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라이프 앤 타임
라이프 앤 타임
‘나만 알고 싶은 밴드’라 일컬어지는 팀들이 있다. 나만 알고 싶은, 이라… 그 감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출발하는 걸까? 힙스터로서의 자존심? 밴드가 대중화되는 것에 대한 경계심? 모르긴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나만 알고 싶은 밴드’를 갖고 있고, 그들이 유명해지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반발심을 느낀다. 하지만 ‘나만 알고 싶은 밴드’의 대표주자 격이었던 혁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릴 굶겨죽일 심산인가.”

라이프앤타임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다. 곧 이들을 ‘나만 알고 싶은 밴드’로 지칭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겠구나. 지난달 21일, 라이프앤타임의 정규 1집 ‘랜드(Land)’ 발매 쇼케이스에서, 또 다시 생각했다. 라이프앤타임은 모두에게 알려야 하는 밴드다.

Q. 밴드 소개를 부탁한다. 길고, 자세하게.
진실 : 기타리스트 진실, 베이시스트 박선빈, 드러머 임상욱으로 구성된 3인조 락 밴드다. 자연에 빗댄 화법을 통해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의 특징이다.

Q. 첫 정규앨범 랜드(Land)’가 지난 22일에 발매됐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선빈 : 좋다고들 한다. 전작에 비해 좋다는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저번도 괜찮았는데, 이번엔 정말 잘 만들었다’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등, 주변에 음악 하는 지인들이 좋아해준다.

Q. 앨범 발매 전날에는 쇼케이스도 열었다. 현장에 가보니 여성 팬들도 상당히 많고, 대포 카메라도 종종 보이더라.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외모? (웃음)
선빈 : 외모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남자 밴드라 여성 팬들이 있는 것 같다.
진실 : 진짜 모르겠다. 우리의 할 바를 잘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라이프 앤 타임
라이프 앤 타임
Q. 앨범 소개가 제법 거창하다. “자연물에 비유한 직접적이고 무거운 주제들을 통해 사람 본연의 모습과 감정은 물론 땅 위에 건설한 도시에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데.
진실 : 자연물에 비유해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멋있게 쓰면 멋있게 봐주시니…(웃음) 여기에서 사람 본연의 모습이란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고, 도시는 이성에 대한 얘기다. 라이프앤타임이라는 이름을 던진 이상, 이걸 장난스럽게 혹은 대충하고 싶지 않았다. 담백하되, 거만하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치기 어리게 보이는 것도 지양했다. 그러다보니 감정과 이성의 모습이라는 설정에 도달했다. 사람들을 가르치기보다는 ‘우리는 이랬는데, 너희는 어땠어’라는 식으로 편하게 다가가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Q. 자연은 너무나도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주제잖아. 그 안에서 곡의 포인트는 어떻게 잡았나?
진실 : 소재와 이미지는 방대할지언정,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일상적이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일례로 ‘급류’의 경우는 같이 연습을 하다가 어떤 리프와 드럼 리듬이 나오고, ‘이게 몰아치는 느낌이 난다’ ‘이런 리프로 어떤 걸 얘기할 수 있을까’ 하다가 선빈이가 급류의 이미지를 제안했다. 그래서 내가 급류라는 이미지로 멜로디와 가사를 가져왔고, 그걸 어떤 식으로 편곡해서 풀어나갈 건지에 대해서는 함께 논의했다.

Q. 셋이서 계속 의견을 맞춰가며 진행한 건가? 그렇다면 작업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겠다. 작사, 작곡도 팀 이름으로 올라가 있던데.
선빈 : 작사는 진실이 많이 맡아서 하고 있고 주제의 내용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진실 : 밴드 내에서 균형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역할이 물론 있겠지만 가장 중심 주제나 색깔에 있어서는 세 명의 참여도가 높아야 한다. 그래야 더 멋진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Q. 곡 설명을 하면서 3인조 밴드의 자존심이라는 말을 했다. 기본 악기 구성이지만, 4~5인조 못지않은 사운드를 내겠다는 건가?
진실 : 우리가 담을 수 있는 사운드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거기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3인조라서 자신 있기보다는, 3인조라는 한계 속에서 우리가 노력을 한고 있단 자신감이다. 이를 테면, 상욱이 같은 경우에는 드럼 하나를 칠 때에도 하나하나 치밀하게 짜서 연습한다. 보편적인 리듬이 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나도 기타 톤 하나에 있어서도 완성도를 높이려 여러 고민과 시도를 한다. 베이스도 마찬가지다. 보편적으로, 혹은 대충 하는 연주가 아니라 양질의 사운드, 새로운 연주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거기에 대한 자존심이다.

