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 배우 문소리는 영화 ‘자유의 언덕’으로 홍상수 감독과 네 번째 만났다. 문소리 역시 어엿한 홍상수 작품 단골이다. 보통 배우와 감독이 작품을 통해 두 번 만나기도 쉽지 않다. 아무리 촬영 기간이 짧아도 말이다. 홍상수 작품만의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 가 그리 좋은 걸까. 문소리는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는 것, 그게 어떤 공부보다 좋다”며 “홍 감독님 작업이 그렇다”고 답했다.Q. 최근 베니스영화제에 다녀왔는데, 오랜만에 방문한 소감이 궁금하다.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았던 터라 기억하는 관계자들이 많았을 것 같다.
영화제. 최근 문소리는 오랜만에 베니스를 찾았다. ‘오아시스’에 출연한 그녀에게 신인상을 안긴 바로 그 영화제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지만, “홍 감독님과 가면 오붓하고 간소하다”며 “즐길 수 있다기보다 덜 긴장하는 것 같다”고 덤덤하다. 그리고 문소리는 ‘감독’ 그리고 ‘스태프’로 부산영화제를 찾는다. 배우로 영화제를 갈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예능. 문소리는 현재 SBS 예능프로그램 ‘매직아이’에 고정 출연 중이다. 그동안 그녀의 행보를 봤을 때, 예능에 출연해 웃고 떠드는 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물론 문소리를 둘러싼 고정관념이겠지만. 더욱이 ‘매직아이’의 현재 성적이 썩 신통치 않다. 문소리는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는다”며 “조금 더 적응해보자, 이런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문소리 : 영화제는 누구랑 가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 익숙한 느낌도 있긴 하다. 가봤던 데 그대로더라. 홍 감독님과 가면 오붓하고, 소박하고, 간소하면서도 진심을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된다.
Q. 영화제를 좀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것 같기도 한데.
문소리 : 즐길 수 있는 나이는 아닌 것 같다. 만약 지금 처음 갔으면 아마 정신 못 차렸을 수도 있다. 영화제에 임하는 애티튜드를 알기 때문에 덜 긴장하는 거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재밌어진 것도 있다.
Q. 영화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번에 부산영화제에는 ‘배우’ 문소리가 아니라 ‘감독’ 문소리로 방문한다.
문소리 : 대학원 첫 학기에 전공과 상관없이 듣는 필수과목 수업이 있는데, 그 수업시간에 누구나 다 (단편을) 찍어야만 했다. 그래서 만든 작품이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같이 한 스태프나 배우들을 생각했을 때 상영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거에 감사하다. 쟁쟁한 감독님들 사이에 껴 있으니까 풋풋해 보이면 다행이다. (웃음)
Q. 감독인 남편의 영향도 있고 해서 혹시 장편 연출에 대한 생각이 있는 줄 알았다.
문소리 : 연출하기 싫어진다. 누구보다 더. (웃음) 그 고통을 지켜보면 연출은 할 게 못 되는 구나 싶다. 그냥 나는 영화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거다.
Q. 연출한 작품의 제목이 ‘여배우’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문소리 : 여배우 문소리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영화 속 이야기와) 똑같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영화제에서 연출 의도를 써 보내라고 해서 거기에 ‘여배우 문소리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름의 유명세와는 달리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 두 가지가 충돌하면서 일으키는 아이러니가 있는데 그걸 통해서 여배우에게 중요한 건 뭐고, 우리가 여배우한테 바라는 건 뭔지 생각해보는 작품’이라고 썼다.
Q. 그리고 조감독으로 참여한 대학원 친구의 작품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다.
문소리 : 그건 진짜 소감이 남다르더라. 내 작품은 경쟁에 가는 게 부담스럽다.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게 내가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인생의 계획에는 연출로서 확고한 뜻이 있는 게 아니다. 이처럼 단편 경쟁에 진출하고, 수상하는 게 감독이 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한다. 그런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런 친구의 한 자리를 빼앗는 것 같아 불편하다. 나는 경쟁 진출이 큰 의미 없지만, 그런 친구들에겐 매우 큰 의미일 수도 있는 거니까.
