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관록이 묻어난다. 배우로서 무엇을 연기해야 할지 알고, 또 대중이 자신을 통해 보고 싶은 게 어떤 것인지를 꿰고 있다. 지난 2010년 10월 첫 전파를 탄 케이블채널 OCN ‘신의 퀴즈’로 시청자를 만난 배우 류덕환은 2014년, ‘신의 퀴즈 시즌4’로 다시 한 번 ‘신퀴앓이’를 불러일으킬 준비를 마쳤다.

열다섯의 나이로 장진 감독의 영화 ‘묻지마 패밀리’에 출연하며 ‘장진 사단’에 합류, 스무 살이 되던 해 ‘천하장사 마돈나’로 대중의 머릿속에 강한 이미지를 남긴 류덕환은 이후 수차례 부침을 거듭했다. 연이은 흥행 실패에 모두가 류덕환의 한계를 지적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류덕환은 ‘신의 퀴즈’로 다시 일어섰다. 국내에서는 아직 익숙지 않은 장르물 ‘신의 퀴즈’가 네 번째 시즌을 맞으며 순항할 수 있었던 데는 ‘류덕환’이라는 배우의 저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의 퀴즈’ 속 한진우의 변신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즌을 거듭하며 성장통을 겪어온 ‘한진우의 성장’은, 배우로서의 무게감을 되찾은 ‘류덕환의 진화’와도 거리가 멀지 않다. 그 어느 시즌보다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돌아온 그에게 ‘신의 퀴즈’의 의미와 ‘배우 류덕환’을 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Q. 10개월여 만에 시즌4로 시청자를 만나게 됐다. 소감이 어떤가.
류덕환: 감개무량하다. 배우에게 시즌제로 방송되는 작품에 출연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영광이다.

Q. 벌써 ‘신퀴앓이’를 외치는 분들도 있다. 국내에서는 익숙지 않은 수사물 드라마가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류덕환: 음…당연히 제 덕분이죠, 하하. 지금도 어떻게 ‘신의 퀴즈’가 내게 들어왔는지 신기할 정도다. 사실 외국드라마는 이런 소재를 다루는 작품이 많지 않나. 근데 공통점이 있다면 진우처럼 유쾌하고 위트 있는 역할은 주로 ‘주연’이 아닌 ‘조연’이 맞는 경우가 많다. ‘신의 퀴즈’는 그 반대다. 처음에 ‘신의 퀴즈’를 집필한 박재범 작가도 “왜 주인공이 그런 역할을 못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나도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어 출연을 결심했었고.

Q. 시즌1 때부터 출연했으니 ‘한진우’는 당신이 만든 캐릭터나 다름없다. 이번 시즌 준비에는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류덕환: 박 작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매번 새 시즌에 들어갈 때마다 그렇다.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우리 둘 사이에는 ‘친분’ 이상의 ‘신뢰’ 같은 게 있다. 박 작가도 애매한 게 있을 때는 내게 전화해서 “덕환아, 믿을 게”라며 은근히 압박을 주기도 한다. 그게 시즌3 때는 최고조에 달했지, 하하하.



Q. 캐릭터를 잡아나가는 과정은 어땠나.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라 참조할 만한 모델이 마땅하지 않았을 텐데.
류덕환: 사실 시즌1 때는 ‘신의 퀴즈’의 색깔을 보여드리는 데 집중했기에 오히려 캐릭터 형성에는 부담이 없었다. 시즌2 때는 달랐다. 시즌1이 큰 성공을 거둔 터라 주변의 기대가 컸다. ‘나에게는 부담이지만, 진우에게는 부담이 아니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최면을 걸었던 것 같다. 시즌3는 나보다는 박 작가의 부담이 컸지, 하하. 처음에 다른 사람들은 이중인격 이야기를 어떻게 드라마로 푸느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잘 나온 것 같다.

