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꽃잠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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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작곡가와 유망한 보컬리스트. 꽃잠프로젝트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그 속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보다 묘한 관계가 포착된다. 뭐랄까.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원석과 조각가처럼 보였다. 보컬리스트 김이지는 한없이 깨끗한 상아 같았고, 프로듀서 임거정은 엄청난 심미안의 조각가 같았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엉뚱한 상상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조각가가 조각을 마치는 순간, 하얀 조각상에 혈색이 돌고 마침내 영혼이 싹틀지도 모른다는.

Q. 첫 정규 앨범 ‘룩 인사이드(Look insdie)’가 6일 발매됐어요. 어떤 앨범인지 소개를 부탁합니다.
거정 : 첫 EP 이후 약 1년 반 만에 내는 앨범이에요. 지난번 EP는 이지와 만나 1년 정도 작업해서 만들었고요. 트레이닝 기간이 다소 짧았던 편이죠. 긍정적으로 본다면, 서로가 가진 게 잘 맞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욕심 같아서는 서로를 더 알고 만들고 싶긴 한데요.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하고 싶은 걸 편하게 해보려고 했어요. 조용하고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콘셉트를 잡았어요. 앨범과 어울리는 영화를 추천하자면,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했던 ‘호스 위스퍼러(Horse Whisperer)’를 꼽을 수 있겠네요. 제목 그대로 말을 치유해주는 영화인데요.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풍경이 많이 나와요. 그 따뜻한 느낌이 참 좋습니다.

Q. ‘룩 인사이드’라는 타이틀이 수록곡들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궁금합니다.
거정 : 저희의 내면이 어떤지 아직 잘 모르겠더라고요. 스스로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서로를 아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멤버가 1~2명만 더 많았어도 서로 소통하고 옥신각신하며 스스로를 꺼낼 시간이 많을 텐데, 저희는 2인조라 그게 어렵죠.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좀 더 봐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Q. ‘룩 인사이드’의 주어가 대중이 될 수도, 서로가 될 수도, 스스로가 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거정 : 그렇죠. 가사 전반적으로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사람은 사랑이라는 매개체 안에서 자기 자신을 많이 발견하잖아요. 그러니 ‘룩 인사이드’라는 타이틀과도 연결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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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개인적으로 첫 곡, 첫 소절에서부터 귀가 확 끌렸어요.
거정 : 가사가 참 좋죠?(웃음)

Q. 거정 씨가 쓴 가사잖아요.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여성적이고 소녀 적인 곡을 쓰셨는지요?
거정 : 첫 트랙 ‘미스터 맥클레인(Mr. MacClain)’은 열다섯 살 때 경험했던 일을 쓴 곡이에요. 이지와 저, 둘 다 그림을 그리거든요. 제가 혜화동에 있던 중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만 해도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많았어요. 그림에 관심이 많으니까, 자주 구경 갔죠. 길거리를 보면, 비둘기도 움직이고 애들도 풍선을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어떤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잖아요. ‘저 모습을 빨리 좀 그림에 담지.’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걸 가사로 써봤어요.

그리고 보컬의 주가 이지예요. 개인적으로, 보컬리스트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경험이거든요. 경험이 있어야 진정성도 생기니까요. 지금 이지의 나이 대에서는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경험일 거예요. 아마 사랑이 최고일 걸요?(웃음) 그래서 사랑 이야기 위주로, 이지 나이대의 경험을 풀어내려고 했어요. 그래야 이지가 표현할 때에도 진정성이 깊어질 거라고 생각했고요. 가사를 쓴 뒤에는 이지와 교감을 해요. ‘너 이런 적 있어? 너 이 나이에 뭐 했어?’ 이런 식으로요. 아마 그래서 소녀 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Q. 이지를 만나고 나서 이런 풋풋한 감성으로 방향을 잡게 된 건가요? 아니면 반대로, 풋풋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이지라는 보컬을 찾은 건가요?
거정 : 물론 이지를 만나고 나서 그렇게 된 거죠. 이지와 저 사이에 세대 차가 있긴 하지만, 다행히도 제가 알던 시대의 음악을 이지가 알아요. 이지의 부모님이 음악을 하시던 분들이라, 어릴 때부터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고 자랐더라고요. 덕분에 쉽게 공감대가 생겼어요. 다행이죠.