Q. 심적으로는 조감독한 작품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게 더 좋은 가 보다.
문소리 : 그건 그냥 기뻐하면 되는 거니까. 감독으로 참여하는 건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 20대 중후반 감독님들과 GV를 안 하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일 수도 있다. 또 차려입고 가기도 뭐하고, 안 차려 입고 가기도 뭐하고. (웃음)
Q. 예능도 궁금하다. ‘매직아이’에 출연 중인데 예능 고정 출연이 처음이다. 개인적인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지만, 예능에서 웃고 떠드는 문소리가 그리 익숙하진 않다.
문소리 : 너무 어색하게 받아들여지면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내가 낄 자리가 아닐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답지 않은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내 의견과 생각을 내 화법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 준다. 그 갭이 크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네요’라고 얼른 말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조금 더 적응해보자’ ‘내 몫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Q. 예능에 고정 출연하겠다는 생각은 왜 한 건지 궁금하다.
문소리 : 문득 지금쯤 한 번 하고 넘어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거 아니야’ ‘아니 왜’ 이런 반응은 없었다. (웃음) 그리고 평생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번 해보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Q. 사실 시청률이 조금 저조한 편이다. 이런저런 쓴소리도 많다. MC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문소리 : 잘 모른다. (웃음) 영화를 그렇게 해도 왜 관객이 안 드는지, 왜 흥행이 되는지 정말 모를 때가 많은데, (시청률이) 왜 안 나오는지 어떻게 알겠나. 아쉬운 면은 있다. 그렇지만 아직 초반이라 정확하게 자리를 잡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변하는 중이다. 영화는 처음에 ‘이런 영화 찍겠다’고 하면 색깔이 바뀌면 안 되는데 예능은 많이 바뀐다더라. 매주 끝나고 회의하고, 다음 주 가면 또 바뀌고. 일단 토 달지 않고 동참하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Q. 이야기의 방향을 ‘자유의 언덕’으로 돌려보자. 사실 영화 제목도 모르고 촬영하고, 나중에 알게 되지 않나. ‘자유의 언덕’이란 제목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었나.
문소리 : 내 카페 이름이었으니까 반가웠다. 제목만 듣고 ‘주인공 같다’고 했다. 그리고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언덕을 많이 오르락내리락하더라. 촬영하면서는 언덕이라고 생각 못 했다. (웃음) 생각해보면 아무나 쓸 수 없는 제목이다. 감독님 영화가 아무나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고, 제목마저도 그렇다.
Q. 일본 배우 카세 료의 출연으로 영어로 연기해야 했다. 이전 작품인 ‘스파이’에서도 영어 대사가 있었다. 그 당시 인터뷰 때 중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라고 했다. 그 이후로 영어 실력은 좀 달라졌나.
문소리 : 아! 처음이 아니었네…. 기억을 못 하고 있었네. 그때도 술 취해서 영어를 했네. (웃음) 영어는 똑같은데 이번엔 좀 더 어려웠다. 말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 아무래도 영어니까 ‘정확히 맞다’라는 확신이 덜하다. 사투리 연기가 어려운 게 이런 거다. 이해는 하는데, 확실히 덜하니까. 영어도 마찬가지다. 이 신에서 중요한 게 뭐고, 이 말을 왜 하는지, 이 말에서 가장 중요하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더 생각하게 됐다. 과거 어렸을 때 처음 대본 보듯이 했다. 좋은 경험이었다.
Q. 그래도 일본어는 아니잖나. 일본어였으면 어쩔 뻔했나.
문소리 : 영어로 할 거란 생각은 했다. 감독님이 일본어를 못하시니까. 그리고 이렇게 많이 나올지 몰랐다. 카페 오면 커피 주고,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는 정도 생각했다. 그리고 정은채가 캐스팅돼서 (그 친구는) 영어 잘하니까 뭔가 ‘썸씽’이 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나를 나오라고 하더라. 왜 이러시나 싶었는데, 한두 신도 아니고, 대사까지 많았다.
