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손여은 : 행복해요. 하하. 다들 고생 많이 하셨는데도 촬영장은 늘 행복했어요. 행복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릴 뿐이에요. 제게 이런 현장이 또 올까 싶네요.
10. 극 중 아이가 있는 엄마 역을 맡았어요. 미혼으로서 표현해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모성애를 연기함에 있어 어려움은 없었나요.
손여은 :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완벽한 엄마 마음은 이해할 수 없었겠죠.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노력했어요. 영화 ‘코인라커’(2015)에서는 자폐아 엄마 연기를 했었어요. 그때 모성애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사실 제가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요. 보육원에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보러갈 정도로. 그런 마음으로 극 중 아들도 실제 모성애와 가까운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산이(길정우)가 또 보고 싶네요. (웃음)
10. 선혜주(손여은)는 바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너무 순하고 착한 역할이었잖아요. 연기자 입장으로선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혜주가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을 것 같아요.
손여은 : 이입을 해서 그런지 답답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안타깝기는 했어요. 자신이 없으니 좋아한다고 표현하지도 못하고. 그렇지만 저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혜주가 처한 배경이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만들었으니까요. 혜주는 스스로 자신이 부족하고 생각했을 거예요.
10. 사랑의 우여곡절을 겪었어요. 하하. 두 사람의 사랑을 보면서 ‘손여은’ 본인은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손여은 : 실제 저도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특히 형규(오민석)를 떠나려 마음먹고 고속버스를 탔을 땐 정말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사랑하지만 억지로 감정을 외면해야하는 혜주가 불쌍했죠.
10. 본인은 어떤가요? 선혜주처럼 물러나는 편인가요?
손여은 : 사랑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안 될 사랑엔 매달리지 않는 편이에요. 만약 내가 누군가를 혼자 좋아하고 있어도 표현하지 않으려 해요.
10.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손여은의 실제 성격이 궁금해지네요.
손여은 : 사실 제 성격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연예계 일을 하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사회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스태프 분들께도 먼저 다가가지 못해서 늘 죄송해요. ‘부탁해요 엄마’ 팀이 가장 고마운 게, 먼저 다가와주시기도 하고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덕분에 저도 더 다가갈 수 있었죠. 정말 감사드릴 뿐이에요. 10. 만약 본인이 시어머니라면 혜주 같은 며느리는 어떨까요.
손여은 : 극 중 시어머니셨던 고두심 선생님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혜주 자체는 너무 좋죠. 착하고 예쁘고, 얼음장 같은 우리 아들 성격도 보듬어주고. 그렇지만 혜주는 결혼도 했었고, 아이가 있는 상황이잖아요. 입장을 바꿔서 산이가 그런 며느리를 데리고 왔다면 전 망설임 없이 허락을 했을까요? 그렇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만약 혜주의 상황이었다면 결혼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고요. 결혼은 아무래도 현실이잖아요. 서로의 상황이 차이가 심하다면 제 스스로가 자신이 없을 것 같아요.
10. 그래도 선혜주, 이형규(오민석)는 결혼에 골인했어요. 이처럼 대부분의 드라마 속 해피엔딩은 결혼으로 마무리 짓는 것 같아요. 결혼이 정말 사랑의 완성형태일까요?
손여은 : 예전에는 꼭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전 결혼에 대한 환상도 크지 않거든요. 결혼이 현실이라는 걸 주변을 통해 일찍 알게 된 거죠.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영화 ‘코인라커’를 찍을 때 역할이 모성애가 강한 엄마 역이라서인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요. 물론 결혼이 꼭 정답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완성인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결혼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잖아요. ‘가족’은 꼭 필요한 거니까요.
10. 손여은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손여은 : ‘가족’은 제가 태어나고 살아 숨 쉬게 하는 터전이에요. 가족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테니까요. 소중한 존재에요. 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그래서 더더욱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10.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 ‘가족’에 대해서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손여은 : 실제로 전 대가족이 아니에요. 이번 ‘부탁해요 엄마’를 통해 처음으로 대가족 속에서 살아볼 수 있었어요. 다 같이 앉아서 밥 먹고. 그런 것들이 너무 좋았어요. 가족들이 많은 집에서 살아보고 싶어지더라고요. 결혼하고 시댁 어른들과 살면 이런 행복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새로운 가족들이 생기는 거니까. 하하. 드라마 촬영하면서 우리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더라고요. 부쩍 엄마랑 통화를 자주했어요. 하하.
