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머리도 아니다. 항상 따라다니는 집사도 없다. 그렇지만 무대 위에서 그는 재벌2세다. 노골적인 콘셉트의 위트에 웃음을 짓다가도 ‘사실 돈이 뭐 별거니, 좀 더 가진 것 뿐야’라는 가사에 울컥하게 되는 것은 그 재벌 2세를 연기하고 있는 소년, 아주 때문이다. “무대에 서는 것도 연기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눈빛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연습 많이 했죠.” 다부진 표정과 거만한 몸짓까지 염두에 두고 무대 위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는 야무진 설명과 달리 눈앞에 앉아 있는 아주는 그저 귀엽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얼굴 위에 크레파스로 그린 듯 새까만 눈썹과 통통한 입술은 답변이 하나 끝날 때마다 순하게 방글방글 웃기에 바쁘다. 카스테라처럼 뽀얀 볼이나, 유난히 맑은 성품은 함부로 손을 대면 자국이 남을까 겁이 날 지경이다.

나쁜 남자? 쇼맨의 천성을 가진 순둥이

그런 순둥이가 무대 위에서 ‘easy for me’를 외치는 나쁜 남자가 되기까지 6년이 필요했다. 마냥 춤추는 것을 좋아하던 초등학교 6학년생 꼬마가 스무 살 소년이 된 시간이다. “처음에 춤을 배울 때 힘들었던 건 체력적인 부분이 아니었어요. 옆에서 형들은 멋지게 막 춤을 추는데, 저는 팔 뻗기만 하루에 몇 백번씩 몇 개월을 했거든요. 조바심도 나고, 지루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이 기본기가 된 것 같아서 참아내길 잘했다 싶어요.” 그동안 그가 익힌 성실함과 승부근성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베어 나왔다. 수업시간에는 애써 허리를 세우고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 애를 썼고, 체력장을 할 때도 주변의 친구들이 덩달아 전력질주를 할 만큼 최선을 다 했다. 정작 본인은 “성격이 단순해서”라고 말하지만, 바쁜 일정 중에도 꼬박꼬박 출석을 하고, 청소년기 내내 하나의 꿈을 보고 달려온 그 단단한 마음은 결코 단순하게 봐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착하고 순하기만 했다면, 아마 아주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음악 시간이 되면 친구들은 부끄러워서 나서질 않잖아요. 그런데 저는 혼자 연습해놓고 ‘아, 잘 못하는데’ 그러면서 짠! 보여주고 그랬어요. 선생님이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면 또 혼자서 좋아하고, 짜릿해 하고.” 과정을 숨기고, 준비된 무대로 좌중을 압도하고자 하는 쇼맨의 천성은 소년에게 스타의 꿈을 갖게 했다. 거기에 더해 스스로 동네 피아노 교습소와 실용 음악학원을 찾아다니며 악보와 코드에 대한 기초 이해를 다졌을 만큼 그는 음악에 대한 욕심 또한 크다. 그래서인지 후크를 만들어 유행을 노리는 음악들과 달리 세련된 편곡에 욕심을 낸 것 같아 보인다고 하자 아주의 눈이 갑자기 동그래진다. 살짝 쳐진 눈꼬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눈으로 웃는 소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진심으로 기쁜 칭찬을 받았을 때, 그는 눈을 열고, 입을 연다. 그리고 되묻는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뚝뚝 떨어진다. “우와! 정말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최면을 걸어요, 나는 재벌 2세다!”

사실 스무 살은 아직 어린 나이다. 게다가 밸런타인데이에 좋아하는 초콜릿을 잔뜩 선물 받고도 헬스 트레이닝 받는 중이라 손도 못 대고 쳐다보기만 했다며 볼 멘 소리를 하거나, 준비 해 온 브라우니를 권하자 “어, 이거 맛있네요. 집 앞에 파는 걸 보긴 했는데 은근히 비싸서 한 번도 사먹은 적은 없거든요.”라며 혼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이 순둥이 소년을 제 나이보다도 어리게 보게끔 한다. 그래서 아주는 무대에 올라가거나 카메라 앞에 설 때면 마음의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단다. “제 순서 직전까지 이어폰을 꽂고 음악에 취하려고 해요. 스스로 최면도 걸죠. 나는 이제 재벌 2세다!” 순간, 소년의 얼굴이 훌쩍 남자의 것으로 변한다. 숨겨둔 발톱을 내 보이듯 비장의 눈빛으로 돌변하는 그의 변신에 놀라자 다시 아주의 눈 꼬리가 무너진다. “하하. 이중생활을 하는 것 같아요. 음… 그거 좋은 거죠?”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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