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허스토리’는 이른바 ‘관부재판’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관부재판은 1992~98년, 10명의 원고단과 13명의 무료 변호인단이 6년에 걸쳐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재판부에 당당하게 맞선 사건이다. 위안부였던 사실을 숨기다 결국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본에 당당히 맞서는 할머니 배정길을 연기한 배우 김해숙을 만났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보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웠어요. 진짜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어요. 시나리오를 찬찬히 읽어 가는데, 그 분들의 과거가 안 나오는 게 좋았어요. 사실 우리가 그분들의 아픈 과거는 알고 있지만, 그분들이 그 아픈 과거를 딛고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지 않았잖아요?”
김해숙이 연기한 배정길은 법정에 선 위안부 할머니들 중 유일하게 자식이 있기에 법정에 서기까지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인물이다. 김해숙은 자신이 천착한, 내밀한 사연까지 있는 배정길을 현실감 넘치게 그려냈다.
“눈물도 말랐을 겁니다. 이 세상의 어떤 고통, 어떤 아픔 그런 거에 대해서 거의 초탈한 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말없는 그 표정 안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어야 해서 더 힘들었고, 더 고통스러웠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제 덫을 놓은 거죠. 철저하게 이분한테 빠져드는 것 밖에 없다, 인간 김해숙이 들어가면 안 된다…. 그렇게 그 과정을 거치면서 배정길에게 점점 더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김해숙의 말끝에 깊은 탄식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허스토리’는 위안부이고 정신대 소녀였던 오래 전 과거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곪고 문드러진 생지옥과도 같은 그녀들의 현실에 집중한다. 아직도 진행형인 절규에 찬 목소리를 누구 한 사람 제대로 들어주려고 하지 않기에 보는 내내 먹먹해진다.
“배정길은 아들 병원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판에 참여하게 됐잖아요? 위안부였던 아픔에 개인의 아픔과 사연까지 더해져서 세상의 그 어떤 희로애락에도 별 감정이 없었던 분인 것 같아요. 그런 그분이 끝까지 감추고 싶었던, 평생 이야기 안 하고 갈 수도 있었던 과거를 본인 입으로 이야기해요. 일본 재판부 앞에서. 평생 처음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을 것 같았어요.”
김해숙은 ‘허스토리’의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서 유일하게 어머니였다. 다른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젊은 배우들이 김해숙의 자식으로 호흡을 맞추면 그녀의 느낌이 묻어난다. 김해숙이라는 배우의 품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들도 저처럼 연기가 좋아서 온 친구들이잖아요. 배우는 혼자서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랑 같이 역을 맡은 사람들과 서로 교감을 했을 때, 가장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최상의 작품이 나오죠. 그래서 제 자식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해요. 농담도 하고, 밥도 사주면서 먼저 다가가요.”
영화에서 여고 교실에 위안부 할머니로서 배정길이 초청 받아서 가는 장면이 있다. 교복을 입은 소녀들 앞에 서있는 배정길 할머니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뭉클했다.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그 시절을 깊은 아픔을 겪었을 한 소녀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지면서 저릿하게 다가왔다.
“많은 분들이 그 장면이 너무 슬펐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배정길 그분에게 꽃 같은 나이의 모든 것이 보였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 후반부의 재판 장면에서 했던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대신했다고도, 어찌 보면 영화의 핵심을 이야기했다고 생각하는 대사인데…. ‘내 열일곱 살 그때 모습으로 돌려줘. 인간이 돼라’.”
김해숙이 출연하는 작품들을 보면, 그녀가 연기에 몰입할 때 파르르 피부가 떨릴 정도로 몰입하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오롯이 캐릭터로 진입하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서 시어머니 역이나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서 씹던껌 역은 특히 강렬했다.
