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화 ‘건축학 개론’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성공과 함께 불기 시작한 대중문화계 ‘추억 바람’은 올해도 이어졌다. 가요계에서는 조용필, 이문세 등 1980~90년대를 풍미한 가수들이 성공적인 컴백을 알린 데 이어 90년대 가요의 리메이크 바람이 이어졌고 영화계에서도는 ‘러브레터’ ‘터미네이터 2′ ‘중경삼림’ 등 90년대 인기 작품의 재개봉이 줄줄이 이뤄졌다. 브라운관에서는 MBC ‘일밤 – 진짜 사나이’ 케이블TV tvN ‘푸른 거탑’ 등이 ‘군대 예능’이라고 칭해지며 군대 시절 추억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고 90년대 초반을 무대로 한 tvN ‘응답하라 1994′는 하반기 최고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대중문화의 추억 소환’은 90년대 청년기를 보낸 지금의 30~40대들이 사회적으로 가장 활동이 왕성한 세대가 된 점과 무관치 않다. 여기에 계속된 경제 불황도 자연스레 ‘순수했던 그 시절’을 불러오는 데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올 한해 다양한 방면에서 추억을 소환한 대중문화의 면면을 되짚어봤다.
이문세(좌), 조용필
조용필과 이문세 등 중견의 반란2013년 대중음악계 키워드는 ‘추억’이라 할 수 있다. 조용필을 시작으로 이문세, 이승철, 신승훈, 나미, 장필순, 들국화 등이 오랜만에 새 음반과 콘서트로 가요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아이돌그룹이 가요계를 잠식한 이후 이런 적이 없었다. 최근에는 ‘응답하라 1994’를 통해 공일오비, 이승환, 신해철 등의 1990년대 가요들이 다시금 들려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 대중음악계 이슈는 8할이 조용필이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대중음악계 이슈의 패러다임은 ‘케이팝 한류’를 중심으로 다뤄져왔다. 이를 깬 것이 바로 데뷔 45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이다. 4월 16일 정오에 공개된 조용필의 신곡 ‘바운스’는 17일 자정을 기점으로 네이버뮤직, 벅스뮤직 등 주요 온라인 음원사이트 실시간차트에서 싸이의 ‘젠틀맨’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싸이를 비롯해 아이돌그룹, 오디션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의 노래들이 모두 조용필의 밑에 있었다. 조용필은 ‘바운스’ ‘헬로’ ‘충전이 필요해’ 등 최근 트렌드를 받아들인 음악으로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구가했다.
콘서트시장에서는 이문세가 있었다. 지난 6월 1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이문세의 데뷔 30주년 공연 ‘대한민국 이문세’에는 5만 여명의 관객이 몰리며 성황리에 치러졌다. 공연은 그야말로 ‘블록버스터’급이었다. 주경기장 옆쪽에 마련된 길이 100미터, 높이 30미터의 배 모양 무대의 위용이 눈을 압도했다. 이문세는 1998년 4월에 시작된 브랜드 공연 ‘독창회’를 통해 10년 동안 약 300회의 공연을 열며 4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8분의1인 5만여 명이 이날 공연장을 찾은 것이다.
조용필, 이문세를 중심으로 중견 가수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것이 올해 가요계 주목할만한 점이다. 이승철은 4년 만의 11집 ‘My Love’를 발표하고 광화문 쇼케이스 약 5,000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신승훈 역시 4년 만의 새 앨범 ‘Great Wave’를 발표하고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단독콘서트를 가득 메웠다. 신승훈은 1992년 6월 28일 ‘보이지 않는 사랑’의 폭발적 인기로 체조경기장 공연을 개최하고 무려 20년이 지난 후에도 체조경기장을 가득 채운 것. 20년 전 공연장을 찾은 10대, 20대 여성 팬들은 20년이 지나 그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열정만은 그대로였다.
