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진경: 독특하고 새로운 캐릭터들에 매료됐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엉뚱하고 발랄하고, 골때렸다. 기존에 생각했던 걸 뒤집는 전개와 아이들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웃음들, 성적인 소재를 불편하지 않게 풀어내는 점들에 끌렸다. 성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19금으로 가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이 영화의 색깔 자체가 아이들의 시선에서 본 어른들의 세계였다. 실질적으로 아이가 극을 이끄는데 그걸 어떻게 19금으로 바꾸겠나.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개봉하게 돼 기쁘다.
10.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진경: 영화가 시작될 때 카메라가 쭉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뮤지컬처럼 펼쳐진다. 시나리오에서는 뮤지컬적인 부분이 더 강했다. 생활 속의 동작들이 춤처럼 연결되는 장면들이 색다른 시도였고, 찍을 때도 재미있었다. 마지막에 한 카페에 모여서 춤을 추기도 하는데, 짧은 시간 내에 끝내야 해서 다들 고생했다. 밤을 새고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췄다. 모두 웃고 있는데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어서 기억이 남는다.
10. 최근 영화에서는 주로 남자 감독들과 호흡했다. 여성 감독과 함께한 점도 특별했을 것 같다.
진경: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이전에 여성 감독과 함께 한 적도 있었지만, 남자 감독과 더 많이 해왔다. ‘레디, 액션!’. 이 말은 당연히 강한 목소리로 외쳐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말하듯이 ‘레디’ ‘액션’만 읊어도 된다는 걸 이번 감독님을 통해 처음 알았다. 하하하. 김지혜 감독님을 통해 나 또한 감독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성별을 떠나 사람 자체가 선해서 현장이 안 좋을 수 없었다.
10. 시청률 49.4%를 기록한 KBS2 ‘하나뿐인 내편‘의 사랑스러운 나홍주 이전에 ‘썬키스 패밀리‘를 촬영했다. 이제까지 강하거나 도회적인 이미지로 출연했는데, 어떤 점에서 출연을 제안 받은 것 같았나?
진경: 나도 잘 몰라서 감독님께 물어봤다. 유미(진경)가 사랑스럽기만한 게 아니라 아줌마로서의 모습, 학교 선생님으로서 아이들 앞에서 강한 모습도 필요하지 않나. 감독님이 “진경 씨가 영화 ‘베테랑’에서 가방 집어던지는 장면 있잖아요. 그런 여자가 집에서는 애교를 부릴 것 같았어요”라고 하더라. 하하. ‘열정 같은 소리 하네’에서는 내가 가발과 안경을 쓰고 괴짜처럼 나오는데, 그 때도 내가 웃을 때 무슨 따듯한 면을 봤다고 했다. 감독님이 전혀 그렇지 않은 작품을 보고도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준 게 아닐까.
10. 주로 강인한 면모로 대중과 만나다가 ‘하나뿐인 내편‘에 이어 ‘썬키스 패밀리’로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 모습은 어디에 더 가깝나?
진경: 내 실제 모습은, 그냥 허당이다. 유미는 허당은 아니니까 내가 캐릭터들보다 더 허당인 셈이다.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생긴 걸 보고 똑 부러지고 깐깐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똑 부러지지도 않았고 뭐, 깐깐한 면은 사람이니까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굉장히 허술하다고 말하고 싶다. 연기하는 것 빼고는 다 허당이다.
10. 함께 호흡한 박희순을 연극하던 시절부터 동경하던 배우라고 말했다. 두 사람 다 연극 경력이 많은 배우인데, 영화로 만나니 기분이 어땠나?
진경: 같이 연극을 해본 사이는 아니다. 오빠가 극단 목화에 있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를 할 때의 인상이 크게 남았다. 엄청나게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독특한 컬러가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왔다. 먼 훗날 이렇게 엉뚱하고 골때리는 영화에서 만난 걸 보니 인생이 참 재미있다 싶다. (웃음) 서로를 센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는 허당이고 오빠는 부드러운 사람이라서 편했다.
10. 과거 인터뷰에서 연극을 하던 시절, 왜곡된 캐릭터를 보고 감독과 계속 조정했다고 말했다. ‘썬키스 패밀리’를 선택한 것도 그렇고 새로운 캐릭터나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 같다.
