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이 이십대 초반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고민하는 나이, 스물셋에 장근석은 이미 ‘기대주’를 넘어 배우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3편의 영화를 찍고, 2편의 드라마를 선보인 그는 이제 일본에서 팬 미팅을 할 정도로 명실상부한 스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KBS <쾌도 홍길동>을 통해서는 복수심을 품고 그늘진 표정으로 속세를 부유하는 왕자의 모습을, MBC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고난이도의 트럼펫 연주까지 그럴듯하게 해내는 천재 음악가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지난 한 해 동안 누구보다 바쁘게 달려온 장근석은 새해를 맞아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다. “여행을 잠깐 다녀왔어요. 그리고 밀려있었던 광고 촬영을 연초부터 하나씩 하고 있습니다. 광고를 찍는 것도 제 일이고, 약속이니까요.” 스물셋의 청년이 연기 외에 해내야 할 것은 그 뿐이 아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그는 올해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계획 또한 갖고 있다. “3월에 복학을 해요. 요즘 연기 외에도 영상에 관심이 많아져서 학교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 중이거든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던 청년의 모습과 CF의 화려한 스타의 모습이 공존하는 장근석의 매력은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아 일렉트로니카부터 가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앨범을 모은다는 그는 디제잉에 필요한 장비를 직접 구입할 만큼 적극적인 음악 애호가다. 실제로 ‘에뛰드’ CF에 등장하는 디제잉 장비가 평소 장근석이 직접 사용하던 것이라고. “www.beatport.com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 디제잉에 필요한 음악을 들어보기도 해요. 그렇지만 사람들 앞에서 DJ를 할 생각은 없어요. 친구들하고 있을 때 즐겁게 해 보는 정도죠.”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일보다는 리스너로서의 즐거움에 충실하려는 그가 자신이 산 음반들을 차곡차곡 담아놓은 MP3 플레이어에서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는 앨범들을 골랐다.

1. Ra.D의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 들더라구요.” 장근석이 첫 번째 추천한 뮤지션은 한국의 R&B Soul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인 Ra.D. 그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조PD의 ‘My style’, 다이나믹듀오의 ‘어머니의 된장국’을 비롯해 많은 힙합 뮤지션의 노래에 피쳐링을 해 준 그의 목소리를 한 번 쯤은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장근석은 Ra.D의 첫 앨범 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 앨범에 반해서 친구들 주려고 20장 정도를 샀었어요. 아쉽게도 대중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아직도 그 앨범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지금 더 소장가치 있는 앨범이 된 게 아닐까싶어요.” 장근석처럼 팬들이 그의 첫 번째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 동안 Ra.D는 군대에 다녀왔고, 지난 연말 두 번째 앨범 를 발표했다. 장근석에게 더 없이 반가운 이 앨범에서 그의 추천곡은 ‘SP Collabo’

2. 하림의
장르를 편식하지 않는다는 장근석은 음악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본다. 그래서 그는 때로 노래의 가사에 먼저 반하기도 한다. 특히 하림의 두 번째 앨범 에 수록된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는 솔직한 가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멜로디가 세련된 것도 좋아하지만 노랫말이 와 닿는 순간 그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특히 이 노래는 이별에 대한 슬픈 가사를 하림씨 특유의 무덤덤한 목소리로 부르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구요. 처음 들을 때는 편안하게 들리지만, 들을수록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잖아요. 물론, 음악 자체로도 훌륭하죠. 하림씨와 라디오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이 앨범을 만들 때 유럽의 많은 나라를 여행하시면서 다양한 악기들을 배우셨대요. 그러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면서 음악을 만드셨다고 하더라구요. 만들 당시의 느낌과 생각이 기행문처럼 담겨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멋지게 들려요.”