여기에 하세가와 료헤이 형(a.k.a. 양평이 형)이 프로듀싱과 기타 사운드 메이킹에 참여해 힘을 보태줬다. 산울림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분이고, 좋은 악기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분의 오리지널리티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Q. 주제가 무거운 대신, 가사는 가볍게. 하지만 사운드에는 공을 많이 들인 거군.
선빈 : 가볍다는 느낌보다는, 담백하다고 봐주면 좋을 것 같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기도 하고.
진실 : 밴드를 시작할 때에는 주제가 흥미롭고 재밌을 거라는 편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곡으로 풀어나가려다 보니 위험하더라. 너무 느끼해질 수 있잖아.
선빈 : 팀명을 정하는 순간에도 고민이 많았다. ‘야, 너무 센 거 아니야? 이래도 돼?’ 하면서.
진실 : 느끼하고 무겁고 지루하고. ‘중2 병’이 되기 딱 좋은 주제다. 신선하고 흥미로우면서도 담백하게 만들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랜드’ 앨범 커버
‘랜드’ 앨범 커버
Q. 앨범 커버 역시 감정과 이성을 담아낸 건가?
진실 : 그렇다. 우선 자연은 사람의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예쁜 이미지로 담고 싶었다. 반면 현실적으로 그리려고 했다. 예쁘고 팬시한 사진도 많이 나왔지만, 좀 더 현실적인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랜드, 라이프, 타임이 주는 무거운 느낌을 최대한 상쇄시키고 싶었다.

Q. 현실적이다 못해, 사진 속 세 남녀는 방탕해 보이기까지 한다.(웃음)
상욱 : 예쁜 사진도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이 원 안에 모든 사진을 넣어봤지. 그런데 도시의 더럽고 현실적인 모습이 자연의 예쁜 모습과 딱 분리가 되면서, 조화도 되더라.

Q. 자연의 예쁜 모습에 선()한 가치를 둔 것은 아니란 말이지?
진실 : 감정적인 것들을 예쁘게, 이성적인 것들을 차갑게 그린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가치를 정해서 표현한 건 아니다. 청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고 싶었다.

Q. 앨범 속지도 독특하다. 한 장의 사진인데, 뭘 찍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선빈 : 한 쪽 면은 건물이고 뒷면은 돌, 지층이다.
진실 : 채석장에서 찍은 건데, 감정을 뜻하는 사진이다. 우리의 앨범 콘셉트를 담고 있다. 빌딩은 도시에 대한, 지층은 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지층의 패턴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고. 별다른 설명 없이 이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예뻐서, 벽에 붙여놔도 좋을 것 같다.

Q. 곡에서는 2감성을 피하려고 했잖아. 비주얼 적으로도 경계한 점이 있다면?
진실 : 담백해야 하는 게 첫 번째다. 봤을 때 예뻐야 하고. 각자 영향 받은 레퍼런스도 분명히 있겠지만, 카피해서는 안 된다. 그걸 잘 받아들여서 새롭게 풀어내고자 노력을 많이 했지. 보편적으로 양산되는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의 의도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다. 디자이너들 역시 우리와 동세대의 친구들이거든. 같은 이야기에 대해 같은 목소리로 풀어나가는 모든 과정에 있어서 신경을 많이 썼다.

Q. 뮤직 비디오도 다섯 편이나 제작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진실 : 새로운 걸 시도하는 만큼, 대중적인 접근성이 불친절한 점이 없잖아 있다. 그럴 때 이 비디오가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는 것 같다. 작업을 하면서 이미지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라, 아트워크와의 시너지도 있다. 다행스러운 게, 주변에 좋은 아티스트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과 작업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앞으로도 이미지를 통해서 종합 콘텐츠로 다가가고 싶다.

Q. 쇼케이스가 열린 장소도 특이했다. ‘공간에도 신경을 많이 쓴 눈치다.
진실 : 그렇다. 뮤직비디오 상영회와 함께 전시 포맷으로 오브제들을 보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좀 더 집중된 상태에서 콘텐츠가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랐다. 고생은 했지만 후회 없는 행사였다.

