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워킹데드’ 스틸

왜 사람들은 좀비에 열광할까? 최근 개그맨 김준호가 ‘좀비’ 뮤직비디오에서 김치 먹는 좀비로 변신해 눈길을 끌었다. 김치가 바로 좀비 바이러스를 치료해준 것. 또 그룹 비투비도 얼마 전 ‘스릴러’를 통해 좀비로 나타났다. 조명을 활용해 눈빛이 진짜 좀비처럼 변하는 효과를 주며 팬들의 환호를 얻었다. 좀비가 가요계만 침투한 것은 아니다. 지난달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에서 열린 ‘좀비런’은 총 5,900여 장의 티켓이 팔려 나갔다. ‘좀비런’은 좀비 또는 도망자 역할을 맡아 불 꺼진 3KM 구간을 달리며 구간별 미션을 수행하는 이색 레이스다.

좀비가 등장하는 게임 또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로스퉤트 모바일 대표 금정민은 게임 ‘어웨이크 좀비’로 ‘대한민국모바일앱어워드 2013’ 8월 으뜸앱을 수상하기도 했다. 좀비가 나오는 인기 미국드라마 ‘워킹 데드 4’가 10월부터 케이블방송 FOX 채널을 통해 국내 전파를 탔다. 무엇보다 영화 ‘이웃집 좀비’부터 ‘무서운 이야기2’까지 국내에서도 좀비 영화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배우 박기웅, 남규리가 캐스팅된 3D 옴니버스 중 좀비 단편영화 ‘너를 봤어’는 12월 초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으며 임시완이 물망에 오른 좀비 영화 ‘야간자습’도 현재 캐스팅을 마무리 중이다.

사방이 좀비다. 좀비물이 단순히 공포영화를 위한 한 소재였다면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굳건한 하위문화로 자리 잡지 못했을 터. 좀비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길래 사람들이 열광할까.

# 좀비는 ‘혁명’이다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스틸

아이팀 섬의 부두교 의식에서 움직이는 시체 좀비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 시체들은 부두교 마법사 힘으로 다시 살아나지만, 마법사의 완벽한 통제 아래 움직이는 무기력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좀비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손길을 걸쳐 새로운 성격을 띠게 됐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를 통해 지금 우리가 익숙한 좀비의 모습이 뚜렷하게 각인됐다. 그가 만든 좀비는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고 집단을 형성해 움직이는 ‘살아있는 시체’들. 게다가 이들은 만족을 모르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무자비하게 잡아먹는다. 그리고 좀비에게 물린 시체들은 좀비가 된다.

조지 로메로는 리차드 메디슨 작가가 쓴 ‘나는 전설이다’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 책에는 모두가 뱀파이어가 된 상태에서 혼자 남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설정을 접한 조지 로메로가 떠오른 단어는 혁명이었다. 낡은 것을 뿌리째 뽑아버릴 근원적인 변화를 위해 조지 로메로는 거대한 존재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좀비’였다. ’68혁명’ 이후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이상적인 사회를 갈망하던 젊은이들은 좀비에 열광했고 지금까지도 좀비는 하위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뱀파이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드라큘라 등은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하위문화라면 좀비는 영화가 만든 하위문화라는 점!) 68혁명은 1968년 3월 미국 베트남 침공에 항의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파리 사무실을 습격한 대학생 8명이 체포되자 학생과 근로자들이 일으킨 사회변혁운동이다.

# 좀비는 ‘신선한 충격’이다

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 스틸

좀비는 우주가 아닌 바로 우리 사회 안에서 나타났다.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알 수 없다. 그저 사람을 잡아먹는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건 뇌를 파멸시켜야 한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여기에 총보단 도끼나 칼이 더 유용하다.) 이렇게 좀비는 우리가 익숙한 환경과 관습을 자극하는 ‘신선한 충격’이다. 이런 충격은 우리 사회 속에 굳혀진 제도들을 뒤집어버린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정부만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좀비 영화에도 당연히 사람들은 고립된 상황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영화 속에서 미디어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주인공 숀과 에드가 거실로 침투한 좀비와 싸우고 있는 동안 텔레비전은 ‘다 잘 해결되고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떠들고 있다.

좀비는 가족제도를 비틀어버린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엄마는 좀비에게 물린 딸을 성심성의껏 간호하지만, 딸은 감사한 줄도 모르고 좀비로 변해 엄마와 아빠를 무참히 먹어 치운다. 이러한 충격을 통해 좀비는 사회 속에서 관습화된 제도와 틀을 하나씩 없애버린다. 사실 제약이 없어진 사회는 그리 혼란스럽게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억압된 삶을 사는 관객에겐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만끽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부럽게 느껴진다. 좀비들을 피해 대형 쇼핑몰에 살면서 먹고 싶은 걸 맘껏 먹고, 갖고 싶은 것을 가져가도 말릴 사람이 없었던 ‘새벽의 저주’를 보며 짜릿했던 건 왜일까.

# 좀비는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이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 스틸

좀비는 사회 속 제도뿐만이 아니라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미국드라마 ‘워킹데드’가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영화와 달리 좀비로 인해 인간이 변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을 시험(?)해보는 맛이 살아있어 인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기도 한다. 그 시험 결과는 이렇다. 드라마 속 인물은 처음에는 망설이다가도 선인 사람이든 악인이든 생존을 위해 다른 이를 죽이고 감정은 배제해버린다. 감정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좀비와 인간들이 구별이 안되 자 모두 쏘아 죽여버리는 군인(권력자)도 많은 좀비물에 등장한다. 이렇게 선과 악의 경계선을 허물어지고 좀비나 인간이나 모두 비인간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좀비 영화를 보다 보면 공포의 대상은 좀비가 아닌 인간일 때가 많다. 참 아이러니하다.

좀비는 결국 사회에서 시작해 그 안의 제도, 그리고 인간까지 뒤집어 버리며 뿌리를 찾아 먹어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달린다. 사회에 산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억압하는 그물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 인간에게 새로운 세상은 언제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좀비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글. 이은아 domin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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