10. 끝나고 돌아보니, ‘부탁해요 엄마‘는 자신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요?
손여은 : 제 가족에게 소중한 드라마를 선물해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족드라마인 만큼 가족들 생각도 많이 하기도 했고, 혜주라는 사랑스런 캐릭터도 만났고요. ‘부탁해요 엄마’는 일 년 반 정도 쉬다가 나와서인지 마음가짐도 남다르게 임한 작품이었거든요. 제 자신에게는 여러모로 소중한 드라마로 남았어요.
10. 선혜주는 이전 드라마인 SBS ‘세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의 채린(손여은)이와는 완전 반대의 이미지네요.
손여은 : 그렇죠. 많은 분들이 채린이를 보고 희한한 캐릭터가 나타났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재밌게 봐주신거겠죠.
10. 확실히 악역은 감정을 표현해내는 타입이라서 연기함에 있어 더욱 편하지 않나요?
손여은 : 악역은 항상 화를 내고 소리치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속 시원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채린이는 그런 악역이 아니었으니까. 분노를 표출하면서 해소될 것 같은 감정도 계속 다른 나쁜 상황들이 생김으로써 더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어요. 게다가 악역들은 나름의 아픔이 있어요. 이유없는 악역은 없다고 하잖아요. 저도 부단한 노력으로 채린이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했어요. 제가 이해 못하면 연기 자체를 못할 테니까요. 나중엔 시청자분들도 욕하시면서 보시더라고요. (웃음) 제가 전달하려고 한 느낌이 잘 전해진 것 같았어요.
10. 단아한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어요. ‘세결여’에서도 악역이었지만 누군가의 ‘며느리’였고, 이번에도 ‘참한 며느리’였어요. 개인적으로 새로운 이미지에 도전하고 싶지는 않은가요? 가령 강한 액션을 보여주거나 포스 넘치는.
손여은 : 사실 저에게는 다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채린이도, 혜주도, ‘코인라커’의 연이도. 물론 ‘며느리’, ‘아내’라는 틀에 속해 있었지만, 혜주는 독특한 악역이었고 연이는 느와르의 주인공이었으니까요. 모든 게 다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계를 정해놓지는 않을 거예요.
10. 그런 마음을 일탈이라고들 하잖아요. 손여은이 꿈꾸던 일탈은 무엇인가요? 가령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찍고 싶다든지.
손여은 : 음, 일상적인 작품을 찍고 싶어요. 극적인 작품도 좋지만… 홍상수 감독님 영화같은? 리얼한 영화있잖아요. 실제인 듯 연기인 듯 하는. 평소에도 홍상수 감독님이나 에릭 로메르 감독 영화를 좋아해요. 진짜 내 옆에서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10. SNS에 종종 발레 하는 사진이 있어요. 자기관리에 일환이겠죠.
손여은 : 정통 발레는 아니고요, 발레 스트레칭을 하고 있어요. 하하. 주로 요가나 스트레칭 위주로 선이 예뻐지는 운동들을 하는 편이에요. 꾸준히 운동하고 있어요. 배우로서 기본인 것 같아서. 또 안 먹고 다이어트를 하면 예쁘지가 않더라고요. 먹을 것 먹고 일상에서 조금 더 움직이는 편이에요. 쉽지 않은 건 잘 알고 있죠. 저 역시도 사람이라 맛있는 거 앞에서 무너질 때가 많아요.(웃음) 그럴 때 운동으로 마음을 다 잡는 거예요.
10. 자기관리에 열심이기도 하고, 일에 있어선 굉장히 강단 있는 성격이네요.
손여은 :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물러나지 않아요. 제 고집이 있기도 하고. 오히려 저돌적인 편이에요.
10. 시련 같은 경우엔 어떤가요? 고난이나 시련은 금방 뛰어넘는 편인가요?
손여은 : 시련은 강도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우울함이 깊어지면 그만큼 빠져나오기 힘든 것처럼, 얼마나 큰 시련이 닥치느냐에 따라서 이겨내는 시간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분명한 건 어릴 때보다는 시련 앞에서 여유가 생겼다는 거예요. ‘이 정도는 이겨내야지’라는 굳은 마음도 생긴 것 같고요. 확실히 20대에 비해서는 여유가 생겼네요.
10. 30대가 되면 모두가 여유를 찾게 되는 건가요?