“박찬욱 감독님은 배우로서 적지 않은 나이였던 제 안의 무엇을 끄집어내주셨어요. 내가 배우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고요. 또 나이가 들면서 언젠가부터 제 앞에서 ‘여(女)’자가 사라졌는데 ‘도둑들’에서 처음 여배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두 분은 제 연기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분들이세요. 배우도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때가 있는데, 그걸 철저하게 끄집어 내주셨어요.”
끝으로 김해숙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당부했다.
“관부 재판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너무 많더라고요. 할머니들이 그 연세에 6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했어요. 나중에 국가대표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요. 여성으로서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를 딛고 일어나서 싸울 수 있는 용기는 정말 대단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합니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보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웠어요. 진짜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어요. 시나리오를 찬찬히 읽어 가는데, 그 분들의 과거가 안 나오는 게 좋았어요. 사실 우리가 그분들의 아픈 과거는 알고 있지만, 그분들이 그 아픈 과거를 딛고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지 않았잖아요?”
김해숙이 연기한 배정길은 법정에 선 위안부 할머니들 중 유일하게 자식이 있기에 법정에 서기까지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인물이다. 김해숙은 자신이 천착한, 내밀한 사연까지 있는 배정길을 현실감 넘치게 그려냈다.
“눈물도 말랐을 겁니다. 이 세상의 어떤 고통, 어떤 아픔 그런 거에 대해서 거의 초탈한 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말없는 그 표정 안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어야 해서 더 힘들었고, 더 고통스러웠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제 덫을 놓은 거죠. 철저하게 이분한테 빠져드는 것 밖에 없다, 인간 김해숙이 들어가면 안 된다…. 그렇게 그 과정을 거치면서 배정길에게 점점 더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배정길은 아들 병원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판에 참여하게 됐잖아요? 위안부였던 아픔에 개인의 아픔과 사연까지 더해져서 세상의 그 어떤 희로애락에도 별 감정이 없었던 분인 것 같아요. 그런 그분이 끝까지 감추고 싶었던, 평생 이야기 안 하고 갈 수도 있었던 과거를 본인 입으로 이야기해요. 일본 재판부 앞에서. 평생 처음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을 것 같았어요.”
김해숙은 ‘허스토리’의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서 유일하게 어머니였다. 다른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젊은 배우들이 김해숙의 자식으로 호흡을 맞추면 그녀의 느낌이 묻어난다. 김해숙이라는 배우의 품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들도 저처럼 연기가 좋아서 온 친구들이잖아요. 배우는 혼자서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랑 같이 역을 맡은 사람들과 서로 교감을 했을 때, 가장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최상의 작품이 나오죠. 그래서 제 자식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해요. 농담도 하고, 밥도 사주면서 먼저 다가가요.”
영화에서 여고 교실에 위안부 할머니로서 배정길이 초청 받아서 가는 장면이 있다. 교복을 입은 소녀들 앞에 서있는 배정길 할머니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뭉클했다.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그 시절을 깊은 아픔을 겪었을 한 소녀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지면서 저릿하게 다가왔다.
“많은 분들이 그 장면이 너무 슬펐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배정길 그분에게 꽃 같은 나이의 모든 것이 보였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 후반부의 재판 장면에서 했던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대신했다고도, 어찌 보면 영화의 핵심을 이야기했다고 생각하는 대사인데…. ‘내 열일곱 살 그때 모습으로 돌려줘. 인간이 돼라’.”
“박찬욱 감독님은 배우로서 적지 않은 나이였던 제 안의 무엇을 끄집어내주셨어요. 내가 배우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고요. 또 나이가 들면서 언젠가부터 제 앞에서 ‘여(女)’자가 사라졌는데 ‘도둑들’에서 처음 여배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두 분은 제 연기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분들이세요. 배우도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때가 있는데, 그걸 철저하게 끄집어 내주셨어요.”
끝으로 김해숙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당부했다.
“관부 재판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너무 많더라고요. 할머니들이 그 연세에 6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했어요. 나중에 국가대표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요. 여성으로서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를 딛고 일어나서 싸울 수 있는 용기는 정말 대단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합니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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