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임헌일/사진제공=씨오브엠
임헌일/사진제공=씨오브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유독 환하게 빛나 보일 때가 있다. 쨍한 햇빛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때, 마침내 화창함을 만끽할 수 있다. 가수이면서 작곡가이고, 또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임헌일은 어깨를 짓누르던 강박을 내려놓고, 무대를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완벽함의 추구가 만들어낸 안개를 걷어내니, 비로소 관객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보인다.

가장 일상적인, 그리고 평범한 순간 탄생한 ‘굿’과 ‘배드’를 내놓고 다음 작업을 또 계획 중이다. 실수에 대한 지나친 수치가 사라진 지금, 그래서 임헌일의 다음 곡이 더 기대된다.

10. 오랜만에 신곡이 나왔다. ‘굿(GOOD)’과 ‘배드(BAD)’. 확실히 변화가 느껴지더라.
임헌일 :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잘 듣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색다르다는 반응을 주셔서 기분 좋다. ‘이번에는 변신을 해야지!’라는 목적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곡을 썼는데, 그렇게 나왔다.(웃음) 지금의 감성이 잘 담긴 것 같다. 사실 지금까지는 내가 부를 걸 상상하지 않고 만들었고, 불러야 하는 상황이 오면 힘겨워하기도 했다. 이제 조금씩 내 목소리에 맞는 키, 톤을 찾은 느낌이다. 목소리, 또 가사가 잘 들리는 것에 초점을 맞춰 작업했다.

10. 멜로디도 임헌일스럽지 않더라.(웃음) 이렇게 밝은 음악이라니! 싶었다.
임헌일 :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곡쓰는 방식을 보고 오히려 배운 것 같다. 코드는 단순하게, 그리고 멜로디가 변화되는 가능성이 많아지더라. 그러다 보니 가사 쓰기도 수월했고. 이전에는 코드가 수려하고 멜로디는 함축적으로 담았는데, 그 안에 메시지를 녹이려고 했다. 이번엔 오픈된 멜로디 라인 안에서 가사도 금방 적었다. 편안하게 나온 곡이다.

10. 변화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임헌일 : 사건,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이 비는 날이 있었는데, 뭘 할까 고민하다가 곡을 썼다. 두 곡이 나왔는데, 그게 이번에 발표한 ‘배드’와 ‘굿’이다. 후렴 정도는 평소 흥얼거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때 쓱 만들어졌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는 감성적인 순간에 곡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사실 이렇게 일상적인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다. 공익근무를 할 때, 사무적인 공간에서도 곡이 많이 나왔다.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멜로디가 떠오른다든지, 가사의 한 구간이 생각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도 일상에서 흥얼거린 멜로디로 만들어진 거다.

10. 배드와 굿, 테마가 독특하다.
임헌일 : 콘셉트를 정해놓고 쓰려고 하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거기서 조각을 맞춰보려고 했다. 그러면 빠르게 결과물이 나온다. 가사를 썼는데 사랑까지도 아니고, 설레는 감정 정도의 노래였다. 하나는 좋다고 표현하는 곡이고, 하나는 내 마음을 몰라줘서 서운하다는 감정을 토로하는. 말투가 달라서 단어를 뽑았더니 ‘나빠요’와 ‘좋아요’ 정도더라. 그래서 콘셉트를 ‘굿’과 ‘배드’로 정했다. 두 곡을 같이 발표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나오게 됐다.

10. 정말 ‘뿅’하고 나온 곡이네.
임헌일 : 작업하는 과정에서 부담이 하나도 없었다. 특이한 시도같이 느껴지는 곡이다.

임헌일/사진제공=씨오브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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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실 그동안 음악 활동은 꾸준히 했지만, 이름을 내건 솔로 음반은 3년 만이다. 새로운 시도가 부담도 됐을 것 같은데.
임헌일 : 사실 만들 때는 생각하지 못 했다. 발표할 때까지도.(웃음) 뒤늦은 깨달음을 얻고 나니, 갑자기 긴장되기도 한다.(웃음) 시간은 정말 빠르다. 벌써 3년이 됐구나. 나름 바쁘게 잘 살았구나 싶고, 지금이라도 나와서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반가워해주시니, 솔로에 더 열심히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팬들에게는 항상 감사한 마음이 먼저다. 하지만 놀면서 게으르게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결과물도 있었고, 무대에도 많이 올랐다. 올 초 소품집을 발매했는데 공식적으로 음원 등록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팬들만 안다. 그렇게 계속 꾸준히 무언가를 해왔다. 새롭게 느끼고, 반겨주시니 감사하다.

