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용
[텐아시아=이정화 기자] 장기용은, 탁월했다. 그를 촬영하던 사진기자 입에선 “역시 탑 모델”이라며 칭찬의 말이 쏟아졌다. 물 흐르는 듯했던 움직임에 대한 감탄이었다. 이어 다양한 표정을 요구하자, 그는 등지고 서 있던 흰 배경을 드라마가 있는 무대로 바꿔 놓았다. 감정과 동작이 하나 되어 매력은 배가 되었다.Q. ‘선암여고 탐정단(이하 선암여고)’ 제작발표회 때 인상적이었다. “여배우들이 많아서 시력이 좋아지는 느낌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나.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소리는 못 냈지만, 속으로 많이 웃었다.
장기용은 2012년 모델로 데뷔한 후, 줄곧 패션계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러던 중, 2013년 아이유의 ‘분홍신’ ‘금요일에 만나요’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방송가에 얼굴을 알렸다. 2014년엔 오종록 감독이 연출한 TV조선 ‘최고의 결혼’의 시급 남편 배드로 역할로 연기의 세계에 들어섰다. 최근엔 JTBC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4차원 수학천재 안채준 역할을 맛깔나게 소화해내 배우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런웨이에서 브라운관으로, 성공적인 안착을 한 장기용을 만났다. 그에게 패션이 아닌, 연기에 대해 물었다.
장기용 :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그날 질문이 적어도 4개는 올 줄 알았는데, 2개밖에 안 와서 분량을 조금이라도 살려보려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그렇게 좋진 않았다. 하하. 그래도 웃으셨다니 다행이다. 아무도 안 웃으셔서 발에 땀도 나고 그랬거든.
Q. 말은 그렇게 해도, 신인 배우인데 주목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장기용 : (주목 받는걸) 좋아한다. 제작발표회 ‘현장’이지 않나. 현장에 있으면, ‘뭔가 하나는 건져야 한다 기용아, 터뜨려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 첫 작품이었던 TV조선 ‘최고의 결혼’ 제작발표회에서도 하나 터뜨렸었다. (핸드폰을 보여주며) 그때 영상이 있다.
Q. 하하, 어땠길래. 한 번 보자.
장기용 : (영상 보며) 이때 내 얘기 때문에 분위기도 많이 좋아졌다. 아, 그런데 입술하며… 엄청 긴장한 거 보이죠? 하하. 난, 나로 인해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얘가 처음에 봤을 땐 진지한 면이 있는데 그 뒤에 또 다른 매력이 있네, 라는 말을 듣는 것도 좋고. 제작발표회가 끝나고선 선배님들도 나를 좀 더 친근하게 대해주셨다. 그래서 항상 그런 현장이 있으면 하나는 하자, 한 건은 하자, 이렇게 되는 것 같다. 결론은 뭐, 웃기고 싶다 이거지. 하하. Q. 그런 성향이기에 ‘선암여고’에서 맡은 안채준이란 역할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극중 캐릭터가 천재이지만, 굉장히 엉뚱하지 않았나.
장기용 : 원래 내 캐릭터는 안채준이 아니었다. 다른 역할로 캐스팅되었는데, 채준이가 다양한 매력을 지닌 역할이라고 생각돼서 감독님과의 첫 미팅 때 안채준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신인이었지만, 자신 있게 얘기한 걸 좋게 보셨는지,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Q. 욕심이 날만 했던 게, 안채준은 다양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그의 4차원적인 매력에만 점점 포커스가 맞춰져 가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장기용 : 미팅 때까지만 해도 천재니깐 지식적으로 어필하는 신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걱정이 됐지. ‘난 천재가 아닌데 잘할 수 있을까?’ 하고. 하하.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그런 신들이 별로 없어서 의아하긴 했다. 엉뚱하고 4차원적인 매력, 그 뒤에 완전 스마트한 매력! 그런 걸 기대했는데. (웃음)
Q. 채준의 스마트함은 장기 둘 때(7화) 빛을 발했다.
장기용 : 그 신, 정말 오래 찍었다. 장기 두고 조명 바꾸고, 또 하고 또 바꾸고, 위치를 옮겨가면서 했는데, 그 신만 한 9시간? 정도 걸렸다.
