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티
수많은 가요들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그 중에서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는 음악을 찾기 힘들다. 어떤 노래가 히트하면 죄다 그 스타일을 쫓아간다. 때문에 어디서 들어본 듯한 노래들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 중에서 지문을 지닌 노래들은 보석같이 빛나기 마련이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김사월 X 김해원의 ‘비밀’, CR태규의 ‘외로움’와 같은 곡들이 그렇다. 가사를 곱씹어보게 되는 노래들, 가슴 속에 울림을 남기는 노래들이다.자이언티 ‘양화대교’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내가 돈을 버네, 돈을 다 버네 엄마 백원만 했었는데 우리 엄마 아빠, 또 강아지도 이젠 나를 바라보네. 전화가 오네 내 어머니네 뚜루루루 아들 잘 지내니 어디냐고 물어보는 말에 나 양화대교 양화대교…’(‘양화대교’ 가사 中)
자이언티는 R&B 싱어송라이터 중에 가장 선두에 위치한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으로 들어오면서 R&B, 소울 장르로 곡을 직접 쓰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이 꽤 늘었다. 이들 대부분은 R&B의 종주국인 미국의 트렌드를 재현하는데 급급하다. 자이언티의 경우 이를 넘어서 R&B를 가지고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립해가고 있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 중 하나다. 그는 R&B의 멜로디와 리듬 위로 특유의 그루브를 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줄 안다. ‘양화대교’가 대표적인 곡이다.
‘양화대교’는 자이언티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가사로 옮긴 것이다. 실제로 택시 기사였던 아버지의 삶을 이제 성인이 된 자신의 삶과 함께 이야기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자아낸다. 어쩌면 신파로 흐를 수 있는 내용일 수 있지만, 자이언티는 특유의 세련된 멜로디와 복고적인 맛을 살린 편곡, 그리고 독특한 보컬 스타일로 미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 기존의 국내 R&B의 가사는 거의 대부분이 사랑 이야기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서 진취적으로 나아간 경우는 그나마 섹스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다. ‘양화대교’는 기존의 포크가수들이나 할 법한 삶에 대한 가사를 R&B로 멋지게 구현해냈다. 이는 분명 기존 가요의 어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의미 있는 행보다.
김사월(왼쪽), 김해원
김사월 X 김해원 ‘비밀’‘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말할게 누구도 이해 못하는 너에게만 말할게 이해한다면 그건 유령이 되는 거야. 나의 마음이 너에게 전해질수록 이해 받을수록 우리는 빛을 잃겠지. 나를 아껴줘 아니 그냥, 내버려둬’(‘비밀’ 가사 中)
김사월과 김해원이 함께 발표한 앨범 ‘비밀’에 담긴 곡. 둘은 2012년에 홍대 인근 클럽에서 공연을 하다가 만났다. 여성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은 솔로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공연에 세션으로 참여한 김해원과 만나 듀오를 결성하게 됐다고 한다. 이 노래는 마치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의 듀엣을 듣는 듯하다. 이 노래는 원래 김사월 혼자 불렀던 곡이다. 그녀 혼자 노래할 때에는 보사노바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김해원의 편곡을 거치면서 샹송의 질감이 가미됐다.
‘비밀’의 가사는 한 편의 시, 또는 단편을 읽는 느낌이다.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말할게, 누구도 이해 못하는 너에게만 말할게, 이해한다면 그건 유령이 되는 거야’는 계속 되뇌게 되는 가사다. 비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둘이 속삭이는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 농밀함이 부러워진다. 유령이 되더라도 이해해보고 싶은 가사. 독특한 발음으로 노래하는 김사월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훈육된 가수들에게서는 느껴볼 수 없는 야릇하고, 또 치명적인 매력이다.
CR태규
CR태규 ‘외로움’‘벗어날 수 있을까 이 익숙한 외로움 채워질 수 있을까 이 공허한 내 마음. 사람들을 만나면
잠시 잊은 듯 하지 바쁜 하루를 보내면 괜찮아 진 듯 하지. 하지만 밤이 오고. 혼자 남게 되면 조용히 나를 기다려 온 외로움이란 녀석이’
외로움에 대한 노래는 많다. 하지만 정작 외로움을 달래주는 노래는 드물다. CR태규가 델타블루스의 곡조 위로 덤덤하게 노래하는 ‘외로움’은 심연의 외로움을 자극하는 ‘센’ 노래다. 블루스맨 CR태규는 하헌진, 씨없는 수박 김대중, 김태춘 등과 함께 인디 신에서 ‘델타 블루스’를 구사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들은 블루스 선배들인 신촌블루스의 이정선, 엄인호, 그리고 김목경, 채수영와 구별되게 블루스의 초기 스타일인 델타 블루스를 구사하는데, 이는 이제 인디 신에서 하나의 작은 흐름이 됐다.
블루스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메시지의 전달에 있는데, CR태규는 델타 블루스 특유의 기타 주법 위로 자신의 목소리를 확실히 전달하고 있다. ‘외로움’에서는 어쿠스틱기타 한 대로 붐챙(Boom-Chang) 주법이라고 불리는 델타 블루스 특유의 연주로 투박한 가락을 만들어낸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연주방식이지만, 그 위로 던지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블루스라는 음악 속으로 들어가되, 그 안에서 자신의 어법과 이야기를 찾아내려 애썼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는 것, 대중적인 것만 쫓아가서는 절대로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없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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