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연말용 클리셰는 2008년의 연예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다. 문화대통령과 월드스타가 컴백하고, 젊은 배우들은 광우병 파동에 분노의 목소리를 냈고, 연예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고난을 이겨냈던 여배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양하면서도 하나하나의 무게감이 만만찮은 뉴스들은 2008년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전체 지형도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10 FOCUS’의 두 번째 연말 기획은 올 한 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예계 소식들을 복기하는 ‘10 NEWS’다. TV 프로그램 혹은 코너 이름을 따서 분류한 2008년 대표 뉴스들을 소개하고, 이 소식들이 생산되고 소비됐던 방식에 대해 짚어본다.

“바지를 내려 보이면 믿겠습니까?” 기자회견 중 단상 위에 올라가 바지를 벗으려 한 나훈아의 돌발 행동과 함께 2008년 연예계 사건 사고는 포문을 열었다. 이 강렬한 퍼포먼스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날 기자회견이 각종 루머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한 자리였다는 사실이다. 새 음반을 발매한 것도, 특별한 무대를 가졌던 것도 아닌 이 노가수는 단지 활동을 안 한다는 이유로 여러 매체 및 기자 블로그 안에서 잠적설, 신체 훼손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훈아는 “오늘은 내가 말할 차례”라고 했다. 기사를 통해 수차례 언급되었던 당사자는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것은 최근 연예계에서 연예기사가 갖는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어났느냐를 밝히는 것이 아닌, 보고 즐길 만한 서사적 대상으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결혼도, 법적공방도 그저 이야기만 만들 수 있으면 된다

그래서 <10 매거진>이 선정한 2008년 ‘10 NEWS’들에는 TV 프로그램 혹은 코너 명이 붙어있다. 현재 연예계 사건 사고는 연예계 종사자들이 겪은 개별적 사건이 아닌 그 자체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서 소비되기 때문이다. 나훈아 기자회견보다 하루 먼저 시작돼 한 해가 다 지나도록 진행되는 송일국과 김순희 기자의 진실 공방은 처음부터 ‘누가 옳고 그른가’에 대한 사실 문제가 아니었다. 매체들은 마치 격투기를 중계하듯 송일국 폭행설과 명예훼손에 대한 맞고소, 무고 혐의로 김순희 기자가 받은 징역 1년 형, 그리고 그녀의 항소 등 이 둘의 싸움 과정에 포커스를 맞췄다. 네티즌들 역시 사실 여부를 궁금해 하기보다는 의혹 자체를 즐기는 방식으로 기사를 소비했다.

때문에 이제는 연예란보다는 사회란에 더 어울려 보이는 박철, 옥소리의 이혼 소송 중에도 옥소리가 미니홈피에 올린 장문의 글은 연예 카테고리에서 선정적인 몇 부분만 발췌되어 소개된다. 혀를 차고 손가락질을 하며 1시간만 보면 끝인 KBS <사랑과 전쟁>를 대할 때의 태도, 딱 그만큼이다. 권상우가 축복만 받아도 부족할 결혼을 앞두고 더 축복받아 마땅한 임신 사실을 숨긴 이유에 대해 “임신 때문에 결혼한 것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 건 결코 기우가 아니다. 두 사람의 과거 연애이력과 혼전 임신만으로도 얼마든지 흥미로운, 하지만 사실관계는 어떤지 모를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혼도 결혼도 재밌는 기사를 위한 하나의 모티프로 취급되는 상황에서 신민아와 탑, 이효리와 어느 재벌 2세의 열애설은 당사자들의 완강한 부인과 사생활 침해에 가까운 사진 공개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귀여울 정도다.

물론 TV에는 올리브TV <커플 브레이킹>처럼 자극적인 프로그램 외에도 처럼 훈훈한 프로그램도 있다. 빚을 내서 기부하고, 공연 수익으로 빚을 갚는 ‘기부천사’ 김장훈의 끝없는 선행과 5년 동안 남몰래 ‘사랑복지공동모금회’에 8억 5000만원을 기부한 문근영의 미담은 어떤 과장 없이도 마냥 훈훈할 뿐이었다. 물론 이것은 어느 극우 논객의 비상식적 딴지와 그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은 논외로 친 결과다.