진경: 주로 조연을 많이 해왔지만, 연극이든 영화든 대다수가 남자인 환경이 많았다. 그리고 영화의 경우 작가도 감독도 남자라면 일단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가져오는 소스 자체가 적다. 이 말은 캐릭터의 여백 자체를 배우가 채워나가야 한다는 걸 뜻한다. 연기를 할 때 감정이 연결되는 장면이 스무스하지 않을 때도 있고. 이런 점에서 여자 배우들이 캐릭터를 더 많이 연구하게 되는 점도 있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걸까?’ 하는 질문을 계속 해왔다. 당연히 새로운 캐릭터에 갈증이 생긴다. 어떤 감독은 내가 맡은 캐릭터에 대해 물어보면 ‘솔직히 저, 여자 잘 몰라요’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이제는 나보다 어린 감독님이 있으니 나한테 편하게 말해주는 거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썬키스 패밀리’는 여자 감독님과 작가가 여자 얘기를 썼으니 내게 좋은 기회였고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
10. ‘베테랑’ 등 남성들이 많이 출연하는 영화 속에서도 유독 강인한 캐릭터들을 맡게 된 것 같다. 드라마에서도 전문직 캐릭터를 많이 맡았는데, 왜 그럴까?
진경: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덕분에 짧게 출연해도 나를 기억해주는 분도 많았으니까. ‘암살’이나 ‘베테랑’의 경우 이미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마스터’의 김엄마는 조금 더 요부적인, 교태를 이용해 사기 치려고 하는, 그런 류의 영화에서 딱 한 명 나오는 여자를 생각할 때 연상되는 정부 이미지로 갈 여지가 많았다. 그런데 조의석 감독이 내 컬러를 알았다. “누나가 그렇게 하는 게 싫고, 그냥 진현필하고 성적인 게 개입되지 않은 ‘사기의 동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의견이 나와도 맞아서 김엄마가 완성됐다.
10. 김엄마 캐릭터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걸로 안다.
진경: 진현필과의 관계가 부족했다고 느끼는 분도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좋았다는 분들도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여자분들 중에 진현필과의 끈적끈적한 관계가 없어서 좋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그냥 끈적한 성격이 없어서 그런 건지, 그게 싫어서 그런 건지…. 말했듯이 내 이미지가 똑부러지는 게 있고 한번 걸리면 큰일 날 것 같은 모습들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웃음)
10. 지난해 한 잡지에서 기획한 ‘젠더 프리’ 영상에서 햄릿을 연기해 짧은 영상으로도 주목받았다. 연극의 대명사인 햄릿을 선택한 이유는?
진경: 연극을 하면서 내가 연기하는 여자 캐릭터의 다양성에 대한 열망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항상 그래왔다. 연극하던 시절 ‘햄릿’ 등의 오디션을 볼 때 여자 대사 중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웃음) 남자 배우의 대사에서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왜 나는 ‘사느냐 죽느냐, 그 대사를 할 수 없는 거야?’ 했다. 연극 수업을 할 때에도 ‘저를 왜 버리세요, 저를 떠나지마세요’ 이런 대사가 하기 싫었다. 외국에서도 햄릿 역을 굉장히 유명한 여성 배우가 해낸 걸 봤는데, 그래서 햄릿을 하게 됐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건 연극을 안 하는 사람들도 다 아는 대사 아닌가.
10. ‘썬키스 패밀리’에서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유미의 가치관과 선생님으로서 현실적인 위치가 맞물리면서 자유와 책임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언급된다. 배우들은 하고 싶은 캐릭터를 찾는 자유와 주어진 캐릭터라는 책임 사이에서 늘 갈등하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진경: 연기를 해오면서 100% 나를 만족시키는 캐릭터를 찾는 기회는 흔치 않다. 그럼에도 내 노력으로 새로운 부분을 만들 가능성이 있는 캐릭터를 맡게 됐을 때, 그런 부분을 채워나가는 건 이미 훈련이 돼있다고 생각한다. (웃음) 어떤 캐릭터를 하고 싶은 마음이 70%이고 아쉬운 마음이 30%라면 그 나머지는 내가 채워 나가야 한다. ‘이거 싫어. 저거 싫어’하고 불평만 하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건 여자 배우의 이야기다. 남자 배우들은 비교적 역할이 다양하니까. 역할에 있어서 젠더의 문제는 사회의 젠더 문제와 연결돼 있어서 ‘할게 없어’라고만 말하면 일을 못한다. 조금씩 개선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현재로서 나는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도 그 안에서 베스트를 찾아내려고 하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10. ‘다양한 영화‘란 뭔가?