Q. 그 신에서의 표정들이 너무 코믹해서 잘 안 잊힌다.
장기용 : 그 표정 말고도 좀 더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지었는데 편집됐더라. 아쉬웠다.
Q. 촬영하면서 특히 재미있었던 신이 있었나?
장기용 : 채준이가 미도를 만나기 전에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는 신(5화)이 있다. 촬영 전에 그 장면을 더 재미있게 찍고 싶어 감독님과 상의를 했다. 그때 감독님이 “신뢰감 있는 목소리”란 대사를 즉석에서 제안하셨다. 감독님이랑 나랑 개그 코드가 잘 맞는 부분이 있었던 게,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들이랑 여러 가지 것들을 잘 조합해서 연기를 하는데 감독님 웃음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더라. 그 신 찍을 때 즐거웠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던 옷 고르는 장면도. 그게 원래는 엄청 짧은 신이었다. 그 신을 어떻게 좀 살려보고 싶어서 나름대로 액션도 넣고 그랬는데 방송을 보니 다 살아서 나왔더라. Q. 얘기를 들어보니, 왜 안채준에게 끌렸는지 알겠다.
장기용 : 내 롤모델이 하정우 선배님이다. 딱 봤을 땐 엄청 진지하신데 그 묵직함 뒤에 위트가 있으시지 않나. 유머가 장난 아니시다. 예전에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신 모습을 보면서 나도 10년이나 15년 뒤에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연기로 인정받고, 토크쇼 같은 곳에 나와서는 저런 느낌이면 좋겠다고. 멋지시다, 정말.
Q. 이번에 ‘선암여고’에 출연하면서 ‘이건 꼭 이뤄야지’ 라고 생각했던 게 있었나?
장기용 : 나 때문에 TV를 끄진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였다. 그거라면, 내가 나올 때 보기 불편하진 않으시다는 거니깐. 어쨌든 TV에 내가 나오는 거잖아. 지방에서 올라온 내가(장기용은 울산 출신이다) TV에 나온다는 건 거의 경사 났다, 이런 느낌인 건데. (웃음) 이왕 나오는 거 좀 더 제대로, 예쁘게 나와야 하는데 그러기엔 아직 내 경험이 부족하니 조금이나마 욕심을 낸다면 나 때문에 TV를 안 껐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Q. 주변에선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하던가?
장기용 : 친한 친구들은 안 본다. 욕한다. (웃음) 낯간지럽다고 못 보겠다고 하더라. 평소엔 내가 장난도 많이 치고 그래서인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선가 보다. 아직 연기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일단 내가 서울말을 쓰며 연기하니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하하. 반면에 가족이랑 여자인 친구들은 응원을 많이 해준다. 처음 하는 것치곤 나쁘지 않더라, 라면서. Q. ‘선암여고’ 이전엔 ‘최고의 결혼’에 출연했다. ‘잉여공주’와 ‘괜찮아, 사랑이야’에 잠깐 나오기도 했고.
장기용 : 은근히 카메오로 ‘호잇 호잇’ 출연했었지. ‘잉여공주’땐 TV에서만 봤던 배우들이 나와 함께 연기를 하고 있는데… 와. 그땐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Q. 그 정도였나. (웃음) 그래도 공식적으로 첫 작품인 ‘최고의 결혼’에선 꽤 안정적이었던 것 같은데.
