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에서는 매주 10장의 앨범을 선정해 ‘요주의 10음반’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싣고 있다. 지난 4월 13일부터 12월 6일까지 총 24회의 기사를 통해 240장의 앨범을 소개했다. 그 중 2013년 결산과 함께 30장의 팝 음반을 골라봤다.
데이빗 보위 ‘The Next Day’
단언컨대 이것은 최고의 컴백 앨범이다. 데이빗 보위와 같이 거대한 뮤지션이 새 앨범을 낸다고 하면 걱정부터 되는 것이 사실이다. 완벽한 디스코그래피에 누가 될까 봐서다. 보위가 10년 만에 내놓는 정규 24집 ‘더 넥스트 데이(The Next Day)’는 이름에 흠집을 내기는커녕 그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는 사실을 더 단단하게 해주는, 올해 가장 빛나는 수작이다. 올해로 66세인 뮤지션이 어떻게 이런 감각을 보여줄 수 있을지 실로 놀라울 뿐. 이 앨범의 커버는 보위의 예전 앨범 ‘히어로즈(Heroes)’ 앨범재킷 위에 단지 흰 사각형을 덧댄 디자인. 커버를 재활용한 이유는 ‘히어로즈’가 데이빗 보위의 ‘베를린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깊은 감동을 전하는 첫 싱글 ‘웨어 아 위 나우?(Where Are We Now)’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전과 지금의 베를린을 비교하는 곡이기도 하다. 그 외에 데이빗 보위 특유의 방탕한 로큰롤인 ‘더 넥스트 데이’, 다크한 이미지의 ‘더티 보이스(Dirty Boys)’, ‘더 스타스(아 아웃 투나잇)(The Stars(Are Out Tonight))’ 등은 어떤 스타일로 정의할 수 없는 그저 데이빗 보위 그 자체의 곡이다. 한편 데이빗 보위는 이번 앨범에 대한 투어 계획이 없다고 한다. 레코딩 도중 누군가가 이 신곡들을 전부 어떻게 라이브로 할 거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데이빗 보위는 라이브는 하지 않는다고 짧게 답했다고. 슬프지만, 이러한 대답조차 데이빗 보위답다.
다프트 펑크 ‘Random Access Memories’
바야흐로 다프트 펑크 열풍이라고 해도 좋다. 음원이 나오자마자 해외에서는 물론이고 국내 팝 부문 음원차트를 휩쓸더니만 여기저기서 극찬이 끊이질 않는다. 해외 유력 매체들 사이에서도 최고 별점들이 쏟아져 이대로라면 연말 ‘올해의 앨범’ 리스트에서 손가락 안에 들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서의 열풍은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의 유행 때문일까? 하지만 신보의 음악은 70년대 디스코에 맞닿아 있다. 쉭의 나일 로저스와 퍼렐이 참여한 노래 ‘겟 럭키(Get Lucky)’가 미리 공개됐을 때에는 이게 과연 다프트 펑크의 음악이 맞나 싶어 놀라 자빠질 정도였으니까. 이 곡 외에도 신보에는 일렉트로니카와 복고 디스코의 결합이 매끄럽게 나타나고 있다. 다프트 펑크 식의 아날로그 댄스뮤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렉트로니카 뜨는 가운데 그 원조인 다프트 펑크가 역행을 이유는 뭘까? “요즘 음악에는 감성이 부족하고 기술을 과대평가한 느낌이 있다. 감정은 컴퓨터로는 잡기 힘들다.”(소니뮤직이 제공한 제네릭 인터뷰)
아케이드 파이어 ‘Reflektor’
아케이드 파이어는 매 앨범마다 마법고 같은 순간을 선사했다. 그 ‘마법’이라는 것은 매 차기작마다 전작을 뛰어넘는 비범함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들을 새로운 시대의 록 파이오니아로 만들어준 1집 ‘퓨너럴(Funaral)’을 2집 ‘네온 바이블(Neon Bible)’로 뛰어넘으며 정점에 향하는 듯하더니, 3집 ‘더 서버브스(The Suburbs )’로 그래미상을 거머쥐며 명실상부 최고의 밴드로 떠올랐다. 이제는 아케이드 파이어가 지금의 록을 대표하는 밴드임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것 같다. 새 앨범에서는 전에 비해 전자음악의 질감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기존의 정체성을 헤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색에 디지털의 색을 섞으며 아케이드 파이어의 도화지는 한 뼘 더 커졌다. 어서 내한공연 와주길, 우리에게 마법과 같은 순간을 선사하길!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 ‘Black Radio 2’
미국 재즈 연주자 중 꽤 ‘강골’인 흑인 연주자들은 재즈를 재즈라 부르지 않고, 흑인음악(Black Music)이라 지칭하는 이들도 있다. 재즈라는 ‘용어’ 자체에 백인들의 편견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는 순수한 흑인음악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재즈와 소울, 그리고 힙합의 만남이 얼마나 유연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창의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줬다고 할까? 이번 앨범은 그래미상을 수상한 전작 ‘블랙 라디오(Black Radio)’의 후속작이다. 전작이 재즈적인 방법론을 강조했다면, 이번 앨범은 흑인음악이니 소울에 무게를 두고 있다. 덕분에 전보다 팝적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실험적인 음악을 기대한 이들에게는 조금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이 카니에 웨스트, 자넬 모네와 함께 첨단의 흑인음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라 해서웨이를 포함해 커먼, 페이스 에반스, 노라 존스, 스눕 독, 에밀리 산데, 브랜디 등이 앨범에 참여했다. 노라 존스는 ‘렛 잇 라이드(Let It Ride)’에서 의외로 밀접한 앙상블을 들려주고 있다.
