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생활의 참견’ ‘아이소포스’의 작가 김양수의 이름을 처음 본 것은 월간지 ‘페이퍼’에서였다. 황경신, 정유희 등 소문난 글쟁이들이 기자로 있었던 당시 ‘페이퍼’에서 김양수는 유독 유머러스하고 일상을 기발하게 파고드는 글들을 선보였다. 재밌게 놀고먹은 여행기, 뮤지션들과 밤새 술을 마신 인터뷰를 싣는가 하면, 자신이 배우로 참여한 영화 ‘피곤해서 쉬고 싶은 김형사’의 컷을 따다가 다시 만화처럼 재구성하기도 했고, 만화 ‘카툰판타지’를 연재하며 그 안에서 직접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했다. ‘페이퍼’를 통해 엿보이는 그의 삶은 마치 하나의 시트콤과 같았다. ‘생활의 참견’이 그러하듯이 말이다.Q. 먼저 ‘생활의 참견’ 600회를 넘긴 소감부터 듣자.
2009년 가을 ‘생활의 참견’ 연재가 1년 반쯤 됐을 때 김양수를 처음 만났다. 실제로 만난 그는 만화에서처럼 매우 재미난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진지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언젠가 장편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작년 어는 날 그가 드디어 장편 ‘아이소포스’(글 김양수, 그림 도가도) 연재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솝’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작품을 보니 ‘생활의 참견’과는 전혀 달랐다. 이솝이 살던 기원전 600년경의 그리스의 풍경들이 건조하게, 때로는 역동적인 컷으로 담겨져 있었다. ‘생활의 참견’이 시트콤이라면 ‘아이소포스’는 대서사시에 가까웠다. 바쁘고 잘 나가는 작가인 그가 갑자기 왜 이솝에 대한 이야기를 던진 것인지 궁금했다. ‘생활의 참견’이 600회를 돌파하고 ‘아이소포스’가 20회를 넘어섰을 무렵 김양수를 만났다.
김양수: 사실 600회 돌파에 거창한 의미부여 같은 것을 하고 싶지는 않는다. 주위에 1,000회 넘게 한 작가들도 많다. 돌이켜보면 100회 했을 때 가장 감동적이었다. 처음엔 100회 채우는 게 목표였거든. 지금은 매번 100회 특집을 어떻게 꾸릴지가 먼저 고민이다.
Q. ‘생활의 참견’은 일상의 재구성이 아닌가? 소재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하고 있다. 이제는 대중이 ‘생활의 참견’의 개그코드에 익숙해져 있을 정도다.
김양수: 내 만화는 음식으로 치면 특별한 날 먹는 고급음식보다는 삼겹살처럼 흔히 먹을 수 있는 정도인 것 같다. 안 보면 미칠 것 같은 만화는 아니지만, 언제든 편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지금은 그래도 대중의 생활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아 고무적이다. 그런데 거기에 안주하면 익숙해지다가 지겨워질 수 있다. 만화 연재가 연애랑 똑같은 거다. 오래된 커플에게 전환점이 필요하듯이 ‘생활의 참견’도 그런 지점을 고민해야 한다.
Q. 최근의 ‘생활의 참견’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김양수: 요새는 일상 내 이야기에 더 집중을 하는 편이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밌긴 하지만 거기에 너무 기대는 것 같아서. 만화를 극적인 효과나 반전에 신경쓰다보면 공감이 덜 된다. 그래서 요새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분량을 늘려가고 있다. 처음에는 내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고, 예기치 않게 내가 실제와 다른 사람처럼 비쳐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극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게 더 재밌는 부분이 있더라.
Q. 요새 만화에 시우, 시영이가 자주 등장하는데 본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김양수: 시영이는 아직 어려서 모른다. 시우는 만화 그릴 때 옆에서 검토한다. 시우는 자기가 만화에 나오는 거 부끄러워하면서 내심 좋아하는 것 같다. 집에 손님들이 오면 시우가 단행본 ‘시우는 행복해’를 들고 와서 “아빤 왜 이런 책을 만들어 창피하게” 이런다.(웃음) 어서 결혼해서 애 낳아라.
김양수 주연의 영화 ‘피곤해서 쉬고 싶은 김형사’
Q. ‘생활의 참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페이퍼의 ‘카툰판타지’까지 합치면 15년째 만화를 그리고 있다.김양수: 전업 만화가로 전환했을 때가 3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던 때다. 그때는 만화가로 안 되면 또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지금은 평생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다. 정말 만화가가 된 것이다. 나중에 인기가 떨어지면 삽화를 그려도 굶지 않겠구나 생각하면 뿌듯하기도 하다.
Q. 예전에 페이퍼에서 기자를 할 때에는 곽백수 등 만화가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들과 매주 만화가모임을 갖지 않나? 아이디어 회의인가?
김양수: 백수 형, 그리고 황진선, 빡세 등 여러 작가들이 모인다. 지금 인터뷰 끝나면 또 만나러 갈 거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배운다. 정확히 말하면 만화가들이 만나서 같이 이야기를 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사를 쓰면 편집장에게 먼저 보여주지 않나? 그런 것처럼 서로의 아이디어를 전문가들끼리 검토하는 거다. 난 그들의 감을 믿는다. 내가 감이 없는 편이거든. 혼자서만 작업하다보면 재미없는 것도 재미있다고 합리화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것이 계속되면 위험해질 수 있다.
