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세, 그는 요정일까, 도인일까오정세는 언제부턴가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어떤 크기의 배역을 맡더라도 그 캐릭터를 팽팽하게 확장시켜 필수적인 인물로 만들어버린다. 영화는 몰라도 드라마라는 것은 언제나 현장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보니 때로는 주인공까지도 애초에 정해진 이야기를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채 떠나버리는 비극도 종종 발생하고 마는데도 그는 번번이 성공한다.최근작 MBC 드라마 ‘개과천선’이나 영화 ‘하이힐’에서 오정세가 존재하는 순간은 어김없이 풍성해졌다. 특히나 ‘개과천선’은 2회 축소, 조기종영이 되기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요술이 먹히고 말았다. 그것이 오정세가 ‘개천요정’이라 불리게 돼버렸다는 신화(?)의 시작이다.
오정세의 요술을 바라보며 문득 어째서 아직 저 요정을 만나지 못했는지 개탄했고, 당장 만나자고 청했다. 마침내 만난 그는 사람으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긍정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요정이 아니라 흡사 도인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요정이나 도인이 아니라해도 참 좋은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Q. ‘개과천선’을 마쳤다. 시청자 입장에서 묘하게 박상태가 가장 그립다. 오정세 : 흐하, 나 역시 마치 즐거운 여행을 갔다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드라마는 늘 여행이라는 기분이 드는데, 때로는 재미없는 여행도 되기도 하고, 때로는 별 생각 없이 떠났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풍경을 보게 된 값진 여행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 내가 맡은 상태라는 인물은 변호사이지만 꿈을 가진 친구로 그려졌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나왔다는 점에서도 참 좋은 여행이 됐다.
Q. 배역의 크기가 커졌다는 말인데, 그건 실은 배우 개인의 힘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 아닌가.
오정세 : 그렇긴 하나 절대적이지는 않는다. 나름 한다고 하는데 드라마 방향성 자체와 어긋나 그 노력이 때로는 드라마에 민폐가 되기도 한다.
Q. ‘개과천선’은 실제 발생한 사건들을 재조명하면서 큰 주목을 받은 드라마다. 그런 드라마에서 상태라는 인물은 작은 쉼표로 존재했다. 작가가 묵직한 메시지 가운데 상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뭐라고 생각했나.
오정세 : 시작하기 전 시놉시스를 보니 꽤 무거운 주제를 가진 이야기로 보였다. 그런 드라마를 어렵고 심각하게만 풀게 되면 소통하는 지점이 커지기가 힘든 만큼, 상태라는 인물로 숨 쉴 수 있는 포인트를 마련하려는 의도 아니었을까. 다만, 숨 쉴 수 있는 포인트에 숨을 쉬면 좋은데, 때로 실소가 되어버리면 동 떨어진 인물이 되어버릴 위험도 있다.
Q. ‘개과천선’은 사회적인 메시지로 시청률 이상의 성과를 끌어올린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그런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 어떤 기분이 들었나.
오정세 : 개인적으로는 부끄럽다. 죄송하기도 했다. (Q. 아니, 왜?) 어떤 한국 드라마도 마찬가지지만 저희 역시도 후반에는 생방처럼 촬영했다. 그러니 실제 사건을 다뤘다고 할지라도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연기를 했다. 맥락도 모르고 파악하지 못한 깊이들도 있었을 것인데 연기를 해야 했다. 나중에 종방연에서 검사님들이 와서 ‘감사하다’고 하셨는데, 과연 내가 얼마나 그 사건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연기를 했나 싶더라. 그래서 부끄러웠다. 물론 모든 배우들이 시스템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더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물론 좋은 배우인 것 역시 분명하다
Q. ‘개과천선’ 대본에는 지문이 많지 않았다. 오정세 : 그런 것을 채우는 것이 배우들의 일이다. 후반부 선희를 만나는 신에서 지문이 없었지만, 상태가 선희를 만날 때는 다른 행동을 할 것 같았기에 일부러 그를 한 번 더 쳐다보거나 했다. 또 소품팀에서 하트모양 컵을 준비했기에 우리 쪽으로 당겨 놓았다. 눈치 못 채는 시청자들도 있겠지만, 볼 사람은 보라는 생각에 카메라 쪽으로 좀 더 보이게끔 해두었다. 동선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하는 잔잔한 동작들이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드라마에 큰 도움이 된다.