들국화
들국화 27년, 나미 17년 만의 신곡들국화는 무려 27년, 나미는 17년 만의 신곡을 내놓는 등 레전드 급 가수들의 반가운 컴백이 줄을 이었다. 한국 록의 전설 들국화는 원년멤버인 전인권, 최성원, 고 주찬권이 모여 녹음한 새 앨범 들국화를 6일 발매했다. 들국화가 이처럼 주요 원년멤버가 다시 모여 신곡을 녹음한 것은 1986년 2집 발매 이후 27년 만이다. 지난 10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드러머 주찬권이 참여한 마지막 앨범이라 의미가 더욱 깊은 이 앨범에는 다섯 곡의 신곡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 ‘재채기’, ‘하나둘씩 떨어져’, ‘들국화로 필래’가 실려 들국화의 영광을 이어가고 있다. 6세 때 미8군에서 데뷔해 밴드를 거쳐 ‘빙글빙글’, ‘영원한 친구’, ‘인디언 인형처럼’으로 사랑받았던 가수 나미는 17년 만에 파격적인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장르의 곡 ‘보여(Voyeur)’로 돌아왔다. 나미의 신곡은 1996년 ‘설득’ 이후 17년 만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신곡을 발표하고 활발한 공연과 방송으로 팬들과 만났다. 특히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은 Mnet의 프로그램 ‘음악이야기 봄여름가을겨울의 숲’으로 다양한 음악이야기를 풀어내며 호평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 하드록의 시초로 꼽히는 전설의 밴드 무당, 한국 재즈의 대모 박성연, 한국 프로테스트 포크의 거장 양병집, 동물원 출신의 김창기, 하나음악에 몸담았던 싱어송라이터 이무하,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장필순, 메탈에서 뉴웨이브까지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 H2O, 메탈밴드 크라티아, 디아블로, 윤도현이 리더로 있는 YB, 결성 16주년을 맞이한 자우림, 이한철이 이끄는 불독밴션, ‘조선펑크’의 파수꾼 크라잉넛 등이 새 앨범을 발표하며 다양한 장르에서 중견들의 컴백이 줄을 이었다. 패닉 출신의 이적은 무게감 있는 발라드 곡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로 아이돌가수들을 제치고 8개 온라인 음원사이트의 음원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한편 로이킴, 김예림, 버스커버스커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어린 가수들도 90년대 풍의 가요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들은 단순히 경연에서 옛 곡을 커버해서 노래한 것을 넘어서 자신들의 앨범에서 90년대 풍의 신곡을 선보여 다양한 세대에서 두루두루 인기를 끌었다.
신중현
실버보이들 록페를 휘어잡다록페스티벌에서도 노장들의 투혼이 빛났다. 광복절인 8월 15일 록페스티벌 ‘슈퍼소닉’에서는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이 무대에 올라 첫 곡 ‘미지의 세계’부터 마지막 앙코르 곡 ‘여행을 떠나요’까지 2만 여 명의 팬들과 열정적으로 합창했다. 같은 달 18일 열린 록페스티벌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에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무대에 올랐으며 수만명의 관객이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을 합창했다. 작년까지는 인기 있는 젊은 록밴드들이 중심을 이뤘던 록페스티벌에 올해에는 신중현, 조용필을 비롯해 들국화, 김창완에 이르기까지 한국 록의 역사를 만들어온 거장들이 자리했다. 신중현은 록페스티벌에서 70대 노장이 아닌 혈기 넘치는 로커의 모습이었다. 가녀리게 떨렸던 신중현의 목소리는 곡이 거듭될수록 점점 또렷해졌고 ‘미인’에서는 쩌렁쩌렁했다. 함께 무대에 오른 신중현의 두 아들 대철과 윤철이 주고받는 기타 연주도 압권이었다. 거장을 소환하는 것이 록페스티벌의 미덕이라면, 이날 신중현의 공연은 그 미덕의 최대치를 보여줬다.
데이빗 보위
팝계에서도 전설들 맹활약팝계에서도 전설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데이빗 보위를 시작으로 블랙사바스, 엘튼 존, 스팅, 폴 매카트니, 그리고 어스 윈드 앤 파이어가 신작을 발표하며 팝계를 호령했다. 특히 데이빗 보위는 10년 만에 새 앨범 ‘The Next Day’를 공개해 최고의 컴백앨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아시스 출신의 노엘 갤러거는 “최고의 앨범이다. 10점 만점에 11점을 주고 싶다”라고 평했다.
스팅의 새 앨범 ‘The Last Ship’에는 그가 무려 10년 만에 발표하는 신곡들이 담겼다. ‘살아있는 팝의 전설’ 엘튼 존이 3년 만에 발표하는 ‘The Diving Board’는 무려 서른번째 정규앨범이다. 폴 매카트니는 6년 만의 신곡이 담긴 새 앨범 ‘New’를 통해 비틀즈 시절을 연상케 하는 젊은 록을 들려줬다. 블랙사바스는 원년 보컬리스트인 오지 오스본이 합류해 35년 만에 내논는 앨범 ‘13’으로 빌보드 앨범차트, UK 앨범차트에서 모두 정상에 오르고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는 등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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