3. Jamiroquai의
중학교 때부터 일본 시부야 계열 뮤지션들을 좋아해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부터 몽키매직까지 다양한 뮤지션들을 섭렵해 온 그가 자미로콰이의 팬이라는 사실은 당연하게 들리는 일. 장르는 다르지만 듣는 이를 흥겹게 만드는 스타일과 그루브가 돋보인다는 공통점이 음악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는 장근석의 취향을 보여준다. 특히 그는 자미로콰이의 열성팬으로서 모든 앨범과 DVD를 수집할 정도. 그래서 단 하나의 앨범을 고르기 유난히 어려워하던 그가 선택한 것은 베스트앨범인 . 그가 특히 좋아한다는 ‘Canded heat’, ‘Virtual Insanity’는 물론 히트곡 대부분이 수록된 보석 같은 앨범이다. “전공 때문인지 CF 찍을 때도 콘티 짜는 것부터 후반작업까지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에요. 직접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구요. 그런 점에서 자미로콰이의 뮤직비디오는 그 감각이 부러울 정도에요. ‘Virtual Insanity’ 같은 작품의 아이디어는 정말 끝내주잖아요.”

4. 윤종신의
어린 나이에 방송일을 시작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유난히 속이 깊다는 말을 듣는 장근석은 또래보다 윗세대에 닿아있는 음악들을 자주 듣는다. 그래서 <논스톱4>에서 함께 시트콤 연기를 했던 윤종신의 팬이기도 하다. 특히 ‘너에게 간다’, ‘You are so beautiful’이 수록된 윤종신의 10집 은 들을수록 새로워서 그가 아끼는 앨범이라고. “그 앨범이 발매됐을 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어요. 나중에 들은 바로는 30대 전후의 방송국 PD, 작가님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노래였다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런데 정말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새로운 느낌이 들어요. 노래 자체에 담겨 있는 감정선이 한정되어 있지 않고 들을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제가 30대가 되면 그땐 또 다른 의미로 이 앨범을 좋아하게 되겠죠?”

5. Craig David의
“중학교 2학년 때 산 앨범이에요.” 장근석은 크레이그 데이빗의 첫 정규앨범 을 샀던 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 비 형과 시트콤을 찍고 있었거든요. 쉬는 시간에 나가서 CD를 사 왔는데, 형이 그걸 보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너 음악 좀 아는구나.’ 하고 농담을 하시더라구요.” 비와 장근석뿐 아니라 수많은 팬들에게 음악의 트렌드 세터로 일컬어지는 크레이그 데이빗은 뛰어난 가창력과 세련된 사운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영국의 R&B 가수. 그 중에서도 장근석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갓 데뷔한 소년 크레이그 데이빗의 풋풋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Time to Party’다. “친구들과 작은 파티를 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순간을 정말 소중하게 여겨요. 편안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이죠. 그런데 작년에는 내내 바빠서 그런 시간이 너무 없었네요.”

“누가 봐도 배우 냄새가 나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예요.”

올해 계획을 묻자 장근석은 “어쩌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 일수도 있어요.”라는 말로 조심스럽게 운을 떼더니,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다고 답한다. 누구보다 확고한 비전을 가졌다고 생각했건만, 남몰래 그의 마음은 방황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제가 음악을 전공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저의 취향만으로 제가 음악을 남들보다 훨씬 많이 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실 저는 옷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를 패셔니스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겨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제 이미지가 너무 트렌디한 느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 하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이 청년이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은 다름 아닌 배우, 우리가 맨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그가 하고 있던 일이다. “지금까지는 즐기면서 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저만이 할 수 있는 배역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누가 봐도 배우 냄새가 나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예요. 욕심은 갖되, 너무 서두르지 않으면서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눈도 좀 기르고요.” 연기로 보답하고, 역시 연기로 확신을 주겠다는 장근석을 보며 더 이상 ‘기특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제 몫을 해 내는 배우 장근석의 고민이 그만의 연기로 빛나는 순간에 대해 우리가 보낼 것은 ‘기대’면 충분하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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