타의 연인>이 정말로 넘어야 하는 것은, 철수가 돌멩이로 바닥에 그어놓은 선만이 아니다. 앞으로 <스타의 연인>이 지금까지 ‘한류용 드라마’로 불렸던 드라마들이 쌓아온 구태의연한 공식들을 넘고, 비슷한 스타일을 가진 과거의 콘텐츠들과 다른 과정들을 만들어가며 남은 반을 진정한 해피엔딩으로 만들 수 있을까.
글 윤이나
SBS <스타의 연인>의 현재는 많은 부분 과거에 귀속되어 있다. 유년 시절 부모 상실에 의한 트라우마는 김철수(유지태)를 소설가 지망생으로, 이마리(최지우)를 스타로 살게 만들었으며 사랑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에도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1화에서 미리 고백했듯 철수와 마리는 아주 오래 전 만난 사이이며 연적인 정우진(이기우) 역시도 마리와의 과거를 공유하고 있다. 결국 이 드라마를 대변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운명인 셈이다.
애초에 두 세계의 충돌은 없었다
<스타의 연인>이 스타와 일반인의 사랑을 다루었던 기존의 KBS <풀하우스>나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등에 비해 계층적 차이를 훨씬 중요한 갈등의 동인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도 그런 운명론적인 성향 탓이 크다. 운명을 강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외관에 둘러싸여있는 이 드라마의 세계는 이렇듯 통속적 주제와 편리한 방법론으로 구축되어 있다. 그렇기에 계층의 차이가 내는 파열음을 어떻게 보여주느냐는 이 드라마가 자기 가치를 증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스타의 연인>은 이를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 철수를 ‘한 포기 풀’로 마리를 ‘하늘의 별’로 명명하며 두 세계의 거리를 명확히 하고, 대필과 사각봉투라는 장치를 통해 이질감을 강조한다. 또 철수가 소속된 공간의 주된 색감을 조악한 붉은색이나 차가운 톤으로 설정하는 대신 마리는 순백과 황금색 계열의 색감을 주로 이용하는 등 소소한 부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문제는 설정에서 느껴지는 인위성이다. 이 드라마에는 일반인의 일상도 스타의 일상도 없다. 가난하기에 혹은 스타이기에 일어나는 사건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철수는 학비문제와 아픈 동생, 빚더미의 엄마 등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고 마리는 끊임없이 스캔들 기사나 과장된 성공담, 소유욕 강한 소속사 사장한테 시달리는 것이다. 일상성이 제거된 사건들에 의존해서 상황을 유지해가는 나태함은 계층의 차이를 보이고자 했던 일련의 노력들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렸다. <스타의 연인>에는 파열음을 낼 두 세계 같은 것이 당초부터 존재할 수 없었다. 그저 사랑을 운명적이게 보이게 하는 드라마틱한 두 가지 인위적 삶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그로 인해 안 그래도 전형적인 캐릭터가 심지어 위험해지고 있단 사실이다. 대필은 두 인물의 관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끈이다. 그런데 그걸 사건화시키기 위해 마리는 한없이 멍청해지고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나간 책의 내용조차 인지하지 않은 채 토크쇼에 나가는 톱 여배우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화려하고 매끈한 첫인상, 그것 뿐이라면
철수는 ‘살면서 한번쯤 꿈 같은 사람을 사랑해도 되지 않겠냐’고 말하지만 그 말은 어떤 감동도 생산해내지 못하고 허공 위를 질주할 뿐이다. <스타의 연인>은 평범한 남자들의 욕망을 건드리는 백일몽도, 사랑의 본질을 건드리는 멜로드라마도 아닌 운명적 사랑을 아낌없이 지지하고 있는 러브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유려한 풍광과 화려한 빛들이야말로 <스타의 연인>의 정체성을 가장 솔직히 드러내는 일면일지도 모르겠다.
글 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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