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문을 밀고 들어오는 훤칠한 키에 인형같은 이목구비를 지닌 이 소녀는 드라마 속 ‘소녀’(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속 배역)보다는 수줍어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한 시간여의 인터뷰가 물흐르듯 흘러가자 속사포처럼 빠르고 경쾌한 말투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은 누구보다 유쾌발랄하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이름도 ‘성경’(BIble)이라고 지었다는 그에게서는 바르면서도 자유롭고, 배려심깊지만 소신껏 행동하는 마음이 읽힌다. 고교 시절이던 2008년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 톱 11에 들면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이제 막 SBS ‘괜찮아 사랑이야’로 연기자 데뷔 신고식을 마쳤다. “드라마 내용만큼이나 촬영 내내 따뜻하고 먹먹했다”는 그에게서 ‘촉망받는 모델 이성경’이 처음으로 브라운관 문을 두드리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았다.

Q. ‘괜찮아 사랑이야’가 첫 드라마였는데도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이 많았다.
이성경: 캐스팅 단계부터 감독님이 나에 대해 많이 물어봐주셨다. 내가 가지고 있는 원래 있는 모습을 소녀에게 많이 반영해주셔서 연기하기가 더 수월했던 것 같다.

Q. 촬영장에서 조인성, 공효진 등 대 선배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몫을 해 냈다고.
이성경: 사실은 실수할까봐 걱정도 많았는데 선배님들이나 감독님, 촬영감독님 등 스태프들이 정말 많은 배려를 해 주셨다. 행동하고 말씀해주시는 거 하나 하나 애정이 많이 느껴져서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아마 다른 데 가서는 이만큼 못 했을 것 같다.

Q. 소녀에게서는 아이같은 모습과 때로는 퇴폐적인 모습, 슬픔 등 여러가지 느낌이 묻어났다.
이성경: 소녀 자체가 행동을 할 때 계산하고 생각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정말 몰랐거나, 생각을 할 줄 몰라서 직선적으로만 표현하는 아이다. 엉뚱한 반문을 하거나 남에게 실례가 되는 말을 할 때도 마치 아이가 뗑깡 부릴 때처럼 천진난만하달까. 그러면서도 소녀의 마음 속 상처나 성장배경은 작가님이 대본 속에 잘 드러나게 써 주셨다. 그래서 오히려 연기할 때 별다른 고민 없이 할 수 있어 편한 면도 있었다.

Q. 따로 연기 수업을 받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이성경: 처음 캐스팅될 때부터 작가님과 감독님이 ‘연기를 안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무런 틀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연기하라고 하셔서 연기 준비는 따로 하지 않았다.

Q. 방송 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리는 등 큰 화제가 됐다. 예상했었나.
이성경: 전혀 생각 못했다. (웃음) 지금도 영광이고 관심에 감사하긴 한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들뜬다기보다 실감이 안되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다.

Q. 극중 투렛증후군을 앓는 박수광(이광수)과의 키스신도 큰 화제가 됐다.
이성경: 남녀간의 사랑이라기보다 소녀도 진지하게 수광을 치유해주고 수광 또한 소녀를 치유해주는, 따뜻한 느낌이 드는 키스신이었다. 다행히 예쁘게 잘 나왔던 것 같다. (이)광수 오빠와의 연기호흡도 무척 좋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쯤 더 만났으면 좋겠다.

Q. 드라마 속에서 특별히 좋아했던 대사가 있나.
이성경: 극중 이영진(진경)의 대사 중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이 학생답다 여자답다 엄마답다란 말이다. 다 처음 살아보고 한번 살아봐서 서툰 건데” 라는 말이 있다. 듣자마자 ‘와, 역시 노희경 작가님이구나’ 했다. 누구나 오늘을 처음 맞고 이순간을 처음 겪고, 처음 해 보는 것이지 않나. 모두 실수를 하고, 완벽할 수도 없는 거다. 나의 실수를 누가 안 알아주면 속상한데 나도 누군가 실수하는 걸 못 알아주면 안 되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서로 안아주는 모습이 필요하구나란 생각을 많이 했다.

Q. 표정을 보니 여전히 ‘괜찮아 사랑이야’ 속에 푹 많이 빠져 있는 것 같다.
이성경: 촬영장에서 항상 마음이 먹먹했던 것 같다. 슬픈 장면이 아니었는데도 촬영하다 몇 번이고 눈물이 터질 뻔한 적이 있다. ‘아 이렇게 소중한 분들하고 어떻게 헤어지지’란 생각에 찡한 마음이 많았다.

Q. 불량소녀의 모습을 지닌 소녀의 메이크업이나 패션도 화제가 됐다.
이성경: 요즘 고교생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뭘까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단발머리를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좀더 임팩트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투톤 헤어스타일로 결정했다. 빨간 입술같은 설정도 실제 길거리에서 본 고등학생들이 많이 하는 스타일에서 착안한 거고.