너무 일찍 떠난 사람들이 남긴 과제

그렇다고 모든 연예계 소식이 서사적 형태의 연예 콘텐츠로 소비된 것은 아니다. 군필자에게 유독 호의적인 한국 특유의 분위기에서 천정명, 노유민으로 시작해 공유, 하하, 성시경, 에릭 등으로 이어진 입대 소식은 그저 무사 전역 기원과 함께 소개될 뿐이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신정환과 정신이 이상한 괴한에게 폭행을 당해 심한 부상을 입은 노홍철의 소식 역시 인간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별다른 가공 없이 안타까운 소식으로만 전달되었다. 이런 예의가 가장 조심스러워야할 죽음이라는 영역을 다룰 때 잘 지켜지지 못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거북이 멤버 임성훈과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이언 등 유독 안타까운 부고가 많았던 올해지만 그중에서도 새신랑 안재환의 자살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그 이유를 궁금해 했다. 안재환이 거액의 사채를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가 ‘엄마’라고 부르던 사채업자와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자살이 아닌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며 정선희가 범인을 알고 있다는 유족의 주장과 이를 부인하는 정선희의 입장이 번갈아 소개된 일련의 폭로전은 가장 저급한 수준의 엔터테인먼트적 호기심이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루머들이 나훈아 때 그랬던 것처럼 자기 멋대로 증식했다는 것이다. 증권회사에 다니던 백 모 씨는 ‘안재환이 빌린 사채 40억 원 중 25억 원은 최진실이 빌려준 것’이라는 루머를 인터넷에 유포했다. 그리고 그것은 한 여배우의 돌이킬 수 없는 죽음으로 돌아왔다.

신예 이언의 죽음이든, 대스타 최진실의 죽음이든 죽음 자체의 무게는 똑같다. 하지만 한국 연예계의 지형도에서 최진실의 자살이 갖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배우가 죽었다는 사실만을 뜻하지 않는다. 매니저의 죽음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과 연기력 논란, 한국판 세기의 결혼이었던 조성민과의 결혼과 파경까지 온갖 시련을 딛고 일어나던 그녀의 과거사와 그런 그녀가 모든 걸 뒤로하고 스스로 목을 맸다는 사실은 스타이자 인간이었던 어떤 여자의 영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녀의 죽음은 연예뉴스의 생산과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 전부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비싼 수업료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반성의 시간을 제대로 가져보기 전에 정부는 고인의 이름을 걸고 사이버 모욕죄라는 강제적 법안을 만들려 하고 있다.

진실? 다만 연예기사가 있을 뿐이다

지난 광우병 파동에 따른 촛불시위 중 일부 연예인들이 미니홈피를 통해 비판적 글을 올린 것에 대해 “공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무게로 반드시 책임”지는 것이라고 경고한 여당 의원의 발언이 법적 강제력을 얻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합의와 토론은 뒤로 한 채 ‘법대로’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현 정부의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YTN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이나, KBS에서 정연주 사장을 내쫓고 이병순 사장을 취임시킨 것 모두 합법적이되 합리적이진 않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용납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배제해버리는 방침은 오랜만에 돌아온 거물급 가수에게도 적용되었다. 비의 ‘레이니즘’은 ‘떨리는 니 몸 안에 돌고 있는 나의 매직 스틱, 더이상 넘어갈 수 없는 한계를 느낀 바디 쉐이크’라는 가사가 성행위를 묘사한다는 이유로 , 동방신기의 ‘주문’은 ‘널 가졌어’와 ‘under my skin’이라는 가사 때문에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판정받았다. 역시 올해 컴백한 서태지가 1995년 사전심의 때문에 ‘시대유감’의 가사를 삭제해야했던 걸 기억하는 세대에게 현 정국은 가장 저열한 형태의 복고 콘텐츠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올림픽에 열광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 어떤 꼼수 없이 오직 경기에만 몰두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점점 독해지는 연예계 소식과 볼수록 답답한 정국에 지친 사람들에게 신선한 샘물과도 같았다. 장미란과 최민호처럼 인간미 넘치는 올림픽 스타들을 향한 팬덤이 형성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하지만 대중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대상이 포착되면 좀 더 자극적으로 가공해 소비하는 연예계의 시스템 안에서 이 새로운 형태의 팬덤이 얼마나 지금 같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베이징 올림픽으로 기사를 검색할 때 호화 원정 응원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강병규의 억대 인터넷 도박 뉴스가 같이 검색되는 정도의 작은 연결고리만 있다면 어떤 대상이든 자극적인 형태로 확대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가 궁금해 해야 할 것은 2009년에 ‘무슨 스캔들이 일어나느냐’가 아닌, 그것들이 매체와 여론 안에서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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