Q. 이지에게 물어볼 게요. 부모님께서는 꽃잠프로젝트 앨범을 듣고 뭐라고 하시던가요?
거정 : 하하하. 부모님이 만족하실까 싶어요. 나 같아도 단점만 보일 것 같아.
이지 : 일단 저한테는 무조건 잘했다고 할 수 없으니, ‘넌 여기에서 이렇게 해보지’라고 화도 많이 내세요. 하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음악 자체는 좋아하시죠.
거정 : 저는 이지가 없을 때, 이지의 부모님과 만나기도 하거든요. 술도 한 잔 하고요. 그 때 어떤 칭찬을 하시냐면, 허물 벗지 않은 감성을 지녔다고 해요. 발전 가능성, 끼를 많이 말씀하시죠. 프로듀싱 능력 자체는 아직 모자랄 수 있지만, 그건 저 또한 어렸을 때엔 많이 모자랐으니까요. 미래지향적인 기대치와 가능성에 대해서는 칭찬을 굉장히 많이 해요. 이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고요. 기본적인 스킬이야, 앞으로 음악을 계속 하면서 당연히 늘어갈 거니까요. 이지는 가끔 울어요. 작업을 하다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을 때 울죠. 그러면서도 한 계단 씩 올라가는 게 참 대단해요. 어린데, 독해요.
이지 : 엄마는 착한 척하는 거래요. 하하.
거정 : 내숭이라면 들켜요. 20대 갓 넘어서의 말썽이랄까요, 그런 것들이 이지는 적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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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지는 노래도 많이 는 것 같아요. 레퍼런스가 됐던 가수도 있나요?
이지 : 늘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첫 앨범보다는 노래 부를 때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아요. 다양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여러 톤을 연구했어요.
거정 : (가창에 있어서) 핵심을 간추린다면, 연기력인 것 같아요. 노래는 멜로디와 화성이라는 언어로 전달되잖아요. 하지만 노래를 기능적으로만 생각하면, 임팩트도 떨어지고 전달력도 떨어져요. 얼마나 경험했고 살아왔느냐, 그런 연기력이 중요해요. 그 다음이 얼마나 그런 기능적인 면을 훈련했느냐, 이고요. 이번 앨범에서는 이지에게 연기력을 많이 주문했어요.

Q. 어떤 식으로요? 이지에게 구체적인 디렉팅을 줬나요, 아니면 이지의 해석에 맡겼나요?
거정 : 이지가 중, 고등학생 때의 성장통을 중국에서 겪었어요. 그래서 한국적인 감성과는 아직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처음 곡의 형식은 제가 짜더라도, 디테일한 가사나 멜로디는 이지와 함께 작업했어요. 이지의 감성과 노래의 언어가 맞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는 즉각 수정하고 삭제해가며 작업했습니다. 그런 딥(Deep)한 과정이 많이 있었어요.

Q. 이지는 어땠어요?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 일을 상상해나간다는 게.
이지 : 공감을 하지 못하면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어요. 오빠가 곡을 가르쳐줄 때는 항상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이런 곡을 쓴 거야”라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같은 경험은 없어도, 마치 겪은 것처럼 느끼며 작업했죠.
거정 : 이지가 정말 중요한 말을 했어요. 이거 꼭 써주세요.(웃음)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기능적인 면은 시간이 흐를수록 당연히 늘 수 있어요. 하지만 감성은 그렇지 않죠. 좋은 곡을 들을 때는 영상이 먼저 떠오르잖아요. 상상을 한다거나, 추억 속의 장면을 되새김질 한다거나. 곡의 상황이나 장면에 대한 소통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온 오프(On Off)’ 같은 경우는 키스에 대한 노래에요. 그 때도 똑같았어요. “너 솔직히 말해봐. 너도 그런 적 있지? 그 때 느낌이 어땠어?” 그런데 자기 경험담은 절대 얘기 안 하더라고요. 하하.

Q. ‘홈(Home)’ 역시 회화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트랙이에요.
거정 : 제가 어릴 때 큰 집에 있었거든요. 그 때 대청마루가 있었는데, 비가 오면 대청마루 밑으로 강아지들이 모여요. 우물도 있었고 소, 닭, 염소도 있었고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식구나 아홉이나 됐어요. 대가족적인 분위기였죠. 그런 경험이 곡을 쓰기 전에 있었어요.

