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매주 1회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명으로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그런데 고인의 시신을 건드린다고? 심지어 관에서 파내서 시신을 모독하고 도륙한다고? 부관참시(剖棺斬屍)가 얼마나 악독한 형벌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그래서 나온 최고의 욕설이 바로 ‘육시(戮屍)를 할…’이다. 시신까지 갈기갈기 찢어야 할 작자라는 뜻이겠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런 사태가 과학적인 수사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제인 도’(The Autopsy of Jane Doe, 감독 안드레 외브레달)라는 영화가 가진 메시지와 일맥상통하기에 던지는 말이다.
토미(브라이언 콕스)와 오스틴(에밀 허쉬) 부자는 3대째 시체 검시관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천편일률적이다. 경찰이 시신을 갖다 주면 해부를 해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것이다. 구태여 살인 동기라든가 현장 수사에까지 참견할 필요 없이 그저 사망원인만 밝혀주면 되니까 직업치고는 상당히 전문적인 셈이다. 다만 사인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 꼼꼼한 해부과정을 거치는 게 부담이긴 한데 토미 정도의 나이라면 그저 일상사로 치부해도 될 정도다.
그날도 경찰이 급하게 시신 한구를 가져왔다. 언론 발표가 내일이라 오늘 밤 중에 원인을 밝혀내야 하는 급박한 처지였다. 앞선 작업을 마친 아들 오스틴은 여자 친구 엠마와 약속이 있어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아버지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던 오스틴은 결국 밤 11시 쯤 다시 오라는 말을 엠마에게 남기고 검시실로 발길을 돌린다. 자기 앞에 어떤 불행이 놓여있는지도 모르고.

과연 몹시 무서웠다. 해부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한 것도 그랬고 배경음악도 압권이었으며 메시지도 그런대로 들어줄 만 했다. 죽은 자도 존중 받아 마땅하다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옛 성당에 가보면 지하에 유골들을 안치해 놓은 공간이 있고 성인을 미라로 만들어 유리관에 눕혀놓은 경우도 독일 성당에서 자주 보았다. 그 때마다 ‘좀 너무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제인 도’의 감독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공포영화에는 공포영화 나름의 문법이 있다. 이를테면 관객의 허를 찌른다거나 도입부에서부터 소름 끼치게 한다든가 마지막에 반전을 넣어 다시 한 번 놀라게 만들거나 하는 등인데 ‘시체부검’은 그 소재 자체로서 상당히 세련된 것이다. 시체보관소에 자진해서 들어가는 강심장의 소유자가 어디 흔하겠는가 말이다. 덕분에 숨 한 번 편히 못 쉬고 영화를 보았다. 과장 섞인 광고에서 출발한 생각이긴 하지만 ‘제인 도’와 비교하면 ‘컨저링2013’은 어린아이에 불과할 정도다.
이왕 강심장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오늘날 주목받는 현대 사진작가 중에 온두라스 출신의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ano 1950- )가 있다. 그는 1987년 ‘오줌속의 예수(Piss Christ)’라는 작품으로 유명해졌고 실제 시체들의 사진을 찍은 ‘시체공시소’(1991)라는 연작으로 명성을 더 했다.
‘제인 도’에서 시신 역할을 훌륭히 해낸 올웬 캐서린 켈리를 보면서 ‘시체공시소’의 몇몇 사진이 떠올랐다. 진짜 시신처럼 연기한 것을 보니 연기정신이 뛰어난 배우임에 틀림없다.
브라이언 콕스의 연기는 언제나 믿음직하고 에밀 허쉬도 자세히 보았더니 ‘론 서바이버2013’ 등에서 낯이 익은 배우였다. 공포물로서 꽤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었다. 참고로 ‘제인 도’는 법정에서 여성이 이름을 모르거나 숨기고 싶을 때 쓰는 가명이라고 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신원미상의 여인’에 해당할 것이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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