손여은 : 20대 때는 행복하기도 했지만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부딪히고, 한 없이 우울할 땐 끝까지 우울해지잖아요. 그 와중에서도 일에 있어서 열정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렇게 지나오고 경험이 어느 정도 쌓여 30대를 맞이하게 되면, 분명 전에 느끼지 못한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전 과거로 돌아가라고 하면 거절할 것 같아요. 지금이 좋아요. 40대가 되면 그때가 더 좋을 것 같고요. 하하.
10. 20대 때 손여은은 피아노 학도였어요. 피아노학에서 연기로, 쉽게 연결되지 않는 루트 같아요.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손여은 : 대학 입학하고 서울에 놀러왔는데 그때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어요. 뭔지도 모르고 호기심에 시작했었죠. 사진 찍고 촬영을 하니까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집에선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결국 제 고집이 이겼지만요. 하하. 연기를 하게 되고, 피아노를 그만둔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피아노도 연기도, 모두 ‘예술’이라는 큰 틀 안에 있잖아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피아노를 치다가도 캐릭터 영감을 받을 때도 있고, 감정을 잡거든요. 직업이 다를 뿐이지 전 언제나 피아노를 치고 있어요.
10. 피아노는 손여은의 일상이군요.
손여은 : 그렇죠. 연기 역시도 제 일상이 됐어요. 피아노, 연기 모두 제가 사랑하는 일들이에요. 나중에 피아노를 치는 배역을 맡을 수도 있잖아요. 연기, 피아노로 더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0. 그래도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피아노에 대한 아쉬움도 남을 것 같아요.
손여은 : 크게 아쉬움이 남지는 않아요. 말했다시피 저는 늘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까요. 작품에서도, 일상에서도. 10. 데뷔 10년차에요. 자신을 10년이나 이 속에 몸담게 한 연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손여은 : 양파 껍질 같아요. 하하. 연기를 하면 할수록 또 다른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분이거든요. 부족했던 부분들을 배우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 삶에 스며드는 것 같아요. 새로운 캐릭터를 소화하고 나면 양파 껍질을 한 겹 더 벗겨낸 기분이에요. 그때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아마 이 행복감을 위해서라도 평생 연기를 할 것 같아요. 하하.
10. 앞으로 10년 이상은 더 손여은을 볼 수 있겠죠. 손여은을 달리게 할 원동력은 무엇이 될까요.
손여은 : 음, 연기 자체가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아요. 연기할 때가 가장 좋거든요.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웃음) 그냥, 좋으니까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하하.
10. 앞으로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요?
손여은 : ‘이번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궁금하게 만드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예를 들어 하얀 도화지에 파란색 물감을 칠하면 파랗게 변하고, 노란색 물감을 칠하면 노랗게 변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여러 색깔을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볼 때마다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그러기 위해선 저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거예요.
10. 얼마 전 줄리엣 비노쉬의 사진을 올렸어요. 그녀의 팬인가요?
손여은 : 롤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줄리엣 비노쉬가 데뷔했을 때부터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거든요. 연기뿐만 아니라 인생까지도 멋있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10. 줄리엣 비노쉬가 손여은 연기 인생에 끼친 영향이 크겠군요.
손여은 : 그럼요. 줄리엣 비노쉬처럼 연기를 하고 싶어요. 작품마다 캐릭터에 몰입하는 건 모든 배우에게 당연할 일이겠지만, 매번 자기 옷처럼 입을 순 없잖아요. 줄리엣 비노쉬는 그런 틀을 깨주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월에 맞는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녀의 주름 하나, 하나까지도 아름다워 보여요. 줄리엣 비노쉬는 여전히 고혹적이에요. 저도 줄리엣 비노쉬처럼 오랫동안 매혹적인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0. 꼭 그녀처럼 오래 볼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네요.
손여은 : 감사합니다. 꼭 오래 연기할게요.(웃음)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줄리엣 비노쉬.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으로 알려진 프랑스 대표 여배우인 그는 고상함과 우아함이 넘치는 특유의 매력으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고혹적인 모습을 닮은 배우가 나타났다. 배우 손여은. 지난달 종영한 KBS2 ‘부탁해요 엄마’에서 착하디 착한 며느리 선혜주를 연기했다. 더 거슬러보자면, 2013-2014년 방송된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고상한 악역 채린으로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각인을 시켰다. 드라마 속 손여은은 늘 우아하고 고상한 ‘며느리’였다. 그러나 손여은이 줄리엣 비노쉬와 닮았다는 건 비단 고상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손여은에겐 줄리엣 비노쉬에게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랜 무명 기간을 거쳐 다듬어진 여유로움이, 손여은을 줄리엣 비노쉬 만큼이나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10. 장편 드라마를 끝낸 소감이 어떤가요? 긴 시간을 달려왔잖아요.