어느 날 작업을 하는데 비가 엄청 많이 왔어요. 그날 이지가 작업실에서 자고 있었거든요. 문득, 비가 오는 풍경과 곤히 자고 있는 이지의 모습에 예전 생각이 난 거죠. 순식간에 가사까지 나왔어요. 이지를 깨워 보여줬더니, 이지도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강하다며 이 주제에 많이 공감해 주더라고요. 의외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곡인데도, 소화를 쉽게 잘 했던 노래에요. 녹음까지 금세 끝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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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드림(Dream)’은 가사가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거정 : 이지가 아직까지 사랑에 대한 경험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어요. (일동 웃음) 아니,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자기는 나름 많은 경험을 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물론 경험의 양으로서 사랑의 위대함을 말하는 건 어폐가 있지만요.

어떤 사랑이던 간에 이지의 나이 대에 경험했던 게 아마 평생 갈 것 같아요. 저도 그 때의 사랑이 가장 기억에 남고요. 또 새로운 사랑을 만나도, 미안하지만 (그 때의 사랑이)잊히지 않아요. 만약 그 중요했던 시기의 사랑을 이겨냈다면, 지금도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그게 굉장히 아름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나는 그걸 못 이겨냈네. ‘이겨냈더라면…’ 하는 노래입니다.

이지의 감성으로서는 좀 깊은 가사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지를 보며)너무 했나, 오빠가?(웃음). 저의 그런 감정을 이지가 대신 표현해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지라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제가 빌렸다고 할까요.

Q. 앞에서 말한 ‘미스터 맥클레인’이 이지 나이 대에 딱 맞는 곡이라면, ‘드림’처럼 거정의 나이에서 느껴지는 감정도 있는 거네요.
거정 : ‘드림’ 같은 경우에는, 그 때 만났던 사람이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아마 그 사람은 들을 거예요. 듣겠죠. 그리고 그 사람도 생각해보겠죠. 그래주면 고맙고요. 저도 나이가 찼지만, 정신까지 성숙한 건 아닌가 봐요. 좀 어린 감정?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죠. 그 사람은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애를 낳았을 수도 있을 텐데.(웃음)

Q. 이지는 ‘홈’ ‘온오프’ ‘스윗 러브(Sweet love)’에서 작사에 참여했어요. 특히 ‘온오프’나 ‘스윗 러브’는 가사가 달달한데요. 아무래도 이지의 영향인 건가요?
거정 : ‘스윗 러브’는 완전 이지 꺼.
이지 : 그 전에는 “여기는 이렇게 하면 좋겠어요” 정도로 가사에 참여했어요. 그런데 ‘스윗 러브’를 녹음하러 갔던 날, 오빠가 30분 안에 가사를 써보라고 하더라고요. 멜로디를 들으면서 떠올랐던 감정을 썼어요. 써놓고 나서는, 간지럽고 오글거려서 힘들었어요. 오빠는 제가 쓸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거정 : 쓸 줄 몰랐다고 한 건 아니고요. 아까도 이야기했다시피, 이지한테 한국적인 정서가 다 쌓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뭔가 모자라다고 뒤로 미뤄버리면, 그만큼 늦어지기만 하는 거니까요. 만들어보라고 했죠. 써 놓고 우리끼린 간지럽다고 했는데, 노래로 부르니 좋더라고요. 이지가 표현할 수 있는 감성자체와 맞았던 거죠.
이지 : 텍스트만 보면 오그라드는데, 오그라든다는 생각을 안 하려고 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렸을 때 들었던 감정을 생각하며 쓰려고 했죠.

Q. 마지막 트랙 ‘좋은 날’은 원래부터 연주곡으로 계획하고 만든 건가요?
거정 : 그 곡은 멜로디에 대한 대책도, 편곡에 대한 대책도 없었어요. 머릿속에 아무 계획 없이 스튜디오 안에 기타만 들고 들어가서, 속도와 코드만 정하고 살을 붙였죠. 말 그대로 하얀 좋이 위에 아무렇게나 색깔 던져서 묻어나는 대로 만들었죠. 기분이 좋게 나왔던 곡입니다.

