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EBS ‘스페이스 공감’(이하 공감)이 축소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뮤지션들은 자발적으로 축소 반대 공연을 기획했다. 축소 보도가 나온 당일 SNS를 통해 공연 ‘공감을 지켜주세요’를 제안하자 불과 며칠 만에 라인업이 꾸려졌다. 공연 주최 측은 “이 공연이 며칠 만에 빠르게 확정될 수 있던 이유는 ‘공감’이 현 대중음악계의 흐름을 대변하는 사실상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 1월 13일 축소 반대 공연이 열린 라이브클럽 벨로주 현장에서 ‘스페이스 공감’ 제작진은 주 5일에서 주 2일로 반 토막이 날 뻔 했던 ‘공감’이 주 4일 공연으로 유지된다는 소식을 알렸고, 공연장에 모인 뮤지션, 관객들은 자기 일처럼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실로 감격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뒤로도 뮤지션들은 ‘공감’ 정상화를 위한 캠페인을 계속 이어갔다.

수많은 음악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사라졌지만, 이처럼 뮤지션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개편 반대 공연을 연 것은 ‘공감’이 처음이었다. 프로그램의 가치를 뮤지션들이 확인시켜준 것이다. 허클베리핀의 리더 이기용 씨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예능이 아닌 순수하게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은 ‘공감’이 거의 유일하다. 15년 넘게 음악을 한 뮤지션의 입장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오를 수 있는 무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곳에 가면 진짜 음악이 있다’는 모토로 2004년 4월 개관한 ‘공감’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열 돌을 맞기까지 위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뮤지션과 관객의 사랑이 프로그램을 지켜줬다. ‘공감’ 측은 10주년을 맞아 기념공연을 열고, 기념서적 ‘EBS 스페이스 공감 - 10년의 히스토리 그리고 나와 우리의 이야기’도 발간했다. 이 책을 보면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얼마나 풍부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제작진들은 지난 10년을 정리하면서 어떤 공연들이 가장 기억에 남을까? ‘공감’을 만들어온 PD, 작가, 기획위원들에게 각자의 최고의 공연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마리아 주앙

백경석 PD (2004 ~ 2011년 ‘공감’ 연출)
# 보컬리스트 마리아 주앙 (2009년 10월)
“하나의 공연을 꼽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리아 주앙의 공연을 꼽는 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의 목소리는 막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때로는 죽음 앞의 노인처럼 삶의 모든 감정을 폭발하듯 쏟아냈다. 마치 하나의 곡 안에 세상의 모든 노래의 유전자를 담아내는 느낌이었다. 코앞에서 바라보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복받쳐 우는 것밖에 없었다.”

하종욱 음악감독 (2004~2007년 ‘공감’ 음악감독)
# 기획공연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 (2005년 11월~2006년 12월)
“초기 ‘공감’의 가장 치열한 고민의 지점은 ‘어떤 정체성을 지녀야 하는가?’에 관한 ‘색깔론’이었다. 2005년, 개관 1년을 즈음한 시기부터 제작진들은 대낮의 회의에서부터 새벽녘의 술자리에 이르기까지 격론을 거듭하며 자체의 기획, 나름의 발언권을 지녀야 한다고 결의했다. 그 중 가장 선연한 색깔의 결과물이 2005년 1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이어진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라는 기획이었다. 신중현, 한대수, 이정선, 김창완, 한영애, 김수철, 송홍섭, 주찬권, 최이철, 함춘호 등의 드넓은 음악적 연대기를 좁은 무대에 꽉꽉 눌러 담고자 갖은 공을 들이고 온갖 용을 다 썼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긴 작가주의에 대한 지지와 응원을 담은 자체 기획 시리즈는 ‘공감’이 지향하고자 했던 음악관, 아티스트 관의 든든한 나침반으로 자리했다고 자평하고 싶다.”

최세진

권영순 작가 (2005 ~ 2009년 ‘공감’ 작가)
# 재즈 1세대 드러머 최세진 (2007년 8월)
“기억에 남는 공연이라기 보단 가슴 아픈 공연이 있다. 재즈 1세대 드럼 연주자 최세진 선생님의 무대였다. 2007년 8월에 출연하셨는데 그 다음해에 돌아가셨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녹화를 준비하는 내내 설레 하셨고,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공연을 하셨다. ‘공감’이 선생님의 마지막 단독공연 영상이 된 셈이다. 선생님의 죽음은 너무 안타깝지만 영상이 남아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공감’의 역할인 것 같다. 뮤지션의 찬란한 순간을 기록하는 거. 함께하는 거.”