폴 매카트니 ‘New’
명불허전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써야 한다. 폴 매카트니 새 앨범이 ‘죽여주게’ 들리는 것은 우리의 감성이 이미 그의 어법에 맞춰져 있기 때문만은 아닐 터. 폴 매카트니는 작년에 기존의 팝 스탠더드를 재해석한 앨범 ‘키스 온더 보텀(Kisses on the Bottom)’을 발표한 바 있다. 신곡을 발표하는 것은 2007년 앨범 ‘메모리 올모스트 풀(Memory Almost Full)’ 이후 6년 만. 이번 앨범에 대해 폴 매카트니는 “제가 이 앨범의 곡들을 연주하면 다들 놀라더라. 모든 트랙이 제각각 다채로워서 이게 정말 내가 알던 폴 매카트니가 맞나 싶을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그의 말처럼 비틀즈, 폴 매카트니 솔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특유의 멜로디부터 최근 트렌드를 흡수한 신선한 사운드도 엿보인다. 강렬한 록 사운드 사이로 감수성을 자극하는 ‘세이브 어스(Save Us)’, 듣자마자 비틀즈를 연상케 하는 ‘뉴(New)’, ‘퀴니 아이(Queenie Eye)’ 등 전곡이 경이롭다. 칠순이 넘은 뮤지션이 이 정도의 음악을 만드는 것을 보면, 젊은 시절 존 레논과 힘을 모은 비틀즈로 세상을 바꾼 것이 당연한가?
로빈 시크 ‘Blurred Lines’
로빈 시크의 노래 ‘블러드 라인스(Blurred Lines)’는 빌보드싱글차트에서 무려 12주간 정상에 오르며 올해 나온 곡 중 최장기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퍼랠 윌리엄스가 피처링한 이 곡은 살짝 과거 디스코 풍이지만 동시에 트렌디함도 느껴지는, 근래 들어본 곡 중 단연 멋진 곡이다. 이렇게 미니멀하면서도 올드스쿨 풍의 훵크가 빌보드차트를 점령한 것이 과연 얼마만인가? 로빈 시크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흑인음악인 소울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가령 ‘우 라 라(Ooo La La)’와 같은 곡은 전형적인 디스코 곡이다. 하지만 그에게 과거의 색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으며 매우 감각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로빈 시크는 국내에는 낯설지만 오랜 경력을 가진 뮤지션이다. 어셔, 메리 제이 블라이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브랜디 등과 함께 작업해왔으며 이번 앨범이 6집이다. 이제는 21세기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 중 대표주자로 꼽혀도 손색이 없을 듯.
