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 사진=tvN ‘시를 잊은 그대에게’ 방송화면
/ 사진=tvN ‘시를 잊은 그대에게’ 방송화면
“시(詩)에는 아무 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생 밖에.”(오규원 ‘용산에서’)

tvN 월화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극본 명수현, 연출 한상재, 이하 시그대)가 전한 메시지다. 일견 자조적으로 읽힐 수 있는 이 시는 그러나 매사에 충실한 주인공 우보영(이유비)의 모습과 어우러지면서 정반대의 뉘앙스를 가진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생이지만 그것을 힘껏 껴안으라고.

‘시그대’는 물리치료사·방사선사·실습생들의 일상을 시와 함께 그린 작품이다. 비정규직 물리치료사 우보영이 일하는 병원에 그가 과거 짝사랑했던 대학동기 신민호(장동윤)가 실습생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여기에 실력은 뛰어나지만 감정이 메마른 물리치료사 예재욱(이준혁)이 등장해 삼각관계를 이뤘다.

우보영의 삶은 고단하다. 고용주에게 그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비용’이다. 정규직 전환의 기회는 몇 번이나 코앞에서 날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예재욱과 연인이 되지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숨기느라 속앓이를 했다. 병원과 계약기간은 끝나가지만 갈 곳은 없다. 내정자가 있는 면접에서 ‘갑질’을 당하고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우보영에게는 뭐 하나 쉽게 주어지는 게 없었다.

지난 15일 방송된 마지막 회는 다소 비현실적일지언정 우보영에게, 그리고 우보영과 비슷한 현실에 처한 청춘에게 큰 위로가 됐다. 병원은 우보영의 성실함을 인정해 그를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어쩐지 어렵게 느껴지던 연인 예재욱과의 관계도 편해졌다. 신민호는 우보영을 향한 마음을 접고 학교로 돌아갔다.

/ 사진=tvN ‘시를 잊은 그대에게’ 방송화면
/ 사진=tvN ‘시를 잊은 그대에게’ 방송화면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결말이 너무 천진난만하게 느껴지기도 있다. 인턴들은 정규직이 된 우보영을 보며 “우 선생님이 우리의 미래”라고 기뻐하지만 그들 역시 정규직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브라운관 바깥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최선이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하지만 이것은 ‘시그대’ 식의 응원이다. 극 말미 ‘용산에서’를 인용하며 “남아 있는 우리의 생은 우리와 늘 만난다”고 했다. 그러니 두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전작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보통 사람’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렸던 명수현 작가는 ‘시그대’에서 보다 따뜻한 시선을 보여줬다. 현실에서 시작해 꿈을 향해 나아갔다.

다만 저조한 시청률이 아쉬움을 남긴다. 1.4%(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방송가구)로 시작해 0.8%로까지 떨어졌다. 전작 ‘크로스’가 주연 배우 조재현의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4~5%대 시청률을 지켰던 것과 비교하면 흥행 부진은 더욱 처참하게 느껴진다. 뚜렷하지 않은 갈등 관계로 시청자의 흥미를 붙드는 데 실패했다.

자극적인 소재와 설정의 장르극 홍수 속에서 ‘시그대’는 일상의 낭만을 내세워 ‘힐링’을 전했다. 시를 잊은, 낭만을 잊은, 꿈을 잊은 청춘에게 잔잔한 울림을 줬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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