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걷는 선비'
'밤을 걷는 선비'
MBC ‘밤을 걷는 선비’ 1회 2015년 7월 8일 수요일 오후 10시

다섯줄 요약
세자(이현우)를 지키려던 김성열(이준기)는 연이은 궁의 비극 앞에서 결국 이 왕조의 200년의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악한 흡혈귀인 귀(이수혁)에게 지배 받는 비극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그가 사랑하고 지키려던 이들은 다 귀에게 살해당한다. 오랫동안 사랑해온 이명희(김소은)와의 혼인을 사흘 앞두고 모든 비극은 한꺼번에 닥쳐온다.

리뷰
한여름 밤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오싹한 드라마가 될 전망이라던 제작진의 얘기는 빈말은 아니었다. 으스스하고 서럽고 애절한 공포와 연민의 드라마가 될 것 같은 기대감을 잔뜩 주는 첫 회였다. 초반에는 세자와 성열의 우정의 이야기처럼 시작해 ‘음란서생’ 식의 유머도 기대하게 했는데, 사실 좀 겉도는 대화들이긴 했다. 분위기가 급히 공포와 비극으로 옮겨가면서 극 초반의 농담이 어색해지기도 했다.

성열과 명희가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누이 같은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참 예뻤다. 서로 보기만 해도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두 연인은 특히 혼례를 코앞에 둔 사이라는 설렘을 잘 살렸다. 닥쳐올 끔찍한 비극을 모르는 채 사랑에 흠뻑 취한 둘의 모습은 아름답고도 처연한 이 사랑에 깊이를 더했다.

고려 왕조의 멸망과 조선 건국에 흡혈귀 귀의 힘이 작용했다는 비밀은 흥미진진했다. 200년 이래 왕좌를 흡혈귀에 기대어 지켜왔다는 왕의 비굴함이 정말 실감났고, 내 아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순 없다는 세자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성열은 끔찍하게 아름답고 요사스러운 귀 앞에서 “이 나라가 정녕 네 발아래 있다고 여기는 것이냐?”라고 묻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단연 귀였다. 이수혁의 다소 불균형해 보이는 아름다움은 귀의 오싹함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흡혈귀였다.

보는 이는 아무래도 명희가 귀의 제물이 될까 내내 불안했는데, 결국 “부디 살아 주세요. 살아서 뜻을 이루세요”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죽어가는 장면은 정말 애절했다. 이로서 성열이 흡혈귀로 변하여 제일 먼저 맛본 피는 약혼녀 명희의 피 였다. 성열은 그 순간의 비참함과 피 토하는 심정을 얼굴 표정만으로도 고스란히 보여주었고, 명희는 마지막까지 단아한 순정을 지켰다. 명희는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라는데, 첫 회만으로도 시청자의 기억 속에 각인될 만한 캐릭터였다. 이후 아주 오랫동안 뱀파이어로 세상을 떠돌아야 할 성열의 고뇌와 운명의 굴레가 그 잃어버린 첫사랑에서 연유할 거라는 안타까움까지 잘 드러냈다.

예상했던 것보다 굉장히 전개가 빨랐다. 단 한 회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전개되어 잠깐 사이에 수많은 죽음과 역모, 200년 왕가의 비밀 등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200년 전 흡혈귀와의 약조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것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200년 동안 흡혈귀에게 산 사람의 피를 바쳐 말하자면 왕자들의 후궁들이 차례로 죽어가며 ‘흡혈귀의 여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 왕조가 유지되었다는 끔찍한 건국의 비밀까지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성열에게 “사람이 으뜸인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다짐하던 총명한 세자의 비극도 가슴 아팠다. 그런데 흡혈귀와 피의 전쟁을 겪고 나서 바로 시간을 건너뛰어 시장통으로 간 뒤로는, 극의 톤이 너무 바뀌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은 후유증인가. 심하게 건너뛰었다는 느낌과 시간의 경과가 어느 정도인지도 알려주지 않아 궁금증만으로 끝났다.

수다 포인트
– 제작진은 CG 말고 이준기의 연기력을 믿어 주세요. 빨간 눈 보다는 그의 서러운 표정이 더 호소력 있답니다.
– 다람쥐 특별출연은 오늘만이겠죠? 흐름을 다 깼어요.
– 착한 뱀파이어로 등장한 양익준 감독, 참 어설픈데 보게 만드는 신스틸러.

김원 객원기자
사진. MBC ‘밤을 걷는 선비’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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