제임스 블레이크 ‘Overgrown’
제임스 블레이크의 정규 2집. 2011년에 나온 그의 데뷔앨범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에 담긴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는 세계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냈다. 마치 작년의 프랭크 오션처럼 말이다. 파이스트를 커버한 ‘리미트 투 유어 러브(Limit To Your Love)’를 비롯해 그가 들려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는 기존의 음악과 궤를 달리하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제임스 블레이크의 공연을 직접 보고 느낀 것은 그가 만들어내는 음압이 정말로 거대하다는 것. 그는 단순히 샘플링을 배열하는 수준을 넘어선 소리의 마술사였다. 2집은 기본적으로 1집은 연장선에 있다. 이것은 반복이 아니라, 자신이 일궈낸 음악세계를 더욱 발전시킨 것에 해당한다. 조니 미첼을 만난 영감을 풀어낸 ‘오버그로운(Overgrown)’, 우탱클랜의 르자(RZA)가 참여한 ‘테이크 어 폴 포 미 인 뉴욕(Take A Fall For Me In New York)’, 브라이언 이노와 공동으로 작곡한 ‘디지털 라이온(Digital Lion)’ 등은 제임스 블레이크가 더욱 거대한 아티스트가 됐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카니예 웨스트 ‘Yeezus’
카니예 웨스트는 2010년에 나온 5집 ‘마이 뷰티풀 다크 트위스티드 판타지(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부터 상업성을 넘어 그 대단한 음악적 야심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힙합을 가지고 록이 반세기 동안 구축한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스크릴렉스가 ‘짱’인 요즘 같은 때에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제이지와 함께 한 전작 ‘와치 더 쓰론(Watch The Throne)’에서는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을 저세상에서 소환해 소울의 전통에 다가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저스(Yeezus)’에서는 다시 피치를 오려 진보적이라 할 만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이저스’는 앨범커버, 부클릿, 인레이 없이 CD 알판만 들어있는 엽기적인 디자인으로 먼저 눈길을 끈 바 있다. 앨범재킷 따윈 필요 없을 정도로 음악에 자신이 있다는 뜻인가? 심지어 ‘아이 엠 어 갓(I Am A God)’이란 노래도 있다. 그런데 카니에 웨스트가 선보이는 음악적 아이디어는 깜짝 놀라 뒤집어질 정도이긴 하다. 가령 재즈 보컬리스트 니나 시몬의 ‘스트레인지 프루트(Strange Fruit)’을 샘플링한 ‘블러드 온 더 리브스(Blood on The Leaves)’에서는 두 개 이상의 테마가 절묘하게 겹쳐져 제3의 음악을 이끌어내는 테크닉이 놀랍다. 다프트 펑크, 본 아이버의 저스틴 버논, 프랭스 오션, 존 레전드 등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그저 거들 뿐이다.
제이지 ‘Magna Carta’
‘대헌장’이라니 앨범제목부터 거창하다. 최근 들어 제이지(Jay-Z)는 뮤지션보다는 사업가로서 수완을 더 보여 왔다. 이번 앨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도 홍보방식이 첨단이다. 삼성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앨범 발매 먼저 곡을 들어볼 수 있게 한 것. 이로써 제이지는 앨범 발매도 전에 100만 장을 삼성에게 팔았다고 한다. 사업적 수완을 어디까지나 둘째라고 믿고(제이지 본인도 그리 생각하리라 믿고) 음악을 들어보면 역시 첨단의 힙합이다. 예수의 피를 받은 ‘성배’를 성공의 양면성에 비유한 ‘홀리 그레일(Holy Grail)’을 듣다보면 중간에 너바나 노래 가사(entertain us)가 나와서 조금 놀랄 수도 있다. 커트 코베인 역시 성공의 양면성에 괴로워했기에 가사로 썼을까? 저스틴 팀버레이크, 비욘세, 프랭크 오션, 퍼렐 윌리엄스, 팀발랜드 등 화려한 게스트는 얼마 전 발매된 카니예 웨스트의 앨범 ‘이저스(Yeezus)’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음악은 전혀 다르지만.
자넬 모네 ‘The Electric Lady’
현재 미국 흑인음악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뮤지션이 바로 자넬 모네다. 전작 ‘더 아치안드로이드(The ArchAndroid)’가 중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가히 혁명과도 같은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소울의 역사를 한 장의 앨범에 집대성한 느낌이랄까? 고전적인 향취를 취하돼 그것을 기존의 흑인음악보다도 더 진보적인 방법으로 풀어헤쳤다. 프로그레시브 록에 범접할만한 방대한 스케일은 마치 록의 역사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모습으로 보이기까지 하더라. ‘더 아치안드로이드’ 이후 3년이 넘게 흘렀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블랙뮤직 앨범은 들어볼 수 없었기에 자넬 모네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가 대단했다. ‘더 일렉트릭 레이디(The Electric Lady)’는 전작에서 스토리가 이어지는 콘셉트 앨범으로 자넬 모네가 그려가고 있는 7부작 이야기 중 4~5부에 해당한다고 한다. 새 앨범에는 프린스, 에리카 바두, 미구엘, 에스페란자 스팔딩 등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깐깐한 프린스가 보기에도 소울을 진화시키는 자넬 모네가 예뻤나 보다. 가스펠부터 소울, 펑크(funk), 모타운 사운드부터 힙합에 이르기까지 흑인음악의 총체적인 요소를 버무려 현대적인 작법으로 색칠한 방법론은 전작에서 이어진다. 그리고 혁명도 계속된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The 20/20 Experience - 2 of 2’
올해 3월에 정규 3집 ‘더 20/20 익스피어리언스(The 20/20 Experience)’의 후속작. ‘더 20/20 익스피어리언스’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대단한 음악적 욕심이 드러난 결과물이자, 백인 아티스트로는 정말로 드물게 R&B의 새로운 진화를 보여준 앨범이다. 보이밴드 출신의 백인 뮤지션으로서 음악적으로 소울·펑크 등 R&B에 대한 진지하고 진취적인 접근을 취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겉으로 보기에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연미복을 차려입고 있지만 그 속은 마이클 잭슨 또는 스티비 원더가 숨어있다고 할까? 상업성보다도 음악적 욕심을 부린 앨범이 발매 첫 주에 무려 96만장이 팔리 며 역대 팀버레이크 앨범 중 첫 주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니 위세가 대단하다. 팀버레이크는 ‘더 20/20 익스피어리언스’를 녹음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노래가 너무 많아서 2부작으로 앨범을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기에 음악적 노선은 전작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차이를 말하자면 전작이 스티비 원더 앨범 같았다면, 이번 앨범은 마이클 잭슨에 가깝다고 할까? 저스틴 팀버레이크, 올해의 남자다.
