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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영화 ‘더 인터뷰’였다. 지난 달 24일,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믹영화 ‘더 인터뷰’를 만든 소니픽처스의 컴슈터 시스템이 사이버 공격으로 다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날의 공격으로 최근 개봉한 브래드 피트의 ‘퓨리’는 물론 아직 뚜껑도 열지 않은 ‘애니’ ‘스틸 앨리스’ ‘미스터 터너’ 등의 영화들이 줄줄이 해적 영화 온라인 사이트에 유출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까지 동원된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북한이 물망에 오른 상황. 하지만 북한은 “우리를 지지하는 세력의 의로운 소행이 분명하다”고 뒷짐지고 있을 뿐 ‘김정일 동지’께서는 말이 없다.

그런데 진짜 사건을 이제부터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니가 싸워야 하는 것은 ‘북한 인 듯 북한 아닌 북한 같은’ 의문의 세력이 아니라,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큰 손들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왜? 이번 해킹을 통해 진짜 털린 것은 영화 데이터가 아니라, ‘소니의 입’이기 때문이다. 해커 집단에 의해 소니 고위층이 주고받은 부적절한 이메일과 내부 문서가 잇따라 공개되면서 소니는 졸지에 ‘뒷담화의 대왕’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소니 해킹이 점점 끔찍한 악몽이 되고 있다”는 블룸버그 통신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니의 지금 입장은 ‘점입가경, 설상가상, 사면초가, 첩첩산중’ 그 어떤 말을 갖다 붙여도 부족하다. 아, ‘해킹 리턴’이라 하면 조금 그럴싸하려나.

# 할리우드 스타들 ‘비밀 가명’ 노출… ‘사생할 비상’

‘SNL’에 출연, 소니해킹으로 자신들의 비밀사진도 유출됐다고 풍자하는 ‘더 인터뷰’ 주인공들
‘SNL’에 출연, 소니해킹으로 자신들의 비밀사진도 유출됐다고 풍자하는 ‘더 인터뷰’ 주인공들
‘SNL’에 출연, 소니해킹으로 자신들의 비밀사진도 유출됐다고 풍자하는 ‘더 인터뷰’ 주인공들

사생활 보호에 취약한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가명은 필수 아닌 필수였나 보다. 특히 은밀하다면 은밀할 수 있는(?) ‘호텔 투숙’은 그들로서는 알리고 싶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 하지만 스타들(톰 행크스, 주드 로, 제시카 알바, 나탈리 포트먼 등)이 호텔 등을 예약할 때 사용한 예명이 이번 사건으로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이들 배우들이 과거 호텔을 들락날락한 행적을 추적할 수 있는 일이다. 깊숙이 파고들면 누구와 함께 묵었는지도. 최근 영국에서 열린 ‘테이큰3’ 프레스 데이에서 리암 니슨은 소니 유출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뉴스를 보자마자 내 이름도 올랐는지 확인해봤더니 없었다”는 말로 할리우드 스타들의 ‘불편한’ 혹은 ‘불안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 안젤리나 졸리 “실력 없는 싸가지”, 마이클 패스밴더 “성행위 중독자”

가명 유출에 그친 스타는 그래도 안젤리나 졸리에 비하면 사정이 낫다. 안젤리나 졸리는 이번 해킹사태로 이미지에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배우. 해킹된 메일 안에는 안젤리나 졸리를 향한 험담이 담겨 있었는데, 영화 ‘잡스’를 준비하던 제작자 스콧 루딘과 소니픽쳐스 에이미 파스칼 공동회장이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졸리는 실력도 없는 싸가지” “얼굴마담(camp event)”이라고 비난한 사실이 알려졌다. 자신을 안주 삼아 히히덕거린 파스칼 회장에 대한 졸리의 심경이 어떻냐고? 아마도 아래 사진 한 장이 모든 걸 설명해 주지 않을까 싶다.(아래 참조)

자신을 뒷담화 한 파스칼 회장과 조우한 안젤리나 졸리. 눈빛이 살벌하다
자신을 뒷담화 한 파스칼 회장과 조우한 안젤리나 졸리. 눈빛이 살벌하다
자신을 뒷담화 한 파스칼 회장과 조우한 안젤리나 졸리. 눈빛이 살벌하다

안젤리나 졸리는 지난 10일 할리우드 리포터가 개최한 조찬 행사에서 파스칼 회장과 조우했는데, 파스칼 회장을 싸늘하게 응시하는 졸리의 눈빛이 디즈니 악녀 ‘말레피센터’에 잠시 ‘빙의’한 듯하다. 파스칼 회장은 당분간, 저런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적지 않게 만나지 않을까 싶다.

