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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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정시우 기자]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이 남자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날마다 새로워지길 희망한다. ‘순수의 시대’는 그런 신하균의 도전의 일환이다. 사랑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리는 김민재는 분명 이전엔 본 적 없는 신하균의 얼굴이다. 그에겐 아직도 보여주지 않은 얼굴이 많다.

Q. 사실 정치영화인 줄 알았다. 이토록 절절한 멜로물일 줄이야.(웃음)
신하균:
하하. 그런 반응들이 꽤 있다.

Q. 20대에는 멜로와 인연이 없더니 뒤늦게 멜로 포텐이 터지는 분위기다.
신하균:
그러네? 하하하하. 기분? 좋아요~ 좋아요~ 나이 덕분에 조금 더 농익은 멜로감성을 표현 할 수 있는 것 같다.

Q. 20대 때 표현했다면 달랐을 거라는 의미인가.
신하균:
좀 다르지 않았을까?

Q. 어떤 면에서? 사랑관이 달라진 건가.
신하균:
이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긴 했다. 어릴 때는 아름다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극히 현실적이 됐다. 예전에 외적이 부분을 추구했다면 지금은 친구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관계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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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순수의 시대’를 통해 놀랐던 점 두 번째. 신하균의 첫 사극인 줄 몰랐다. 신하균 하면 왠지, 이미 모든 장르를 섭렵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워낙 변화무쌍한 역할을 많이 해 와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신하균:
모르겠다. 말한 대로 다양한 작품들을 해 와서 그런 생각들을 하시지 않나 싶다. 나 역시 다른 의미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왜 지금까지 사극을 못 접해봤지?’ 하긴 했다.

Q. 의식적으로 사극을 피한 건 아닐 테고.
신하균:
전혀. 기회가 안 닿았을 뿐이다. 촬영 중에 섭외가 들어와서 시기가 안 맞은 것도 있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어 좋다.

Q. 연기하면서 느꼈던 것과 비교하면, 베드신이든 액션신이든, 현재 ‘순수의 시대’에 담긴 표현 수위는 어떤가.
신하균:
더 많이 촬영을 하긴 했다. 액션 씬도 정사신도 더 길었는데 많이 축약이 됐다. 이 정도에 만족한다. 수위가 더 높았으면 이야기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Q. 김민재라는 인물은 밑바닥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캐릭터다. 그토록 어렵게 쌓아올린 것들을 사랑을 위해 버린다는 게 쉽지는 않지 않나.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나.
신하균:
물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과연 본인의 의지로 올라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김민재는 멋지고 완벽한 인물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도 있고 여러 가지로 결핍된 게 많은 사람이라고 봤다.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칼 쓰는 것 밖에 없고, 따뜻한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답답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가희(강한나)에게서 출구를 발견하고 돌진해가는 모습이 바보 같기도 하지만 연민이 갔다. 동시에 표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지는 건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로망’이니까. 현실에서는 못하거든. 영화니까 보여 줄 수 있는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 같다.

Q. 그런 사랑, 현실에서는 정말 힘들까. 신하균이라면 했을 것 같기도.(웃음)
신하균:
하하하. 모든 걸 다 버리고 사랑 하나만 보고 돌진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그런 상대를 만나기도 쉽지 않고. 나도 아직 그런 사랑, 못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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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포털에 뜨는 신하균 연관 검색어가 ‘근육’이다. 몸을 보면 단기간에 만든 근육은 아닌 것 같은데.
신하균:
몸이 너무 부각 안 됐으면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웃음) 사실 내가 상상하는 조선시대의 무사는 배가 조금 나오고, 씨름 선수처럼 다리가 두껍고, 목도 적당한 짧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몸으로 정사 씬은 찍으면 그림 상으로 조금 그럴 것 같아서(웃음) ‘기름기를 빼자’ 마음먹었다. 감독님도 몸이 이 인물의 과거를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기름지게 먹지 않고, 악으로 버티면서 살아온 사람. 고생을 많이 해서 상처도 있고 근육이 성질 난 것 같은 느낌의 사람. 그래서 전문 트레이너와 2달 가량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그 이후에는 유지를 위해 식사 조절과 간단한 운동을 병행했다. 지방이 너무 없으니까 촬영하면서 꽤 힘들었다.