10. 흐른 시간만큼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겠다.
임헌일 : 한없이 진지하고 심각하고 무겁고, 우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학적인 부분도 있다. 그게 내 음악의 원동력이었다. 열등감일 수도 있고, 바라는 게 있는데 이뤄지지 않는 것에서 오는 슬픔 혹은 아픔도 있다. 이번 음악은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에서 나왔다. 현실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동료들의 힘이 큰 것 같다. 그리고 공연을 하면서 맞닿았던 팬들의 응원, 또 나이가 드는 것도 있을 테고.

10. 이전 음악에서도 확실히 느껴지는 분위기다. 어딘가 침울함이 있었다. 사실 그런 점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고.
임헌일 : 음악을 만들 때도 다 잘하려는 압박이 있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다하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보다 더 멋있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이해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대중음악을 한다는 건 그런 의미인 것 같다. 다른 뮤지션들의 공연 무대에 오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10. 다른 음악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은 것인가.
임헌일 : 주변의 뮤지션을 보면, 자극을 받는다.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는 면에서 페스티벌에 가도 다른 뮤지션의 무대를 찾아보려고 하는 편이다. 무대에 오른 순간, 관객들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이 통하는 순간의 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 곡처럼 가사도 쉽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사실 나로서는 쑥스러운 표현들이다. 내 안에 그런 감성들을 끄집어 냈더니, 오히려 신선하게 받아들여주셔서 좋다.

10. 강의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 같다. 바뀌는 가치관도 있을 것이고.
임헌일 : 음악시장은 줄었는데, 하려는 사람들은 많다. 그리고 훨씬 감각적이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고, 그것밖에 생각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다. 기타를 나보다 더 잘 치는 친구들도 있다. 해줄 수 있는 건 조금은 서툰 이론과 지식적인 부분, 기초이다. 1, 2년 만에 소모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기를 강조한다. 알려주고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0. 과거와 현재, 가장 변화한 점은 무엇인가.
임헌일 : 예전에는 타협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지켜야 한다는 것. 가령, 메이트라는 밴드를 하고 있으니 세션을 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기회들이 있었지만, 내 음악을 하니까 거절했다. 당시에는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게 날 가뒀고,별로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음악 자체를 사랑하고 순간을 즐기는 무대를 본 뒤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 예전에는 자기 학대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제는 자존감이 생긴 것 같다. 그게 자신감으로도 이어졌고, 음악을 음악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10. 아주 큰 변화다.
임헌일 : 내가 최고가 아니어도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일로 충실히 공연은 즐거울 수 있다. 꼭 1등이 돼야 하고 대결을 해서 승리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세상을 사는 똑똑한 방식일지는 모르겠지만,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 슬퍼지는 순간들이 있더라. 여유를 갖고 음악을 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올 초에 벌벌 떨기도 했다. 심각할 정도로. 최근에는 공연을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노래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10. ‘워낙 피폐했기 때문에’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임헌일 : 마음 아프고 속상해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런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더라. 그럴수록 키를 놓게 되고, 늘 피해자처럼 느껴지는 거다. 가해자는 없는데. 혼자 그렇게 상황을 만드는 거지. 바꾸기 쉽지 않았지만, 생각을 고쳐먹으려고 했다. 조금씩 있는 그대로, 멋있다고 인정하기 시작하니까 여유가 생겼다.

10. 평소 곡 작업 방식은 어떤가.
임헌일 : 프로듀싱, 연주부터 혼자 다 해야 하는 식이었다. 이번에는 작곡, 작사는 직접 했지만 편곡에 있어서는 요즘 트랜드를 잘 알고 있는 친구와 작업했다. 어설프게 하는 것보다 전문가와의 협업이 결과물이 좋아지는 걸 보고, 깨달았다. 천재 뮤지션이 될 필요가 뭐 있나, 같이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열렸다. 앞으로도 컬래버레이션을 많이 하고 싶다.

