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미생’의 끝과는 별도로, 변요한에게서 사람들은 당분간 한석율의 얼굴을 찾을 것이다. 실은 교집합이 극히 적은 두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변요한을 통해 한석율의 흔적을 찾으려 할테다. 이런 현상에 변요한은 아직 적응 중인 듯 보였다. 그에게 ‘한석율스럽게’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잠깐 그는 무력해지는 표정을 짓고 만다. 마치 한석율이라는 허구의 존재는 앞으로 변요한이라는 배우가 보여줄 얼굴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이라 항변하듯 말이다.
변요한은 변요한이다
변요한은 변요한이다
Q. ‘미생’이 끝난 이후, 시간이 지났다. 변요한 : 굉장히 오래 전 일같이 여겨진다. 허전하기도 하고, 이렇게 인터뷰를 아직 진행 중이니 여전히 그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성민 선배님은 드라마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인터뷰를 할 때 차근차근 말을 잘 하라고 조언해주시더라. 그것이 작품을 끝내고 배우가 해야할 마지막 일이라고 하셨다.
Q. 굉장히 디테일하게 챙겨주는 선배인가보다. 변요한 :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까지도 다 말씀해주신다. 이경영 선배님도 그렇고, 선배님들 대부분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려 했다. 좋은 일은 같이 축하해주고, 나쁜 일은 같이 아파해주는 그런 팀이었다.
Q. 드라마 촬영 중에는 극중 역할의 직함으로 서로를 불렀다 들었는데, 드라마가 끝나서인가, 선배님이라고 호칭이 바뀌었다. 변요한 : 섞어서 쓴다. 포상휴가 때까지만 하더라도 역할의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는데, 이제는 작품이 끝나서인가. 선배님이라는 호칭도 같이 쓰고 있다.
Q. ‘미생’은 당신에게 첫 드라마인데, 어떤 경험이었나. 주로 독립영화 쪽에서 활약했다. 변요한 : 드라마와 독립영화의 차이점? 시스템에 관한 것이라면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초반에 드라마라는 매체의 연기를 접해보지 못했기에 부담감은 있었지만 들어가고 나서는 역할 대 역할로 호흡하는 것이 중요했다. 작품에 들어갈 때는 잡생각은 오히려 하지 않는다. 늘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한다.
Q. 워낙 에너지들이 꿈틀대는 배우들과 함께 한 작품이다. 끝나고 나서는 서로들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나. 변요한 : 사람 사는 이야기 했다. 건강하게 잘 살자고. 공연이면 공연, 독립영화면 영화, 등 앞으로도 쭉 좋은 작품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로 다른 매체에서 연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길을 걷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 일을 하는 것, 그분들은 그분들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현장도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마찰도 생기고 좋은 일도 생기는데, 이번 현장은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서로가 소통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장난을 멈추지 않고 재미있게 작업한 것 자체를 처음 체험했는데, ‘정말 좋은 분들이다. 나도 좋은 자세로 잘 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Q. 그래서 이성민 씨가 처음에 ‘우리 드라마는 착한 배우들이 해야한다’고 말했나보다. 변요한 : 사실 착하다는 것은 기준이 없는 모호한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착하다고 느꼈다. 에너지가 좋아서 그런 것 같다.
변요한은 변요한으로 꽉 채운 뒤, 다시 새로운 인물을 입고 싶다고 말한다
변요한은 변요한으로 꽉 채운 뒤, 다시 새로운 인물을 입고 싶다고 말한다
Q. ‘미생’ 이전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들었다. 변요한 : 2012년~2013년에 굉장히 많은 작품을 찍었다. 운이 좋게도 작품이 끝없이 들어왔다. 첫 작품 ‘토요근무’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게 되면서 감독님과 스태프 쪽에서 연락이 자주왔다. 그렇게 꼬리의 꼬리를 물고 쉬지 않고 작품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욕심이 너무 많더라. 물론 그 나이는 당연히 욕심을 가질 수 있는 나이이지만, 어느 순간 내 연기를 보면서 작품이 아닌 변요한이 좀 더 보이는 것 같았다. 좁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연기를 5~6개월 쉬었다. 나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 것이다.
Q. 그런 결정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변요한 : 이대로 계속 가면 연기를 오래 못한다고 느꼈다. 아주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고, 빨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즈음 대학을 보내주신 스승님을 만났는데, 많은 힘을 주셨다. 보자마자 별 말씀 드리지도 않았는데, ‘힘드냐? 다 힘들다. 그래도 요한이는 잘 할 거야. 하던대로만 하면 돼’라고 하셨다. ‘하던대로만’이라는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지금도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 사람들이 요즘 차기작 계획을 많이 물어보는데, 나는 ‘하던대로 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아마 초심, 연기를 처음 접했을 때의 열정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일 것이다.