Q. 그런 전시가 여러 일 동안 지속돼도 좋을 것 같다. 듣고 싶을 때 가서 들을 수 있게.
선빈 : 일단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웃음)
진실 : 어릴 때, 택배 포장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아주 단순한 일이었지만, 포장이 잘 된 상자는 사람들이 그 상자의 예쁨을 알아봐주길 바랐다. 아마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들여 만든 콘텐츠를 존중된 상태에서 듣게 하자는 게 우리의 의도였다. 산만한 상태에서 우리의 음악을 처음 듣고, ‘어 좋네?’하면서 지나가버리는 게 아쉬웠다.

라이프 앤 타임
라이프 앤 타임
Q. 세 사람 모두 서른 살을 맞이했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 인생의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인가?
선빈 : 상욱이는 얼마 전 아이가 생겼다.
상욱 : 마지막 트랙이 ‘라이프’, 삶이잖아. 30대인 우리들이 삶을 이야기한다는 게 좀 뭐했다. 다만 최근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이슈는 새 생명이 탄생한 사건이었거든. 아이가 태어날 때, 첫 울음소리를 녹음해두었다. 그걸 ‘라이프’의 임팩트 있는 부분에 잘 숨겨뒀지.

Q. 다른 멤버들은 어떤가? 지금 이 순간, 삶에서 개인적인 사건을 숨겨둔 장치가 있나?
진실 : 앨범의 모든 부분에 다 들어있다.
선빈 : 우리의 모든 연주 스킬과 10년 음악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영혼을 다 담아서 만든 거다. 하하.
진실 :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여유 있게 대충대충 만든 앨범은 아니다. 선빈이의 베이스도 여러 번 갈아 치웠고 나도 마찬가지다.
상욱 : 나는 내 역량의 50% 정도 밖에 안 썼다. 아! ‘라이프’는 한 80%? (일동 웃음)
선빈 : 우리가 ‘임스웩’이라고 부른다. 드럼 스웨그가 엄청 강하다.

Q. 진실은 로로스 활동 당시에도 영광스러운 순간이 많지 않았나? 일례로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그런데 유독 이번 앨범에 가장 사활을 건 듯한 느낌이다.
진실 : 내가 하는 모든 얘기들은 대부분의 밴드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부분이다. 칵스도 새 앨범에 무엇을 담을지 엄청나게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을 거다. 로로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사활을 걸었던 것 같다. 우리한테는 이게 일이니까.

Q. 한 때 혁오를 두고 나만 알고 싶은 밴드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잖아. 개인적으로는 여러분이 그 자리를 꿰찰 것 같다. 물론, 멤버들 개개인은 이미 무척 유명하지만.
진실 : 안 그래도 혁오의 인터뷰를 봤다. 오혁이 그렇게 말했더라. ‘나만 알고 싶은 밴드? 우릴 굶겨 죽일 심산인가.’ 마찬가지의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를 유니크하게 봐주는 것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Q. 예전에는 밴드가 대중화되는 걸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았잖아. 밴드에게 있어서 대중화 되는 것과 마니악하게 되는 것 중, 무엇이 더 위험할까?
선빈 : 밴드가 변한다기보다는 듣는 사람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밴드가 인기를 얻기 위해 음악을 바꾸는 건 잘못된 거다. 하지만 밴드는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고 대중이 그걸 좋아한다면, 그건 기호의 변화겠지.
진실 : 긍정적으로 봤을 때는 둘 다 좋은 거다. 둘의 밸런스를 잘 맞춰 나가야 한다. 마니악해진다면 밴드를 지속할 수가 없다. 경제적인 문제도 생기고. 밴드가 지속가능하려면 대중의 지지가 분명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중의 기호를 얻고자 밴드가 산으로 가는 것도 안 될 거고.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Q. 마지막으로, 이 앨범으로 라이프앤타임을 처음 접하게 될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선빈 : 최대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짧은 영화 한 편 본다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상욱 : 귀가 상하지 않는 선까지, 볼륨을 크게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진실 : 대중이 음악을 어떻게 듣느냐, 받아 들이냐는 그들의 자유니까,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는 없다. 그래도 소스 하나하나에 공을 많이 들였다. 우리가 굉장히 디테일하게 노력했던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쉽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분명 찾아낼 것이다. 또, 1번 트랙부터 9번 트랙까지의 모든 콘텐츠를 균형감 있게 만들려고 했다. 우리 앨범을 잘 즐기려면 집중된 환경에서 음악, 아트워크, 영상 모두를 하나의 콘텐츠로 감상한다면, 가장 본연의 의도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해피로봇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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