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캔들’
‘시스템이 콘텐츠를 좌우한다’‘아웃라이어’의 작가 맬콤 글래드웰의 이 말은 PPL(Product Placement, 간접광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재벌 소재 드라마에 가장 적합한 비유일 것 같다.
시청자들의 ‘식상하다’는 비판 속에서도 재벌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속속 제작되는 현실은 현재 한국 드라마 제작 상황과 맞물려 빚어지는 당연한 결과라는 얘기다. 신분상승, 신데렐라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재벌 소재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쓰여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재벌이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점점 ‘한국 드라마의 재벌 편중성’이 심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방송됐거나 방송중인 작품만 해도 SBS ‘황금의 제국’ ‘결혼의 여신’ ‘상속자들’ MBC ‘스캔들’이 전면적으로 재벌가 이야기를 다룬 데 이어 MBC ‘오로라 공주’ SBS ‘주군의 태양’ KBS ‘비밀’ 등에서도 재벌가의 자녀가 주요 등장인물로 극을 이끌어 가고 있다.
물론 극의 전개를 위해 소재상 재벌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드라마 제작 환경이 계속해서 ‘재벌 드라마’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SBS ‘결혼의 여신’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드라마 속 간접 광고인 PPL에 있다. 지속적인 드라마 제작비 상승에 따라 드라마 제작비에서 PPL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소재상 재벌이 등장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실제로 최근 제작되는 지상파 방송 미니시리즈 제작비는 편당 2억~3억 5000만원에 달한다. 반면 방송사가 제작사에 지급하는 제작비는 회당 제작비의 1/2 수준이라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PPL은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이 돼 버린지 오래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점점 올라가는 스타 몸값에 따라 제작비가 상승하면서 총 제작비의 1/3 가량을 PPL로 충당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제작사 입장에서는 더 많은 PPL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주요 등장인물의 직업이나 극중 배경이 재벌가 위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광고 협찬을 받는 기업을 중심으로 드라마 구성이나 등장인물, 스토리가 바뀌거나 최근에는 아예 기획단계부터 해당 기업을 위주로 한 극 전개가 구성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나 광고는 소비자가 인식하지 못할 때 가장 큰 효과가 있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처럼 노골적인 PPL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반감을 산다. 결국 시청자들은 한정적인 소재의 드라마를 답습하고 기업은 기업대로 원하는 광고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케이블TV tvN의 한 드라마 PD는 “지상파 드라마가 재벌가 위주의 막장 소재의 작품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시청자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 드라마처럼 다양한 소재의 전문직 드라마나 장르적 성격이 강한 드라마가 제작되려면 일단 제작환경이 변해야한다”고 전했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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