가리온

정윤환 PD (2010 ~ 2013년 ‘공감’ 연출)
# ‘한국 힙합의 최전선’ 가리온 (2010년 10월)
“가리온이 6년 만에 발표한 2집 ‘가리온 2’를 기념한 공연이었다. 원래 힙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힙합 공연을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탐탁지 않았다. 그런데 가리온의 무대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밴드와 함께 공연을 하는 가리온은 그 에너지가 대단했다. 가리온이 나의 힙합에 대한 선입견을 깨준 것이다. 힙합의 매력을 알게 해준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박은석 기획위원 (2008 ~ 현재)
# 기획공연 ‘열혈 사운드의 발견’ (2009년)
“헤비니스 음악을 소개하는 기획공연 ‘열혈 사운드의 발견’에서 2009년에 익스트림 메탈 밴드들을 다룬 적이 있다. 매써드,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 새드 레전드, 오딘이 그들이다. 이들과 같은 블랙/데스 메탈 계열을 공중파에서 소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음악이 훌륭하다고 해도, 그 음악의 정서 때문에 제작진이 몸을 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획은 ‘공감’이 이런 극단의 음악들도 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는 ‘공감’이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매써드

민정홍 PD (2011 ~ 현재)
# 헬로루키 연말결선 (2011년)
“‘공감’을 하면서 떨림의 순간들이 참 많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2011년 최고의 루키를 선발하는 헬로루키 연말결선이 기억에 남는다. ‘올해의 헬로루키’를 선정하기까지 1년 동안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연말결선을 열기 위해 세트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면서 1년 동안 심사했던 수백 팀들이 떠올랐다. 그 중에서 최종적으로 선발된 바이바이배드맨, 잠비나이, 이스턴 사이드킥 등이 연말결선을 통해 약 2,000명의 관객과 만나는 그 순간들이 정말 뿌듯했다. ‘스페이스 공감’이 단순히 좋은 뮤지션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얼굴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무대였다.”

변고은 작가 (2009 ~ 현재)
# 뱀파이어 위켄드 (2013년 7월)
“뱀파이어 위켄드는 록페스티벌 헤드라이너 급이기 때문에 섭외부터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공연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아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약 5일 뒤 멤버들이 공연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아서 프로그램 출연이 성사가 됐다. 워낙에 잘 나가는 록 스타라서 공연을 하는 동안 챙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애를 먹었다. 하지만 관객, 시청자들의 반응이 정말 좋아서 보람이 컸다. ‘공감’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을 위해서 제이슨 므라즈나 뱀파이어 위켄드와 같은 해외 스타들의 공연을 꾸준히 추진할 것이다. 기대해 달라.”

이혜진 PD (2013 ~ 현재)
# 이디오테잎 (2014년 6월)
“‘공감’ 10주년을 기념해 ‘무브(Move)’라는 타이틀로 열린 공연이었다. 사실 공연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가 벌어져서 걱정이 많았다. 사고 때문에 예정보다 공연이 뒤로 연기했지만 과연 평소 때처럼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됐다. 제작진도, 뮤지션도, 관객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공연 당일의 공기도 평소와 달랐다. 그런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다행히도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이디오테잎이 준비를 정말 많이 했다. 공연 마지막 곡에서 영상으로 노란 리본이 뜨자 가슴이 뭉클했다. 맨 앞에서 춤을 추던 관객들이 노란 리본 영상이 나올 때 기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절망적인 순간에 음악이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됐다.”

아소토 유니온

김윤하 기획위원
# 아소토 유니온 (2004년 5월)
“2004년에 열린 아소토 유니온 공연을 이야기하고 싶다. 당시 아소토 유니온은 앨범도 내고 유망한 팀이었지만 ‘공감’ 공연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쉽게도 해체됐다. 그 뒤로 이제 10년이 지났지만 아소토 유니온에서 파생된 윈디시티, 세컨세션, 림지훈 등의 뮤지션들이 어느덧 베테랑이 되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잔뼈 굵은 뮤지션들에게 아소토 유니온이란 팀은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아소토 유니온은 해체했지만, 여전히 ‘공감’을 통해서 그 당시 생생한 공연 모습을 볼 수 있다. ‘공감’ 역사적인 순간을 담아낸 귀중한 자료로 남은 것이다.”

