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빅맨’ 방송 화면 캡처

KBS2 월화드라마 ‘빅맨’의 상승세가 매섭다. 첫 회 6.0%(닐슨 코리아 전국 시청률 기준)로 스타트를 끊었던 ‘빅맨’은 매회 시청률 상승을 거듭하더니 지난달 26일 10%대를 돌파, 동 시간대 1위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어찌 보면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한 남자의 인생 역전기’라는 극의 큰 얼개는 우리에게는 친숙한 동화 ‘왕자와 거지’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왕자와 거지’는 서로 다른 계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자연스레 인물의 성장기를 담을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빈번히 영화, 드라마로 극화되어 왔다. 또 이런 구조의 이야기는 신분 상승에 대한 인간의 내재된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이야기꾼들 사이에서는 ‘흥행보증수표’처럼 여겨지던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는 이미 너무나도 많이 나왔다. 비슷한 문법의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게 되면 캐릭터는 정형화되고 이야기는 힘을 잃는다. ‘빅맨’이 채 전파를 타기도 전에 많은 이들이 작품에 우려의 시선을 보냈던 이유이다.

그런 측면에서 ‘빅맨’의 이야기 구성력은 주목할 만하다. 익숙한 소재의 이야기에 약간의 비틀기를 더해 극에 새로운 활력을 더하고 있는 것. 특히 ‘왕자와 거지’의 신분 바꾸기로 시작해 한국 사회에 대한 날 선 비난과 가족적인 메시지를 엮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김지혁(강지환)의 분노는 ‘빅맨’을 이끄는 동력이다

‘빅맨’의 신통방통한 ‘동화 비틀기’의 출발점은 바로 주인공 김지혁(강지환)이다. 뒷골목을 전전하던 ‘시장의 아들’ 지혁의 유일한 소망은 역설적이게도 돈이 아닌 가족이다. 심장이 아픈 현성 그룹의 장남 강동석(최다니엘)을 위해 회장 내외는 지혁의 심장을 노리고 그를 집으로 끌어들인다. 이후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가족이 원한 건 자신의 심장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혁의 분노는 ‘빅맨’의 중반부를 이끄는 동력이 된다.

중반부를 지난 ‘빅맨’의 두 번째 동력은 추악한 본성을 드러낸 동석과 지킬 것이 많아진 지혁의 대립구도다.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동석은 갑의 이름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동석은 자신에게 골칫덩이가 되어 버린 지혁을 제거하기 위해 멀쩡한 현성 유통을 부도 처리하는 것도 모자라, 재벌 3세들과 결탁해 이면계약을 맺어 직원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노조까지 탄압하는 등 온갖 악행을 자행한다. ‘이렇게까지 그려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 동석이 몸담은 회사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현성 그룹’,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국내 굴지 모 기업의 이름과 기막히게 닮았다.

KBS2 ‘빅맨’ 방송 화면 캡처

다소 노골적일 수도 있는 비난에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 건 ‘빅맨’이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경쾌한 톤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소시민의 전형으로 분해 재벌가의 등에 비수를 꽂은 지혁의 곁에는 그와 뜻을 함께하는 능력자들이 가득하다. 소미라(이다희)부터 구 팀장(권해효), 김한두(이대연), 조화수(장항선)까지. 모두 지혁의 인간적인 모습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크고 작은 도움은 ‘빅맨’에 마치 한 편의 성장 드라마와 같은 느낌을 얹어 또 다른 즐거움을 더한다.

이즈음에 이르러 ‘빅맨’은 아껴뒀던 진짜 메시지를 풀어놓는다.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 지혁이 입이 닳도록 반복하는 “우리는 가족입니다”는 현성 그룹의 사훈은 리더십이 부재한 현실에 묘한 울림을 전한다. 편법에 기대지 않고 정직과 책임감으로 일관하는 지혁의 모습에서는 음울한 현실의 자화상마저 아른거린다.

어느덧 3회만을 남겨둔 ‘빅맨’은 어떤 결말을 맺게 될지.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현실을 입은 동화는 원작만큼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 그래서 드라마처럼 결말을 쉬이 바꿀 수 없는 현실에 가슴 아파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드라마 한 편의 의미는 더 없이 값지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KBS2 ‘빅맨’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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