Q. 홍상수 감독은 아침에 대본 주는 걸로 유명하다. 영어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래서 더 힘든 것도 있겠다.
문소리 : 이제 할리우드 영화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에 대본 주고, 술 마시고도 영어로 찍는데, 대본 미리 받고, 맨정신으로 하면 왜 못하겠나 싶다. (웃음) 이런 식으로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Q. 근데 카세 료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던가.
문소리 : 어렸을 때 미국에서 꽤 보냈고, 뉴욕에서 1~2년 연기 공부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영어를 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Q. 일본 배우와 영어로 연기 호흡을 맞추는 것, 색다른 느낌일 것 같다. ‘스파이’의 다니엘 헤니는 미국 사람이니까 분명 다르지 않나.
문소리 :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느 언어를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어여서 소통을 못 하고, 반 한국인이어서 더 하고 그런 건 아니다.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소통과 교감의 양이 영향을 받는다. 언어, 국적, 인종 등의 영향을 받겠지만, 그건 작은 부분이다.
Q. 그럼 카세 료는 어떤 사람인가.
문소리 : 좋은 친구다.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자기만의 매력이 있는 게 장점이다. 그리고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보면서 ‘저 사람, 일본 사람이구나!’라고 얘기하곤 하는데,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게 한다. 참 독특한 면이 없는 게 독특하다. 매우 큰 장점이다.
Q. 카세 료의 작품을 봤거나, 그에 관해서 관심이 있었나.
문소리 : (카세 료 출연 작품을) 봤더라.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했다. 인터넷 찾아보니 꽤 매력적이더라. 그랬는데 공항에서 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사람이 아닌 거다. (웃음) 깜짝 놀랐는데 지내보니 좋은 사람이었다.
Q. 이번이 네 번째 홍상수 작품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다른 나라에서’ ‘자유의 언덕’) 할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나.
문소리 : 할 때는 특별히 다른 걸 모르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면 다르다는 걸 느낀다.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 첫 반응이 ‘내가 연기를 저렇게 했어’다. ‘하하하’ ‘다른 나라에서’ 등에서는 내가 어색할 정도로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지점이 재밌다. 또 내 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보게 된다. 아마 관객들이 보는 것과는 다를 거다. 중요한 건 정말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Q. 이번에는 런닝 타임이 이전 홍상수 작품에 비해 짧다. 그로 인해서 더 편한 건 있나.
문소리 : 똑같다. ‘다른 나라에서’도 2주가량 있었고, 이번에도 촬영 기간이 더 짧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볼 땐 짧게 안 느껴졌다. 이 영화를 보기에는 적당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마 이보다 길었으면 힘들었을 거다.
Q. 홍상수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영화 스태프처럼 한다고 들었다. 정 안되면 직접 통제도 하고. 문소리는 현장에서 어떤가.
문소리 : 똑같다. 급하면 하지 않을까. 물론 PD는 (내가) 나오면 더 통제 안 된다고 말리겠지만. 홍 감독님 현장에선 뭐 하나 특별한 것 없이 다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다. 스틸 사진을 봐도 그렇다. 무슨 지나가다 남의 작품 구경하듯 모니터 보고 있는 스틸 사진도 있고. (웃음)
Q. 홍상수 작품이 배우 문소리에게 주는 효과는 무엇인가. 그 효과가 무엇이기에 홍상수 작품을 계속 하는 건지 궁금하다.
문소리 : 죽기 전에 알 수 있을까. 다는 모를 것 같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는 것, 그런 게 어떤 공부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독님의 정직하고, 깊이 성찰하는 태도 등을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 영화를 보고 나서 나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고, 공부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그런 점도 좋은 것 같다. 그 지점이 처음 영화를 할까 말까 고민했을 때에도 이런 점 때문에 해보자고 했던 게 있다. 훌륭하신 분이 가르쳐 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영향을 받는 게 정말 좋았다. 영화를 찍고 나서 내가 알던 내가, 정말 내가 아니었구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고 깨닫기도 하고. 이런 것만 해도 영화를 한다는 건 괜찮은 것 같았다. 화려하게 꾸미고, 사진 찍고, 인터뷰하고, 이런 것들이 안 어울리는 사람 같다는 마음이 있었음에도 그런 면 때문에 (영화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홍 감독님 작업도 그렇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SNS DRAMA][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