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은 내 생애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독립한 뒤 처음 맞는 겨울이었고, 나의 옥탑방은 10℃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웠다. 가진 것이라고는 그저 손이 곱을 정도로 추운 그 방 하나인 채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춥고 외롭게 보낸 나를 위로한 건, 바로 <노다메 칸타빌레 인 유럽>이었다. 파리의 노다메도, 나와 똑같이 한 겨울을 지나가고 있었다.

치아키의 지휘 콩쿠르 이야기인 1편에 이어 노다메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노다메 칸타빌레 인 유럽> 2편은, 노다메가 아날리제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좋아하는 치아키 선배와 함께 있으면서 좋아하는 피아노를 치고 싶었던 파리에서, 노다메는 그렇게 ‘즐겁지 않은 세상’과 부딪힌다. 쏟아지는 세상의 채찍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 속에서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 노다메는 눈물 고인 눈으로 묻는다. ‘무얼 위해서 연주하는 걸까요?’ 노다메를 파리의 음악원으로 추천해준 교수는 첫 실기 레슨에서 그런 어려운 곡을 칠 수 있는 아이들은 그녀가 아니어도 많다고 말한다. 맞다. ‘자유롭고 즐겁게 피아노를 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노다메는 노다메의 피아노를 쳐야만 한다. 기어코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만 칠 수 있는 피아노를 찾아가는 그녀를 보며, 나 역시 언젠가 나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홀로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채워 넣은 글자들로 빼곡했던 노다메의 모차르트 연주곡 악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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