10.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는 반드시 있을 것 같은데.
임헌일 : ‘척’하는 건 못 한다. 내 얘기가 아닌데…, 물론 모두 진짜 이야기만 가지고 만들 수는 없겠지만 마음으로 와 닿아야 한다. 음악적인 재능이 많이 없다고 생각하고 노력했다. 기타를 잘하는 건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곡 쓰는 것만큼은 남들보다 좋은 곡을 만들고 싶은 욕심은 있다.

10. 다른 이에게 주기 위해 만드는 곡들은 초점이 다른가.
임헌일 : 어떤 이를 주기 위해 곡 작업을 할 때는 부르는 사람을 떠올린다. 대화를 많이 하고 만들고, 생각하는 편이다. 또 내 색깔은 놓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한다.

임헌일/사진제공=씨오브엠
임헌일/사진제공=씨오브엠
10. ‘임헌일의 색깔’을 찾아낼 때, 묘한 쾌감도 있을 것 같다.
임헌일 : 전투적으로 많이 하지는 않지만, 간혹 기타 연주의 경우 ‘임헌일 같은데…’라는 의견이 있더라. 약간 색깔이 있나 싶기도 하고, 감사하다.(웃음)

10. 지키려는 색깔이 있나.
임헌일 : 어쩔 수 없이 ‘나’이기 때문에 지켜지는 것들이 있다. 목소리의 톤이나 키는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 또 내 손에서 나오는 기타의 경우에는 악기를 바꿔도 그 소리가 나오더라. 내가 가지고 있는 한, 최대한 다양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10. 슬럼프와 스트레스의 경계에 서 있는 일이다. 창작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도 클 테고.
임헌일 : 가면 갈수록 맘 편히 쉴 수는 없는 것 같다. 투어를 가거나, 공연을 하다 비는 스케줄이 있을 때 정도인데 쉬면서도 불안하다. 강박 같은 것이 있다. 딱히 취미도 없고…(웃음) 무대 공포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실패에 대한 기억이 많이 쌓여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떨리더라. 솔로로 나온 뒤 독백 공연을 준비하면서 신경 써야 할 것이 정말 많은 거다. 완벽주의적인 강박에서 온 것 같다. 이제는 편안함을 찾아가고 있다. 라이브 콘서트를 하는데 편안하더라, 안락함도 들었고.

10. 팀 활동을 떠나 홀로 섰을 때는 버겁기도 했겠다.
임헌일 : 무대를 마치고 서로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아쉬운 점도 바로 알 수가 있는데 혼자는 그럴 수가 없더라. 기준을 잡기가 힘들었다. 반면 자유롭고 편한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팀만 생각했지, 사실 솔로에 대한 야망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팀이 그리웠나 보다. 솔로로 나온 뒤에는 나와는 맞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압박이 너무 나를 짓눌러서, 정신적인 고통이 가장 컸다.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게 됐다. 서툰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는 거지. 지금은 기분 좋다.(웃음)

10. 메이트의 ‘완전체’를 기다리는 팬들도 많다.
임헌일 : 워낙 세 명이 성격도, 음악적인 성향도 달랐다. 그게 메이트의 음반에 묘한 지점을 가져다줬고, 운 좋게 발견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졌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정준일과 두 명이서 여러 가지 히도를 해보기도 했는데, 쉽지 않더라. 우리가 각자 더 잘 해서,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 때 더 여유 있게 좋은 작품을 함께하고 싶다. 지금은 다들 멀리서 응원하고 있다.

10. 앞으로 임헌일이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말해달라.
임헌일 : 당장 앞으로는 정규 2집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나’를 투영하는 동시에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고민해 만들고 싶다. 나를 담았다는 것이 이해가 돼야 하니까, 그 방법에 대해서 생각 중이다. 더 다양한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연도 열고 싶고, 어떤 것에 빠져있고 열중하는 아티스트로 남고 싶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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