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카페 유게에서 공연 중인 드린지 오

텐아시아에서 지난 5월 인터뷰를 했던 싱어송라이터 드린지 오가 80일간의 일본을 돌며 공연을 펼친 투어기를 보내왔습니다. *기사참조(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33888) 앞으로 총 6회 간의 연재를 통해 드린지 오가 오사카, 도쿄, 카나자와 등지를 돌며 겪었던 생생한 체험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04 교토
교토는 포크라는 음악이 여기처럼 잘 어울리는 도시가 있을까 싶을 만큼 오래된 정취와, 어쿠스틱 사운드가 잘 어울리는 공연장이나 카페가 많은 곳이다. 60~70년대 쿄토 포크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니까. 도시가 크기도 하지만, 대학도 많아서 젊은 사람들이 도시 어디서나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뮤지션도 많고, 그만큼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많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 곳이다. 관객이 10명 정도 밖에 못 들어가는 곳도 있지만, 어떤 규모의 밴드도 모두 연주할 수 있는 라이브 하우스도 있었다.

카페 유게의 2층 타타미 방. 이곳에서 모두 맨발이 되어 연주를 하고 연주를 즐긴다

교토에서는 다섯 번 공연을 가졌는데, 5월에는 오래된 주택 1층을 카페로 개조한 카페 유스라고(ゆすらご), 무뚝뚝한 주인장이 빵부터 패티까지 손수 만들어서 파는 카페 유게(ゆぐえ), 6월에는 관객이 10명만 들어와도 꽉 차버리는 할머니의 드립커피가 일품인 카페 논(のん). 그리고 6월과 7월에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교라이교(魚雷魚)의 드러머 유리씨가 일하는 라이브 하우스 얼반길드(UrBANGUILD)였다.

카페 유스라고에서 리허설 중인 히로씨

관객들도 포크에 익숙해서 공연을 하는 동안 관객들의 반응을 살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편한 곳이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도 관객들은 돌아가지 않고 느긋하게 뮤지션과 술을 마시며 밤늦게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치안도 좋고, 교토가 산책하기가 좋아서 지하철이나 버스가 끊어져도 쿄토에 사는 사람들은 그냥 걸어서 집에 돌아간다고…. 다들 표정과 목소리에 여유가 있고, 관객들 대부분이 또 뮤지션이거나 뮤지션이었던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쿄토 공연은 항상 밤늦게 까지 뒤풀이 아닌 뒤풀이가 있었다. 오히려 오사카나 다른 도시로 돌아가야 하는 내가 미안할 정도였으니까. 공연이 많은 도시다 보니, 사실 라이브 마다 관객들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항상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이 있어서 코베처럼 친구가 되기도 했다. 칸사이는 모두 통하는 것인가….

카페 논의 좁은 무대. 관객이 10명만 들어와도 카페가 꽉 찬다. 멋쟁이 할머니의 드립커피가 아주 맛있다

#05 이세
미에현의 이세는 일본 신사(神社)의 원조 격인 이세신궁이 있는 도시. 그런데 신궁 빼고는 여느 시골 마을과 똑같았다. 예정에 없던 이 도시를 방문하게 된 계기는 예전 칸사이 투어 때 알게 된 퍼펫무비(인형을 움직여서 만드는 영화) 아티스트인 스웨덴계 일본인 토마스의 뜻밖의 호의 때문이었다. 오사카에서 5월 공연 부킹이 너무 안되어서 슬슬 빈둥거리는 것이 눈치가 보일 무렵, 함께 공연했던 5월 고베의 ‘스페이스 오(Space eauuu)’ 공연 때 “5월 마지막 주에 우리 집에 와서 일주일 동안 쉬어도 좋아”라고 나를 초대 한 것이었다.

토마스의 집. 이세의 외곽 한적한 논에 덩그러니 집 한 채가 지어져 있었다

5월 쿄토의 유스라고에서 공연을 끝내고, 다음날 월요일 열차를 3시간 동안 세 번을 갈아타고 이세에 도착했다. 토마스가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차를 몰고 이세신궁 근처의 친구 카페에 들러 간식을 먹었다. 혼자 쉬고 있는데 토마스와 카페 주인이 라이브 같은 것을 기획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것은 일본어가 짧아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세의 완전 외곽의 촌에 있는 토마스의 집에 도착해서 아내인 키요미씨와 어색한 첫 인사를 했다. 어색했던 이유는 키요미씨의 살벌한 표정 때문이었는데, 알고 보니 재미있고 따듯한 사람이었다. 표정이 다시금 풀려서인가 금방 친해지고 말았다. 저녁은 이세에서 가장 오래된 이자가야에서 간단한 요기를 채우러 갔다. 거기서 합석한 토마스의 친구가 있었는데, 이 둘이서 또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로 라이브를 기획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토마스, 참 바쁘구나”라는 생각만 했었다.

요기를 채우고 나서는 이세에 하나밖에 없는 클럽으로 갔다. 누군가의 생일이어서 카라아게가 넘쳐났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이세 특산맥주를 무료로 주었다. 클럽 주인(그들은 그 남자를 이세의 갓 파더라고 불렀다.)이 꽤 재미있는 할아버지였는데, 주인과 토마스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더니 나중에 토마스가 웃는 얼굴로 게스트가 다 정해졌으니 드린지씨 마지막 날 저녁에 집에서 공연을 하자고 했다. 라이브가 홈파티 얘기였던 것이다.

홈파티를 위해 침실의 침대를 치우고, 방석을 놓고 손님맞이 준비

토마스가 초대한 목적이 하나 더 있었는데, 토마스의 단편 퍼펫 무비의 엔딩곡 녹음이었다. 엔딩곡은 토마스가 직접 만든 ‘무라타 섹시 보이(Murata Sexy Boy)’라는 곡. 친분이 있는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버전을 만들어서 헌정하면 에피소드의 엔딩마다 다른 버전의 곡이 올라갔다. 작년에 드린지 오 버전을 만들어서 토마스와 함께 공연할 때 종종 연주를 하기도 했었다. 내 버전은 언제 쓰일지 모르겠지만 햇볕이 좋던 날 2층에서 녹음을 가졌다. 일본 투어 동안 종종 공연에서 토마스의 ‘무라타 섹시 보이’를 연주하곤 했었다.

비가오던 평일, 토마스씨와 동네 친구 몇 명이서 온천을 떠났다. 온천에 있던 어설픈 캐릭터 모형

이세의 마지막 날, 홈파티는 토마스, 카페 마스터인 토노무라씨, 이자까야에서 만난 친구 모토무씨, 갓파더 마사이씨와 함께 했다. 관객들은 입장료 대신 먹을 걸 들고 왔었는데, 뒷풀이는 뒷 산의 심령 스팟 산책이었다. 네 명이서 불빛도 없는 야산을 새벽 1시에 조그만 신사까지 다녀오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서로의 스마트폰에서 심령 사진을 찾기도 했다. 이세에서는 정말 잘 먹고 잘 쉬는 일주일의 휴양이 되었었다.

홈파티에서 연주 중인 드린지 오

글, 사진. 드린지 오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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