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수아 역을 맡은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수아 역을 맡은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조금은 까칠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여배우 기근이라는 국내 영화계에서도 17년째 영향력을 뽐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손예진이니까.

그가 새로운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홍보를 위해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 까르르 웃거나 조곤조곤 소신을 밝히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손예진은 좋은 인간이자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고민의 흔적은 영화에 담겼다. 손예진은 예쁘게 눈물을 쏟는 법을 알면서도 인물의 섬세한 감정에 집중한다. 한 아이의 엄마 역으로서 풍성한 모성애까지 보여준다. 여기에 다소 코믹한 장면까지 재치 있게 소화한다. 신선한 변주를 더한 원조 국민 첫사랑이 돌아왔다.

10. 오랜만에 멜로영화로 복귀했는데 소감은?
멜로영화를 오래 기다려왔다. 계속 하고 싶었는데 기획을 하다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시나리오를 단숨에 읽은 뒤 일본판을 다시 찾아봤다. 담백함을 무기로 한 일본판과 달리 한국판 시나리오에는 국내 정서가 많이 담겼다. 코미디 요소가 많아 생동감이 있었다. 시나리오만 보고 ‘이건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 영화에서 20대 신입생의 모습을 연기했다. 어색하진 않던가.
세월을 따라가는 건 자신 있지만 역행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예쁜 표정을 지어도 풋풋함이 없는 나이라 걱정했다. 후반 작업의 힘을 믿고 연기했다.(웃음) 다행히 과거 회상 신들이 어색해보이지는 않았다.

10. 코믹한 모습과 애잔한 모성애를 넘나들며 연기했다. 어떤 점을 고민했나?
스토리 구조상 끝으로 갈수록 슬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영화 초중반엔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다. 웃기는 것도 좋아하고 웃는 것도 좋아해 개그 욕심을 부렸다. 사실 모든 영화 현장에서 개그 욕심을 부린다. ‘덕혜옹주’ 때도 그랬다. 주변에서 말리곤 했다.(웃음)

10. 데뷔작인 MBC ‘맛있는 청혼’(2001)에서 남매 호흡을 맞췄던 소지섭이 상대배우라는 걸 알았을 때 어땠나?
‘맛있는 청혼’ 땐 사회생활도 처음이고 연기도 처음이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소지섭 오빠를 바라보곤 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오빠는 내 치부를 다 아는 사람 같아서 괜히 친근함이 느껴진다.

10. 멜로 파트너로서 소지섭과의 호흡은 어땠나?
나는 띄엄띄엄 촬영 했는데, 오빠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에 있었다. 내가 현장에 갈 때마다 오빠가 맡은 배역인 우진이가 점점 되고 있었다. 영화 내용처럼 현장에서도 나와 아들 역의 지환 군을 잘 챙겨줬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해줬다. 든든하더라. 오빠는 내성적이고 표현에 서툰 사람인데도 ‘이렇게 촬영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오빠의 좋은 기운이 내게 영향을 줬다.

10. 함께 연기하며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 있다면?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교문 앞 장면’이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서로 만났는데 제대로 표현도 못하면서 말을 빙빙 돌린다. 의미 없는 얘기만 주고받는 그 모습이 묘하게 설?다. 서툴렀던 과거도 떠오르고.(웃음)

배우 손예진이 소지섭과의 연기 호흡을 떠올리며 “묘하게 설?다”고 털어놨다.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이 소지섭과의 연기 호흡을 떠올리며 “묘하게 설?다”고 털어놨다.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10. 원조 국민 첫사랑으로 불린다. 과거와 현재의 멜로 연기에 차이가 있을까?
데뷔한지 얼마 안 됐을 때 ‘클래식’(2003)과 ‘내 머리 속에 지우개’(2004)를 찍었다. 연기를 잘 하고 싶었지만 어설펐다. 감독님의 의도를 파악할 정신도 없이 내 연기에 대한 고민만 컸다. 하지만 이젠 큰 그림을 보게 된 것 같다.

10. 영화계에 여배우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고 한다. 돋보이게 활약하는 배우로서 책임감이나 부담감은 없나?
여름 극장가에 여배우의 영화가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 등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체감한다. 그럴 때마다 이어달리기를 하는 선수가 된 기분이다. 원하는 목표에 도달해야만 다음 주자도 뛸 수 있는 거다. 거창한 사명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혼자 분투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모든 선후배 여배우들이 함께 열심히 하고 있다. 요즘은 여성들이 인권과 의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시기이지 않은가. 환경이 더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10.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작품 선택에 특별한 기준이 생길 수 있겠다.
언제부턴가 내가 연기하는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인 성향을 가지길 바라게 됐다. 분량을 떠나서 행동에 대한 이유가 타당한, 주체적인 캐릭터가 눈에 들어온다.

10. 오랜 시간 큰 굴곡 없이 활동하는 원동력은?

나는 원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스타일이다. 작품마다 날 힘들게 하면서 뭔가를 보여주려고 한다. 심할 정도의 책임감이 있어서 지금까지 달려온 것 같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동료들이 그렇게 말해줬다. 이젠 조금 인정하려고 한다.

10. 채찍질이 익숙하면 일을 즐길 여유가 부족하지 않나?
지금 생각하면 그게 아쉽다. 20대 내내 날 채찍질하며 지내왔다. 매 작품을 예민하게 대했기에 날이 서 있었다. 주변도 돌아보지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예전보다는 일을 즐기게 됐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덜하다. 점점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10. 나이가 든다는 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일까?
배우 입장에서는 아쉽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못해봤던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보통 나이가 들면 성숙해진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편협해지고 고정관념이 생기기도 한다. 원하는 방향으로만 보려고 한다. 아름답게 늙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맞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배우 손예진이 “나를 채찍질하며 20대를 보냈지만 이젠 여유가 생겼다”며 웃었다.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이 “나를 채찍질하며 20대를 보냈지만 이젠 여유가 생겼다”며 웃었다.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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