Q. 영화 ‘고지전’ 때는 촬영하며 산을 타느라 자동적으로 운동이 됐던 걸로 안다. 당시 홍보 인터뷰에서 ‘체지방이 0%까지 내려갔었다’고 말했더라.
신하균:
아, 그거 잘못 나간 기사다. 0%까지는 아니다. 0%면 살아 있을 수가 없지.(웃음) 이번의 경우 가장 많이 떨어진 게 2.7%였다. 힘들었다. 금방 지체고 무기력해지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영화를 찍었던 것 같다.

Q 많은 한국영화들이 외국영화에서 제목을 가져온다. ‘순수의 시대’의 경우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1993년 작품과 이름이 같은데, 그런 대작과 같은 제목에 출연하는 건 배우로서 어떤 느낌인가. 부담도 될 것도 같은데.
신하균: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안상훈 감독님 말씀이 우리 영화 ‘순수의 시대’ 영어 표기(Empire of Lust)와 마틴 스콜세지의 ‘순수의 시대’ 영어 표기(The Age Of Innocence)는 다르다고…(일동 웃음) 실제로 워낙 다른 영화이기도 하다. 또 요즘 관객들은 예전 영화를 잘 모르지 않을까 싶다.

Q. 사실 캐스팅을 모르고 시나리오를 봤다면, 장혁이 연기한 이방원이 당신인 줄 알았을 거다. 뭔가 광기를 지닌 인간은 당신 전공과목 아니었나.
신하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방원을 했다면 식상했을 거다. 개인적으로도 민재라는 캐릭터를 제안 받아서 좋았다.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줄 기회가 생겼구나, 재미있을 것 같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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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서 직접 해 보니 어땠나?
신하균:
사실 내 경우 캐릭터에 대한 동질감이나 매력 그리고 이야기에 재미를 느끼는 것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끝난다. 아까도 말했듯 시나리오를 보고 민재에 대해 느낀 감정은 결핍이 많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서 한 가닥 찾은 희망이 사랑인데, 상대의 사랑에 100% 순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바보같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꼈던 거고, 또 딱 거기까지인 거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감정을 덜어내고 내가 가진 면모 중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꺼내서 연기하려고 한다. 그건 다른 작품 할 때도 마찬가지다.

Q. 작품에 들어가며 캐릭터를 한 발 떨어져서 살핀다는 뜻인가.
신하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너무 내 감정에 빠져서 연기하지 않으려 한다. 내 감정을 해소하려고 영화를 하는 건 아니니까. 이야기가 지닌 본질과 재미를 전달해주고, 캐릭터가 잘 살아 숨 쉴 수 있게 하는 것이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관적으로 빠져드는 것에 특히 경계한다.

Q. 이전에도 이런 연기관이었나, 아니면 바뀐 건가? 초반의 당신을 떠오려보면 굉장히 본능적으로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곤 했는데. ‘지구를 지켜라’ 때 그 느낌이 특히 강했고.
신하균:
바뀐 거다. 초반에는 캐릭터에 굉장히 자주 빠져 들었었다. ‘지구를 지켜라’ 때 깊이 빠졌던 것도 맞다. 그렇다고 미친놈처럼 산 건 아니다. 일상생활은 잘 했다. 월드컵도 봤고.(일동 웃음) 하지만 캐릭터에 너무 몰입하다보면, 전달해야 할 걸 놓칠 위험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젠 어느 정도 뒤에서 객관적으로 바라 볼 줄 아는 눈이 생긴 것 같다.