손여은 : 행복해요. 하하. 다들 고생 많이 하셨는데도 촬영장은 늘 행복했어요. 행복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릴 뿐이에요. 제게 이런 현장이 또 올까 싶네요.
10. 극 중 아이가 있는 엄마 역을 맡았어요. 미혼으로서 표현해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모성애를 연기함에 있어 어려움은 없었나요.
손여은 :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완벽한 엄마 마음은 이해할 수 없었겠죠.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노력했어요. 영화 ‘코인라커’(2015)에서는 자폐아 엄마 연기를 했었어요. 그때 모성애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사실 제가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요. 보육원에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보러갈 정도로. 그런 마음으로 극 중 아들도 실제 모성애와 가까운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산이(길정우)가 또 보고 싶네요. (웃음)
10. 선혜주(손여은)는 바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너무 순하고 착한 역할이었잖아요. 연기자 입장으로선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혜주가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을 것 같아요.
손여은 : 이입을 해서 그런지 답답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안타깝기는 했어요. 자신이 없으니 좋아한다고 표현하지도 못하고. 그렇지만 저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혜주가 처한 배경이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만들었으니까요. 혜주는 스스로 자신이 부족하고 생각했을 거예요.
10. 사랑의 우여곡절을 겪었어요. 하하. 두 사람의 사랑을 보면서 ‘손여은’ 본인은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손여은 : 실제 저도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특히 형규(오민석)를 떠나려 마음먹고 고속버스를 탔을 땐 정말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사랑하지만 억지로 감정을 외면해야하는 혜주가 불쌍했죠.
10. 본인은 어떤가요? 선혜주처럼 물러나는 편인가요?
손여은 : 사랑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안 될 사랑엔 매달리지 않는 편이에요. 만약 내가 누군가를 혼자 좋아하고 있어도 표현하지 않으려 해요.
10.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손여은의 실제 성격이 궁금해지네요.
손여은 : 사실 제 성격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연예계 일을 하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사회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스태프 분들께도 먼저 다가가지 못해서 늘 죄송해요. ‘부탁해요 엄마’ 팀이 가장 고마운 게, 먼저 다가와주시기도 하고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덕분에 저도 더 다가갈 수 있었죠. 정말 감사드릴 뿐이에요. 10. 만약 본인이 시어머니라면 혜주 같은 며느리는 어떨까요.
손여은 : 극 중 시어머니셨던 고두심 선생님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혜주 자체는 너무 좋죠. 착하고 예쁘고, 얼음장 같은 우리 아들 성격도 보듬어주고. 그렇지만 혜주는 결혼도 했었고, 아이가 있는 상황이잖아요. 입장을 바꿔서 산이가 그런 며느리를 데리고 왔다면 전 망설임 없이 허락을 했을까요? 그렇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만약 혜주의 상황이었다면 결혼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고요. 결혼은 아무래도 현실이잖아요. 서로의 상황이 차이가 심하다면 제 스스로가 자신이 없을 것 같아요.
10. 그래도 선혜주, 이형규(오민석)는 결혼에 골인했어요. 이처럼 대부분의 드라마 속 해피엔딩은 결혼으로 마무리 짓는 것 같아요. 결혼이 정말 사랑의 완성형태일까요?
손여은 : 예전에는 꼭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전 결혼에 대한 환상도 크지 않거든요. 결혼이 현실이라는 걸 주변을 통해 일찍 알게 된 거죠.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영화 ‘코인라커’를 찍을 때 역할이 모성애가 강한 엄마 역이라서인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요. 물론 결혼이 꼭 정답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완성인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결혼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잖아요. ‘가족’은 꼭 필요한 거니까요.
