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고 가감없다. 배우 한예슬을 만나면 누구라도 그런 분위기가 먼저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함은 때론 비바람에 더 거세게 직면하게 하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강하게 부딪쳐 넘어지기도 한다. 3년 전 숱한 이야기를 낳으며 촬영장을 떠났던 한예슬은 특유의 유쾌 발랄한 에너지를 가득 안고 다시 돌아왔다. 3년 만에 카메라 앞에 선 작품인 SBS 주말드라마 ‘미녀의 탄생’은 작품성이나 연기력 면에서 썩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배우 한예슬의 존재감을 다시금 알리는 데는 꽤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배우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한예슬도 이전보다 훨씬 성숙해졌다고 자평했다. 웃음과 배려심은 늘고,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는 관대함도 커진 시간이었음을 그는 인터뷰를 통해 증명해보였다.Q. SBS ‘미녀의 탄생’이 오랜만의 컴백작이라 촬영하면서 적지 않은 긴장감이 있었겠다.
한예슬: 생각보다 무척 편하게 촬영했다. 남자배우(주상욱)와의 호흡도 굉장히 좋았고 내가 재미있게 하다 보니 시너지도 더 났던 것 같다.
Q. ‘미녀의 탄생’은 변신 전 기혼여성인 사금란과 미녀가 된 사라 등 두 가지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한예슬: 처음에는 로맨틱 코미디의 발랄한 느낌으로 가다 멜로 연기를 할 때는 이전에 했던 연기에서 힌트를 얻기도 했다. MBC ‘환상의 커플’의 주인공 안나 모습을 차용하기도 하고 SB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서 보여줬던 순수한 일편단심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했다. SBS ‘타짜’ 속 난숙이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도 물론 있었고. 그래서인지 새로운 인물을 만든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전의 역할이 많은 자산이 됐다.
Q. 한예슬의 기존 이미지는 드라마 ‘환상의 커플’ 속 모습이 많이 각인되서인지 도도함과 깃들여져 있는 모습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 속 사라 캐릭터로 인해 어수룩하면서도 사랑스러움을 표현한 것 같다.
한예슬: 그런 면에서 스스로도 만족스럽다. 캐릭터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내게 꼭 맞는 느낌이 들었달까. 1석 2조의 효과를 보여준 것 같다.
Q. 실제 한예슬은 어느 쪽에 더 가깝나?
한예슬: 다양한 부분을 다 가지고 있다. 도도하고 까칠한 부분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선 한없이 사랑스럽다. 기분 좋으면 누구보다 발랄했다가, 한없이 우울하고 땅으로 꺼질 때도 있다. 아마 모든 인간이 그렇지 않을까? 그런 다양한 부분을 잘해석해서 연기해야 하는 게 바로 배우라는 직업이기도 하고. 내가 이런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Q. 컴백 전 3년이라는 공백이 있었다. 결정하고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겠다.
한예슬: 오랜만에 하는 작품인데 캐릭터가 잘 안 맞아떨어지면 어울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 컴백작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다. 사실 이전에도 몇 번 다른 작품 출연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뭔가 마음이 불편했었다. 100% 자신감이 생기지 않은 부분이 있어 컴백을 미뤘었는데 ‘미녀의 탄생’은 보자마자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Q. 무엇보다 연기를 즐기면서 하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한예슬: 시청자들도 아시는 것 같다. 내가 힘들어하면 힘들게 보시고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하면 그렇게 느끼신다. 행복해하는 에너지를 시청자분들도 받으시는 것 같다. 사람의 기운이라는 게 참 중요하구나, 란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사라는 내게 행운이었던 캐릭터다.
Q. 제작발표회에서나 작품 속에서나, 상대배우 주상욱과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부분도 굉장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한예슬: 주상욱 씨는 정말 편안하고 좋은 파트너였다. 사실 말 없고 조용한 분들은 관상용이다.(웃음) 너무 말이 없으면 재미가 없고, 이미지 관리에 너무 힘쓰면 불편할 수 있는데 주상욱 씨는 내가 어떻게 하든 항상 잘 맞춰주시더라. 그래서인지 자신을 ‘배려의 아이콘’이라고 칭하더라. 정말 재밌고, 여자친구 소개시켜주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이다.
Q. 오랜만에 돌아온 촬영장의 기운이 예전과는 달라진 지점이 있었나?
한예슬: 많이 성숙해졌다. 예전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흔들림이나 타협이 없었다. 이제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다른사람들은 다를 수도 있겠다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됐다. 내 의견은 이렇지만 다른 사람이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나만 뚜렷하고 정확하고 솔직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알아줄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진 않더라.(웃음) 이 세상엔 다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다들 내 마음같지 만은 않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면에서 ‘내가 미성숙했구나’라는 점을 깨달았다.
