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냥 밉상이더니만 이내 보는 이들의 부아를 끓게 하는 공분의 대상이 됐다. KBS2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서 허세달 역을 맡은 오만석의 이야기다. 큰 눈을 껌뻑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포도밭의 그 사나이는 ‘왕가네 식구들’을 만나 ‘울화통 캐릭터’라는 새로운 수식을 얻었다.
‘왕가네 식구들’이 지난 27일 방송된 18회 시청률이 32.3%(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전국시청률 기준)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주말극 강자의 면모를 자랑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고민이 깊어지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 또한 오만석이다. 가족 단위 TV 시청이 이뤄지는 주말 오후 시간대에 아내 왕호박(이태란)을 등쳐먹고 돈 많은 이사님 은미란(김윤경)의 치마폭에 빠져 헤어 나올 줄 모르는 허세달 역을 연기하는 게 부담이 적지 않을 터. 하지만 오만석은 의외로 그런 반응을 즐기는 듯 천연덕스러운 답변을 내놓는다.
“물론 보시는 분들 입장에선 ‘정말 뭐 저런 인간이 있지?’ 하실 수도 있죠(웃음).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에요. 앞으로 더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들이 많이 남았습니다.”
“미~쳐 버리겠네!” 자신에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대사 한 마디로 표현하다 보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허세달이 생각이 없다고 치부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오만석은 허세달을 통해 나름의 페이소스를 전달하려 고군분투 중이라고 했다.
“사실 (허세달과 같은 캐릭터를) 정말 보고 싶지 않을 뿐이지 이런 인물이 세상에 없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심한 사람도 있겠지요. 가진 것이 없어 정신 못 차리고 방황하던 세달이 미란을 만나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과정은 측은함까지 느껴집니다.”
하루에 3,000원을 용돈으로 받던 남자에게 1억 원이 생긴다면 어떨까. 오만석은 그런 유혹은 돈 문제로 고생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쉽게 뿌리치지 못할 유혹일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살면서 불가능하다고 말할만한 일은 없다는 것, 오만석이 그려내는 허세달의 출발점이다. 아예 작정하고 들어갔던 캐릭터였던 만큼 호박을 위해 왕봉(장용)의 집을 찾아가 울분을 토해내는 장면은 시청자에게 좀 더 큰 울림을 전했다.
“아무리 가진 게 없고 돈 한 번 제대로 벌어온 적이 없는 남자일지라도 자기 아내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은 하기 마련이죠. 특히 이 여자(왕호박)가 계속해서 이렇게 돈 때문에 궁상을 떨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걸 이해하고 나면 더 그래요. 물론 이건 1억 원짜리 카드를 받기 전의 상황이죠(웃음).”
1999년 연극 ‘파우스트’로 데뷔한 이래로 뮤지컬 무대에 줄곧 서왔던 경험이 밑바탕이 된 듯 ‘왕가네 식구들’ 속 허세달에게서는 흡사 뮤지컬 무대를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흥’이 묻어난다. 오만석은 “문영남 작가도 나의 경력을 알고 부러 그런(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장면을 유도하는 편”이라며 “그런 나의 경험이 화려하고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세달을 좀 더 잘 표현해내는 데 도움이 되기에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흥이 난다”고 답했다.
‘왕가네 식구들’ 속 허세달이 기존의 작품들에서 선보인 캐릭터들보다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오히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어색함이 없어 편하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오만석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항상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다음 작품에 들어가서야 체감하게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아직도 배우로서 부족한 게 많다고 털어놓는 그의 표정에서는 연기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읽혔다.
“항상 멋있고 보기 좋은 역할만 하는 건 매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또 자기 나이 때에만 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왕가네 식구들’을 통해서 그런 갈증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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