장기용 : 그랬나? 다행이다. 조은지 선배님이 잘 챙겨주셨다. 지금도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고 있고.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신인이었을 텐데 누나가 그걸 이해해주면서 나한테 많이 맞춰주셨다. 배우 조은지는 영화로 많이 봤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서 첫 촬영 전에 유튜브에서 선배님에 대한 공부를 하고 갔는데… 수상 소감이나 평소의 말투 같은 것들을 보니 카리스마가 엄청나더라.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못 하면 완전 욕먹을 것 같은데, 하고. 하하. 그런데 그 포스 뒤에 친한 누나처럼 챙겨주시는 면도 있으셔서 촬영 끝날 때까지 너무 고마웠다.
Q. 패션계에선 정상급 모델이지만, 연예계에선 신인 배우다. 두 분야에 동시에 몸담고 있기에 현장에서 자신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의 온도 차가 느껴졌을 것도 같다.
장기용 : ‘잉여공주’나 ‘괜찮아 사랑이야’땐 신인이어도 그런 생각을 못 했는데, ‘최고의 결혼’땐 엄청 작은 존재가 되었다. 연출이셨던 (오)종록 감독님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도 많이 들었지. 하하. 그런데 그런 모습 뒤로, 내 칭찬을 해주셨다고 그러더라. 스태프들과 선배들한테 그 얘기를 듣고 감동 받았었다. 감독님이 내가 좀 더 잘하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던 거였구나, 하면서.
Q. 속상한 걸 겉으로는 전혀 티를 안 냈나 보다.
장기용 : 티 내면 안 되지. ‘최고의 결혼’ 쫑파티 때 카메라 감독님이 내게 “신인이지만 흔들리지 않고 네 페이스대로 뻔뻔하게 잘했다. 그래서 예뻐 보이더라”라고 말씀해주셨다. 현장에서 30년 정도 있으신 분에게 그런 얘기를 들으니 신인으로서 민폐를 끼치진 않았구나, 생각했다. 나 때문에 NG가 나거나 촬영 시간이 딜레이 되거나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예전에 차승원 선배님이 자신이 모델에서 신인 연기자로 데뷔했을 땐 나보다 훨씬 더 심하게 욕을 먹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듣지 않으려고 촬영 전에 준비를 많이 했다. 모델로 인지도 얻어서 배우 하는구나, 키만 큰 놈이 여기 와서 연기하네, 이런 소리 듣기 싫어서.
Q. ‘선암여고’의 여운혁 감독은 어땠나. 칭찬해주시던가?
장기용 : 새해에 감독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쓴 뒤에 신인이어서 많이 부족하지만 촬영장에서 해가 되지 않게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라고. 그랬더니 감독님이 ‘아니야, 너 정말 잘하고 있어. 넌 좋은 배우가 될 것 같아. 지금처럼만 좀 더 집중해서 잘하면 될 거야’라고 해주셨다. 격려의 말씀이셨던 것 같다. Q. 사실, 연예계란 곳이 불과 몇 개월 만에도 스타가 되는 일이 가능한 곳이다. 패션계에서 이쪽으로 올 때 그런 부분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나.
장기용 : 뜨고 싶다기보다 이왕 시작한 일이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정도다. 관심이란 건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다. 스물한 살, 그쯤에는 빨리 뜨고 싶다, 관심 받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바뀌었다.
Q. 스물한 살이면, 2012년, 모델 일을 시작했을 때 아닌가.
장기용 : 스무 살 말에 회사(YG케이플러스)랑 계약했는데, 그때 난 계약만 하면 당연히 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스물한 살이 되는 해부터 5월까진, 내가 패션모델인지 일반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친구들 만나서 놀기만 했고. 그러다가 그 해 6월에 내가 하고 있던 치아 교정기가 빛을 발해서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때부터 모델로서 출발해서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거다. 그 무렵에 난 빨리 뭔가 되고 싶다, 이런 마인드를 가졌었다면 지금은 억지로 그러지 않는다. 특히나 연기는 평생 할 수 있는 거니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 멀리 보고 가기로 했다. 일단은 앞에 있는 것부터 해나가자 하면서. 지금 당장 작품에 들어가지 않으면 연기 수업을 받고, 여행도 다니면서 나를 채우면 된다. 이쪽 세계에선 주위 시선에 흔들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난 내 갈 길을 가면 된다.