펫 샵 보이즈 ‘Electric’
이것은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가 선보이는 21세기형 클럽 음악이다. 주지하다시피 펫 샵 보이즈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의 아버지뻘 되는 아티스트다. 약 8개월 전에 나온 전작 ‘엘리시움(Elysium)’에서는 다소 차분한 음악을 선보인 그들이지만, 신보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트렌디한 클럽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댄서블한 가운데 중후함이 있다. 마치 “아이들아 클럽음악도 우리가 하면 이렇게나 품격이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자신들의 색을 지키면서 첨단을 달리는 것’은 어쩌면 상업 아티스트의 숙원일진데 펫 샵 보이즈는 그것을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다. 앨범에서 가장 수려한 멜로디를 지닌 트랙 ‘러브 이즈 어 부르주아 콘스트럭트(Love Is A Bourgeois Construct)’를 들어보면 마돈나의 ‘헝 업(Hung Up)’의 사운드 질감이 떠오른다. 이것은 마돈나 곡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스튜어트 프라이스가 펫 샵 보이즈의 이번 앨범에 참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팻 메시니 ‘Tap- John Zorn’s Book of Angels, Vol. 20’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와 프리 아방가르드의 거장 존 존(John Zorn)이 만났다. 팻 메시니는 국내에서 가장 폭넓게 사랑받는 재즈 아티스트다. 일례로 팻 메시니 내한공연을 보러갔다가 강용석 전 의원과 마주친 일도 있다. 어쩌면 팻 메시니는 재즈의 매력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좋은 텍스트 중 하나일 것이다. 일반인에게도 어필하는 리리시즘부터, 퓨전재즈, 비밥, 프리 아방가르드에 이르기까지 손대지 않은 것이 없으니 말이다. 이 앨범은 팻 메시니가 존 존이 자신의 뿌리인 유대인 민속음악에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들을 연주한 일종의 송북(songbook) 해석집이다. 둘은 이 앨범 작업 기간 동안 메일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굉장히 난해한 연주가 담겼을 거라 예상하면 오산이다. 존 존의 곡은 중동 풍의 멜로디부터 아방가르드 성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존 존의 곡을 연주하는 팻 메시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고 즐거워 보인다. 이 작품 덕분에 존 존이라는 훌륭한 아티스트가 더 많이 알려지겠지. 뿌듯하다.
블랙사바스 ‘13’
오지 오스본이 참여한 블랙사바스의 새 앨범이라니! 록 팬들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또 있을까? 게다가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이 초기 블랙사바스가 가진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면 이는 더 할 나위 없는 축복일 것이다. ‘13’이 그렇다. 원년멤버인 오지 오스본과 토니 아이오미, 기저 버틀러가 건재하며 계약 문제로 팀을 이탈한 드러머 빌 워드의 빈자리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드러머 브래드 윌크가 대신했다. 블랙사바스 특유의 파워풀한 사운드와 중후함, 어두운 이미지가 잘 살아있으며 무엇보다도 건재한 오지 오스본의 목소리가 반갑다. 최근 블랙사바스의 일본공연을 보고 온 지인의 말에 따르면 오지 오스본의 목소리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하던데, 실제로 본다면 여한이 없겠다.
레이디 가가 ‘Artpop’
레이디 가가의 정규 3집. 가가보다 더 파격적이기는 거의 불가능할 거다. 매 앨범마다 온 몸을 던지는 그녀. 별의별 퍼포먼스를 다 했으니 이제 더 보여줄게 있을까 싶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을 보면 용하다. 이 때문에 음악보다 기괴한 퍼포먼스와 패션이 더 주목을 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뭐 어떤가?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것이 레이디 가가이니 말이다. 새 앨범 타이틀곡 ‘아플루즈(Applause)’도 뮤직비디오가 압권이다. ‘포커 페이스(Poker Face)’는 이제 낡게 보일 정도. 최근 마일리 사이러스가 한창 섹스어필 중이지만, 아직 가가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이제 가가는 섹스어필을 단지 섹스어필로만 끝내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단계까지 온 것 같다. 앨범 제목이 ‘아트팝’인만큼 수록곡들은 기존의 일렉트로 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다소 풍성한 사운드를 선사한다. 알 켈리가 피쳐링한 ‘두 왓 유 원트(Do What You Want)’는 멋진 콜라보레이션을 선사한다.