Q. 생각의 변화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여유일까.
신하균:
오래 전 연극을 할 때였다. 그땐 아무것도 모를 때라 ‘그래, 슬픈 감정에서는 정말로 슬퍼야 해! 화난 장면이니까 나도 화가 나야 해!’ 그랬었다. 그런 나에게 선배들이 술 마시면서 그런 얘기를 해 주셨다. “그래. 눈물 흘리는 거 좋아. 그런데 네가 눈물 100리터를 흘려봐. 관객들이 한 방울이라도 흘려주나.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관객들을 울게 해야 진짜인 거야” 듣다보니 다 맞는 말인 거다. ‘오, 그렇지! 내가 내 감정에 젖어서 눈물 흘린다고 관객들이 다 받아주는 건 아니지!’ 그때 그 말씀이 연기하면서 종종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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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민재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물이다. 배우인 이상 신하균이라는 이름은 기록으로 남을 텐데, 먼 훗날 후대가 어떻게 평가해줬으면 좋겠나.
신하균:
누군가가 평가를 해 주는 것으로도 만족한다. 평가라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나. 욕을 하든 칭찬을 하든 내 영화를 보면서 어떻다고 얘기해 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Q. 당신의 어떤 작품을 꺼내서 함께 봐 줬으면 좋겠나.
신하균:
아유~ 내가 앞으로도 할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하하하. 지금 한 작품을 꼽는 건 너무 이르다.

Q. 최근 행보를 보면 영화 못지않게 드라마에도 관심이 상당한 듯하다.
신하균:
내 영화를 보고 좋아해주시는 분들과는 다른 층에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다. 다양한 반응이 고맙고 재미있기도 하다. 긴 호흡의 영화와는 분명 다른 재미와 다른 어려움이 드라마에 있는 것 같다.

Q. 그런 당신의 행보를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보다 많은 대중들이 신하균이라는 배우를 알아서 좋다!’ 다른 하나는 ‘당신의 특기를 펼칠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가 예전보다 사라져서 아쉽다!’ 그래서 하는 질문인데 독특한 작품들이 이젠 당신을 찾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 스스로가 이젠 유한 작품에 꽂히는 건가.
신하균:
일단 그런 작품들이 없다. 상상력 풍부한 작품들이. 아까 ‘지구를 지켜라’ 이야기가 나왔지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제작되어지기 힘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였으니 나올 수 있었던 영화 같고, 그런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그렇다. 나는 앞으로도 영화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인물을 해 보고 싶다. 그런 욕구는 항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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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새로운 쪽(드라마)으로도 재미를 찾은 것 같아 다행이다. 생각 이상으로 적응을 너무 잘 해서 오랜 팬으로서 사실 배신감도 느끼지만.
신하균:
으하하하하. 안 해 본 거라서 흥미로운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매체는 내게 새롭긴 하다. 다양하게 많은 걸 해 보고 싶다.

Q. 선배들로부터 신하균이라는 배우는 인터뷰하기 힘든 배우라는 이야기를 오래 전에 들었었다. 지금의 당신을 보면 상상이 잘 안 가는 부분이다.
신하균: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말을 거의 안 했다. 사실 지금도 인터뷰라는 자리가 그렇게 편하지는 않다.(웃음) 예전부터 견지하고 있는 생각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다 알아서 보고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거다. 연기라는 게 그렇지 않나. 다 보이거든. ‘저 배우가 저런 생각이 있으니까 저런 작품을 했겠지’ ‘저 배우의 상태가 어땠다’가 딱 보면 드러나지 않나. 다 보이는데 내가 굳이 입 밖으로 얘길 할 필요가 있나 싶은 거다. 그나마 이젠 인터뷰 경력이 꽤 쌓여서 기술이 생기긴 한 것 같다. 그래서 예전보다는 편하게 얘기를 하긴 하는데, 기본적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직접 보시고 느끼는 대로 판단하는 게 맞는 것 같다.

Q. 기자나 관객 평에 흔들리지 않는 편인가.
신하균:
흔들린다기보다는, 내가 의도하거나 힘들게 촬영했던 것들이 다르게 해석되거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속상하다. 힘도 빠진다. 그런데 또 의도치 않게 너무나 큰 사랑을 받는 경우도 있다. 작품은 정말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인기나 타인의 시선만을 쫓아서 연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내 주관대로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주의다.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해 보고 싶은 게 내 심정이다. 물론 거기에서 흥행에 실패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가 흥행 성적만으로 평가되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당장은 기분이 안 좋겠지만 길게 보면 그런 자극이 또 있어야 내가 더 많이 고민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을까 싶다.

텐아시아=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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