Q. 그런 시도들을 늘 해오면서도 도드라지면 안 될 때 도드라지지 않을 수 있는 균형감각까지 갖추지 않았나. 역시 현장에서의 소통 덕분인가.
오정세 : 그렇지. 그러려고 노력한다. 또 기본적으로 맡은 역할의 상황이나 감정이나 뭔가를 느끼게 되면 그대로 표출한다. 감독님이 ‘튄다’고 여기면 걷어내기도 하고, 도움이 되면 반영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열 가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괜히 겁을 먹고 9개는 스스로가 사전검열을 해버렸다. 누가 봐도 작품에도 내게도 좋은 하나만 구현했더라면, 언제부턴가 그런 것들이 흘러버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하나의 아이디어일지라도 때로는 더 좋은 아이디어로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했다. 대신 감독에 사전에 말한다. ‘커트를 당해도 상관없으니 부담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Q. 좋은 결과로 도출되면, 연출자 입장에서는 신뢰할 수밖에 없겠다.
오정세 : 대부분 그랬으나, 처음에는 다 당혹스러워 하신다. 특히나 나는 리딩을 정말 못하기 때문에 감독님들은 처음에 걱정도 많이 하신다.
Q. 리딩을 못하다니? 당신이? 의외다.
오정세 : 누군가가 주목하면 바보가 된다. 10명 이상만 있으면 긴장하고 말도 못한다. 어쩌면 배우라는 직업과 잘 안 맞는 사람이다. 그래서 팬클럽이 있지만 생일파티를 한 번도 못하다 올해 처음으로 몇 분과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셨다. 처음으로 만나서 얼굴을 트게 됐다. 죄송하긴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박수치는 자리가 불편하다.
그렇게 개천요정은 기막힌 사람이며 배우라는 인상을 남기고 뾰로롱~
Q. 배우라는 존재가 원래 선택받는 직업이고, 또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직업군인데 말이지. 오정세 : 주목받기 싫어하는데도 배우는 하고 싶고 아이러니한 부분들이 많다. 그런데 난 나 자신의 인지도는 없다면 좋겠다. 작품으로만 인정받고 싶다. ‘오정세, 너무 좋아’보다는 ”하이힐’ 봤는데 너무 좋아’가 더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거듭하다보면 배우의 색깔이라는 것은 생기기 마련인데, 그래도 관객들에게 색깔 없는 배우였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Q. 그런데 최근에 쉴 틈 없이 필모그래피를 빼곡하게 채워왔다. 대체 언제 쉬나. 아무리 요정이라지만 휴식이 필요할텐데.
오정세 : 늘 다음 작품을 찾으려고 생활하는 것 같다. 배우로 살면서 초반 4년 동안은 단역으로 한 두 작품에 출연한 것이 다인데도 쉬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결과물이 없을 뿐, 찾아가 오디션도 보고 단편영화도 하고 연극도 하는 등, 계속해서 달려왔다. 워낙에 취미가 없고, 취미라 하면 작품 찾는 것 정도랄까. 이런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또 지방 촬영을 다니면 힘들긴 해도 스스로 여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여유를 찾는다. 그래서 달려도 지치지 않는 것 같다.
Q. 지금 행복한가.
오정세 : 인간으로서는 행복하다. ‘하이힐’을 찍을 때 캐릭터 적으로 풀리지 않는 것들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배우로는 ‘좋다’ ‘안 좋다’의 반복이지만 스트레스도 즐기려고 하는 편이다. 그것이 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 듯 하다. 늘 어떤 역할을 해도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애정을 쏟지만 잘 돼도 못돼도 내 인생의 작은 점 하나일 뿐인데 스트레스에 얽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머리가 빠진다거나 체한다거나 몸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하하.
Q. 아니, 정말 요정이라도 되는 건가. 몸이 스트레스에 반응함에도 스트레스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은 대체 어디서 배워야하나.
오정세 : 조급함이 없어서 그런가. 적어도 40년, 50년 후에는 내가 더 나은 배우가 되어 있을거라는 확신이 버팀목이 되지 않나 싶다. 비록 작품에서 내가 보여준 연기가 아쉬울지라도, 그 역시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그래서 실패도 손가락질도 크게 두렵지 않다. 지금은 사랑을 받더라도 언젠가 바닥을 칠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에는 늘 굴곡이 있다. 올라갈 일만 남은 것이 아니라 분명 내가 민망할 정도의 연기를 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수하고 이겨내는 것이 나의 일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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