Q. 전반적으로 봄 느낌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혹시 가을과 잘 어울리는 트랙을 추천해준다면요?
이지 : 저는 ‘홈’이나 ‘폴 인 러브(Fall in love)’요.
거정 : 안 그래도 이지가 ‘폴 인 러브’ 얘기를 많이 해요.
이지 : 안녕 바다의 선재 오빠가 중간에 일렉트로닉 기타를 쳐줬는데요. 그 기타의 소리나 멜로디, 곡의 흐름과 톤이 가을의 느낌과 잘 맞는 것 같아요.
거정 : 그 곡과 좀 비슷한 느낌이…스팅의 ‘필드 오브 골드(Fields of gold)’? 저는 ‘그대는 어디 있나요’가 가장 가을적인, 센치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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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지는 20대 초반이잖아요. 매 해가 다를 시기일 텐데 EP 앨범 발매 이후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이지 : EP 준비를 할 때가 열아홉, 스무 살 때였어요. 당시에도 나름 생각을 한다고 했지만, 고민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생각과 고민이 많아졌어요.
거정 :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저 역시 속상했고요. 정규 앨범이 보니, 부담 아닌 부담이 있었거든요. 서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저는 프로듀서의 입장에 있으니, 요구하는 것들이 드셀 때가 있었어요. 울려놓고서 후회도 들었고요. 이지한테는 이 1년이라는 기간이 긴 시간이면서 중요한 시기이고, 저는 이지의 삶에서의 1년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인 거잖아요. 물론 이지 또한 저의 시간을 책임져 줘야 하고요. 서로 좋은 트라우마, 꼭 겪어야 할 트라우마를 겪었던 것 같아요.

Q. 그러고 보니 서로 부담감이 있겠네요. 거정은 이제 막 시작하는 보컬리스트(이지)를 끌어줘야 하고, 이지는 이미 엄청난 커리어를 가진 뮤지션(거정)과 함께 하니까요.
거정 : 2년 반 정도 지나, 이제야 얻은 결론인데요. 제 경험을 아무리 얘기해도 몰라요. 직접 겪어보고 맞아보지 않은 이상, 이게 아픈 건지 달콤한 건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이지에게)도움이 될 수 있는 건, 극소수라고 생각하고요. 곡을 쓰는 사람이 아무리 소리를 크게 질러도, 대중에겐 그 설득력이 떨어질 거예요. 보컬의 영향력이 큰 거죠. 그러니 이지에게 자신감을 부여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지가 꿈도 크고 기대도 클 텐데, 어떤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이를 테면, 어떤 좋은 곡을 만들고 얼마나 공감 가는 가사를 쓸 수 있을까, 그런 부담은 가끔씩 들어요.
이지 : 첫 EP를 낼 땐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부담도 있었어요. 앨범이 나오기까지의 여러 과정을, 저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으니까요. 하나하나가 고민되고 부담됐죠. 그런데 해보고 나서는 ‘하면 할 수 있겠구나’ 그랬어요.

Q. 20대. 인생에서 사랑 경험을 가장 많이 할 때예요. 생산자로서도 많은 영감을 얻을 것 같은데, 어때요?
이지 : 사랑노래가 굉장히 많잖아요. 들으면서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해 하기도 하고 부러워 하기도 하죠. 그런데 막상 가사를 쓸 때는, 사랑에 관한 내용보다 예전에 혼자 있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게 돼요.

Q. 반대로 거정은 곡을 쓰면서, 직접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는 않던가요?
거정 : 꽃잠 ‘프로젝트’잖아요. 프로젝트라는 건 울타리 없는 평야라고 생각해요. 방목해놓은 양(이지)과 늑대(거정)? 하하. 늑대로서 다른 양을 잡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죠.

Q. 직접 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요?
거정 : 있어요. 제가 부른 것도 있고, 이지에게 들려주지 않은 곡들도 있어요. 이지 또한 저를 떠나 자신을 표현하고픈 욕심이 분명 있을 거예요. 저도 제 것을 표현하고 싶고 이지가 이지 것을 표현하게끔 만들고도 싶어요.