진경: 자꾸 상업적인 계산을 하다 보니 남성 위주의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한다. 김지혜 감독님처럼 주류가 아닌 특유의 감성, 그들만이 가진 유머 같은 걸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영화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예전에 ‘애자’라는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 그런 영화가 많아지길 바란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영화 ‘마스터'(2016)의 김엄마, ‘암살'(2015)의 안성심, ‘감시자들’(2013)의 이 실장…’충무로 신스틸러’라고 불리며 여러 남자들이 등장하는 영화 속에서도 강인한 매력을 드러냈던 진경이 말랑말랑한 캐릭터로 돌아왔다. KBS2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프레디!’ ‘강 선생님’을 외치던 나홍주에 이어 이번에는 영화 ‘썬키스 패밀리'(감독 김지혜)다. 아이의 시선에서 보는 성(性)을 다루는 가족 코미디다. 남성 중심의 영화판에서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갈증을 느껴왔다는 진경을 만났다.10. 제작보고회 때 부터 ‘썬키스 패밀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어떤 점이 끌렸나?
진경: 독특하고 새로운 캐릭터들에 매료됐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엉뚱하고 발랄하고, 골때렸다. 기존에 생각했던 걸 뒤집는 전개와 아이들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웃음들, 성적인 소재를 불편하지 않게 풀어내는 점들에 끌렸다. 성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19금으로 가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이 영화의 색깔 자체가 아이들의 시선에서 본 어른들의 세계였다. 실질적으로 아이가 극을 이끄는데 그걸 어떻게 19금으로 바꾸겠나.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개봉하게 돼 기쁘다.
10.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진경: 영화가 시작될 때 카메라가 쭉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뮤지컬처럼 펼쳐진다. 시나리오에서는 뮤지컬적인 부분이 더 강했다. 생활 속의 동작들이 춤처럼 연결되는 장면들이 색다른 시도였고, 찍을 때도 재미있었다. 마지막에 한 카페에 모여서 춤을 추기도 하는데, 짧은 시간 내에 끝내야 해서 다들 고생했다. 밤을 새고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췄다. 모두 웃고 있는데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어서 기억이 남는다.
10. 최근 영화에서는 주로 남자 감독들과 호흡했다. 여성 감독과 함께한 점도 특별했을 것 같다.
진경: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이전에 여성 감독과 함께 한 적도 있었지만, 남자 감독과 더 많이 해왔다. ‘레디, 액션!’. 이 말은 당연히 강한 목소리로 외쳐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말하듯이 ‘레디’ ‘액션’만 읊어도 된다는 걸 이번 감독님을 통해 처음 알았다. 하하하. 김지혜 감독님을 통해 나 또한 감독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성별을 떠나 사람 자체가 선해서 현장이 안 좋을 수 없었다.
10. 시청률 49.4%를 기록한 KBS2 ‘하나뿐인 내편‘의 사랑스러운 나홍주 이전에 ‘썬키스 패밀리‘를 촬영했다. 이제까지 강하거나 도회적인 이미지로 출연했는데, 어떤 점에서 출연을 제안 받은 것 같았나?
진경: 나도 잘 몰라서 감독님께 물어봤다. 유미(진경)가 사랑스럽기만한 게 아니라 아줌마로서의 모습, 학교 선생님으로서 아이들 앞에서 강한 모습도 필요하지 않나. 감독님이 “진경 씨가 영화 ‘베테랑’에서 가방 집어던지는 장면 있잖아요. 그런 여자가 집에서는 애교를 부릴 것 같았어요”라고 하더라. 하하. ‘열정 같은 소리 하네’에서는 내가 가발과 안경을 쓰고 괴짜처럼 나오는데, 그 때도 내가 웃을 때 무슨 따듯한 면을 봤다고 했다. 감독님이 전혀 그렇지 않은 작품을 보고도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준 게 아닐까.
진경: 내 실제 모습은, 그냥 허당이다. 유미는 허당은 아니니까 내가 캐릭터들보다 더 허당인 셈이다.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생긴 걸 보고 똑 부러지고 깐깐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똑 부러지지도 않았고 뭐, 깐깐한 면은 사람이니까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굉장히 허술하다고 말하고 싶다. 연기하는 것 빼고는 다 허당이다.
10. 함께 호흡한 박희순을 연극하던 시절부터 동경하던 배우라고 말했다. 두 사람 다 연극 경력이 많은 배우인데, 영화로 만나니 기분이 어땠나?
진경: 같이 연극을 해본 사이는 아니다. 오빠가 극단 목화에 있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를 할 때의 인상이 크게 남았다. 엄청나게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독특한 컬러가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왔다. 먼 훗날 이렇게 엉뚱하고 골때리는 영화에서 만난 걸 보니 인생이 참 재미있다 싶다. (웃음) 서로를 센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는 허당이고 오빠는 부드러운 사람이라서 편했다.
10. 과거 인터뷰에서 연극을 하던 시절, 왜곡된 캐릭터를 보고 감독과 계속 조정했다고 말했다. ‘썬키스 패밀리’를 선택한 것도 그렇고 새로운 캐릭터나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 같다.
