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이 덜든 아이들의 세계가 때 묻지 않고 순수하다는 말을 별로 믿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남자 중학교의 풍경은 그렇다. 의리와 우정이 강조되지만 한 꺼풀 벗겨내면 그곳에도 엄연한 상하관계가 있다. 성장기 수컷들의 공격 본능이 꿈틀거리는 곳에서 힘센 녀석과 그렇지 않은 녀석의 우정이라는 건 대부분 한쪽의 비굴함을 전제로 가능하다. 그런 걸 버텨내며 성장하는 건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다. 165㎝에 74㎏의 볼품없는 몸에 둔하고, 심지어 말주변도 없던 소심한 남자애에게는 더더욱.

지난 주 <홀리랜드> 마지막 편이 나왔다. 왕따에서 불량배 사냥꾼으로 거듭났던 카미시로 유우가 거리에서 보낸 한 계절이 끝나는 것이다. 내가 <홀리랜드>를 좋아하는 건 내가 그토록 날리고 싶던 주먹을 불량배의 턱에 꽂아서만은 아니다. 싸움기술에 대한 설명이 디테일해서만도 아니다. 이 작품은 십대의 폭력에 대해 ‘왜’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그것은 원래 거기에 있던 것이다. 그러니 합리적 문제제기와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유우의 싸움은 정의를 위한 것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단지 원래 폭력이 존재하는 곳에서 숨쉬고 서있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쓰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의 승리는 공허하다.

아쉽게도 아직 마지막 편을 보지는 못했다. 유우는 과연 거리의 삶에서 졸업할 수 있을까. 자기 안의 공포와 싸워가며 원투를 날렸던 그 소년은 나중에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 풍경은 내가 기억하는 곳보다 좀 더 소중하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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