존 레전드 ‘Love In The Future’
현재 미국 소울음악계를 대표하는 이름 존 레전드(John Legend)가 5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앨범. 존 레전드의 음악이 반가운 이유는 그가 소울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공연에서 ‘웨이크 업 에브리바디(Wake Up Everybody)’를 노래할 때마다 곡 말미에는 테디 펜더그래스의 ‘클로즈 더 도어(Close The Door)’의 전주를 삽입하는 것을 봐도 존 레전드의 방향성을 잘 알 수 있다. 이번 신보는 존 레전드의 앨범 중에서도 특히 고전 소울에 대한 사랑이 노골적으로 나타나 있다. ‘후 두 유 씽크 위 아(Who Do We Think We Are)’에 진 나이트, ‘투모로우(Tomorrow)’에 닥터 존의 음악을 샘플링한 것을 시작으로 ‘홀드 온 롱거(Hold on Longer)’에서 스티비 원더 방식의 신디사이저 편곡을 재현하는 등 그런 노력이 엿보인다. 물론 가장 두드러진 것은 존 레전드만의 훌륭한 멜로디다.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의 경우 존 레전드가 ‘오디내리 피플(Ordinary People)’ 이후 그만한 멜로디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곡이 아니겠는가? 존 레전드는 ‘레전드’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소울 뮤지션이다. 물론 냇 ‘킹’ 콜, 스티비 ‘원더’의 이름들과 존 ‘레전드’를 비교하는 것은 아직 힘들겠지만 지금처럼 전통의 고집에서 조금 벗어난 행보를 시도해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에미넴 ‘The Marshall Mathers LP 2’
왕자가 돌아왔다. 올해도 역시 힙합이 강세였고, 제이지, 카니에 웨스트는 연달아 묵직한 앨범을 발매했다. 에미넴 역시 두 ‘왕’에게 절대 꿀리지 않는 앨범으로 돌아왔다. 정규 7집인 이번 앨범은 2000년에 나온 2집 ‘더 마샬 매더스 LP(The Marshall Mathers LP)’에서 이어지는 연작이다. 2집은 에미넴을 정상의 자리로 올려준 앨범이었다. 이번 앨범은 에미넴이 여전히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랩 갓(Rap God)’에서 나타나듯이 단어를 콸콸 쏟아내는 무시무시한 래핑은 여전하다. 닥터 드레를 비롯해 알렉스 다 키드 리아나, 펀의 보컬 네이트 루스, 스카일라 그레이, 그리고 이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힙합의 신성 켄드릭 라마 등이 참여했다. 유명 프로듀서 릭 루빈이 참여한 ‘버저크(Berzerk)’는 비스티보이스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운드는 보다 트렌디해졌지만, 역시 귀를 강타하는 것은 에메넴의 ‘분노한 혀’다.
비디 아이 ‘BE’
비디 아이의 2집.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바닥에 누운 채 가슴을 드러낸 여성을 담은 앨범재킷(영국 사진작가 해리 패치노치의 1960년대 작품으로 앨범재킷을 펼치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다)이지만, 순수한 팬들이라면 그 안에 담긴 음악이 더 궁금할 것이다. 그래도 사진 이야기를 좀 더 하면, 당연히 국내에는 스티커로 가려진 상태로 발매됐으며 음원사이트에서는 노출부위를 잘라낸 사진이 사용되고 있는데, 영국에서도 진열 불가 판정을 받아 노출부위를 스티커로 가리게 했다고 한다. 이에 리암 갤러거는 “이것은 포르노가 아니야. 이건 엄마한테도 보여줄 수 있는 고전 사진”이라고 말했다고. 그래서 ‘음악은 고전이냐’라고 물으면 ‘훌륭하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1집 ‘디퍼런트 기어, 스틸 스피딩(Different Gear, Still Speeding)’부터 오아시스의 잔재는 별로 없었고, 60년대 영국 로큰롤 스타일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2집은 그러한 매력이 한층 강화됐다. 이런! 리암에게는 더 이상 노엘 갤러거가 필요 없는 거다. 물론 비디 아이보다 노엘 갤러거의 내한공연이 관객이 훨씬 많았다. 그래도 한국에는 아직 당신을 보러 일본행 비행기에 오르는 여성 팬이 있다는 사실을 리암에게 말해주고 싶다.