꽃잠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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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대인 이지에겐 1년이 다이내믹한 시간이겠지만, 40대인 거정은 좀 다를 것 같아요. 아무래도 좀 더 안정을 찾은 상태이니, 1년이라는 시간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 같은데요.
거정 : 1년은 너무 짧아요. 대중성을 떠나서, 우리의 인생을 바꿨다고 할 만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전에는 ‘언제 만들 수 있을까’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번 1년 동안은 그걸 떠나 이지와 저의 조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죠. 사실 이지와 제가 동시간대를 가는 건 아니거든요. 물리적으로는 동시간에 있지만, 내면에서 겪는 시간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지와 저의 만나지 않는 평행선상에서, ‘어떤 포인트가 우리의 조합이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 선 안에서 분명히 어떤 핵심은 있을 거예요.
이지 : 오빠와 저, 모두 다른 이유로 시간이 빨리 간 느낌이에요. 그렇지만 그 안에서도 ‘음악’이라는 목적이 같잖아요. 덕분에 시간이 어떻게 가느냐와 상관없이,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있던 것 같아요.
거정 : 사실 시간이 흐르는 걸 인지하지 못하면, 인생에서 그 시간을 도려낸 것처럼 되잖아요. 저 역시 시간이라는 계단을 안 밟고 슥 올라온 것 같아요. 그래서 젊은 건가?(웃음)

Q. 이지는 어리니까, 앞으로 여러 경험을 통해 많이 달라질 거예요. 파트너로서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기분이 묘하겠어요.
거정 : 첫 번째 생각은 ‘3, 4년만 지나면 내 말 더럽게 안 듣겠구나. 으휴~ 저걸 어떡하지?’ 하하. 두 번째는, 좋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이지는 제 시간을 책임져 주는 중요한 아이콘이자 소스예요. 그동안 이지에게 많은 시행착오를 범했고 앞으로도 그러겠죠. 하지만 최대한 좋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큰 오빠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지가 길을 벗어났을 때, “이리 와” 해줄 수 있는. 물론 이지는 투덜거릴 거예요. 또 그래야 하고요. 지금의 투덜거림 정도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이상으로 가더라도 그건 우리의 방식일 테고요.

Q. 두 분 관계가 상당히 신기하네요. 거정은 큰 오빠 같기도 하지만, 조각가 같은 느낌도 들어요. 이지라는 작품을 조각하는.
거정 : 그렇게 느껴준다면 고맙죠. 이지는 훌륭한 원석이고, 잘 다듬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저를 더 괴롭히고, 캐묻기도 하고, 말썽도 피우고, 다툼도 많아지면서, 더 깨어나고 경험도 더 쌓일 겁니다.

Q. 이지는 어떤가요? 갈피가 잡히는 기분도 드나요?
이지 : 갈피도 잡히면서, 동시에 가지가 많아지는 느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두 개의 가지가 있었다면, 지금은 두 가지가 곧아지고 단단해지는데, 한편으로는 더 많은 가지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거정 : 곡을 쓰고 디렉팅을 하면서, 저도 굉장히 많은 말을 해요. 그러다보니 저 또한 가지가 많아졌어요. 그런데 그게 좋지 않게 느껴지더라고요.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았죠. 이지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후반에는 단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마무리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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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앨범을 듣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이지 : 곡 작업을 할 때 제가 그랬던 것처럼, 듣는 분들도 장면을 상상하고 떠올리며 들었으면 좋겠어요.
거정 : 아무리 뿌리 깊고 튼튼한 나무라도, 열매가 맛이 없으면 안 팔리잖아요. 마찬가지로 제가 아무리 훌륭한 곡을 쓰거나 가사를 만들어도, 보컬리스트인 이지의 영향력이 98% 이상이에요. 그래서 이 앨범 자체가 이지의 성장통인 것 같아요. 확실히 지난번보다 생각도 많아지고, 성숙하긴 했어요. 앞으로 더 지켜봐야죠.

Q. 공연 계획도 있나요?
거정 : 11월 28일에 홍대 웨스트브릿지에서 하려고 해요. 세션 구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 우리 두 사람까지 더해서 6인조로 생각 중이에요.

Q. 이번 앨범, 라이브로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거정 : 네. 맞아요. 세션 맨들도 다들 되게 잘해요.(웃음) 앨범 녹음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공연도 함께 하게 될 거예요. 아직은 우리가 이름을 더 알려야 하지만, 2집을 낼 때쯤에는 주 경기장에서 공연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하하.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플럭서스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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