진경: 주로 조연을 많이 해왔지만, 연극이든 영화든 대다수가 남자인 환경이 많았다. 그리고 영화의 경우 작가도 감독도 남자라면 일단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가져오는 소스 자체가 적다. 이 말은 캐릭터의 여백 자체를 배우가 채워나가야 한다는 걸 뜻한다. 연기를 할 때 감정이 연결되는 장면이 스무스하지 않을 때도 있고. 이런 점에서 여자 배우들이 캐릭터를 더 많이 연구하게 되는 점도 있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걸까?’ 하는 질문을 계속 해왔다. 당연히 새로운 캐릭터에 갈증이 생긴다. 어떤 감독은 내가 맡은 캐릭터에 대해 물어보면 ‘솔직히 저, 여자 잘 몰라요’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이제는 나보다 어린 감독님이 있으니 나한테 편하게 말해주는 거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썬키스 패밀리’는 여자 감독님과 작가가 여자 얘기를 썼으니 내게 좋은 기회였고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
10. ‘베테랑’ 등 남성들이 많이 출연하는 영화 속에서도 유독 강인한 캐릭터들을 맡게 된 것 같다. 드라마에서도 전문직 캐릭터를 많이 맡았는데, 왜 그럴까?
진경: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덕분에 짧게 출연해도 나를 기억해주는 분도 많았으니까. ‘암살’이나 ‘베테랑’의 경우 이미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마스터’의 김엄마는 조금 더 요부적인, 교태를 이용해 사기 치려고 하는, 그런 류의 영화에서 딱 한 명 나오는 여자를 생각할 때 연상되는 정부 이미지로 갈 여지가 많았다. 그런데 조의석 감독이 내 컬러를 알았다. “누나가 그렇게 하는 게 싫고, 그냥 진현필하고 성적인 게 개입되지 않은 ‘사기의 동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의견이 나와도 맞아서 김엄마가 완성됐다.
10. 김엄마 캐릭터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걸로 안다.
진경: 진현필과의 관계가 부족했다고 느끼는 분도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좋았다는 분들도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여자분들 중에 진현필과의 끈적끈적한 관계가 없어서 좋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그냥 끈적한 성격이 없어서 그런 건지, 그게 싫어서 그런 건지…. 말했듯이 내 이미지가 똑부러지는 게 있고 한번 걸리면 큰일 날 것 같은 모습들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웃음)
진경: 연극을 하면서 내가 연기하는 여자 캐릭터의 다양성에 대한 열망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항상 그래왔다. 연극하던 시절 ‘햄릿’ 등의 오디션을 볼 때 여자 대사 중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웃음) 남자 배우의 대사에서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왜 나는 ‘사느냐 죽느냐, 그 대사를 할 수 없는 거야?’ 했다. 연극 수업을 할 때에도 ‘저를 왜 버리세요, 저를 떠나지마세요’ 이런 대사가 하기 싫었다. 외국에서도 햄릿 역을 굉장히 유명한 여성 배우가 해낸 걸 봤는데, 그래서 햄릿을 하게 됐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건 연극을 안 하는 사람들도 다 아는 대사 아닌가.
10. ‘썬키스 패밀리’에서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유미의 가치관과 선생님으로서 현실적인 위치가 맞물리면서 자유와 책임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언급된다. 배우들은 하고 싶은 캐릭터를 찾는 자유와 주어진 캐릭터라는 책임 사이에서 늘 갈등하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진경: 연기를 해오면서 100% 나를 만족시키는 캐릭터를 찾는 기회는 흔치 않다. 그럼에도 내 노력으로 새로운 부분을 만들 가능성이 있는 캐릭터를 맡게 됐을 때, 그런 부분을 채워나가는 건 이미 훈련이 돼있다고 생각한다. (웃음) 어떤 캐릭터를 하고 싶은 마음이 70%이고 아쉬운 마음이 30%라면 그 나머지는 내가 채워 나가야 한다. ‘이거 싫어. 저거 싫어’하고 불평만 하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건 여자 배우의 이야기다. 남자 배우들은 비교적 역할이 다양하니까. 역할에 있어서 젠더의 문제는 사회의 젠더 문제와 연결돼 있어서 ‘할게 없어’라고만 말하면 일을 못한다. 조금씩 개선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현재로서 나는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도 그 안에서 베스트를 찾아내려고 하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10. ‘다양한 영화‘란 뭔가?
진경: 자꾸 상업적인 계산을 하다 보니 남성 위주의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한다. 김지혜 감독님처럼 주류가 아닌 특유의 감성, 그들만이 가진 유머 같은 걸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영화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예전에 ‘애자’라는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 그런 영화가 많아지길 바란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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