포올스 ‘Holy Fire’
포올스는 올해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찾은 록밴드 중 단연 인상적인 무대를 펼쳤다. 직선적이면서도 그루브를 가진 리듬, 밀도 있는 록 사운드는 관객들의 몸과 마음을 동하게 했다. 2005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결성된 5인조 밴드 포올스의 3집. 록페스티벌의 묘미라면 처음 보는 뮤지션의 음악을 통해 관객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밴드가 바로 포올스일 것이다. 포올스의 뿅뿅 거리는 록을 들으면 최근 범람하는 일렉트로 록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오산이다. 신스팝부터 매스 록(math rock)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지닌 포올스는 댄서블한 리듬부터 연주의 추구에 이르기까지 록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밴드.
드림 시어터 ‘Dream Theater’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대명사 드림 시어터가 데뷔 28년 만에 처음 내놓는 셀프 타이틀 앨범이다. 그러고 보니 ‘풀 미 언더(Pull Me Under)’, ‘어나더 데이(Another Day)’가 담긴 앨범 ‘이미지스 앤 워즈(Images And Words)’가 나온 지도 20년이 훌쩍 지났다. 2010년에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가 탈퇴해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작년 내한공연에서 드림 시어터는 여전히 화려한 초절기교의 연주를 들려줬고, 2011년 앨범 ‘어 드라마틱 턴 오브 이벤츠(A Dramatic Turn of Events)’로 처음 그래미 후보로 지명되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다. 정규 12집인 새 앨범에서는 초심으로 돌아가려 했다고 한다. 장엄하기까지 한 첫 곡 ‘폴스 어웨이크닝 수트(False Awakening Suite)’부터 헤비한 광폭하게 달려가는 ‘더 에네미 인사이드(The Enemy Inside)’, 멤버 간의 칼 같은 호흡을 느껴볼 수 있는 ‘이니그마 머신(Enigma Machine)’에 이르기까지 마치 젊은 시절의 드림 시어터를 보는 듯하다. 22분짜리 마지막 곡 ‘일루미네이션 씨어리(Illumination Theory)’는 ‘파라독스 드 라 뤼미에르 누아르(Paradoxe de la Lumiere Noire, 검은 빛의 역설)’, ‘리브, 다이, 킬(Live, Die, Kill, 生, 死, 殺)’, ‘더 엠브라싱 서클(The Embracing Circle, 포용의 원)’, ‘더 퍼쉬트 오브 트루스(The Pursuit of Truth, 진실의 추구)’, ‘서렌더, 트러스트 앤 패션(Surrender, Trust &Passion, 굴복, 신뢰와 열정)’ 등 5부작으로 구성돼 드라마틱한 감흥을 전한다. 이것이 바로 드림, 드림시어터!
모비 ‘Innocents’
일렉트로닉 뮤직 계의 거물 모비의 정규 11집. 행여나 일렉트로니카라는 단어에 오해를 가질까봐 하는 말이지만, 모비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과 같은 클럽음악과 전혀 상관없이 일렉트로니카의 어법을 통해 진지한 음악을 들려줘왔다. 우울한 일렉트로 팝이라고 할까? 사운드 완성도 면에서는 언제나 최고의 음악을 들려줘왔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새 앨범의 곡들 역시 스산한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청자로 하여금 사색의 시간을 가지게 한다. 마크 레너건, 웨인 코인, 데미안 후라도 등 여러 보컬리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 돋보인다. 플레이밍 립스의 보컬 웨이 코인이 노래한 ‘퍼펙트 라이프(Perfect Life)’는 희망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 스크리밍 트리스의 보컬 마크 레너건이 특유의 저음으로 내리깔아 노래한 ‘더 론리 나이트(The Lonely Night)’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프란츠 퍼디난드 ‘Right Thoughts Right Words Right Action’
약 10년 전에 라디오에서 ‘테이크 미 아웃(Take Me Out)’을 들었을 때는 프란츠 퍼디난드가 이렇게 대형 밴드가 될 줄 미처 몰랐다. 그 노래만 듣고는 영국 최고의 신인이라는 수식어가 과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프란츠 퍼디난드가 들려준, 포스트펑크에서 이어지는 거칠고 댄서블한 록이 어느새 대세가 돼 있지 않나? 지겨울 정도로 말이다. 4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 4집에서는 예의 거친 사운드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리듬이 역시 잘 살아있다. 첫 곡 ‘라이트 액션(Right Action)’을 듣자마자 기타연주로 춤추게 하는 능력은 프란츠 퍼디난드만한 밴드를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브리프 엔카운터(Brief Encounter)’와 같은 곡에서는 신디사이저와 유럽의 고전적인 분위기가 잘 섞여 있는데 이런 것이 원숙함이라면 원숙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앨범을 통해서도 프란츠 퍼디난드는 지루하지 않게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제이크 버그 ‘Jake Bugg’
콧대가 우주를 찌르는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 출신의 노엘 갤러거가 인정했다는 신인 싱어송라이터 제이크 버그의 데뷔앨범. 노엘 갤러거가 머리 굵어진 이후에도 누군가의 음악을 듣고 인정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것보다 놀라운 사실은 바로 제이크 버그의 음악이다. 앨범을 플레이하면 밥 딜런, 더 나아가 우디 거스리와 같은 미국의 예스러운 포크음악이 떠오른다. 1994년생이 자신이 태어나기 거의 반세기 전의 음악을 단지 흉내만 낸다면, 그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볼거리로 그칠 것이다. 하지만 제이크 버그는 과거의 유산을 바탕으로 출중한 음악을 만들어 들려주고 있다. 노엘 갤러거가 반할만하다. 올해 가장 인상적인 데뷔앨범 중 하나.