10. 손여은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손여은 : ‘가족’은 제가 태어나고 살아 숨 쉬게 하는 터전이에요. 가족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테니까요. 소중한 존재에요. 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그래서 더더욱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10.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 ‘가족’에 대해서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손여은 : 실제로 전 대가족이 아니에요. 이번 ‘부탁해요 엄마’를 통해 처음으로 대가족 속에서 살아볼 수 있었어요. 다 같이 앉아서 밥 먹고. 그런 것들이 너무 좋았어요. 가족들이 많은 집에서 살아보고 싶어지더라고요. 결혼하고 시댁 어른들과 살면 이런 행복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새로운 가족들이 생기는 거니까. 하하. 드라마 촬영하면서 우리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더라고요. 부쩍 엄마랑 통화를 자주했어요. 하하.
10. 끝나고 돌아보니, ‘부탁해요 엄마‘는 자신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요?
손여은 : 제 가족에게 소중한 드라마를 선물해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족드라마인 만큼 가족들 생각도 많이 하기도 했고, 혜주라는 사랑스런 캐릭터도 만났고요. ‘부탁해요 엄마’는 일 년 반 정도 쉬다가 나와서인지 마음가짐도 남다르게 임한 작품이었거든요. 제 자신에게는 여러모로 소중한 드라마로 남았어요.
10. 선혜주는 이전 드라마인 SBS ‘세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의 채린(손여은)이와는 완전 반대의 이미지네요.
손여은 : 그렇죠. 많은 분들이 채린이를 보고 희한한 캐릭터가 나타났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재밌게 봐주신거겠죠.
10. 확실히 악역은 감정을 표현해내는 타입이라서 연기함에 있어 더욱 편하지 않나요?
손여은 : 악역은 항상 화를 내고 소리치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속 시원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채린이는 그런 악역이 아니었으니까. 분노를 표출하면서 해소될 것 같은 감정도 계속 다른 나쁜 상황들이 생김으로써 더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어요. 게다가 악역들은 나름의 아픔이 있어요. 이유없는 악역은 없다고 하잖아요. 저도 부단한 노력으로 채린이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했어요. 제가 이해 못하면 연기 자체를 못할 테니까요. 나중엔 시청자분들도 욕하시면서 보시더라고요. (웃음) 제가 전달하려고 한 느낌이 잘 전해진 것 같았어요.
10. 단아한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어요. ‘세결여’에서도 악역이었지만 누군가의 ‘며느리’였고, 이번에도 ‘참한 며느리’였어요. 개인적으로 새로운 이미지에 도전하고 싶지는 않은가요? 가령 강한 액션을 보여주거나 포스 넘치는.
손여은 : 사실 저에게는 다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채린이도, 혜주도, ‘코인라커’의 연이도. 물론 ‘며느리’, ‘아내’라는 틀에 속해 있었지만, 혜주는 독특한 악역이었고 연이는 느와르의 주인공이었으니까요. 모든 게 다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계를 정해놓지는 않을 거예요.
10. 그런 마음을 일탈이라고들 하잖아요. 손여은이 꿈꾸던 일탈은 무엇인가요? 가령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찍고 싶다든지.
손여은 : 음, 일상적인 작품을 찍고 싶어요. 극적인 작품도 좋지만… 홍상수 감독님 영화같은? 리얼한 영화있잖아요. 실제인 듯 연기인 듯 하는. 평소에도 홍상수 감독님이나 에릭 로메르 감독 영화를 좋아해요. 진짜 내 옆에서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10. SNS에 종종 발레 하는 사진이 있어요. 자기관리에 일환이겠죠.
손여은 : 정통 발레는 아니고요, 발레 스트레칭을 하고 있어요. 하하. 주로 요가나 스트레칭 위주로 선이 예뻐지는 운동들을 하는 편이에요. 꾸준히 운동하고 있어요. 배우로서 기본인 것 같아서. 또 안 먹고 다이어트를 하면 예쁘지가 않더라고요. 먹을 것 먹고 일상에서 조금 더 움직이는 편이에요. 쉽지 않은 건 잘 알고 있죠. 저 역시도 사람이라 맛있는 거 앞에서 무너질 때가 많아요.(웃음) 그럴 때 운동으로 마음을 다 잡는 거예요.
10. 자기관리에 열심이기도 하고, 일에 있어선 굉장히 강단 있는 성격이네요.
손여은 :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물러나지 않아요. 제 고집이 있기도 하고. 오히려 저돌적인 편이에요.
10. 시련 같은 경우엔 어떤가요? 고난이나 시련은 금방 뛰어넘는 편인가요?