Q. 주변에서 한 번에 ‘빵’ 뜬 케이스도 종종 볼 텐데.
장기용 : 음, (안)재현이 형이나, (남)주혁이? 김우빈 형처럼 엄~청 잘 된 정도의 인맥은 내게 없다. 하하. 재현이 형은 저번에 압구정 로데오에서 한 번 만났는데, (장난스러운 말투로) 차가 바뀌었더라. 그런 건 부럽다. 인지도나 이런 것보다 경제적인 부분이. 난 빨리 집을 사고 싶다. 아니, 짓고 싶다.
Q. 오, 집을 짓는다니.
장기용 : 쉴 때만큼은 편하게 쉬자는 주의라서, 예쁜 집에서 제대로 쉬고 싶다. 집에 들어오면 기운이 나게 말이다. 기용아 일단 씻고 쉬자, 그러고선 영화를 딱 틀어놓고 소파에 누워서 편안하게. 아… 이게 집이지. 마침 지난주에 이소라 누나랑 하는 ‘디자인스 투어’를 판교에서 촬영했는데, 외국 마을 같더라. 거기에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스트가 건축가 분이었는데, 그분과 내가 스타일이 맞더라고. 난 무작정 큰 집보다 있을 거 다 있는 실용적인 집이 좋은데 그분의 집이 그런 구조였다. 1층에 부엌과 거실이 있고, 2층에 자신의 방과 아이들 공간, 3층엔 다락방. 들어가자마자 신세계를 접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돈을 좀 많이 벌면 그런 식으로 집을 지어야지. (농담조로) 건축가님과 친분도 생겼으니 할인도 좀 받아서. 하하. Q. 목소리가 좋다고 느꼈는데, 계속 얘기를 해보니 더 괜찮다. 노래도 잘하지 않나. 파스텔뮤직과 합작한 컴필레이션 앨범 ‘사랑의 단상’의 타이틀곡 ‘아이키스(Eyekiss)’에도 참여했고, 유튜브로 공개되었던 ‘장기용의 비디오 다이어리’에서도 노래하는 장면이 나와서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기용 : 오, 보셨구나.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여태까지 공연을 두 번 해봤는데, 한 번은 ‘아이키스’ 나왔을 때 앨범에 참여한 사람들과 했고, 최근에는 주우재 형이 하는 ‘그모내’(모델 주우재가 진행하는 개인 라디오 방송) 콘서트에서 했다. 긴장했었지만 무대를 즐겼던 그 느낌이 좋았다. 노래하면, 그냥 좋다. 나중에 내가 잘 되더라도 정기적으로 공연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소극장에서 작게 하는 그런 공연.
Q. 이제 두 작품을 거쳤다. 한 걸음씩, 씩씩하게 전진해 나가야 할 때일 것 같다.
장기용 : 연기를 시작한 지 아직 1년이 안 되었다. 자신감이 없는 게 당연한 거겠지만, 연기적으로 자신감이 더 많이 생겨서 연기자 장기용을 잘 보여 드리고 싶다. 촬영장 분위기도 편해져야 할 거고, 배우로서의 친분도 좀 생겨야 할 거고… 결론적으로는,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 같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급하게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레 나도 점점 나아지면서 모델 장기용이 아닌 연기자 장기용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기겠지.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는?
장기용 : 올해의 목표는, 다음 작품에 들어가는 거다.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니 다 잘 됐으면 좋겠다. 지금처럼만. 앞으로의 목표는… 좋은 사람, 사람 냄새 나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같이 연기해보는 게 내 꿈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부터 잘 쌓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로부터 “저 캐릭터는 장기용이니깐 가능한 거였어” “역시 장기용이야, 크~” 그래, “(감탄의) 캬~”를 들었으면 좋겠다.
텐아시아=이정화 기자 lee@
사진. 구혜정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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