Q. 아, 정말 시즌3의 ‘팬텀 인 더 브레인’에서 보여준 이중인격 연기는 압권이었다. 한국드라마에서 그런 대본이 나온 것도 놀라웠고 그걸 연기로 표현한 당신은 더 놀라웠다, 하하.
류덕환: 나도 두려웠다. 아무리 내 딴에는 노력한다고 해도 관객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실패한 게 아닌가. ‘실패를 받아들이면서 안전하게 갈 것이냐’ 혹은 ‘뭐가 됐든 간에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시즌1 때였다면 전자를 택했을 거다. 하지만 시즌3까지 오니까 ‘신의 퀴즈’ 골수팬들을 믿고 한 번 색다른 걸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 팬들 덕분이다, 하하.

Q. 시즌1, 2는 ‘신의 퀴즈’의 소재적 참신성을 잘 보여주는 시즌이었다면, 시즌3에서는 좀 더 한진우라는 인물의 내면을 다루면서 이야기를 확장해나갔다. 시즌4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기나.
류덕환: 많은 것들이 바뀔 거다. 이전 시즌의 이야기가 굴곡이 많은 청년의 이야기였다면, 시즌4에서는 진우가 은사로 모셨던 장규태 교수(최정우)의 죽음으로 한층 성장한 ‘인간 한진우’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물론 그 성장이 완벽한 건 아니다. 사실 청년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의 애매한 느낌이 더 강하고. 어쨌든 그런 시기에 놓인 진우가 차차 세상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다.

Q. ‘신의 퀴즈’에는 박 작가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다.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며, 다소 로맨스가 약한…하하.
류덕환: 하하하. 박 작가도 그걸 아시는지 시즌4에서는 멜로가 대폭 늘었다. 그전에는 멜로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신의 퀴즈’만의 주제와 색깔이 분명했다. 시즌2 때는 강 형사(윤주희)와 손잡고 ‘키스’ 아닌 ‘뽀뽀’만 하는 것도 절제하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니까. 멜로가 세지면 에피소드가 죽으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시즌4에서는 강 형사와의 로맨스가 많이 늘어날 거다. 아무래도 진우가 수술 후 1년 만에 깨어나고 이러는 게 어느 정도 반영이 되지 않을까. 사실 박 작가가 집중하는 부분은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이다. 그 성장을 보여줘야만 드라마가 형성되는 거니까. 그래서 내가 고민할 것들은 더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는 것 외에 어떻게 성장을 보여줘야 할지 골머리가 아프더라. 시즌4를 준비하며 안 하던 모니터까지 해가며 답을 찾고 있다.

Q. 모니터를 안 한다는 게 정말 의외다. ‘신의 퀴즈’를 비롯해 여태까지 출연한 작품을 한 편도 안 봤나.
류덕환: 거의. 모니터하면 감정과 느낌보다는 연기의 기교만 눈에 들어와서 안 보려고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컵이 왼쪽에 있어서 왼손으로 컵을 집었는데, 화면으로 보면 그게 얼굴을 가리는 거다. 그럼 오른손으로 컵을 잡아야 하나? 그 고민을 하는 순간부터 연기에 자연스러움은 사라진다. 내가 연출에 도전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고 싶었던 거다.

Q. 그럼 이번에 ‘신의 퀴즈’를 다시 모니터하니까 어떤 기분이 들던가. 답은 찾았나.
류덕환: 시즌1, 2, 3을 몇 장면씩 꼼꼼히 돌려봤다. 한 가지 깨달음이 오더라. ‘난 내가 자유로운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자유롭지는 않았구나’ 하는 것. 근데 그게 시즌이 거듭될수록 변화하는 게 보이더라. ‘신의 퀴즈’는 진우뿐만 아니라 ‘배우 류덕환’도 성장하게 한 셈이다. 내가 진우로서 느끼고 경험한 감정들을 그대로 담으면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모든 시즌을 통틀어 가장 부담이 적은 게 이번 시즌이다. 대본도 거의 안 보다시피 했으니까, 하하.