스팅 ‘The Last Ship’
스팅이 10년 만에 발표하는 오리지널 곡으로만 채워진 앨범 ‘더 라스트 쉽(The Last Ship)’은 자신의 고향인 영국 북동부의 조선소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을 제작하던 중에 받은 영감을 고스란히 옮긴 작품이라고 한다. 스팅이 태어난 월젠드의 주민들은 상당수가 목조선을 만들며 생활을 영위했고, 스팅의 가족 역시 이 일에 종사했다고 한다. 몇 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팝계를 통틀어 최고의 뮤지션으로 자리하고 있는 스팅은 음악과 동떨어진 이런 환경에서 자랐구나. 음악적으로 봤을 때 영국의 트레디셔널한 포크음악 성향이 나타난다. 악기들도 피들, 백파이프 등을 사용해 켈틱 포크 느낌도 난다. 물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으 스팅 고유의 멜로디다. 아마도 스팅에게는 가장 자전적인 앨범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한 가지 명징한 사실은 스팅은 여전히 ‘더 나이트 더 퓨질리스트 런드 하우 투 댄스(The Night The Pugilist Learned How To Dance)’와 같은 아름다운 곡을 만드는 음악가라는 것이다. 앨범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동명의 뮤지컬 ‘더 라스트 쉽’을 국내에서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래본다.
엘튼 존 ‘The Diving Board’
무려 서른 번째 정규앨범이다. 어린 시절에 FM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있으면 디스크자키 배철수는 엘튼 존에 대해 “23년 연속 빌보드 톱40 곡을 배출한 유일무이한 가수”라고 소개했다. 어쩌면 엘튼 존을 존재감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기록이 아닐까? 이제 어느덧 60대 후반이지만 작년 내한공연에서 보니 피아노가 부서져라 두드리는 에너지가 대단하더라. 새 앨범은 어쿠스틱 위주의 소박한 편성으로 간결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전작 ‘더 유니온(The Union)’에 참여해 ‘아메리카나’를 선보인 티 본 버넷이 프로듀서로 다시 참여했는데, 이번에는 미국 전통음악의 색보다는 엘튼 존 특유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관조적인 노래들이 담겼다. 엘튼 존은 한 인터뷰에서 “난 차트에 올리기 위해 이 음악들을 작업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좋다고 느끼는 음악만을 만들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음악들은 역시나 훌륭하다. 나이에 걸맞은 깊이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너무나 멋질 뿐이다.
스트록스 ‘Comedown Machine’
스트록스는 2001년 앨범 ‘이즈 디스 잇(Is This It)’으로 새로운 시대의 록 스타가 됐다. 너바나가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어정쩡한 단어로 불렸듯, 스트록스도 개러지 록이라는 안 어울리는 단어로 정의됐고, 이후 몇 년의 시간차를 두고 홍대에는 수많은 개러지 록 밴드들이 생겨났다. 최근 스트록스는 신스팝 비트 등을 과감하게 받아 들여왔다. 이것은 일렉트로니카의 유행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스트록스는 록 스타답게 자신들의 사운드를 들려주려 한 것일 뿐. 그런 움직임은 새 앨범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며, 스트록스 특유의 ‘스타일리시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존 메이어 ‘Paradise Valley’
이 시대의 록(?)스타 존 메이어(John Mayer)는 점점 과거로 회귀 중이다. 잘생긴 외모와 출중한 기타 실력, 송라이팅으로 커다란 인기를 누린 그는 전작인 5집 ‘본 앤 레이즈드(Born And Raised)’에서 데이빗 크로스비, 그라함 내쉬와 같은 거장들까지 함께 하며 포크, 루츠록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6집인 이번 앨범 ‘파라다이스 밸리(Paradise Valley)’에서는 페달 스틸 기타까지 동원해 예스러운 컨트리까지 들려준다. 하긴 그는 본래 서정적인 보컬 멜로디를 들려주는 동시에 구수한 블루스 기타를 구사한 독특한 존재였다. (미국의 루츠음악을 동시대의 입맛에 맞게 구사한 것은 노라 존스와도 닮아있다) ‘유어 바디 이즈 원더랜드(Your Body is Wonderland)’, ‘도터(Daughter)’와 같은 곡들이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했지만, 존 메이어 트리오로는 ‘에브리데이 아이 해브 블루스(Everyday I Have Blues)’와 같은 블루스의 고전을 마치 스티비 레이 본처럼 노래하고 연주했다. 그러니 지금의 서른 중반의 존 메이어가 미국의 루츠음악을 구사하는 것이 하등 수상할 것이 없다. 오히려 멋스러워 보인다. 기존 여성 팬들은 조금 낯설어하겠지만.
