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가수 박경의 솔로곡 ‘자격지심’ 재킷 커버 이미지 / 사진제공=세븐시즌스
가수 박경의 솔로곡 ‘자격지심’ 재킷 커버 이미지 / 사진제공=세븐시즌스
가수 박경의 반격이 ‘페북픽’ 가수들의 차트 점령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재점화의 시작은 지난 24일이었다. 박경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바이브처럼 송하예처럼 임재현처럼 전상근처럼 장덕철처럼 황인욱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는 글을 게재했다. 현역 가수가 다른 가수들의 실명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이 글은 금세 이슈가 됐다. 박경은 당일 글을 삭제했고, 소속사 KQ엔터테인먼트(이하 세븐시즌스)는 박경의 실명 거론을 사과했다. 그러면서 “현 가요계 음원 차트의 상황에 대해 발언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경이 실명을 거론한 가수와 그룹 등 여섯 팀은 일제히 강경 대응을 선언했다. 박경이 사실 확인 없이 실명을 거론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논란이 일자 무분별한 악성 댓글을 퍼붓는 악플러들도 많아지고 있어 여섯 팀 중 일부는 27일 악성 댓글 게시자와 박경을 동시에 고소할 준비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경의 소속사 세븐시즌스는 아티스트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법적 절차가 진행될 경우 변호인을 선임하여 대응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공개했다. 당초 사과했던 박경 측의 입장이 달라진 것일까.

더욱 뜻밖인 것은 여론의 움직임이다. 2016년 5월 발매된 박경의 솔로곡 ‘자격지심(Feat. 은하 of 여자친구)’이 지난 26일 주요 음원 차트에 오르며 역주행한 것이다. ‘자격지심’의 역주행은 각 온라인 커뮤니티의 장르를 막론하고 네티즌들이 합심해 스트리밍한 결과로 보인다. 자칭 “한때 음원깡패”였다는 래퍼 마미손도 27일 새벽 자신의 유튜브에 신곡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공개하며 간접적으로 박경의 분투를 지지하고 나섰다. 마미손은 래퍼인데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현재 차트를 장악하고 있는 감성 발라드의 정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네티즌들은 ‘새벽에만 미친듯이 차트 오르는 그 장르”국내 힙합 최고의 디스곡’ 등의 댓글을 게시했다.

래퍼 마미손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유튜브 영상.
래퍼 마미손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유튜브 영상.
마미손은 지난 18일 유진박, 장기하 등과 의기투합한 정규 1집 ‘나의슬픔(My Sadness)’를 발매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마미손은 신곡에서 ‘이제는 차트인 하루도 못 가요. 짬에서 나온 바이브가 그 정도라면 야 쪽팔린 줄 알아야지. 유튜브 조회수 페북으로 가서 돈 써야지. 천 개의 핸드폰이 있다면 별의노래만 틀고 싶어. 기계를 어떻게 이기라는 말이냐. 내가 이세돌도 아니고’라는 가사로 ‘페북픽’ 가수들의 차트 장악을 비판했다. ‘페북픽’이란 ‘페이스북에서 픽(Pick)했다’라는 말을 줄인 단어로, 페이스북 페이지들의 마케팅으로 인해 음원 차트로 유입되는 곡들을 뜻한다.

페이스북에서 차트로의 유입. ‘사재기 논란’의 중심은 이 과정에 있다. 페이스북이라는 무료 플랫폼에서 유료 서비스를 토대로 하는 타 플랫폼으로의 이동이 그렇게 원활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중도, 심지어 ‘페북 가수’ 소속사 일부 관계자들도 명확하게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알고 있거나 음악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26조에서 말하는 ‘사재기’와 페북 바이럴 마케팅 업체들의 ‘차트 진입 노하우’를 구별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법에서 말하는 사재기는 ‘음반 등을 부당하게 구입하거나 관련된 자로 하여금 부당하게 구입하게 하는 행위’ 등 주로 음반에 한정돼 있다.

현재 ‘페북픽’을 돕는 마케팅 업체는 크게 두 곳 정도다. 이 업체들은 2015년쯤부터 그들만의 마케팅 노하우를 펼치기 시작해 꾸준히 노하우를 개발해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닐로, 숀 등의 사재기를 판단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이런 변화까지 파악했거나 파악하려는 의지를 가졌는지는 의문이다. 문체부의 조사는 그간 수집된 데이터만으로는 음원 사재기 유무를 알기 어렵다는 취지의 회신문을 가수들의 소속사에 보내며 끝이 났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페이지들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 노하우에도 일리는 있다. 이를 활용해 음원 강자로 떠오른 한 가수의 소속사 관계자는 “바이럴 마케팅과 사재기가 오해를 살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는 플랫폼에 콘텐츠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한다. 페이스북에 거의 매일 콘텐츠를 올려서 바이럴되고 나면 유튜브 등 다른 플랫폼에서 (커버 영상과 같은)일반인들의 소속 가수 관련 영상(커버 영상 등)이 자발적으로 올라온다. 이 같은 콘텐츠의 양은 기성 가수들의 콘텐츠 양보다 절대적으로 많다”고 밝혔다. 페북 바이럴 마케팅으로 음원 강자를 만든 또 다른 가수의 소속사 관계자도 “획기적이고 이색적인 콘텐츠를 다양하게 촬영해 최대한 다양한 장르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노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페이지마다 마케팅 설정값이 다르기 때문에 콘텐츠가 도달하는 유저들도 달라 노출도 ‘다다익선’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노하우는 현재의 ‘콘크리트 차트’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게 사실이다. 딘딘은 지난 21일 SBS 파워FM ‘김영철의 파워FM’에서 “요즘 사재기가 너무 많아서 차트가 콘크리트라고 불린다. 뚫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딘딘은 이어 “(내 신곡이) 차트인했다. (하지만) 1시간 있다가 빠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콘크리트 차트를 만드는 데는 대개 돈이 든다. 장기적으로 차트인을 하려면 업체에 따라 수천만원에서 억대를 지불해야 한다. 한 발라드 가수의 소속사 관계자는 “이제는 막 데뷔한 신인들도 업체들을 통해 차트에 올라가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또 이런 마케팅 업체들은 가요 뿐만 아니라 팝 음악 유통 회사들에도 침투한 지 오래다. ‘건전한 음원 유통 질서’라는 말이 빛을 바랜 현실에서 박경의 맞대응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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