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동시에 개봉된 10편의 영화 포스터.
[텐아시아=황성운 기자] ‘살인의뢰’ ‘채피’ ‘소셜포비아’ ‘위플래쉬’ ‘드래곤 블레이드’ ‘우주로봇 싸이’ ‘포스 마쥬어’ ‘해피 해피 와이너리’ ‘위대한 유산’ ‘망대’ 등 상업영화부터 다양성영화까지 총 10편의 영화가 12일 같은 날 개봉됐습니다. 매주 이처럼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곤 합니다. 여기에 기존 상영작까지 더해지면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는 더 많아집니다.모든 영화가 대중의 선택을 받으면 좋으련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상영관 배정을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극장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프로그래머 입장에선 진땀을 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고, 넉넉한 상영관에서 개봉되고, 흥행까지 성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한 편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기까지, 멀티플렉스 프로그래머와의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풀었습니다.
# 프로그래머는 어떤 일을 하나요?
각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선택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가장 주된 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주 개봉될 영화를 보고, 그 영화의 개봉 규모 등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판단 내용을 각 극장에 전달해줍니다. 또 영화 상영에 필요한 외장하드 입고, 직영점(멀티플렉스)에 한해서 부금 등 정산을 책임지기도 합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범위에서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 신규 개봉작에 대한 프로그램은 언제 결정되나요?
일반적인 개봉일은 목요일입니다. 그리고 목요일 개봉될 영화들의 프로그램은 개봉 주 월요일에 최종 확정됩니다. 물론 미리 오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벤져스2’ 등 전 세계가 기다리는 초대형 기대작의 경우에는 당연히 일찌감치 열리겠죠. 단, 이런 작품 역시도 최종 프로그램 확정은 개봉 주 월요일입니다.
# 매주 개봉되는 영화들이 많은데, 기준은 어디에 두고 있나요?
무작정 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나름대로의 편성 기준을 가지고 있고, 여러 가지를 고려합니다. 주연 배우는 누구냐, 어떤 감독이 연출했느냐, 제작비나 P&A의 규모 등 영화 내적인 것부터 언론 노출 정도, 시사회 후 언론 반응이나 대중의 반응 등 외적인 요소까지 광범위하게 체크합니다. 스타배우일수록, 유명 감독일수록,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작품일수록 대중의 관심을 끄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기사에 달린 댓글은 물론 트위터 등 SNS까지 확인힙니다. 이들이 실제로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니까요. 이처럼 여러 요소를 두고 판단해 프로그램을 짜게 됩니다.
#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나요?
한국 영화라서 더 많이 배정하고, 외화라서 덜 배정하는 건 없습니다. 비교 대상 자체가 다르다고 보면 됩니다. 외화는 외화끼리, 한국 영화는 한국 영화끼리 비교한다고 보면 적당하게 설명될 것 같습니다. 외화의 경우 그 비슷한 영화를 레퍼런스로 판단을 합니다.
# 프로그래머가 극장에 걸리는 영화 전부를 직접 정하는 건가요?
모든 극장의 영화를 일일이 정해주는 건 아닙니다. 가령,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점에 걸리는 영화와 회차, 시간 등을 확정해서 ‘일방적인’ 통보를 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여러 정보와 회의를 통해 내려진 판단으로 각 극장에 ‘가이드’를 제시한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A’란 영화는 2개관 사이즈, ‘B’란 영화는 1개관 사이즈 등처럼 대략적인 사이즈 규모를 알려주는 식입니다. 프로그래머 역시 가이드를 주고 나면, 시간표를 보고 각 극장별 상황을 알게 됩니다. 특히 각 극장마다 관객 성향과 특성이 있습니다. 물론 본사에서도 각 관의 특생을 파악하곤 있지만, 아무래도 극장이 더 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본사에서 내려준 가이드와 각 극장의 관장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구체적인 규모가 결정됩니다.
# 프로그래머도 좋아하는 영화가 있고, 장르가 있을 텐데 개인의 취향이 반영될 수는 없나요?
개인의 취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준이 있고, 시스템화가 돼 있는 거죠. 또 혼자서 프로그램 모든 걸 결정한다면 모를까 여러 사람이 모여 조율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한 사람이 좋아해도, 또 다른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 정보와 의견을 취합하고, 조율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이 프로그램을 하는데 있어 크게 반영되는 건 아닙니다.
# 기준대로 한다고 하지만, 상영관 배정 문제는 종종 발생하는데요?
최근에 영화가 너무 많습니다. 한 주에 개봉하는 영화가 평균 10편이고, 기존 상영작까지 더해지면 매주 30편정도입니다. 영화 편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뛰기 시작해 지금 배급사수도 100개가 넘습니다. 1년에 라인업 가지고 꾸준히 활동하는 배급사도 50개 정도입니다. 당연히 영화를 배급하는 모든 배급사들을 만족시키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배급사와 영화관 사이의 갭을 줄이는 게 중요합니다. 각 배급사의 요구와 내부의 판단 기준을 두고, 갭을 줄이는 거죠. 결국 배급사와 영화관 사이를 조정하는 조정자 역할인 셈입니다.
# 신규 개봉작이 아닌 기존 상영작의 경우 어떤 기준에 의해 내리나요?
신규 개봉작이 아닌 경우에는 철저히 ‘실적’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적’은 당연히 흥행입니다. 이 때문에 프로그래머가 터치 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개봉 첫 주에 흥행이 안 된 영화를 계속해서 많이 걸어주긴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상황을 예로 들면, ‘쎄시봉’ 경우 개봉 첫 주말 3일 동안 1만 2,167회 상영됐는데 아시다시피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봉 2주차 주말 3일 동안에는 6,036회,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극장에서 내려서 관객이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보는 영화라서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이런 경우는 있습니다. 끝물인데 조금이라도 스코어를 잡기 위해서 경품 이벤트 등을 내걸면서 조금 더 유지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을 경우입니다.
# 요즘은 IPTV가 영화의 또 다른 유통 창구로 있다는데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극장 상영 없이 IPTV로 직행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IPTV만을 노리고 외화를 수입하거나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 개봉 편수가 증가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러 영화들이 극장 동시 상영 타이틀을 원하고 있으니까요.
# IPTV도 경쟁이 치열하나요?
극장 못지않게 치열합니다. 아무래도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많은 사람이 돈을 내고 안방에서 즐길 테니까요. 찾아보기 힘든 구석진 곳에 있으면 보기 힘들겠죠. 그래서 극장 동시 개봉 타이틀이 더더욱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몇 해 전만 해도 특별한 기준이 없었지만, 점차 경쟁이 심해지면서 그 기준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IPTV 업체마다 다르긴 한데, 최초 개봉관이 전국 50개 이상이어야 합니다. 또 극장 상영 중에 극장 동시 개봉 타이틀을 위해서는 상영관 20개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극장에선 가차없이 내려버리죠. 그래서 약간의 ‘꼼수’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 대규모로 개봉되는 영화들도 금세 IPTV에 풀리던데요?
이 역시도 ‘극장 동시 개봉’ 때문입니다. 대규모로 개봉되는 상업영화의 경우 처음부터 IPTV로 가진 않습니다. 흥행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극장에서 모든 영화가 내려간 뒤에 IPTV에 입성하면 극장 동시 상영 타이틀을 얻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예상보다 흥행이 저조한 영화는 조금 더 일찍 풀리기도 하고, 장기 흥행이 되는 경우에는 조금 더 늦게 풀리기도 합니다.
텐아시아=황성운 기자 jabongdo@
사진제공. 각 영화사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