마일리 사이러스 ‘Bangerz’
2013년에 가장 화끈한 19금 섹스어필을 펼친 가수를 꼽자면 마일리 사이러스다. 디즈니 채널의 ‘한나 몬타나’를 통해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타덤에 올랐던 사이러스다. 전 세계 청소년의 우상이었던 마일리 사이러스가 갑자기 ‘MTV 뮤직 어워드’에서 성행위 퍼포먼스를 하고 ‘렉킹 볼(Wrecking Ball)’ 뮤직비디오에서는 올 누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왜 그랬을까? 여배우들의 경우 연기의 성장을 위해 베드신에 도전한다고들 하던데 비슷한 이유에서였을까? 올 한해 마일리 사이러스에 대한 이런저런 섹스어필 무용담을 전해 들었는데 정작 음악을 못 들어봤다. 기대감을 가지고 앨범재킷을 펼쳤다. 어럽쇼? 기대보다 야하지는 않다. 음악을 보면 기존에 들려줬던 아이들이 좋아하는 틴팝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트랩(trap)’ 등 힙합 성향이 강해졌으며 전반적으로 공격적으로 변한 음악 스타일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이제 음악에서도 마일리 사이러스 2.0 출발.
조지 벤슨 ‘Inspiration (A Tribute To Nat King Cole)’
조지 벤슨이 냇 킹 콜에 대한 트리뷰트 앨범을 냈다는 것이 이슈라면 이슈다. 재즈의 역사, 아니 팝의 역사를 통틀어서 연주와 노래를 가장 완벽하게 해내는 둘이 만난 것이니까. 둘은 보컬리스트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후대 연주자들에게 하나의 계보를 형성하게 할 만큼 혁신적인 연주를 제시한 스타일리스트들이기도 하다.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오스카 피터슨과 자웅을 가리기도 했던 냇 킹 콜은 1943년 ‘스트레이든 업 앤 플라이 라이트(Straighten Up and Fly Right)’을 노래하며 가수로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그 해는 조지 벤슨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벤슨이 앨범을 낼 때마다 기타의 비중이 얼마나 될지 가늠해보곤 한다. 워낙 훌륭한 연주자이니 말이다. 이번엔 그런 걱정할 필요 없이 빅밴드 오케스트라에 맞춰 연미복을 입은 보컬리스트 조지 벤슨의 노래를 마음껏 즐기면 된다. 헨리 멘시니 오케스트라, 윈튼 마살리스의 연주에 맞춰 조지 벤슨이 노래하는 ‘언포개터블(Unforgettable)’ ‘루트 66(Route 66)’는 대단한 ‘귀 호강’을 시켜주니 말이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 ‘Now, Then Forever’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8년만의 정규앨범 ‘나우, 덴 포에버(Now, Then Forever)’를 플레이하자마자 코끝이 찡하면서 어깨가 자동으로 들썩여진다. 정말 대단한 그루브가 아닌가! 그리고 지겹게 들었던 과거의 앨범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가성이 나온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번 ‘어스 윈드 앤 파이어는 신이다. 이토록 완벽한 그루브를 들려주니까’ 2번 ‘어스 윈드 앤 파이어는 신이 아니다. 가성에선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니까.’ 분명한 사실을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이 앨범은 전설에 누가 되기는커녕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첫 곡 ‘사인 온(Sign On)’부터 16비트가 명불허전이다. 원년멤버는 세 명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공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들은 거의 대를 물려 밴드를 유지하는 수준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타이틀곡 ‘마이 프라미스(My Promise)’에서는 소리의 빈틈을 찌르는 브라스 편곡 등 스릴이 잘 나타난다. ‘가이딩 라이츠(Guiding Lights)’와 같이 감성을 자극하는 슬로우잼 넘버들도 여전하다. 담겼다. 밴드의 창립자 모리스 화이트는 파킨슨 씨 병으로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신곡들을 모니터링하고 가이드하는 등 신보 작업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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