Q. 만화는 재밌어야 한다. 일상의 재구성을 재밌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한계에 봉착할 때도 많을 것 같다.
김양수: 재미없는 상황을 재밌게 연출하는 것은 작가가 할 일이다. 내 만화는 상상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을 섬세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가 지금 술을 먹다가 술잔이 엎어져도 그걸로 웃길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먹는 대창이 기름이 튀어서 불이 확 붙을 수 있잖아.
Q. 그러고 보면 기자생활 했던 게 만화 그리기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김양수: 물론이다. 결국은 내 만화도 서사다. 그 서사 구조가 망가지면 안 된다. 그런 걸 배운 것이 기자를 할 때다. 그때 짧은 호흡으로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을 배운 것이지. 지금 우리가 술 마시는 일도 서론 본론 결론으로 만들 수 있잖아. 그런 걸 경신 누나, 유희 누나에게 10년 동안 배운 거다. 그들에게서 글 쓰는 걸 많이 배웠다. 편집장이던 경신 누나는 “양수야 앉아봐.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차근차근 알려주셨던 기억이 난다. 유희 누나에게도 많이 혼났지.
Q. 최근에는 ‘나는 용이다’(609화)를 재밌게 봤다.
김양수: 그게 실화라는 것이 더 웃기지. 그런 상황이 오면 아무리 술이 취해 있어도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즐겁기도 하다.
Q. ‘나는 용이다’에서 어린이에게 그림 못 그린다고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김양수: 내 만화에 캐릭터들이 상체만 등장하는 것은 내가 그림을 못 그리기 때문이다. 내가 그림을 누구에게 배운 적이 없고, 혼자 끄적거리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그래서 그림을 제대로 하는 만화가들을 보면 내 자신이 너무나 작아진다. 다만 선배 만화가들이 나에게 부러워하는 것은 손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특정 만화가를 대상으로 연습할 경우 다른 스타일을 만들기 어려워진다. 그림만 봐도 작가의 이름을 알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다행인 것 같다.
Q. 그래도 김양수 만화는 작법이나 그림이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스타일이 아닌가. 특히 누구나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김양수: 사인회를 하면 가끔 할머니들이 오실 때도 있다. 초등학생부터 60~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재밌게 봐주시는 게 고맙다.
Q. ‘아이소포스’는 ‘생활의 참견’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김양수: 내가 역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 에세이를 보다가 이솝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그 책에는 이솝이 고대 그리스의 글 쓰는 노예 정도로 설명이 돼 있더라. 관심이 생겨 이솝에 대해 찾아봤더니 그가 야돈몬의 노예였으며 델포이에서 죽음을 당했다는 정도의 기록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솝우화를 다 알고 있는데 정작 이솝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매력적인 소재로 느껴졌다.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짜릿하게 다가오더라. 내가 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Q. 이솝에 대한 기록이 없으면 ‘아이소포스’는 거의 창작물이 아닌가?
김양수: 그렇다. 그래서 이솝이 살던 그리스 시대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그 시대를 완전히 이해해야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니까. 이솝에 대해 여러 가지 ‘설’들이 존재하긴 한다. ‘아이소포스’는 그 시대에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Q. 김양수가 글을 쓰고 도가도가 그림을 그린다. 굉장히 신선한 아이템인데 혼자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김양수: 처음에는 나 혼자 완성해보려 했다. 그런데 ‘생활의 참견’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소포스’를 그리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아이소포스’는 스케일 있게 가고 싶었다. 내 연출력으로는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고민하던 차에 만화가 모임에서 도가도 형을 만났다. 원래 알던 형이었는데 ‘아이소포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너무나 공감하더라. 형의 그림 스타일이 내가 생각한 이야기와 기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Q. ‘아이소포스’를 보면 이 작품이 ‘생활의 참견’ 작가의 글이라는 것이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
김양수: ‘아이소포스’에서 악역이라 할 수 있는 드라콘의 대사를 쓸 때마다 내 안에 이런 악랄한 면도 있구나 하면서 놀란다.
Q. ‘아이소포스’를 보면 그리스 시대의 ‘참주정’과 같은 역사에 대한 설명도 나오더라.
김양수: 역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고증에 힘을 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팩션이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장편이라서 호흡이 길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 연도를 전부 맞춰서 가기에 어려움이 많다.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아이소포스’는 화려하게 꾸미거나 억지로 감동 코드를 집어넣기 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전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텍스트를 만들고 싶었다.
Q. 성경과 같은 텍스트 말인가?
김양수: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솝을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아이소포스’는 해외에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아이소포스’는 총 3부작으로 나뉜다. 1부는 어린 이솝의 모험, 2부는 청년 이솝이 에게 해를 무대로 치르는 싸움, 3부는 우리가 아는 이솝우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Q. 본인 인생의 만화를 꼽자면?
김양수: ‘닥터슬럼프’가 아닐까 한다. 요새도 가끔 보는데 정말 눈물 나게 웃긴다. ‘닥터슬럼프’ 방식의 개그코드를 좋아한다. ‘란마 1/2’의 작가인 다카하시 루미코의 ‘메종일각’도 좋아하는 작품이다. 캐릭터 만화의 끝이라고 할까? 언젠가 ‘메종일각’과 같은 캐릭터 만화에 도전해보고 싶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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