Q. 공백기간에 한예슬을 지탱해줬던 힘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한예슬 :누구나 흔들리고 힘들 때가 있다는 걸 알았다. 겉으로 드러나게 알 수는 없어도 어디선가 누구든 힘든 일을 겪는 순간이 있다. 어떻게든 겪게 되는 일이라면 그걸 잘 극복해서, 그게 나한테 흠집이 아니라 내가 더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 같다. 내가 더 좋은 모습으로 껍질을 깨고 나왔을 때 그게 승리라는 생각을 했다. 어찌됐든 나는 더 지혜로워질 거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단단해지고 아름다워질 거다. 치여서 위축되면 그거야말로, 정말 억울하고 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피할 수 없다면 열심히 해야지.
Q. 자신의 의견의 뚜렷한 편이라 손해를 볼 때가 있나?
한예슬: 무난하면 어디서든 적응이 쉽다. 너무 솔직하면 ‘왜 혼자 튀나’하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수상소감에서 남자친구(테디)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싫어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거고.(웃음)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게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뭔가 얻는 게 있으면 그 반대급부도 있고, 그런 것 같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됐다.
Q. 아, 얘기가 나왔으니 물어보는데 시상식에서의 사랑고백은 깜짝이벤트였나
한예슬: 서프라이즈가 아니면 재미가 없지.(웃음) 그 친구(테디)도 여배우와는 처음 연애를 하는데 내가 드라마에 들어가다보니 잘 못 만나서 좀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소감 한 방으로 다 해소가 됐다.
Q. 테디의 반응은 어땠나?
한예슬: “오 마이 갓! 정말 나에게 한 거야?”라며 난리가 났지.(웃음)
Q. 결혼 생각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예슬: 아직 잘 모르겠다. 결혼은 사회제도에 묶이는 부분이니 또 다른 세계인 것 같다. 이후 출산과 육아가 있을테니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쌓는 데 약간 불리한 면도 있을 거고. 그래도 아이를 낳으려면 결혼을 해야지(웃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게 다음 스텝이긴 한데 지금은 연애 기간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난 지금이 정말 좋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했으니 더 많이 연애하고 결혼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Q. 둘이 어떻게 만나고 사랑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한예슬: 연말 송년 파티때 여러 사람들과 저녁 먹는 모임에서 처음 봤다. 첫눈에 반해서 내가 먼저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정말 멋있었다. 각자의 이상형이 있겠지만 눈빛이 정말 멋있고 잘생겼다. 내가 “잘생겼다”고 하면 아니라며 농담하지 말라고 하는데, 내가 볼땐 정말 잘생겼다. 서로 분야가 너무 다르면 이해를 못 하기도 하고, 같으면 신비감이 없는데 우리는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지만 영역이 조금 다르다 보니 서로 재미있어 하는 부분이 많다.
Q. 테디도 한예슬을 위한 깜짝 이벤트나 곡을 썼다든지 한 게 있나?
한예슬: 항상 나를 생각하면서 곡을 쓴다고 한다.(웃음) 수많은 곡 속의 주인공이 내가 아닐까란 생각을 나 혼자 하곤 한다.
Q. 두 사람이 음악작업을 할 기회도 있을까 ?
한예슬: 해보고 싶긴 하다 예전엔 OST를 부른 적이 있는데 살짝 불렀는데 제대로 한번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걸로. 가수 활동은 아니고 연인끼리 작업할 수 있는 추억거리 정도되지 않을까.
Q. 차기작은 어떤 걸 하고 싶나?
한예슬: ‘이거다’ 하는 게 오면 정말 좋겠다. 이전에는 긴가민가하는 작품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요즘엔 확신이 있는 작품을 하자는 주의로 바뀌었다. 다만 어두운 역할은 피하고 싶다. 악역은 해보고 싶다. 정말 호쾌한 악역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주는 작품도 좋다. 그러면 아무리 힘들어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Q. 액션이나 사극은 어떤가?
한예슬: 액션은 피하고 싶다(웃음) 예전처럼 유연한 20대의 몸도 아니고. 다시 감을 찾으려면 기간이 필요한데 지금은 몸이 무척 뻣뻣하다, 다시 액션을 하려면 준비기간이 좀 길어야할 것 같다. 사극은 예전에 MBC ‘해를 품은 달’을 할 때 한가인에게 물어봤는데 ‘또 다른 세상’이라고 하더라. 매력적이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많다.
Q. 이제 배우로서도 꽤 경력을 쌓았다. 후배들과의 연기, 또는 연하와의 연기는 어떨까
한예슬: 나이를 먹었지만 나는 아직 소녀다운 게 많다. 내 안의 ‘소녀 근성’이 무척 심하다. 그래서인지 후배들하고 대면했을 때 어색한 게 있더라(웃음) 저 친구에게 내가 선배다운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그런 건 어렵다.
Q. 작품이 끝날 즈음 불법 부동산 취득에 대한 뉴스가 나왔고, 해명하는 과정이 있었다.
한예슬: 정확히 해명한 그대로다. 합법적으로 취득했고 명의를 법인으로 바꾸면서 신고가 지연되면서 누락이 된 부분이다. 성실하게 과태료를 납부하겠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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