손여은 : 시련은 강도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우울함이 깊어지면 그만큼 빠져나오기 힘든 것처럼, 얼마나 큰 시련이 닥치느냐에 따라서 이겨내는 시간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분명한 건 어릴 때보다는 시련 앞에서 여유가 생겼다는 거예요. ‘이 정도는 이겨내야지’라는 굳은 마음도 생긴 것 같고요. 확실히 20대에 비해서는 여유가 생겼네요.
10. 30대가 되면 모두가 여유를 찾게 되는 건가요?
손여은 : 20대 때는 행복하기도 했지만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부딪히고, 한 없이 우울할 땐 끝까지 우울해지잖아요. 그 와중에서도 일에 있어서 열정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렇게 지나오고 경험이 어느 정도 쌓여 30대를 맞이하게 되면, 분명 전에 느끼지 못한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전 과거로 돌아가라고 하면 거절할 것 같아요. 지금이 좋아요. 40대가 되면 그때가 더 좋을 것 같고요. 하하.
10. 20대 때 손여은은 피아노 학도였어요. 피아노학에서 연기로, 쉽게 연결되지 않는 루트 같아요.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손여은 : 대학 입학하고 서울에 놀러왔는데 그때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어요. 뭔지도 모르고 호기심에 시작했었죠. 사진 찍고 촬영을 하니까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집에선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결국 제 고집이 이겼지만요. 하하. 연기를 하게 되고, 피아노를 그만둔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피아노도 연기도, 모두 ‘예술’이라는 큰 틀 안에 있잖아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피아노를 치다가도 캐릭터 영감을 받을 때도 있고, 감정을 잡거든요. 직업이 다를 뿐이지 전 언제나 피아노를 치고 있어요.
10. 피아노는 손여은의 일상이군요.
손여은 : 그렇죠. 연기 역시도 제 일상이 됐어요. 피아노, 연기 모두 제가 사랑하는 일들이에요. 나중에 피아노를 치는 배역을 맡을 수도 있잖아요. 연기, 피아노로 더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0. 그래도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피아노에 대한 아쉬움도 남을 것 같아요.
손여은 : 크게 아쉬움이 남지는 않아요. 말했다시피 저는 늘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까요. 작품에서도, 일상에서도. 10. 데뷔 10년차에요. 자신을 10년이나 이 속에 몸담게 한 연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손여은 : 양파 껍질 같아요. 하하. 연기를 하면 할수록 또 다른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분이거든요. 부족했던 부분들을 배우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 삶에 스며드는 것 같아요. 새로운 캐릭터를 소화하고 나면 양파 껍질을 한 겹 더 벗겨낸 기분이에요. 그때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아마 이 행복감을 위해서라도 평생 연기를 할 것 같아요. 하하.
10. 앞으로 10년 이상은 더 손여은을 볼 수 있겠죠. 손여은을 달리게 할 원동력은 무엇이 될까요.
손여은 : 음, 연기 자체가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아요. 연기할 때가 가장 좋거든요.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웃음) 그냥, 좋으니까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하하.
10. 앞으로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요?
손여은 : ‘이번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궁금하게 만드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예를 들어 하얀 도화지에 파란색 물감을 칠하면 파랗게 변하고, 노란색 물감을 칠하면 노랗게 변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여러 색깔을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볼 때마다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그러기 위해선 저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거예요.
10. 얼마 전 줄리엣 비노쉬의 사진을 올렸어요. 그녀의 팬인가요?
손여은 : 롤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줄리엣 비노쉬가 데뷔했을 때부터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거든요. 연기뿐만 아니라 인생까지도 멋있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10. 줄리엣 비노쉬가 손여은 연기 인생에 끼친 영향이 크겠군요.
손여은 : 그럼요. 줄리엣 비노쉬처럼 연기를 하고 싶어요. 작품마다 캐릭터에 몰입하는 건 모든 배우에게 당연할 일이겠지만, 매번 자기 옷처럼 입을 순 없잖아요. 줄리엣 비노쉬는 그런 틀을 깨주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월에 맞는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녀의 주름 하나, 하나까지도 아름다워 보여요. 줄리엣 비노쉬는 여전히 고혹적이에요. 저도 줄리엣 비노쉬처럼 오랫동안 매혹적인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0. 꼭 그녀처럼 오래 볼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네요.
손여은 : 감사합니다. 꼭 오래 연기할게요.(웃음)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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