Q. ‘신의 퀴즈’는 당신의 존재감을 되찾아준 작품이기도 하다. ‘천하장사 마돈나’가 기점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신의 퀴즈’ 이전까지 부침을 거듭하기도 했다.
류덕환: 배우로서 많은 관객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내게도 문제가 있었던 건 맞다. 물론 내가 내 것만 챙긴 것도 있다. 어차피 난 김수현, 이민호와 같은 친구들처럼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과 색깔이 다르니까. 하지만 조급함은 없다. 계속해서 연기해오며 깨달은 사실은 ‘배우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나를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그런 변화의 출발점이 된 게 바로 ‘신의 퀴즈’였다.

Q. 연극배우로서도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그것도 당신을 채워나가는 과정의 일부인가.
류덕환: 연극에는 드라마, 영화와는 다른 힘이 있다. 지금도 주변에 연기하는 후배들에게 “단역이라도 좋으니 연극을 해보라”고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는 스크린을 통해 배우의 연기가 ‘필터링’ 돼 전달되지만, 연극은 관객에게 감정이 바로 전달된다. 피드백도 빠르다. 대중성 있는 작품을 포기하더라도 연극은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다. 내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연륜이 담긴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는 미숙하다. 그래서 송강호, 박해일, 신하균 선배처럼 빨리 ‘어른’이자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 그 정도 연륜이 쌓여야만 뭔가 진실한 감정을 연기로 전할 수 있지 않을까.

Q. 현재 연출도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것도 같은 이유인가.
류덕환: 계속 다른 관점으로 작품에 접근해보고 싶은 거다. 미술도 배우기 시작했고(이날도 류덕환이 메고 온 가방 안에는 미술용품이 들어있었다. 류덕환은 이동 중이나, 현장에서 짬이 날 때면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그전에는 지하철에서 사람을 봐도 성격, 성향, 걸음걸이 등을 봤는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뒤로는 몸의 선이나 뒤에서 들어오는 빛 등이 눈에 들어온다.

Q. 보통 글을 쓰든 연출을 하든, 첫 작품은 본인의 이야기라고 하더라. ‘남자와 여자 이야기’도 그랬나.
류덕환: 물론 나도 처음 쓴 작품은 내 이야기였다. 제작까지 간 건 아니지만, 하하하. 임필성 감독의 제안으로 올레 스마트폰영화제에 출품했다. 인터넷, 드라마, 영화 등의 매체가 일상에 너무 깊숙이 자리해 되레 우리의 삶을 빈곤하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외국에서는 일상적인 ‘사랑해’라는 말이 왜 한국에서는 별 감흥이 없는 말이 되었는지 묻고 싶었다. 내 생각을 이렇게 풀어내고 그 반응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참 즐거운 작업이더라.

Q. 배우 출신 감독의 수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당신도 계속해서 연기와 연출을 병행할 생각인가.
류덕환: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사석에서 이준익 감독이 “왜 장편을 준비하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급하게 가지는 않으려고 한다. 장편은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다. 나는 내 돈을 들여서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다, 하하. 앞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갈 생각이다.



Q. 어느덧 서른을 목전에 뒀다. 진우처럼 당신도 ‘어른’으로 넘어가는 애매한 성장기의 중심에 선 것 같다. 남자로서, 또 배우로서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나.
류덕환: 나는 항상 ‘나의 서른’이 궁금했다. 물론 군대 문제가 가장 크다. 걱정도 되고. 하지만 그 경험이 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일단 삶에 관성이 붙었으니 어느 상황에 놓이던 생각하는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살아가겠지.

Q. 마지막으로 시즌4를 기다려주신 팬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류덕환: 갑작스러운 변화에 몇몇 골수팬들은 당황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놀라지도, 부담 갖지도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봐 달라. 진우의 선택은 달라진 나의 선택이기도 하니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류덕환의 인터뷰와 사진은 텐아시아가 발행하는 매거진 ’10+Star’(텐플러스스타) 6월호를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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