Q. 그렇지만 지금처럼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된 이후에도 초심과 열정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변요한 : 나도 모르게 나는 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좋은 동료들이 너무 많다. 나를 잡아줄 수 있는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 동료배우들이, 선후배들이 많다. ‘사랑을 많이 받게 됐다’는 표현도 자주 듣는데, 나는 사랑에 대한 갈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나는 지금의 사랑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닌, 작품이 사랑받은 것에 덤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길 바라는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한석율이라는 이름도 함께 기억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이상을 갈구하지 않는다.
Q. 아마 당분간은 많은 이들이 당신에게서 변요한이 아닌 한석율을 찾을 것이다. 당신은 그런 부분에서 당혹감도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변요한 : 한석율이라고 생각하고 밝게 인사해주는데,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마치 내가 하이파이브라도 할 것이라 예상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전혀 적극적이거나 사교적이지 않다. 그런 부분에 있어 충돌이 일어나 순간적으로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친다. 돌아서면 그런 것들도 미안한 것이 내 마음이다. 좀 더 서글서글하게 했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Q. 중국 유학 경력이 있다. 언제 어디에서 공부했나. 변요한 : 중국은 고1 때부터 왔다갔다 했다. 방학 때마다 2개월 정도 나가있다 들어오고, 그러다 스무살 초반 하얼빈에서 유학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예고 진학을 하려고 했지만 아버지 반대가 컸다. 아버지가 미국과 중국 중 유학할 곳을 결정하라고 하셨고 미국보다 중국이 비주류적이고 신기한 느낌이 있어 중국을 택했다. 어렸을 때부터 ‘무간도’, ‘영웅본색’을 보고 자랐으니 로망도 있었다. 그런 한편, 배우라면 언어 하나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라는 마음도 내심 먹었었다. 또 (연기를 반대하는)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내 영혼을 펼칠 것이라고도 마음 먹었다.
Q.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나. 변요한 : 한국이라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유치하고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다. 형들과 아기처럼 장난치며 놀았다. 아직도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치열했다. 한 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 손짓발짓하고 사전을 뒤졌다. 하지만 사실 중국에 처음 갔을 때는 거의 2주 동안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던 시간도 있었다.
변요한의 다음, 예상불가능한 영역이다
변요한의 다음, 예상불가능한 영역이다
Q. 2주 동안? 변요한 : 낯가림이 심하다. 아버지 권유로 또 내가 가겠다고 해서 왔지만 뭔가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이 찾아왔다.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화가 났다. 기분이 괜히 그랬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4인용 침실을 통째로 빌렸다. 그만큼 사람들을 피하고 싶었다. 밥도 거의 먹지 않고 1층 편의점에서 소시지와 콜라를 사와 정말 별 짓을 다 해서 먹었다(웃음). 소시지를 사서 라면에도 넣어먹고 비행기에서 가져온 고추장을 짜서 먹기도 하고, 그러다 용기를 낸 것이 쌀밥을 사러 나간 것이다. 그걸 가져와 고추장에 비벼 먹는데 눈물이 나오더라. 욕을 하며 먹었다. 자학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욕하면서 ‘나가서 뭐라도 하자’ 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트레이닝 복을 입고 체육관에 간 것이다. 축구팀이 들어가 형들을 만나게 됐다.
Q. 중국에서 아버지 몰래 연기를 접해볼 생각은 안했나. 변요한 : 그 시기에는 그 정도의 용기는 없었나보다. 막연히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 속에 중국에서 언어를 파고 돌아오자가 내 목표였다. 만약 그 때 그곳에서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면 한국에 못 왔을 것 같다. 형들과 함께 축구, 탁구도 하고 중국인과 언어교환을 하며 하루하루 지루하지 않게 살았다. 그 때 함께 공부한 형들이 다 좋은 곳에 취업한 것을 보면 우리는 그때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그런 경험을 20대에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
Q. ‘미생’ 이후의 계획을 들려준다면. 변요한 : 아직 ‘소셜포비아’와 ‘마돈나’라는 작품이 있기도 하고, 차기작에 시급하게 들어가고 싶지 않다. 충분히 다시 스위치를 켜고 내 마음이 변요한으로 다 찬 다음, 작품으 만나고 싶다.
Q. 당신이 당신 스스로가 되는 것은 어떤 시간을 보낸 뒤인가. 변요한 : 얄팍하게만 알던 사람말고,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한 사람들과 운동을 하는 시간이다. 탁구, 볼링, 축구, 당구 여러가지를 하는데, 다 연기와 연결된다고 주장한다(웃음). 볼링의 에너제틱함, 당구의 섬세함과 계산, 탁구의 순발력과 민첩성이 연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나름의 철학이다. 무엇보다 집중하며 사람들과 땀흘리는 것이 좋다. 또 음악도 좋아한다. 취향은 없다. 어느 날은 팝송을 듣다가 어느 날은 아이돌도 듣고 또 어느 날은 전혀 들어보지 못한 노래도 듣는다. 그렇게 많이 보고 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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