김학선 기획위원
야마가타 트윅스터 (2014년 2월)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을 ‘공감’에서 해야 한다고 제작진을 설득했다. 사실 야마가타 트윅스터라가 워낙 자유분방한 뮤지션이기 때문에 TV 무대에 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평소 거리공연만큼은 아니겠지만 ‘공감’에서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90% 정도의 역량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김학선) “녹화를 하기 전에 야마가타 트윅스터를 만났다. 무대를 만드는데 있어서 뮤지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야마가타 트윅스터 본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두리반 공연이라고 해서 당시 분위기나 셋리스트 등을 ‘공감’에서도 반영을 하려 했다. 다행히 그런 것이 잘 이루어져서 좋은 공연이 될 수 있었다.”(이혜진 PD)

무키무키만만수

김지연 작가
# 무키무키만만수 (2013년 4월)
“‘공감’에 합류하기 전에 무키무키만만수의 앨범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런 음악은 처음이었으니까. 무키무키만만수 ‘공감’ 공연이 결정된 후 그들의 연습실을 찾아갔다. 방송에서 무키가 구장구장을 부수기로 해서 도끼나 정으로 내려찍을지, 아니면 바닥에 내동댕이칠지를 사전에 의논해야 했다. 결국 공연 날에는 도끼로 부쉈다. 공연을 마치고 난 뒤에 무키가 구장구장이 부숴진 것을 보고 펑펑 울더라. 사실 난 그 전까지 음악을 좋아하는 입장이었지, 뮤지션의 입장이나 영역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광경을 지켜보면서 뮤지션들이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 참 힘든 길을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공감’의 제작진으로서 뮤지션의 편이 돼줘야겠다고 다짐한 날이었다.”

심미은 작가
# 윤석철 트리오 (2013년 5월)
“‘공감’에 합류한지 한 달 째 됐을 때 기획한 공연이었다. 그 전까지는 재즈를 편안한 배경음악 정도로 접했었다. 그런데 윤석철 트리오를 보니 관객을 흥분시키는 요소들이 많았다. 재즈를 듣고 처음으로 재밌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래서 공연 제목을 ‘나의 재즈는 재밌다!’로 지었다. 공연에서 윤석철이 무아지경에 빠져 연주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 외에 연주하는 사람의 매력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재즈에 대한 인상을 바꿔준 계기가 된 공연이었다. 일로써 듣는 음악이 있고, 좋아서 듣는 음악이 있는데 윤석철 트리오는 단연 후자다.”

박혜원 작가
# 클래지콰이 (2013년 4월)
‘공감’에 합류한 지 두 달 정도가 지났다. 시청자 입장에서 ‘공감’의 클래지콰이 공연을 봤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내가 컬러링으로도 쓰고 있고 최근 1년 간 가장 좋아한 곡인 클래지콰이의 ‘꽃잎같은 먼지가’를 ‘공감’을 통해 처음 라이브 영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처럼 앨범 수록곡을 골고루 들어볼 수 있던 게 당시 팬의 입장에서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전연우 작가
# 선우정아 (2013년 8월)
집에서 TV를 통해서 선우정아의 ‘공감’ 공연을 보는데 살아있는 음악이 그대로 전달된다는 감흥을 받았다. TV에서 그런 감흥을 받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단지 카메라 워크가 뛰어나거나, 연출이 화려하다고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음악,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 그런 음악들이 ‘공감’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우정아

이제 ‘공감’은 ‘오직 음악’이라는 새로운 모토로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 “놀라운 일이죠. 좋은 음악을 소개하자는 일념으로 제작진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 10년을 올 수 있었어요.”(민정홍 PD) “저는 ‘공감’의 열혈 시청자였어요. 대학생 때부터 ‘공감’을 봤는데 연출을 맡게 돼 정말 영광이에요.”(이혜진 PD) “뮤지션들이 자발적으로 ‘공감’ 축소 반대 공연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공감’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런 힘 때문에 저희가 이렇게 10년을 올 수 있었던 거겠죠. 개인적으로는 ‘공감’을 통해 좋은 음악을 만나게 된 게 가장 행운이었어요.”(정윤환 PD) “한국에서 음악 프로그램이 대중의 입맛에 맞게 포맷을 변화시키지 않고, 좋은 음악을 소개한다는 기조를 10년 동안 지켜왔다는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죠. 제작진은 분명히 자랑스러워하고, 또 감사할만한 일이에요.”(박은석 기획위원) “우리 제작진이 모두 음악을 열렬히 사모하기 때문에 ‘공감’을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진심이 통한 거라 믿고 싶어요.”(변고은 작가)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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