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사진=MBC ‘사생결단 로맨스’ 방송 캡처
사진=MBC ‘사생결단 로맨스’ 방송 캡처
뛰는 지현우 위에 ‘고공 점프’하는 이시영이 있었다. 전작인 ‘검법남녀’의 그림자와 지상파 3사의 ‘로맨스’ 경쟁에도 제 갈 길을 간다. 하지만 호르몬을 핑계로 남성성과 여성성의 편견을 강화하는 인물·장면들은 두고봐야 할 일이겠다. 지난 23일 방송을 시작한 MBC 새 월화극 ‘사생결단 로맨스’ 이야기다.

‘사생결단 로맨스’는 모든 것을 호르몬으로 해석하는 내분비내과 의사 주인아(이시영)가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신경외과 의사 한승주(지현우)를 연구대상으로 삼으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사진=MBC ‘사생결단 로맨스’ 방송 캡처
사진=MBC ‘사생결단 로맨스’ 방송 캡처
지난 23일 방송된 1·2회는 도로를 질주하는 한승주의 모습으로 시작했다. 도로 한 복판에서 레이스 경쟁을 펼치던 한승주는 이내 속도를 겨루던 상대의 차 위로 올라가 골프채를 휘둘렀다. 먼저 위협을 가한 것은 상대였지만 한승주 캐릭터의 폭력성을 알려주는 강렬한 대목이었다.

이후의 배경은 종합병원. 주인공 주인아는 본격적으로 한승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상대를 배려하는 성격이었지만 사고 후 ‘돌아이’가 돼버린 그에 대한 소문은 병원에서 이미 자자했다. 수술 성공률 100%의 실력 있는 의사 한승주는 환자의 목숨을 두고 게임을 벌였다. 한승주가 사고로 인해 뇌에 유리 파편이 박혀 지금의 ‘돌아이’가 되어버렸다는 사연과 함께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며 드라마의 시작을 알렸다.

남성성여성성 고루한 구분, 그리고호르몬

‘사생결단 로맨스’는 이른바 ‘호르몬 탐구 로맨스’를 표방한다. 혈액형으로 성격이 좌우된다는 혈액형 성격론에 이은 ‘호르몬 성격론’을 차용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드라마 자체가 이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었다. 호르몬에 집착하는 주인아에게 질색하는 동료 의사들로 균형을 맞췄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른바 ‘남성 호르몬’이라는 테스토스테론 과다 분비 증상을 겪고 있는 남자 주인공 한승주. 그의 폭력성이 이로 인해 무마됐다는 것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한승주가 후배 의사 최재승(신원호)과 정현우(장세현)의 뒷담화를 듣고 그들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정현우와 대화를 할 때도 손이 먼저 나갔다. 또 주인아는 한승주에 대해 “차갑고 냉정하고 독설도 서슴지 않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며 “결정적으로 주차를 엄청 잘한다니까”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호르몬에 기반해 고전적인 남성 캐릭터의 성격을 극대화하는 설정, 그의 폭력을 이해하게 만드는 점은 고루할 뿐더러 문제적이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로맨스 대상 벗어난 ‘여성 오타쿠 탄생

검법남녀 그림자와 동시간대 시청률 경쟁?피할 없다면 즐겨라

사진=MBC ‘사생결단 로맨스’ 방송 캡처
사진=MBC ‘사생결단 로맨스’ 방송 캡처
그럼에도 이시영이 연기하는 주인아는 극 전체에 신선함을 부여했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이 전공하고 있는 분야 안에서 연구 주제를 발견하고 전투적으로 매달렸다. 물론 최근 제작발표회에서 이시영이 ‘로맨스 드라마의 여자주인공은 어느 정도 획일적인 성격을 따르지만, 주인아는 더 순수한 캐릭터’라고 설명한 것처럼 그 역시 사랑과 헌신, 친절의 호르몬 ‘옥시토신’을 대변하는 성 역할에 따른 캐릭터다. 하지만 이시영이 극 중 만들어낸 주인아 캐릭터는 여러 관계 속에서 호흡을 만들어가며 이를 뒤엎는 재미와 쾌감을 안겼다.

그러니까 남자 주인공을 ‘연애하고 싶은 남자/유혹해야 할 남자’로 생각해 매달리거나 자신을 ‘사랑받는 대상’으로 먼저 위치시키지 않는다. 반대로 남성 주인공을 ‘연구하고 싶은 대상’으로 설정해 매달리고 분석하며 달려나가는 여자 주인공이다. 이에 더해 결코 엘리트 남성이 자신을 규정하게 냅두지 않고 반박하는 태도까지… 그것이 ‘호르몬 신봉’이라는 건 아쉽지만 이 모든 걸 감수하고 보기에 이시영의 연기와 그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는 특별했다.

전작 ‘검법남녀’의 그림자와, 지상파 3사의 ‘로맨스 드라마’ 전쟁. 그럼에도 ‘사생결단 로맨스’를 좀 더 지켜봐야 할 이유가 생겼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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