Q. 실제 이성경의 고교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성경: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오락부장에 댄스부를 했었다. 지금보다 10kg이나 말라서 엄청 먹고 매일 달리기며 줄넘기를 하고, 운동량이 굉장히 많았었다. 원래는 숫기가 좀 없었는데 사춘기 시절부터 많이 밝아졌다. 아마 너무 시끄러워서 감당 못했던 친구들도 있었을 거다.

Q. 음대를 준비하다 갑자기 모델로 진로를 바꾼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이성경: 입시를 준비하던 고3 시절 부모님과 담임선생님께서 모델을 해보라고 권유하셨다. 처음에는 ‘나는 피아니스트가 될 건데 왜 입시를 앞두고 갑자기 모델을 하라고 하시냐’며 달갑지 않아했는데 일단 대회에 나가보라셔서 준비를 하게 됐다. 그렇게 나간 게 슈퍼모델 선발대회였는데 톱 11에 들었다. 그때부터 여러가지를 준비하고 배우는데 무척 재밌었다. 세상에 이렇게 신나는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렇게 하나씩 화보도 찍고 쇼에도 서다 보니 모델이 돼 있더라. 피아노는 아쉽지만 내가 이 일을 못 만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싶다.



Q. 트위터를 보니 올해 패션위크 때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울컥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더라.
이성경: 드라마 캐스팅이 결정된 후 패션위크를 준비했는데 패션모델만으로서의 이성경은 이제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무대에는 서겠지만 순수한 ‘모델’로서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더 특별하게 여겨졌었다. 런웨이를 준비하는데도 눈물이 계속 쏟아져서 ‘나 왜 울지?’ 란 생각을 했다. 펑펑 울다 ‘내가 모델 일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좋아했구나’ 란 생각이 들더라.

Q. 요즘에는 모델 출신 연기자들이 꽤 많아져 든든한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이성경: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을 다른 분야로 넘어왔는데도 볼 수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안심이 된다. ‘괜찮아 사랑이야’에 함께 출연했던 도상우,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한 안재현 오빠 등도 모두 모델할 때 같이 활동하던 분들이라 더 반갑다.

Q. 같은 회사(YG엔터테인먼트)에 있는 위너의 강승윤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었다.
이성경: 맞다. 이렇게 또 만나다니 인연이 참 신기하다. 정말 착하고 좋은 친구인데 잘되서 기쁘다. 승윤이가 내가 키스신 찍은 두고 ‘어땠어?’라며 많이 놀리더라.(웃음)

Q. 가수나 DJ 등 다른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이성경: 노래는 즐기는 걸 좋아하지만 전문성이 없다. 예전에 인디 음악하시는 분들과 모델 열 명이 함께 컴필레이션 앨범을 낸 적이 있다. 기계음이 좋아서 정말 잘 부르는 것처럼 나온다.(웃음) DJ는 해보고 싶다. 실제로 담배 연기나 답답한 공간을 좋아하지 않아 클럽에서 노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야외 페스티벌에 가면 술 없이도 만취한 사람처럼 잘 논다. (웃음) DJ는 한번 해보고 싶다. ‘DJ 바이블’이란 이름도 괜찮을 것 같다.


Q. 모델을 하고픈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나
이성경: 뭐든 내려놓고 즐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꼭 이래야돼’ 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했는데 안 될 수도 있고 10개 대비했는데 1개도 안 나올 수도 있는 거고. 이 방법은 안될 수도 있지만 생각지 못한 곳에서 해답이 나오기도 하는 것 같다. 다만 그 안에서 후회만 없이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같다. 난 모든 순간이 재밌었다. 대회 나가서 1등을 못해도 행복했고 혹시나 실수해 실격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2009 아시아태평양 슈퍼모델 선발대회 무대에서는 감사하다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더라. ‘나는 그동안 열심히도 안 하고 엄마 말도 잘 안 들었는데 이렇게 특별한 방법으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게 해줘 고맙다’는. 그래서 행복하게 워킹했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모델이 돼 있었다.

Q.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면을 찾아내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이성경: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한다. 누군가 모나게 행동해도 ‘그 사람만의 뭔가가 있을거야 라고’ 좋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드라마가 많은 도움이 됐다.

Q. 첫 작품과 이별하는 소감은 어떤가
이성경: 헤어질 자신이 없다. 마음 속에 그냥 놔둘 것 같다. 그냥 좋았던 드라마, 좋았던 현장이 아니라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제목처럼 그냥 ‘괜찮아 사랑이야’ 였다.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나를 감싸고 있는 무언가를 만난 것 같다.

Q. 그래도 팬들은 다음 행보를 기다릴텐데.
이성경: 아마 가을에는 쇼 무대에 한번쯤 설 것 같다. 좋은 콜라보레이션이 있으면 패션 쪽으로도 활동해보고 싶고, 이후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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