# 오바마도 피할 수 없었던!

에이미 파스칼 공동회장과 제작자 스콧 루딘의 대화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포함돼 있었다. 하필이면 인종문제로. 두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조찬 회동을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영화 유형이 무엇인지를 놓고 토론을 벌이면서 흑인 대통령을 비하했다. 파스칼은 루딘에게 “이 빌어먹을 조찬 때 대통령한테 뭘 물어보지? ‘장고:분노의 추적자’를 좋아하냐고 물어볼까?”라고 말했다. 이에 루딘이 “‘노예 12년’이 어떠냐”고 답하자 파스칼은 “아니면 ‘버틀러’나 ‘싱크 라이크 어 맨’은 어때”라고 조롱했다. 두 사람이 언급한 영화는 모두 노예 제도를 다루거나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들이다.

이 사실이 공개되고 논란이 되자 파스칼은 성명을 통해 “내가 스콧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은 둔감하고 부적절했다 (해킹으로 도난된) 사적인 대화이기는 하지만, 내가 쓴 것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고, 날아간 화살이다.

# 스파이더맨, 마블 군단에 합류할 뻔


스파이더맨, “나, 마블로 돌아갈래”를 외치는 듯
스파이더맨, “나, 마블로 돌아갈래”를 외치는 듯
스파이더맨, “나, 마블로 돌아갈래”를 외치는 듯

그동안 스파이더맨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루머들도 사실로 확인됐다.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캡틴 아메리카3: 시빌워’에 스파이더맨이 포함될 뻔 했으나 무산된 사실이 해킹된 이메일을 통해 드러나면서 전세계 마블 팬들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해킹된 이메일을 보면 마블 스튜디오의 입양 보낸 자식 스파이더맨을 되찾아 오긴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드러난다. 잘 알려졌다시피 스파이더맨은 마블 코믹스에 속한 히어로지만 영화 판권을 소니픽쳐스가 갖고 있는 상태. 때문에 스파이더맨은 ‘어벤져스’를 비롯한 마블 스튜디오 영화에 출연하지 못한 비운의 히어로로 불리고 있다.

이에 마블 스튜디오는 소니 측에 향후 마블이 새로운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제작하고, 이를 소니가 마케팅과 배급 권한을 갖는, 나름 파격적인(?) 조건으로 딜을 제시한 사실이 이메일에 드러났다. 하지만 ‘황금알을 낳아 주는’ 입양 자식을 소니가 쉽게 돌려줄리 만무한 일. 소니의 반대로 크로스오버는 결렬된 상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대한 소니의 속내

사실 스파이더맨은 소니가 어떻게든 풀어야 할 숙제다. 스파이더맨의 마블 합류를 향한 팬들의 염원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소니가 스파이더맨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을 맡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저조한 흥행성적으로 소니는 당초 2016년 내놓기로 했던 3부를 2018년으로 미룬 상태다. 당시 영화 팬들 사이에서 히어로 영화가 너무 로맨스에 치중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된 바 있는데, 소니 내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심각한 얘기가 오고 간 사실이 이번 문건 유출을 통해 명확해 졌다. 특히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 퇴출 이야기까지 오고가는 걸로 알려져, 향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향방은 알 수 없게 됐다.

해커들, 12월 24일에 소니를 혼란에 빠뜨릴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선언
해커들, 12월 24일에 소니를 혼란에 빠뜨릴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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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콩 리턴’ 위협하는 ‘해킹 리턴’

영화라는 것은 어차피 사람과 사람간의 일이다. 특히 할리우드처럼 천문학적인 액수가 오고가는, 그러니까 영화가 거대 비즈니스로 취급받는 세계에서 말 한마디는 ‘천냥 빚’이 아니라 한 회사의 기둥뿌리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 과연 할리우드 스타들의 분노는 식을까. 오바마로 촉발된 흑인 팬들의 분노는 사그라질까. 유출된 영화의 금전적 손해는 어디까지 갈까. 스파이더맨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까. 파일 유출에, 뒷담화 공개에, 스파이더맨 불화까지 겹치게 되니 소니의 앞날이 산 넘어 산이다. 게다가 소니를 해킹한 의문의 집단이 최근 “소니를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할 고급 정보를 크리스마스이브에 인터넷에 배포 할 것”이라고 선포한 상황이니, 정말이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더 인터뷰’ 스틸,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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